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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연극 보도지침 관람후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






"이 사진은 삭제해!"
"이 기사는 8면 제일 작은 단기사로 내보내."
"이 기사는 용어를 순화시켜 내보내."


<연극 보도지침>은 5공시절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이 언론계에 시달되는 정권의 보도지침을 월간'말'지에 폭로하면서(말지는 특집호-'보도지침'을 발간한다)김주언기자와 '말'지의 편집장'김종배'의장이 국가보안법과 국가모독죄로 법정에 서게된 실제사건을 극화한 연극이다.





무대는 재판장과 검사석,피고인석과 변호인석이 있는 법정으로 셋팅되어 있다. 무대에선 아침마다 팩스로 전송되는 보도지침을 폭로하며 국민의 알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피고2인(김주혁기자,김정배발행인)과 변호인(이명행분), 그들과 반대편에서 국익이 모든 가치에 우선이라는 최돈결검사(에녹분)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무대는 어느새 한 대학의 연극반동아리로 변신한다. 피고 김주혁기자(송용진분),편집장김정배(안재영분),검사 최돈결,황승욱변호사는 뜨거웠던 청춘을 함께한 같은 대학교 연극동아리 친구들이었던것.


연극은 자유,정의,국익의 의미를 치열하게 가리는 법정드라마에서 연극반에서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연극을 했던 주인공4인의 그 시절로 속도감있게 전환되며 재미와 웃음폭탄을 날린다.  암울했던 그 시절 연극반에서 올릴 정기공연에서 그들은 당시 금서였던 갈릴레이의 이야기(그래도 지구는 돈다는...)를 공연하고 경찰에 구속,고문당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시절의 수상함을 경고하며 공연을 반대했던 그들의 지도교수이며 연극반 선배인 송원달교수의 간곡한 사죄와 부탁으로 그들은 풀려난다.





<연극 보도지침>은 정의로운 사회부기자,김주혁역에 송용진과 김준원이 잡지편집장 김정배역에 김대현과 안재영이, 변호사 황승욱역엔 연기파배우 이명행과 김주완이, 명분과 논리의 화신 최돈결 검사역엔 에녹과 최대훈, 판사 송원달역엔 장용철과 이승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극중 남자와 여자역엔 김대곤,강기둥과 이봉련,박민정이 캐스팅되었다. 내가 본 회차는 송용진과 안재영,이명행, 에녹,장용철과 김대곤 박민정 캐스팅이었다.


극의 마지막부분 등장인물 4명은 무대위에서 각자 녹록치않은 '독백'을 한다. 숨막히는 그 시절 극중 김주혁기자는 "앞으로 내딸이 어른이 되었을때는 부당한 재판이 없는 나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장 김정배는 "그냥 제대로 숨쉬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재는 어떤가? 국민의 눈과 귀,입마저 막으려는 정권과 어두운 세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진실을 담은 말은 힘이 있어. 가장 진실한 말, 마음의 소리를 독백이라 부릅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연극속 대사중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연극은 시대정신의 거울'이라는 말이었다. 마당극과 풍자극등 오랜시간동안 국민들의 애환과  시대정신이 연극무대를 통해 표출되어 왔음이다. 연극은 모든 인간사와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하다. 그래서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정의를 극의 주제로 표방한 이<연극 보도지침>의 감동의 무게가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교한 촌철살인과 논리의 향연인 법정극일뿐만아니라 뜨거운 청춘들의 연극판을 오가는 이 연극은  재미와 통쾌함,웃음이 넘치는 신기한 연극이다.





무거운 정극과 코믹한 블랙코미디까지 변화무쌍하게 오가는 이 초연 연극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극중인물들중 남자 연극부 선배이고 재판장 조수인 남자역 김대곤과 연극부선배이며 멀티역 여인 박민정이 극의 중심축을 이룬다.


공동캐스팅인 강기둥과 이봉련배우도 기대된다. 배우들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으니 바로 배우 에녹(본명:정용훈)이다. 에녹은 뮤지컬 카르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팸텀, 쓰릴미, 스칼렛핌퍼넬등 주로 대극장뮤지컬에서 주,조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연극은 '밀당의 탄생'이후 4년만의 출연이다.  부잣집도련님으로 부유하게만 살아온 귀티나는 최돈결역을 맡아 명분과 논리의 화신,정권의 시녀 최검사역할과 연극반동아리 정기공연에서 주연을 꿰차며 망가지는 두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중 하이라이트는 극후반의 군무장면중 배우 에녹이 춤추는 장면이다. 뮤지컬배우와 안무감독을 했던 에녹의 춤추는 장면은 동공이 확대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연극반 지도교수였으며 재판장인 송원달교수는 결국 원고도 피고도 만족하지못하는 판결을 내린다. 여기에 항의하는 변호인과 검사에게 현실의 벽속에서 나약한 인간을 대변하는 송원달교수에게 강한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유신시절로 돌아간듯한 요즘의 답답한 시국에서 인간다운 가치를 위해  용감했던 역사속의 모든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탄탄한 극본과 베테랑배우들의 연기합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가슴먹먹한 감동과 웃음폭탄이 함께하는 <연극 보도지침>은 2016.6.19일까지 대학로 수현재 씨어터에서 계속된다. 올해 상반기 놓치면 안될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