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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나이 50에 처음 떠나는 해외 배낭여행기






이제 내일이면 출발이다. 짐을 다 싸놓았지만 잠이 쉽게 오지는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도 언젠가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나고 말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이것은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기도 했다.  대형 마트에만 가도 길을 잘 못 찾는 날보고 남편은 '국내 길도 잘 못 찾으면서...'하며 나의 단독해외여행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내 생애 첫 해외 자유여행지는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 오래전 읽은 <길위에서-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라는 책을 보고 언젠가 그곳에 가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일단 항공권을 구입했다. 서점에 가서 태국여행책자를 사서 내가 갈 곳을 위주로 정독을 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여행지에서 해 봐야할 것들을 꼼꼼히 적어보았다. 같은 회사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은 혼자 유럽이며 먼 곳까지 제집 드나들 듯 여행을 한다.  나도 그래서 생각했었다. '나도 눈 있고, 귀 있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는데 내가 왜 못해?'


하지만 여행을 한3주 남겨놓고는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길치에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주변의 친구들은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용기가 대단해. 혼자가다니..”“ 나 같으면 엄두가 안 나서 못 갈 것 같은데....쯪.”. 하지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고 싶던 내게 혼자 가는 자유여행은 언젠가는 꼭 마쳐야만 할 인생의 중요한 숙제였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공항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그제서야 별 말없던 남편은 묻는다. “방콕에 내려서 숙소까지 어떻게 갈 건데?” 답장을 하고  드디어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내 자리는 창가 쪽. 점점 땅이 멀어지며 작게 보이는 지상의 건물들이 내뿜는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잠시 후 창밖은 어둠속으로 변했다. 그제서야 내가 혼자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났다.


기내에서 딱 물 한잔만 주는 저가항공을 타고 6시간만에 방콕의 수완나폼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고, 숙소까지 갈 택시를 탈 차례. 공항 1층의 택시 승강장에서 번호표를 뽑아서 그 번호의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 그 기사님은 태국어로 쓰여진 목적지를 보여주며 그리로 가자는 내말은 듣지 않고 무조건 택시비를 흥정하려고 했다. 나는 미터기를 켜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끝내 흥정을 하려고만 해서 적당한 선(가이드책자에 나오는 금액보다 쎈가격)에서 타협을 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까지 이 택시로 가는 건 포기하고 그냥 ‘카오산 로드’ 가자고 했다. 기사는 흥정한 500밧(태국돈)이 맘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하고 어떤 거리에 내려주었다. 내리고 보니 카오산로드는 엄청 밤이 화려하다던데 내려준 거리는 인적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속으로 엉뚱한 곳에 내려준건가 하는 두려움이 순간 엄습했다. 내려준 곳 근처에 있던 가게점원에게 물으니 손가락으로 옆골목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몇 걸음 걸으니 번화한 홍대 밤거리 같은 분위기의 카오산로드가 나타났다.


공항에서 로밍해온 핸드폰을 켜고 구글지도로 숙소를 검색하니 직진해서 2분거리다. 결국 오기 전 예약해둔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을 풀고 보니 거의 자정이 다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 먼 이국땅에 혼자 잘 찾아왔구나 하는 기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숙소를 나오니 숙소주변엔 많은 가게들,,,맛사지숍, 레스토랑, 술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음식이 맛있다는 태국! 알 수 없는 많은 음식노점이 있는 그곳에서 나는 유명한  ’태국산 ‘싱하’맥주에 망고밥을 시켰다. 달달하고 매끈한 감촉의 찰밥과 망고는 잘 어울렸다.



<왕궁에 온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들>



이튿날엔 방콕의 대표적 볼거리인 왕궁투어에 나섰다. 거리엔 온통 검은 상복을 입은 태국인들의 물결로 가득 찼다. 지난달인 10월13일에 현재 국왕이던 라마9세, 푸미폰국왕이 서거해서 지방에서부터 온 국민들이 왕궁으로 참배를 드리러 가는 모양이었다. 향년 90세인 국왕은 60년의 긴 재위기간동안 온갖 험한 일을 마다않고 어진 통치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한다.





