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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송번수 50년의 무언극





삶이 힘들어 질 때가 있다이럴 때 지친 일상을 내려놓고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자.

입체파의 대가 ‘파블로 피카소’도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준다고 했다. 청계산 자락과 조화를 이루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이곳에서 눈에 익은 장르가 아닌 색다른 전시에 눈을 돌려보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17년 첫 전시로 국제적인 태피스트리 작가이자 판화가 <송번수-50년의 무언극>전을 개최한다. 1968년부터 2016년까지 반세기 동안의 화업 인생을 조명하는 작가의 회고전이 판토마임처럼 펼쳐진다. 송번수 작가는 1943년 충남 공주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공예 전공)을 졸업 후 홍익대학교 교수 및 산업미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대전 미술관장을 거쳐, 현재는 마가 미술관장으로 있다. 1960년대 판화 작업으로 화단에 등단한 작가는 판화와 태피스트리, 종이 부조와 환경조형물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에 걸친 작업들을 펼쳐왔다.






1977년도 석판화를 배우기 위해 갔던 파리 유학생활에서 태피스트리를 알게 되어 대형 태피스트리 작업을 시작했다. 퐁피두센터를 둘러 보았을 땐 한 작품에서 받은 충격으로 이전에 그려왔던 장미에서 꽃과 잎을 떼고 가시가 있는 줄기만 그려 송번수 작가의 상징인 가시와 그림자 이미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태피스트리(TAPESTRE)는 씨실과 날실의 선염색사로 그림을 짜나가는 섬유예술작품으로 고도의 감각과 기술이 필요하다. 작가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태피스트리 작가 중에서도 회화성이 높은 작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국제적인 태피스트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한국 현대 섬유예술의 위상을 높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판화, 종이 부조. 태피스트리, 환경 설치 작업 등 100여 작품을 통해 그가 경험한 자연과 사회, 인생과 종교의 영역 등 다양한 화두에 대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란 본질적으로 시대의 기록자요, 감시자이고 비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온 편지/아크릴사, 평직/229×277cm / 2006/국립 현대미술관>



'이라크에서 온 편지'라는 작품은 무채색의 배경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가시와 위에 드러난 가시를 함께 나타냄으로써 뒤에서는 찌르고 앞에서는 쏘는 형태로 이라크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했다.


예술가는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사회의 모든 양상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는 우리나라 70년대의 사회적 배경과 암울함을 판화로 찍어내었다. 1982년부터 시작된 이라크 전쟁을 '이집트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동 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한 후 2011.3.11.을 제작했고, 1987년 태풍 '셀마' 등 자연과 사회 현상 등을 그냥 넘기지 않고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기록했다.


1937년 4월 26일 장날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에 대한 지원을 하기 위한 나치 군대가 무고한 양민을 상대로 게르니카에 5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도시 인구의 1/3인 16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도시의 70% 가량이 파괴되었다. 파리 세계 박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하던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경악하여 늘 사용하던 원색이 아닌 무채색으로 그 울분을 그려 내었고, 이 작품을 ‘ 게르니카’라는 제목으로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 출품하여 나치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림은 벽에 걸어두고 감상만 하라고 그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변화와 자극을 추구하는 송번수 작가,

아티스트는 두 부류가 있다. 어떤 작가는 한 테마를 가지고 평생을 이끌어 가고, 또 다른 작가는 시대성에 따라 달라지는 테마와 테크닉을 가지고 평생을 변화 속에서 작업하는데, 송번수 작가는 후자에 속해 하나의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상대성 원리/1994/ 아크릴사. 평직/국립 현대미술관>



작가는 삶에서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균형 시리즈를 제작했다.



<절망과 가능성/2001/모사. 평직/국립 현대미술관>



이 작품은 2001년에 헝가리 개국 1000주년 기념 태피스트리 전시에서 최고상을 탄 작품이다.

작가의 내면적인 고백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절망과 가능성은 인생을 통틀어 보았을 때 우리 삶의 범주 안에서 쉴 새 없이 진동하는 내용이다. 캄캄한 곳에서 위로 뚫고 나오는 가시가 자기 자신으로, 절망을 극복해 뚫고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작품이다. 삶은 만만치 않아 언제 나락으로 내려앉을지 모른다.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이 되더라도 극복해야 한다. 요즘 베스트셀러의 제목인 ‘모든 파도는 기회다’처럼 수많은 절망들을 뚫고 나와야 한다.


<송번수 50년의 무언극>전에서 작가가 던지는 소리 없는 경고와 독백, 절규와 위로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미완의 면류관/2002~2003/모사. 평직/국립 현대미술관>



작가는 ‘그날 이후’라는 작품을 본 황창연 신부님에게서 제단에 걸 태피스트리를 의뢰받았다. 십자가는 종교적. 조형적으로 가장 이상적인데 십자가를 대신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심 끝에 예수님의 고난을 나타내는 가시 면류관을 떠올렸고, 미완의 면류관’을 흑백 버전으로 만들어 능평성당 제단에 기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태피스트리로는 제단 벽에 설치된 유일한 작품으로 종교를 섬유예술로 승화시킨 회화성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능평성당과 같은 형태로 청색으로 만들었다. 면류관을 완성하지 않고 끊어지게 표현한 것은 이 부분을 관객의 마음속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돌림으로써 무언극 마지막에 관객 각자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삶이 버거울 때,

한 올 한 올 힘겹게 교차시켜 만든 작품이 1~2년 걸릴 정도로 힘든 태피스트리 작업 속에서도 변화와 자극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송번수 작가의 무언극에 참여해보자. 가시가 고통을 넘어 천을 뚫고 절망에서 나오는 가능성을 발견해보자.


<송번수-50년의 무언극>전은 3월 10일부터 6월 18일까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주변 경치가 뛰어나고 규모가 커서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지만, 서울 대공원이 옆에 있어 주말에는 교통 정체 현상으로 오후에 오면 불편할 수 있다. 주말에만 시간이 되시는 분은 여유 있게 오전에 들러 전 층의 다양한 전시를 보는 것도 교통 정체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다.






글 / 미술 인문학 강사 우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