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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오자(五子)를 아시나요?, ‘오자연종환’(五子衍宗丸)






공자ㆍ맹자ㆍ장자…등이 아니다. 힌트를 하나 주면 ‘오자연종환’(五子衍宗丸)이란 약이 있다. 정력 감퇴ㆍ조루증ㆍ발기부전 환자에게 처방되는 ‘한방 비아그라’다. 여기서 환(丸)은 구슬 같은 형태로 만든 약이다. 오자(五子)는 ‘자자’(子字)로 끝나는 구기자ㆍ오미자ㆍ복분자ㆍ토사자ㆍ차전자 등 5가지 식물이다. ‘오자연종환’에선 차전자가 오자에 속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차전자 대신 사상자를 오자에 포함시킨다.





열매의 씨앗에 ‘자’(子)를 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자 외에 호마자(검은깨)ㆍ구자(부추와 부추씨) 등이 있다. 이런 ‘자자 돌림’ 씨앗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정기를 강화하는 약성(藥性)을 지닌다. 오자에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메이저급’은 구기자ㆍ복분자ㆍ오미자다.


오자 중 구기자(枸杞子)는 노화를 지연시키고 노쇠를 억제하는 약성을 가졌다. “구기자 뿌리를 통과하는 물만 마셔도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식물의 씨앗에‘늙음을 물리친다’는 뜻인 각로(却老)란 별명이 붙은 것은 그래서다. 새우와 함께 남성들이 멀리 여행할 때 가급적 먹지 말라고 권장하는 식품 중 하나다. 스태미나가 너무 강해져 주체하기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구기자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식물로도 유명하다. 봄에 나오는 잎은 청정초(天精草), 여름에 피는 꽃은 장생초(長生草), 가을 열매는 구기자(枸杞子), 겨울 뿌리는 지골피(地骨皮)라 한다. 어린잎은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껍질은 한방에서 소갈증(消渴症, 당뇨병)이나 식은땀이 나는 도한증(盜汗症) 치료에 쓴다. 중국의 고의서인 ‘신농본초경’은 약을 상약(上藥)ㆍ중약(中藥)ㆍ하약(下藥)으로 분류했다. 구기는 인삼과 더불어 상약의 반열에 오른 약재다.  ‘본초강목’에선  “정기를 보(補)하고 폐와 신장 기능을 강화하며 시력을 좋게 하는 등 꺼져가는 등불에 기름을 붓는 약재”라고 예찬됐다.


국내 연구진(경희대 한의대)은 구기자가 간을 보호하고 고지혈증 개선 효과를 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성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동물실험 결과도 국내에서 나왔다. 구기자의 건강 성분으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루틴이다. 메밀의 웰빙 성분이기도 한 루틴은 모세혈관을 튼튼히 하고 혈관 기능을 개선한다. 구기자는 고혈압ㆍ동맥경화 등 혈관 질환 환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구기자 열매를 이용해 만든 차가 구기자차다. 잎을 사용하면 구기엽차다. 대체로 구기자차의 효능이 구기엽차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에서 구기자차를 직접 만들어 마시려면 열매를 하루 가량 물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하고 햇볕에 충분히 말린 뒤 살짝 볶는다. 볶은 구기자 약 30g에 물 2ℓ를 넣고 고운 붉은 색이 우러날 때까지 은은한 불로 30분 정도 우려내면 구기자차가 완성된다.


말린 구기자를 프라이팬에 센 불로 15∼20분가량 타지 않게 볶는 방법도 있다. 물 5ℓ에 볶은 구기자 480gㆍ대추 50gㆍ건강(마른 생강) 20gㆍ감초 20gㆍ갈근(칡) 13gㆍ계피 10g을 약자루에 담아 탕기에 넣고 120도에서 2시간 정도 달여 수시로 먹는 것도 좋다. 이때 올리고당 150㎖를 첨가해 냉장 보관하면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다. 구기엽차를 만들 때는 차를 끓이기 전에 잎을 살짝 볶아야 향이 좋아진다. 구기자 술은 구기자(열매) 300g에 설탕 적당량과 소주 1.8ℓ를 부은 뒤 한두 달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양기를 보(補)하고 허리와 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복분자(覆盆子)는 가지에 열매(子)가 매달린 모양이 마치 그릇(盆)을 뒤집어놓은(覆) 것 같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복분자를 산딸기의 한방 명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껍질 색깔이 산딸기보다 훨씬 검붉다. 산딸기의 영문명이 라스베리(raspberry)라면 복분자는 블랙 라스베리(black raspberry)다.   민간에서 복분자의 ‘분’(그릇)은 요강이다. 기력이 약한 노인이 복분자를 먹으면 소변 줄기가 세져 요강이 엎어진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도 복분자는 생식기 문제 해결사다. 조루ㆍ정력 감퇴ㆍ발기 부전 등 양기 부족 증상을 보이는 남성, 불감증ㆍ불임을 호소하는 여성에게 주로 처방한다. ‘동의보감’엔 “복분자는 남자의 정력이 모자라고, 여자가 임신되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고 기술돼 있다. 생식기를 지배하는 신장의 기운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실험용 쥐에 복분자를 5주간 투여했더니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양이 16배 증가했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구체적으로 복분자의 어떤 성분이 생식기능 개선에 기여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민간요법에서 복분자는 흰머리 개선제로도 이용된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지 않도록 하고, 백발을 검게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봐서이다. 흰머리 때문에 고민이라면 복분자 100g을 물 1ℓ에 넣어 달인 뒤 잠들기 전에 이 물로 머리를 감거나 즙을 짜서 두피에 보름∼한 달간 바르는 것도 시도해 보자. 복분자의 대표 건강 성분은 활성 산소를 없애는 안토시아닌이다. 검은 색 색소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색이 짙을수록 더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나타낸다. 암ㆍ당뇨병ㆍ치매ㆍ고혈압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데 복분자가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안토시아닌의 존재 덕분이다.


