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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쉽게 격해지고 악감정이 생기는 대화, 싸우지 않고 토론하는 법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승자가 결정된 후에도 미국 사회에선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간의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미국 전역 52개 이상의 도시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음식점에서 한 남성 트럼프 지지자가 여성 클린턴 지지자와 대선 결과를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이 여성을 폭행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화나 토론의 주제가 정치일 때 사람들은 더 쉽게 감정이 격해지고 상대방에게 악감정을 품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도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 민감한 정치 현안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심각한 경우에는 상대방과 아예 연을 끊기도 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화 내지 않고 의견이 다른 상대와 토론하는 요령을 소개했다. 이 요령은 최근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에이미 커디 부교수(사회심리학)는 토론의 기본은 경청이라고 조언했다. 토론이란 상대의 생각과 견해를 주의 깊게 듣는 데서 시작된다.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난 내 의견을 손톱만큼도 바꿀 생각이 없다’는 태도로 토론하면 싸움 밖에는 일어날 것이 없다. 상대의 발언을 들을 때는 말이 끝나는 순간까지 100% 집중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이제 나는 무슨 말로 맞받아쳐야 하나’ 생각하느라 상대의 말을 반쯤 흘려듣는 것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커디 부교수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정한 뒤 ‘내 의견을 조금도 바꾸지 않겠다’는 자세로 대화하는 것을 선박이 닻을 내리는 일에 비유했다.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은 토론을 싸움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상대의 견해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처럼 건강한 시민사회에선 용인될 수 없는 견해를 상대가 주장할 때는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란 상대가 어떤 근거와 논리로 특정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알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알아야 상대를 설득할 논리를 세우기가 수월해진다. 상대를 이해하고나면, ‘설득 불가’ 판단을 내리고 일찌감치 토론을 접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심결에 취하는 바디 랭귀지는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토론이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상대를 가르치겠다는 자세로 팔짱을 끼고 있거나, 상대의 주장을 꺾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있지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상대의 눈을 바라볼 때도 내려다보거나 옆으로 흘겨보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노트르담대학의 개리 거팅 교수(철학)는 “상대방을 향해 몸을 조금 기울이면 당신이 ‘이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화 주제가 정치 현안일 때 특히 필요한 태도다. 거팅 교수는 “토론을 상대에게 자기 견해를 주입하거나 납득시키는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은 상대방의 주장이 자신의 기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주장이 논리적이라면 입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통상 장기간에 걸친 설득을 통해 일어난다. 사람의 생각을 한 번의 논쟁으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거팅 교수는 의견이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자신의 견해를 더 날카롭게 다듬을 기회로 여기라고 조언했다. 토론에서 이기고 싶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꼬리를 잡는다거나 사소한 말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행태도 삼가야 한다.






정치 현안을 두고 논쟁할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만 수집해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세운 논리를 반증하는 사실은 배제하고 현안을 둘러싼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면 대화는 토론이 아니라 아집과 독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뿐만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안을 두루 살펴야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해진다.



글 /  최희진 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