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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건강하고 신명 나는 삶, 자연치유력 회복

 

 

  

 

 

 


2015년에서 16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은 예년에 비해 따듯한 편이다. 엘니뇨다 이상기후다 여러 분석들이 많다. 그런데 2015년은 을미년, 을미(乙未)년의 천간(天干)은 목(木)이요, 지지(地支)는 토(土)다.즉, 한해의 반은 천간인 목이 지배를 하고, 또 한해의 반은 지지인 토가 왕성하다. 그렇다면 목극토(木克土), 즉 봄기운이 중앙의 습한 여름기운인 토(濕土)를 극하여 올해 상반기 극심하게 가물었다면, 올 하반기는 토(土)가 왕성한 바, 토극수(土克水)하여 찬 기운을 이겨내어 따듯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리학적 해석 역시,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자연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특정 논리, 이론, 과학으로 모두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면 자연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신성하며, 모든 과학과 논리 그 이상의 신묘한 법칙에 의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듯하면 춘화작용이 덜 되어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인류가 태어난 수 백 만년 동안, 안정된 기후를 유지했던 지구가 인간이라는 한 종족이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체력이 약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은 항상 사람의 걱정을 넘어선다. 한해의 기후 변화만 보면 사람에게 유익함과 그렇지 못함이 있는 듯하지만, 대자연의 흐름에 있어서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어떤 기상학자는 2015년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위성사진으로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2012년부터 2014년 3월까지 2년차에서 4년차 얼음이 증가하여 다시금 광범위하게 얼음면적이 확장되었다는 일례가 그러하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무튼 자연은 그렇게 건강하다.

 

좀 더 크게 본다면 사람이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자연 세계에서는 그저 건강한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다. 즉, 질병 역시 건강한 흐름의 하나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위대한 힘이라고도 말하고, 의료적인 견해로는 자연치유력이라고 칭한다. 자연치유력은 위대한 자연 그 자체요, 자연 속에 내재된 에너지라고도 하지만, 사람의 몸에도 존재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건강함을 체감할 수 있는 게 계절의 흐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건기와 우기가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연도 가끔은 가뭄이 오래 지속되거나 때 아닌 장마가 올 때가 있다. 산불이 일어나거나 이상 기온을 보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들어가고야 만다.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지구의 자연환경과 기후의 변화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 마음이 문제일 뿐, 자연은 건강하다. 자연과 건강은 결코 떼어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대자연의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자연을 보면 비가 내리고 그 비는 다시금 개울이 되어 흐르다가 강물이 되어 흐르면서 대지를 적셔준다. 우리의 몸도 대자연을 닮아서 개울이나 강물 같은 혈관을 통해 피가 순환하고 신경계가 작동하면서 생명력이 유지된다. 개울이나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치자. 자연이 건강할 수 없듯이, 우리 몸도 이와 같다. 그렇다면 자연치유력이란 흘러서 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 논제일 수 있다.

 

 


어떤 환우가 말했다. "선생님. 제 통증을 표현해 본다면 천 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요. 그런데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 봤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올질 않거든요.” 나는 말했다. “아마 천개의 바늘로 찔러도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으실 거예요.”

 

사노라면 이토록 아주 몹시 아플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꽉 막혔기 때문이다. 단지 혈액순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음의 영역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잡병편(雜病篇)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라고 했다. 기혈(氣血)이 순환되고 통해야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황제내경(黃帝內經) 거통론편(擧痛論篇)에서는 ‘집착하면 기(氣)가 맺힌다(思則氣結)’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사(思)란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는 나만의 생각, 즉 막힌 생각이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우는 갓난아이를 보자. 배고플 때도 울고, 추워도 울고, 졸려도 운다. 당연히 아파도 운다. 그러나 엄마는 갓난아이가 운다고 화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묵묵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서 대처한다. 몸이 아플 때는 몸이 내게 던지는 신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내몸은 통증을 통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힘들어요. 주인님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사회봉사를 하더라도 내개 휴식이 필요해요!’ 라고. 그럼에도 통증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통증은 점점 더 심화된다. 그리하여 천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몸의 기혈순환을 잘 흐르게 할 수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몸을 펴야 한다. 현대문명은 컴퓨터와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지나치게 구부정한 자세로 일하거나 이동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는 게 필요하다. 몸을 이완시키는 각종 요법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집에서 기지개를 자주 켜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어떤 자세도 좋다. 단지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척추를 세워보자. 그러면 기혈순환이 원활해지고 자연치유력이 회복된다.

 

 


둘째는 생각열기다. 하나만을 아는 사람은 생각에 통로가 없어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생각의 출구를 하나 더 가져보자. 매우 쉽다. 내뜻대로 되는 삶을 ‘해동네’로 보고, 그렇지 않는 삶을 ‘달동네’로 규정한 이후, 해동네가 올 때나 달동네가 올 때나 이에 맞게 잘 대처하는 생각이 필요하다. 아래 순자 자도편 (荀子, 子道篇)의 한 구절은 내가 달동네에 있을 때와 해동네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또한 근심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그 뜻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 다스려지는 것을 즐거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즐거움만 있고 단 하루도 근심함이 없다. 소인은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얻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근심만 있고 단 하루의 즐거움도 없느니라.”

 

 

 


 

삶의 자세를 위처럼 가진다면, 내 인생의 해동네와 달동네에 대해서 집착을 털어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몸을 펴고 생각을 열자. 그러면 건강한 대자연으로부터 자연치유력이 회복되어 기혈순환이 촉진된다. 그러면 언제라도 건강하고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다.

  

글 / 황웅근 제천시 제3한방명의촌 자연치유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