왕궁 안과 여러곳의 사원주변에서는 국왕을 조문하는 사람 모두에게(나같은 외국인포함)제례음식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한끼 식사로 손색없는 음식부터 간식, 찬생수,각종 쥬스와 커피 등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꽤나 떨어져있는 왕궁 2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로드 먹방을 찍는 듯 온갖 태국음식과 간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동안 작은 구멍가게부터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서거한 국왕의 사진과 영정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고 국민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념품가게의 모든 인물사진도 모두 국왕사진뿐이었고 태국의 모든 화폐에도 국왕의 얼굴이 들어있다. 영어 및 3개국어에 능통하고 재즈작곡가이며 섹서폰 연주자이기도 했다던 푸미폰 국왕.


같은 동양이면서도 태국은 한번도 외세의 식민지였던 적이 없었던 태국에서 국왕은 인기스타처럼 보였다. 여러차례의 군사 쿠테타가 있었지만 불교를 국교로 하고 국왕을 마치 아버지처럼 사랑했던 태국국민들이 요즘의 한국 상황과 비교했을 때 부러운 맘이 들었다.





낮기온 29도의 11월의 태국은 우리나라의 더운 여름날씨다. 왕궁과 사원은 거리에서 만나는 경찰에게 물어보거나 구글지도와 가이드책자를 보아가며 찾아갔다. 여러차례 거리에서 파는 달달하고 맛있는 과일쥬스를 사먹으며 화려한 태국의 사원을 구경했다.





금박과 스태인드 글라스등 화려하게 장식된 태국의 사원건축물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타일,스테인드글라스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태국사원의 건축물들은 그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왕궁과 왓프라깨우, 왓포등 태국전통사원에는 단체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불교국가이니만큼 태국의 사원에서는 관람객에게 단정한 복장을 요구했다. 소매없는 옷이나 반바지차림으로는 관람이 제한된다.





여행가서 모든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 온지 두 번째 날,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에머랄드사원으로 불리우는 왓 프라깨우에서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웅전격인 그곳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반드시 벗어야했다. 신발 두는 곳엔 분실 시 책임 안진다고 영어로 써 있었다.



<높이 48미터의 거대한 황금 와불(누워있는 불상)-사원 왓포의 대표적인 볼거리였다.>




관리인인듯한 사람에게 들고 들어가는건 괜찮냐고하니 괜찮다고해서 한손에 신을 들고 들어간 나는 대웅전 지킴이(?)인듯한 이빨 빠진 할아버지에게 쫒겨나듯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들고간 신발이 문제였나보다. 허락받은거라는 말도 할 겨를없이 나온 나는 이번엔 신발을 건물밖에 두고 들어갔다.에머랄드불상(푸른 도자기로 덮인 작은 불상)을 모셔둔 대웅전안은 샹들리에가 천장에 있고 화려하고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당연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또 그 이 빠진 할아버지가 나를 입구 쪽 어떤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쫒아내는 거였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안내판에 사진이나 동영상금지라고 쓰여져 있었다. 내 핸드폰속 찍은 사진을 지우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삭제하고 “아임 쏘리”를 연발하고 그곳을 나왔다. 어딜 가든 안내표지판을 잘 보고 다녀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을 안고 이번엔 동양최대규모의 와불(누워있는 불상)로 유명한 ‘왓포’라는 사원으로 갔다. 금박을 입힌 48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태국도 중국만큼이나 크고 화려하고 번쩍이는 것을 좋아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왓포’라는 이 사원은 태국전통의학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먹고, 마시고 바르는 전통약제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태국맛사지의 본산이라는 이곳에서 나는 30분간 전신 맛사지를 받아보았다.  평소 운동도 전혀 안해서 온 몸이 굳었을거라 짐작은 했지만 정확한 경혈자리를 누르는 매서운 맛사지사의 손길에 나는 '악!'소리가 나고 눈물이 나오는걸 억지로 참았다.


