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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영화로 보는 가족의 조건





영화 '과속 스캔들'을 재밌게 봤다. 망나니 아버지가 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흐름이 공감갔다.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가족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안녕한가? 이혼율 전세계 3위, OECD 2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우리 가족은 화목한가?





이번 설 연휴에도 가족간에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 줄을 이었다. 친언니를 목졸라 살해하고, 친형을 칼로 찌르는 등의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화목하고, 서로를 믿어야할 가족 간에 이런일이 도대체 왜 벌어지는 걸까.


소통 부재가 가장 크다. 영화 <everybody's fine>이 좋은 예다. 주인공은 상처했다. 혼자 산지 오래됐다. 자식들은 장성해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산다. 첫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둘째는 잘나가는 광고회사 직원, 셋째는 라스베가스서 춤추는 댄서다. 막내는 화가다. 네명의 자녀는 아버지의 자랑이다. 마트에 들러 고기를 살때도 자식 자랑을 잊지않는다. 1년에 한번있는 가족모임. 자식들에게서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화가 약속이나 한듯 걸려온다. 바베큐 도구를 새로 장만하며 기대했던 아버지는 실망한다. 고민끝에 아버지는 연로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직접 자식들을 찾아 나선다.





첫째 아들은 놀랐다. "말씀이나 하시고 찾아오시지..." 그는 지휘자가 아니다. 팀파니 연주자다. 그것도 상임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필요할 때만 부르는 '알바'다. 아버지는 실망한다. 아들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화를 낸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아버지는 묻는다. 왜 거짓말 했냐는 힐난이다. 아들은 답한다.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사실을 말할 기회를 당신이 거절했어요." 어색한 포옹을 마치고 아버지는 돌아선다. 둘째 딸을 찾아갈 참이다.


뭔가 이상하다. 휴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딸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으리으리한 집은 딸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온다는 연락을 듣고 딸이 친구에게 빌린 집이다. 스파게티를 나누며 딸과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는 이렇게 오붓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 우리들은 당황했어요. 엄마를 바꿔달라고 떼쓰곤했죠." "왜?" "아버지는 항상 우리가 잘되길 바라셨어요. 실수와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어요."





첫째딸도 수상하다. 손자는 사위를 싫어한다. 소리를 지른다. 첫째 딸은 허둥지둥한다. 아버지에게 뭔가 숨기는 기색이다. 넷째 아들은 숫제 집에 없다. 직접 쓴 편지만 두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다. 비행기를 타던 중에 정신을 잃는다. 꿈 속에서 어린 줄만 알았던 네 자녀의 진실을 본다.


첫째는 지휘자가 아니라 알바식 팀파니 연주자다. 둘째는 남편과 별거 중이고, 새로운 남자와 만나고 있다. 셋째는 레즈비언이다. 댄서가 아니라 레스토랑 알바다. 넷쨰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하는 게 두려워서다. 덕분에 아버지는 상상속의 화목한 가정속에 혼자만 살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그는 이제 기대를 내려놓고 자식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다짐한다. 자신이 항상 야단치던 넷째 아들의 그림 '아버지'를 보며 깨달은 진리다. "네가 내 기대를 충족할 수 없더라도 너는 내 자식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다." 비로소 가족은 대화를 시작하고 소통을 깨닫는다.


영화  <little miss sunshine>의 가족은 '막장'이다. 입만 열면 음담패설을 내뱉는 할아버지, 2류 사업가 아버지, 스트레스에 담배를 배운 어머니, 게이 삼촌, 가족과 얘기하기 싫어 묵언 수행 중인 오빠를 둔 여자아이가 있다. '예쁜 아이 컨테스트'에 참가하고 싶어하지만 전혀 예쁘지 않다. 틈만 나면 싸우는 가족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컨테스트가 열리는 타 고장까지 '긴' 여행을 한다. 싸움은 계속되고, 할아버지는 도중에 숨을 거둔다.





이윽고 도착한 대회장.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예쁘다. 노래부터 춤까지 다들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못생긴'아이는 허접하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야한 춤을 춘다. 사람들이 욕을 한다. 듣고 있던 아빠는 화가 난다. 일어나서 춤추며 호응한다. 가족들은 이윽고 무대로 난입해 함께 춤을 추고 하나가 된다. 이 영화의 백미다. 막장 가족이 그대로를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가족은 건강하다. 겉으로는 막장이라도, 이 가족은 화목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두 영화의 공통된 교훈은, 가족은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도 이래야 한다.




글 / 국민일보 기자 박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