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라고 했다. 


미술계에서도 잘 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 있다. 1866년 러시아 태생으로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법학자였던 그는 한 미술전시회에 참석한 후 자신의 직업을 바꾸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미술이론가이며, 추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칸딘스키’의 이야기다. 


모네/건초더미, 해잘녘 /캔버스 유채/1891/시카고 예술재단


1896년 모스크바의 인상파 전시회에 참가한 칸딘스키는 어느 작품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이제껏 보았던 사실적인 형체가 아닌 시간과 빛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색을 순식간에 표현한 모네의 연작들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에 분노의 마음도 일었다. 


“자연의 법칙과 조화 속에 그림을 그리고 생활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운명을 갈망하지 않는다”는 모네가 그린 작품은 들판에 쌓아둔 ‘건초더미’였다. 이 그림의 주제는 나중에 작품 목록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일은 칸딘스키의 기억 속에 충격으로 오랫동안 남아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후 그는 1896년 모스크바 대학교 교수직을 반납하고 독일의 아즈베 미술학교, 뮌헨 왕립 미술학교에서 전문적인 미술수업을 받았다. 그는 당시 활동했던 화가들의 화풍을 두루 익히고 청기사파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대신 이미지를 추상화했고 1910년 최초의 추상화를 발표하게 되면서 추상화의 선구자, 예술 이론가로 20C 주요 예술가로 불리게 되었다. 



잘 나가는 직업을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었을까?


칸딘스키는 그의 회고록에서 모네의 작품을 통해 잠자고 있던 그림에 대한 욕망이 자신에게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칸딘스키/구성8/ 1923년/캔버스에 유채/140X201cm/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칸딘스키는 ‘구성 8’에서 “색채 중 색조는 음색, 색상은 가락, 채도는 음의 크기를 연상시킨다.”라며, 경쾌한 리듬은 굴곡이 큰 선으로, 조용한 리듬은 완만한 선으로 표현했다.


그는 악기마다 독특한 음색이 있는 것처럼 색채도 독특한 느낌을 나타내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알아냈다. 


칸딘스키/인상 Ⅲ/ 1911년/캔버스에 유채/ 뮌헨시민미술관


'인상 Ⅲ'의 부제는 '콘서트'이다. 칸딘스키가 친구인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콘서트에 다녀온 후 그린 작품이다. 쇤베르크는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서양 고전음악의 전통을 파괴하고, 무조(無調) 음악을 창시한 작곡가다. 


자신의 작품을 음악이라고 한 칸딘스키는 회화에서도 음악처럼 선과 색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콘서트에서 들었던 곡을 노란색으로 표현하였다. 


칸딘스키가 44세가 되었을 때 외출에서 작업실로 돌아온 그의 시선을 끈 작품이 있었다. 해 질 녘 내부에서 뿜어 나오는 빛으로 가득한, 색채와 형상이 조화롭게 표현된 이 작품에서 형체가 아닌 색채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 통해 물질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거꾸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이것은 좀 전에 그렸던 자신의 그림이었다. 똑바로 놓인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칸딘스키는 이 대단한 발견을 시작으로 점, 선, 면, 색채의 단순화 과정을 거쳐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완성했고 20세기 미술사의 혁명을 이루었다. 


칸딘스키/무제/1910/수채화/ 파리 퐁피두국립현대미술관


칸딘스키는 자신들의 미술이 정신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추상미술을 진행했지만, 관객들은 난해함에 힘들어할 때가 있다. 현대미술이 불친절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알아보기 힘들었던 모네의 그림에 충격을 받았던 칸딘스키는 일반인들이 추상미술이 어렵다고 투덜거리게 만든 순수 추상의 세계를 연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는 모네의 작품에서 색과 형체들이 변화하는 것을 집중해서 보았고, 그러한 것들이 잠재된 자신의 예술적 능력으로 밝혀내기를 간절히 바랐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운명이 카드를 섞고 우리가 승부를 겨룬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칸딘스키가 운명을 선택한 후 그 승부에 열정을 다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훌륭한 작품들을 오래도록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와 좀 더 관심 어린 눈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예술을 창작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대상의 외형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고

그 형태에 내재된 정신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것이다.


"예술가란 자연의 형태를 빌어서 표현한 내적 감정에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고 정신을 키우는 것이다"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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