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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한국 사회 '갑질'이 만연한 이유와 대처법




대한민국 곳곳에 ‘갑질 바이러스’가 스며들고 있다. 갑질 행태는 요즘 뉴스를 타고 있는 대기업만이 아니다. 갑질은 가족과 친구 등 서로 보듬어야 할 관계에서조차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돈 좀 있다고 없는 자를 깔보고, 권력 좀 있다고 낮은 자를 업신여기고, 스펙 좀 된다고 덜 갖춘 자를 얕본다. ‘갑질 바이러스’는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소다.  


#물벼락·태움…천태만상 갑질들



최근 갑질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물벼락’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컵을 던지고 물을 뿌렸다는 폭로가 뉴스를 타면서 국민들 머릿속에 ‘대기업 갑질’이 다시 한번 각인됐다. 


설상가상으로 한진가의 ‘안방주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 임직원 등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증언과 동영상까지 제기되면서 한진그룹에 씌워진 ‘갑질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물론 갑질이 대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를 자살이라는 극단으로 내몬 ‘태움’은 간호사들 사이에 관습으로 굳어진 군기문화지만 사실은 ‘문화’가 아닌 ‘갑질’이다. 


어느 피해 간호사의 표현처럼 ‘약한 불로 사라질 때까지 타는 느낌을 주는’ 악질적인 ‘갑질 행위’다. 직장 상사와 고용주는 갑질 바이러스의 대표급 전파자다. 식당 손님, 학교 선배의 갑질도 만만찮다.  



#서열화된 사회, 그리고 권력이라는 오만



우리 사회에서 갑질 행태가 횡행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 뿌리에는 수직 계열화된 서열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유교 도덕 사상의 근간이 되는 다섯 가지 덕목(五倫) 중 하나로,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다. 


한데 이 ‘반듯한 사상’이 때로는 왜곡된 형태로도 나타난다.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마구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는 서열을 매기는 중심에 권력이나 돈, 사회적 지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장유유서의 핵심인 ‘나이’가 돈이나 권력, 지위로 둔갑한 것이다. 서른 안팎의 재벌 2세가 회갑을 훨씬 넘긴 ‘어른’에게 삿대질하고 폭언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순종을 미덕으로 보는 유교적 사고도 갑질의 토양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을(乙)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밥줄을 잃을까’ ‘건방지다고 하면 어떨까’ ‘밉보이면 어떨까’ 등의 두려움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갑질 토양을 만든 측면도 없지 않다. 


정당한 ‘을(乙)의 반란’이 갑질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럼 점에서 최근의 ‘미투’는 오염된 사회를 정화하려는 또 다른 ‘갑질 척결 운동’이다. 



#‘같음’의 깨달음으로 ‘온전한 건강’ 회복해야


육체가 건강해도 영혼이 흐리면 반쪽짜리 건강이다.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업에 갑질 이미지가 씌워지면 그 기업은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진심된 반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반성해야 할 일들은 애초 조심하고 삼가는 게 상책이다. 


우리는 자주 ‘다름’과 ‘나음’을 착각한다. 누군가가 나보다 돈이 많으면 그는 나보다 부자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은 아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돈이나 권력, 지위나 인기는 다름의 기준은 될지언정 ‘나음’의 기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돈 많은 누군가보다 내가 훨씬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음의 회복’은 갑질 바이러스의 천적이다. 고대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종들이 무례하면 화를 내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에픽테토스가 답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시오. 종도 신을 아버지로 둔 고귀한 혈통으로 우리와 가족이자 형제인데 그 정도도 참지 못한단 말이오.” 참으로 울림이 큰 말이다. 


좀 위에서, 좀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존경받는 누군가의 부모, 사랑받는 누군가의 자녀, 서로 아껴주는 누군가의 친구다.


무감각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감각이다. 혹여 우리가 무감각해 ‘갑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면 깨닫고, 또 부끄러워해야 한다. 갑질 바이러스에 감염돼 반쪽짜리 건강이라면 깨닫고 반성해 온전한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