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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당신에게 친구, 친구에게 당신은






그는 항상 ‘친구’라는 말로 끝맺었다. 계좌 보낼테니 돈 좀 보내줘, 친구야. 오피스텔 시세 좀 알아봐주라, 친구야. 나 승진했으니 난 하나만 보내줘, 친구야. 사무실로 샤오미 스피커좀 부쳐주라, 친구야. 김형준 검사와 고등학교 동창이 나눈 대화를 읽으며 든 느낌은 ‘서글픔’이다. 사업가인 친구가 만약을 대비해 검사인 친구에게 접대를 해 왔고 검사인 친구는 사업가인 친구를 십분 활용하다 적발돼 싸움 끝에 둘다 몰락했다. 뻔하지만 놀라운 이야기다. 다만 남는 의문은 이 둘은 과연 친구였을까.





김형준 검사를 본 건 2번쯤이다. 경찰기자로서 영등포라인 배치 후 남부지검 가서 한번 인사했고, 기자들과 단체 술자리에서 만난 기억이 난다. 여의도 증권가의 저승사자라며 그를 한껏 치켜세우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어딘가 거침없고 자신만만하단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서도 그는 거침없이 친구를 몰아붙였다. ‘바보 같은 놈’이라 면박을 주다가 종국엔 ‘평생친구한테 이럴 수 있냐’ ‘똑똑히 들어’라고 다그친다. ‘친구 죽는 거 볼래’라고 협박도 한다. 사업가는 그래도 이렇게 대답한다. ‘니가 나를 안심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너를 믿는다’ ‘고맙다’.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범법자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사업가는 검사인 친구를 신뢰하고 의지했던 것 같다. 믿을 구석이 김 검사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검사인 친구는 사업가를 얼른 떨쳐내려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도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갑질하고 있는 친구는 없는지, 과연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게 맞는지 하는 것이다. 하루 피고 하루 지는 꽃이 아니고,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그런 친구를 사귈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관중과 포숙아같은 이상적인 친구관계를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관중 혹은 포숙아가 될 수 있는지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는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인가.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