카오산로드로 돌아온 나는 북적이는 음식점(술집)에 들어가 맥주한잔을 주문했다. 이곳은 볼거리 많고 음식 맛있고, 호텔등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있어 유난히 서구백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이곳에서 그들은 친구,가족,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나 같은 동양여자,그중에도 나이먹은 여인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뭐,, 그게 대수일소냐? 하며 둘러보니 음식점안에는 나처럼 혼술을 하는 사람들도 어럿 보였다.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상인들을 구경하며 맥주한잔을 마시면서 여행자의 외로움도 느껴보았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카오산로드’에 내가 드뎌왔구나..버킷리스트중 하나가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 충만함이 느껴졌다.


태국은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어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돈 600원정도면 파인애플, 망고등 맛있는 과일과 주스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비닐 한팩에 한국돈 680원 정도하는 망고!- 싸고 맛있어서 거의 매일 사 먹었다. / 바나나구이다. 달달하면서도 쫀득한 맛이다.>



거리에서 파는 무슨 돼지고기나 소시지등의 꼬치도 참 맛있었다. 방람푸라는 숙소주변의 재래시장. 이곳에서는 깔끔하게 포장된 많은 식재료를 팔고 있었는데 태국인 일반 가정집에서도 직접 음식만들기보단 사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쳐다본 음식도 많았다.




<방람푸 시장안의 깔끔한 쌀국수집에서 먹은 어묵 쌀국수! - 우리돈 1500원정도>


<돼지고기와 바질이라는 향신야채를 볶은 밥. 우리돈 약 1,600원정도 - 느끼하지않고 맛있다>


<해산물 똠얌꿍! 알 수 없는 향신료냄새가 났지만 적당히 매콤하니 아주 맛있었다.>



처음 보는 시장의 갖가지 채소, 과일, 생선, 물건들이 있었다.





<메클롱 시장안에 진짜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다.>



마지막날은 도둑시장,또는 위험한 시장이라는 메클롱 시장과 수상시장인 암파와 시장에 갔다. 메클롱시장을 구경하고 수상시장인 암파와 시장구경하고 식사후 배를 1시간정도 타면서 밤에만 볼 수 있는 반딧불이를 보는 코스였다.


좁은 철길을 따라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각종 식재료를 늘어 놓고 파는 시장인 ‘메클롱시장’. 물건이 펼쳐져있는 그곳으로 진짜 기차가 다닌다는 곳이었다. 하루 4번 기차가 들어돈다는 그곳에 기차가 들어오면 상인들은 잽싸게 천막과 물건을 걷고, 기차가 지나간후 거짓말처럼 다시 장사를 했다.


다음 코스로는 ‘암파와 수상시장’에 갔다. 이곳에서 같은 투어상품으로 만난 한국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함께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함께 했다. 두팀이었는데 각자 고교동창들과 온 그들은 벌써 이번이 태국에 열 번 이상 온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암파와 수상시장의 배 점포 - 저기 보이는 잘 익은 오징어와 새우가 참 맛나게 보인다.>



이들과 같이 재래시장인 암파와 수상시장에서 같이 구경하고 이야기도하며 같이 보트도 탔다. 1시간정도 배를 타면서 강가주변나무에 사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아 진짜일까 의심도 했지만 우리의 맘을 아는 듯 몇 마리가 날라다녔다.


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갈 때 느껴지는 강바람은 시원했다. 마침 하늘에는 수많은 별과 초승달이 떳는데 그 모습도 한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웠다. 수상시장 관광일정동안 내 옆에 있던 이태리 여인‘제니’(그녀는 간호사로 1년간 동남아 여행중이라한다-긴 휴가를 낼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카오산로드에서 지인들에게 줄 몇가지 선물을 샀다, 새벽 한시반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하는 나를 공항에 데려다 줄 직원이 왔다. 탑승수속을 마치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서울인천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깜깜한 밤을 지나 한국에 도착했다. 이륙을 기다리며 드는 감상은 버킷리스트를 이룬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내안의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았고, 뿌듯했다.


여행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엮어낸 끝없는 이야기를 남긴다. 나 역시 그랬다. 행에서 만나 각자 인생의 한 조각 시간과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의미있고 즐거웠던 시간들과 함께 나의 첫 해외 배낭기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