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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무너지는 양심…건강보험 무임승차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물질과 양심이다. 물질은 풍부하되 양심이 부족하면 ‘탐욕의 나라’로 전락하고, 양심은 있으되 물질이 부족하면 그저 ‘청빈한 나라’일 뿐이어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돈과 양심이 보조를 맞춰야 진정으로 존경받는다. 또 이런 개인이 늘어나야 명실상부한 선진국가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뻗쳐가고 있지만 양심이 무너지면 언제든 손가락질 당하는 나라로 이미지가 추락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료 안내는 소득자들

 

근로소득이 있으면 건강보험료(건보료)를 내는 것이 원칙이다. 또 직장에 다니면 직장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원칙이고 양심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달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씩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급여가 훨씬 부족한 자녀의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려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사례가 적지않다. 연간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면서도 건보료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고용주에게 근로소득 신고를 하지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고용주 역시 보험료 부담이 싫어 이런 제안을 받아 들인 결과다.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이처럼 다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려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 사람은 211만 5000명(2011년 소득 기준·KDI 윤희숙 연구원)으로 추산된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상대적으로 보험료를 적게 내는 지역보험에 일부러 가입한 사람도 285만여명에 달하는 것을 추정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의 10분 1인 500만명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신고 기피하는 고용주들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용직, 금융소득자, 4대보험에 미가입한 영세기업 근로자들이라는 것이 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설명이다. 이들의 소득은 건보공단에서 파악이 잘 안돼 보험료 징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매년 47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5.89%의 보험료율을 적용하면 연간 2조7600억원의 보험료를 거둘 수 있지만 실제 보험료 납부액은 이에 훨씬 못미친다.

 

이처럼 보험료가 줄줄이 새는 것은 일용직 근로자들의 고용주들이 근로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 보험료를 내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 유리하다고 인식한 결과다. 월 60시간 이상 근로하면 건보료 직장가입자 대상이 된다. 사업주가 국세청에 고용 근로자의 소득을 정직하게 신고하면 월급의 10% 정도를 4대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소득신고를 하지 않아 국세청에 적발되더라도 지급명세서 미제출 가산세 2%만 납부하면 그만이다. 이런 제도상의 허점이 양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양심이 드러눕는 '나이롱환자'들

 

자동차를 운전하다 조그만 접촉사고라도 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혹시 나이롱환자?’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은 국제사회에서 나날이 높아지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나이롱 환자는 갈수록 늘어난다. 부끄러운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입원을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1년 평균 5개월이나 입원하고 6년 동안 2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챙긴 여성이 경찰에 구속된 것은 ‘누워버린 양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2년 전에 비해 무려 28%나 늘었다. 보험상품의 허점이나 입원 실비를 노리는 보험사기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보험사기로 적발된 금액은 25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3% 증가했다. 보험사기 형태도 갈수록 조직화되는 모습이다.

 

보험사들이 특약으로 판매하는 ‘입원일당’이 나이롱환자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일단 입원부터 하려는 것은 자동차보험 합의금 산정시 입원을 하는 쪽이 통원치료를 받는 것보다 유리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입원일수에 따라 ‘입원일당’이 지급되는 상해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원인이야 어쨌든 대한민국의 병원엔 오늘도 나일롱환자들이 넘쳐난다. 양심이 무너진 결과다.

 

 

제도보완 보다 양심회복이 우선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인간이 타고난 선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커져가는 욕심이 어느 순간에 본성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따라서 본성을 지키려면 자라나는 탐욕을 끊임없이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공단는 제도상의 허점을 막기위해 ‘부과자격개선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의 소득자료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관련 조항도 추가했다. 물론 여기에도 국세청의 소득정보 자체가 정확하지 않은 한계는 있다.


옛말에 ‘열 명이 지켜도 도둑 한 명을 못막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제도를 보완해도 양심이 무뎌지면 사회가 혼탁해질 수밖에 없음을 함의하는 말이다. 양심과 도덕이 회복되어야 풍부해진 물질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건강보험 무임승차가 줄어들고, 나이롱환자들의 양심이 회복되기를 고대한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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