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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아름다운 국민할매? 김태원, 그를 만나다

  전설의 락커에서 국민할매까지. 그의 삶은 참으로 버라이어티 했다. 현재 각종 매체와 방송에서 종횡
  무진 활약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 누군가에게 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누
  가 뭐래도 한 가정의 가장이며 부모이자 남편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줄 알며,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 김태원 씨를 만나보았다.

 


연예인이 아닌, 음악인 김태원

 

‘ 인생의 연륜 ’ 과  ‘ 삶의 애환 ’ 바로 김태원 씨를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의 길을 희열과 좌절, 그리고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 중의 일부인 20대, 30대, 40대를 빗대어 한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삶은 험난했다. 아니 의미 있는 사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예능 늦깎이로 대중들 앞에 나서 자신의 솔직담백한 삶을 이야기하던 그는 지금 너무도 행복하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청중과 대중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음악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락그룹 부활’ 의 리더이다.

 


그 어떤 화려한 조명과 스포트라이트보다, 무대에서의 그가 가장 멋져 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 이유인 듯 하다. 25년의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부활’을 놓아본 적이 없다. 요즘 같은 아이돌 전성시대에도 불구하고 고집과 믿음으로 그는 그룹‘부활’을 최고의 밴드로 만들어왔다.


‘부활’ 을 거쳐 간 굵직한 스타들도 한둘이 아니다.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등 ‘부활’ 을 거쳐 간 보컬리스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국내 가요계에서 이름을 남기고 최고의 인기 가수로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본인 김태원은 대중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 틀을 깨고 대중들 앞에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 언제어디서나, 그리고어떤시련이있어도끊임없이  ‘부활’ 하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라고 말이다.

 


내 인생의 멘토는 대자연


지금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매일 매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 내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행복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랜 친구들인‘부활’,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에 멘토는? 라는 질문에“대자연입니다. 또 그 안에 속해있는 나! 그리고 다시 내안에 있는 나!”라며 철학적인 대답을 되돌려준다.


이 대답에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려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대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무언가 끊임없이 부여잡고 팠던 과거에 매달리기 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 관망의 자세로, 더불어 낮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이 음악인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 편견을 버리고 나누고 분리함을 버려라! 결국 도착할 곳은 모두가 한곳이다 ” 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 대한 자신을 향한 반문에서 찾은 결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태원 씨는  “ 언젠가는 ”  이란 단어의 경이로움을 늘 믿어왔다. 또 “ 그 믿음이 가능성이라는 단어로 이어져왔다 ” 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이유는 “나의 가족, 나의 아내”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질문에 그는 “ 끊임없는 의문을 만들어내고 풀어감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반복돼져야 할 일이다 ” 라고 말하며 자신을 표현한다. 수많은 애칭만큼이나 다채로웠던 그의 인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사랑하는 그의 가족과 아내이다.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위암 사실을 알게 된 김태원 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죽기조차 미안했다”라며 당시의 진실한 마음을 전한다. 처음 자신이 겪은 위암판정에 “ 그날 밤이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밤이었다 ” 고 말하며,  “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벌려 놓은 일은 많고 과연 나 없이 아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 됐다 ” 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 나의 아내는 나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건을 겪으며 부처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놀라지도 않는다. 작은 사람인데 정말 강하다 ”  며  “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 라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전했다. 더불어 최근 위암 수술 후 건강을 회복 중인 김태원 씨는 베푸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밝혀 그의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에 응원을 더해본다.

 


조기 건강검진 필수입니다


조기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의 위암이 초기진행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김태원 씨는  “ 조기건강검진을 미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 라고 말한다. 김태원 씨 또한 자신의 몸에 의료기기를 댄다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었다. 아니 극도로 거부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누구보다도 더한 ‘ 건강검진 예찬론자 ’ 로 변모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의무라는 이야기이다. 김태원 씨 또한 이 시대의 아버지이며 또한 남편인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 그리고 사회적인 책임. 이런 것들은 우리시대의 아버지들 모두가 겪는 모순일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나의 가정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며 꼭 건강검진을 받기를 독려한다. 또한 그는 수술 후 금주도 실천 중이다. 금주 후 몸과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일주일간의 무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의 가족사랑은 끝이 없다. 현재 너무도 바쁜 스케줄에도 그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 내가 숨 쉬고 있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또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기에! ”  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요즘과 같이 바쁜 시기에 ‘ 일주일간의 무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 이라는 질문에 김태원씨는  “ 당장이라도 필리핀에 가고 싶다. 그곳에 우리가족 모두가 있다 ” 라고 말한다.


한 방송프로에서 그는  “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2년 후에 아들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 마음이 아픈 아이였다 ”  며  “ 그것을 안 상태에서 음악활동을 하기에 버거웠다 ” 는 말과 이러한 이유로 가족이 필리핀으로 간 까닭이라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또한  “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 더 사는 거다 ”  며  “ 나는 지금도 제 아이와 대화하는 걸 꿈꾼다. 아들이 11살이지만 단 한 번도 대화한 적이 없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 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대중들과 그의 마음을 나누기도 했었다.


이에 김태원 씨는  “ 언젠가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다 ” 고 말하며  “ 장애를 앓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 고 말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언제 어디서든 부활의 날갯짓으로


김태원에게  ‘ 부활 ’ 이라는 밴드는 그의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와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밴드 이름처럼 그의 인생도 어떠한 위기에서도 부활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또‘부활’로써 음악의 위대함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는 얼마 전 발매한 싱글앨범  “ 누구나 사랑을 한다 ”  로 왕성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부른 앨범을 발표하고 싶다는 꿈 또한 잊지않고 피력했다. 수많은 애칭 중‘국민할매’라는 애칭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는 그는“락커라는 선입견을 깨고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게 해준 통로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늘 사랑을 주시는 팬들과 국민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건강보험의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기를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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