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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드라마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속 블래스 증후군






KBS 월화드라마 ‘우리 집에 사는 남자’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순애보가 주된 줄거리다. 서른 살 홍나리(수애)는 몇 달 전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만두가게를 운영하며 자신을 새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스물일곱 살의 고난길(김영광)과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자신보다 어린 남자를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는 홍나리는 호시탐탐 고난길을 내쫓으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홍나리를 짝사랑해온 고난길은 마치 진짜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녀 곁을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홍나리에게 과거 고난길의 양아버지였던 다다금융 대표 배병우(박상면)가 찾아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막대한 빚을 진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넘기라는 협박이 이어지고, 고난길은 배병우로부터 홍나리와 그녀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출처: NAVER tvcast '우리집에 사는 남자' 포스터>



그 과정에서 홍나리는 어린 시절 고난길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고난길이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것과 어머니의 땅을 지키기 위해 새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한다. 급기야 둘은 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고 달달한 로맨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못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부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며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로맨스를 이어간다.


한편 고난길은 여러 번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자신을 걱정하는 홍나리에게 ‘블래스 증후군’임을 고백한다. 드라마에선 블래스 증후군을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이 겹친 증상으로 소개됐다. 드라마 ‘우리 집에 사는 남자’를 계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블래스 증후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블래스 증후군(Blass syndrome)은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신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특정 동작을 하지 못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는 1968년부터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고, 1971년에는 피츠버그의 월드시리즈를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였다. 하지만 1973년에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되면서 이듬해 선수생활을 불명예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스티브 블래어는 신체검사는 물론이고 심리 치료까지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이후 야구선수가 이유 없이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을 일컬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됐다.





비단 야구선수만이 아니다. 골프선수들도 갑작스런 근육 경련이나 떨림 때문에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는 ‘입스(Yips)’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프로골퍼 중에서 30퍼센트 정도가 입스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2016년 리우올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박인비 선수도 입스 때문에 무려 4년이나 슬럼프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농구 같은 구기종목 선수나 피아니스트처럼 특정 근육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직군의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발생하고 있다.




블래스 증후군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실수를 한 뒤 주위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거나 중요한 일을 망쳐서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을 때, 또는 질병이나 부상 등을 겪은 이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까봐 두려움을 느낄 때처럼 심리적으로 강한 압박감을 느끼거나 과거 경험으로 인해 감정적 트라우마를 겪을 때 블래스 증후군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래스 증후군의 대표적 증상은 돌발적인 근육 경련이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고 연습 때만 해도 잘 되던 동작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거나 근육에 경련이 생기면서 투수가 공을 못 던지거나 골프선수가 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뇌 속의 무의식을 담당하는 편도와 의식을 담당하는 해마의 균형이 깨져서 편도가 과잉 활성화되고 해마가 억압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블래스 증후군의 치료법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최대한 줄여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심리 치료 등을 통해 과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권지희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