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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마누라 오래 직장 다니라고~"라는 남편 속마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신발장 위에 하얗고 작은 플라스틱 병이 보였다. 이게 뭐야? 하
  며 집어 들어보니,  무슨 일본말이 잔뜩 써져 있고 그 밑에 한글로 써 붙여 놓은 뻘건 글씨가 눈에 들어
  왔다.

 

 

‘ 초강력 순간접착제’

이걸 왜 사왔지? 하는 궁금증에 마침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설거지를 해주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더니  “ 그냥, 애들 공작숙제 때 뭐 좀 만들어 줄려고 ”  라며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다.

 


그날 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갈증이 생겨 물을 먹기 위해 일어났는데... 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물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이 현관 쪽에 붙어 있는 화장실 불을 켜 놓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며 낑낑 대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여보? 잠 안자고?”
“어? 어... 으...응.. 이것 좀 고치느라고”  남편은 마치 어렸을 때 찬장에 놓여 있던 설탕 훔쳐 먹다가 들킨 어린애처럼 화들짝 놀랬다. 그러나 놀래야 하는 이유를 감추기에는 이미 늦은 터.  바짝 다가가 보니 글쎄....

 

이미 10년은 신어 낡을 대로 낡아빠진 그이의 구두. 벌써 굽을 3번이나 갈았지만 발의 양 볼이 있는 부분이 터졌던 모양이다. 거기에 그 야밤중에 일어나 강력 본드를 떡칠하며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저녁에 본 초강력 순간접착제는 남편이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사온 것이었다.

 

“여보... 이제 하나 사지... 너무 낡았잖아요. 요번에 아르바이트한 거 받으면 내가 하나 사줄게... 그만 신어요, 여보”
“아냐. 이거 아직도 3년은 너끈해. 자동차도 20년씩 타는 거 봤잖아”  잠시 후 다됐다며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난 그이는 10년 된 고물 구두를 정성스레 신발장에 넣어두며  “ 내일은 새 구두 신고 가겠네! ”라며 웃었다.

 

 

너무나 알뜰한 남편, 세상에 둘도 없는 짠돌이 절약파다. 그리고 다시 열흘쯤 지났을까. 마트에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항상 다리가 아프고 어떤 때는 퉁퉁 붓기까지 한다. 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아프고 저리다. 원래 마트 캐셔가 힘든 일이라 중간에 그만두는 아줌마들도 많다.


그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왔는데 아이들이  “ 엄마, 택배 왔는데. 이게 모야? ”  라며 커다란 박스를 가리켰다. 나도 처음보는 물건. 보낸 사람을 보니 ‘김철호’... 엥? 남편이었다. 뭔가 하고 택배를 뜯어본 나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고. 참 내, 나를 또 다시 감동하게 만들었다.


그건 다리와 발을 마사지 해주어 편하게 해주는 자동 안마기였다. 꽤나 비싸 보여서 마트로 전화를 해보니 무려 38만원이나 했다. 자기 구두는 10년 넘게 신으며, 본드를 사다 발라가며 더 신겠다고 ‘수리’까지 하는 사람이 아내가 힘들 거라며 큰돈을 들여 안마기를 선뜻 사오다니.

 

 

저녁때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다. 나는 다짜고짜
“여보, 저거 반품해요. 저런 거 없어도 돼요, 뭐 하러 사왔어요? 돈 아깝게” 라며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그리고 하는 말.
“응 그거. 내가 우리 마누라 직장생활 오래오래 시켜먹으려고 그런 거야.” 라며 하하하 웃으며 농담을 안겼다.

 

솔직히 매일 팔과 다리가 저린 나는 그 선물이 너무나 필요했고 좋긴 했다. 항상 마음과 보살핌으로 가족을 아껴주는 남편.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우리 가정 제대로 살림 꾸려 나가고픈 마음이 넘친다.

 

“여보,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심희수(대전시 서구 갈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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