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살아 있음이 가장 행복합니다.

 

 

 

 

 

 

 

 

어젠 눈과 입이 호강한 날 이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본 영화 베테랑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동안 왜 영화를 멀리 했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다는 얘기. 이젠 한국 영화도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았다. 아니 더 잘 만든다고 할까.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났다. 주인공 황정민 유아인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조연들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오달수 유해진의 연기도 리얼했다. 모두 100점을 줄만 했다. 그래서 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 스토리는 권선징악. 뻔한 줄거리지만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나처럼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도 눈을 떼지 않고 봤으니 꼭 보기 바란다.

 

 

 

 

저녁은 근사한 데서 먹었다. 오랜만의 부부동반이라 장소도 신경 쓴 것. 아내와 친구 부인은 안심 스테이크. 친구는 영계구이, 난 봉골레. 넷 다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하는 동안 소나기도 세차게 왔다. 따라서 운치도 있었다. 친구와 오후 2시 30분에 만나 9시쯤 헤어졌다. 여의도 IFC에서 주차시간만 5시간 50분. 4시간을 면제받고도 주차비 11000원을 따로 냈다.

 

차는 1대로 움직였다. 친구가 우리 집에 와 나와 아내를 픽업했다. 다시 데려다주고 가면서 복숭아와 자두도 1상자찍 사왔다고 준다. 영화, 음식, 선물 보따리. 휴가 3일째를 알차게 보낸 셈이다. 이처럼 행복은 늘 가까이 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지인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행복하다는 데 싫은 사람이 있겠는가. 스스로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행복한가. 솔직히 "그렇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주변 모든 분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을 두고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다. 나에게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기자생활 30년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다. 그러한 기회는 회사가 나에게 제공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 그럼에도 자신이 잘 나서 그런 줄 아는 이가 적지 않다. 고마움을 모르면 더 발전할 수 없다. 그 다음은 겸손이다.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 잘난 사람이 겸손하면 그만큼 돋보인다.

 

특히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된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감동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은 없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곤 한다. 성악설보다 성선설을 더 믿는 까닭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행복도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이부터 챙기면 된다.

 

행복에 대해 여러 정의를 내린다. 그것을 수치한 것이 행복지수다. 어느 시대, 종족을 막론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의 불행을 더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우리가 안고 있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거기에 정답은 없다고 본다.

 

물질은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행복을 얘기할 수 없다.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이 넘친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질까. 그렇지 않을 게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빈민들의 행복지수는 낮지 않다고 한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나는 정신, 마음을 추구하고자 한다. 우선 마음이 평온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상태가 불안정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은 스스로 다잡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행복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죽음과 행복이 동시에 찾아올 순 없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택할 것이다. “지금 살아있어 행복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도 살고자 몸부림친다.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할까.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우문을 던져본다. 누구도 거기에 속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생사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몇해 전 행복을 전파해온 분이 부부동반 자살을 택했다. 텔레비전에 나와 밝게 웃으며 행복을 퍼트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국민에게 충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모두 죽어야 하나요.” 여러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안타까워 했다. 나도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모토도 행복이다.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행복을 설파하곤 한다. 함께 여행을 떠난 두 분의 유서를 읽어봤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부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부부가 동시에 함께 떠나는 것. 자살이 아닌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살은 정말로 비극이다. 게다가 동반자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거듭 말하지만 살아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