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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들의 빨래 사건

“엄마! 큰일 났어요!”
“왜?”

외할머니집에 간 큰 아들이 다급하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아이는 엉엉 울면서 자초지정을 이야기했다. 며칠 전 큰맘 먹고 1벌에 십만 원이 넘는 옷을 사 주었는데 그 귀한 옷을 못 입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외가에 보내면서 사실 나는 먼 길을 아이 혼자 가는 것보다 녀석이 외할머니와 잘 지낼지가 더 걱정이었다.


외할머니는 자린고비 이상의 절약이 몸에 밴 분이라 세탁기를 일절 돌리는 경우가 없는데 반나절이 멀다하고 입은 옷을 벗어던지는 아이 빨래를 어떻게 감당하실지 염려가 됐다.

 

   “빨래는 엄마가 모레쯤 가서 직접 해줄 테니 봉지에 담아놔!” 라고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손주 녀석이 이틀이 넘도록 빨래를 내놓지 않자 엄마는 아이가 자는 새 빨래 봉투를 찾아서는
  손으로 박박 문질러 빨다 사단을 내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난 아들은 애지중지하던 티셔츠 여기저기가 손상된 채 빨랫줄에 널려 있는 걸 보고 기절 직전에 이르렀다. 유명 브랜드 티셔츠로 스펀지 소재의 장식이 달린 옷인데 어머니는 땀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장식이 떨어지고 문드러지도록 세게 빤 것이다.


더구나 검은색 반바지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독한 비누로 빤 덕분에 여기저기가 희끗희끗하게 탈색이 되어 있었다. 이 모든 정황을 들은 나는 아들 녀석에게 또 한 번 당부와 협박을 가해야 했다.


“너! 할머니한테 신경질 내면 안 돼. 할머니 혈압 올라서 또 쓰러지신단 말이야!  할머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빨래를 해주시다 그런 거니까 그냥 이해해 드려.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할머니한테 섭섭하게 굴면 다음에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친정에 가니 엄마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괜한 짓을 해서, 얘 마음만 상하게 한 거 아닌 가 모르겠다!”
“엄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진우가 뭐라고 해요?”
“아니!”
“엄마! 걱정하지 마! 저 옷 아주 싼 거야. 만원밖에 안하는 옷인데 뭘!”

그제 서야 엄마 얼굴이 평온해지면서 아들 녀석 손에 1만 원을 쥐어 주신다.

“할미가 괜한 짓해서 속상했지! 똑같은 걸로 사 입고 마음 풀어!”

아들은 그제 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그 돈을 할머니 주머니에 넣어 주며, 할머니 귀에 이렇게 속삭인다.

“할머니 죄송해요. 빨래하시느라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셨을 텐데…”


다정한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번 여름휴가는 참 행복하게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이형순/ 인천시 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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