복분자는 혈당 조절에도 유익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연구진이 당뇨병에 걸린 쥐에 ‘복분자 추출물과 전분’을 제공해봤다. 이 결과 전분만 먹인 쥐에 비해 식후 혈당 변화가 50%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분자가 당질(탄수화물)의 소화를 늦춘 덕분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추론이다. 식사할 때 복분자를 함께 섭취하면 위암ㆍ위궤양의 원인중 하나인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국내에서 나왔다.


건강을 위해 복분자를 이용한다면 덜 익은 열매를 잘 말린 뒤 가루 내어 환약으로 만들어 먹거나 그냥 가루(두 숟가락)를 끓인 물(한잔)에 타서 차처럼 마시는 것이 요령이다. 잘 익은 생과를 우유와 함께 믹서에 갈아 주스로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잘 익은 열매를 소주에 담근 뒤 2개월가량 기다리면 향이 뛰어난 복분자술이 만들어진다. 복분자술은 장어를 먹을 때 흔히 곁들인다. 중국산 복분자는 국산에 비해 색이 연하고 꽃받침대가 거의 없으며 독특한 향도 나지 않으므로 국산과 쉽게 구별된다.





오미자(五味子)는 유두날(음력 6월 15일) 절식(節食)인 유두면을 만들 때 다섯 가지 색깔을 내는 식재료 가운데 하나다. 단맛ㆍ신맛ㆍ쓴맛ㆍ짠맛ㆍ매운맛 등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이다. 다섯 가지 맛 중에서 더위에 지친 입맛을 되살려 주는 신맛이 가장 강하다. 신맛은 입에 침이 돌게 하므로 입이 자주 마르는 노인에게 유용하다.


오미자는 씨보다 열매를 주로 이용한다. 열매는 색이 붉다. 붉은 색을 띠게 하는 것은 껍질 성분인 안토시아닌이다. 포도ㆍ흑미ㆍ검은깨ㆍ블루베리 등 블랙푸드의 대표 웰빙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검붉은 색소 성분이자 각종 성인병과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抗酸化) 성분이다. 열매를 물에 담가두면 붉은 색이 우러난다. 대개 하루 전날 깨끗이 씻은 오미자를 찬물에 담가 우린 뒤 면보에 걸러 그 물을 마신다. 끓이거나 더운물에 우려내면 쓴맛ㆍ떫은맛이 나므로 찬 물에 넣어 천천히 우려내는 것이 좋다. 오미자 국물의 맛과 빛깔은 우려낸 시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덤으로 ‘기다림의 미학’까지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오미자 우린 물은 각종 과일 화채의 기본 재료로 요긴하게 쓰인다.





오미자는 약차(藥茶)인 생맥산(生脈散)에도 들어간다. 맥문동ㆍ인삼ㆍ오미자 등 세 약재를 섞어 만든 생맥산은 기(氣)가 부족해 저절로 땀이 나고 열로 인해 체액이 소모돼 갈증이 날 때 유익한 음료이다. 오미자는 열매의 붉은 색이 선명한 것이 상품(上品)이다.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동의보감’은 “오미자가 허(虛)한 것을 보(補)하고 장(腸)을 튼튼하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남자의 정(精)을 돕는다”고 칭송했다. 한방에선 전립선 질환이 있는 남성에게 오미자ㆍ복분자ㆍ삼지구엽초를 함께 가루 낸 뒤 꿀과 섞어 만든 알약을 처방한다. 입이 자주 마르고 갈증을 느끼는 당뇨병 환자에게도 유익하다고 여긴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