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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박진희처럼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미래를 지켜보려면

부제 : 영화 ‘친정엄마’와 췌장암            

                         

  천지사방에 꽃향기가 맴도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런 시절에 자연의 신록만큼이나 새뜻한 소식을 들었다. 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언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전해준 장애인복지기관의 한 후배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발그레하게 물들어있었다.

 
  주인공은 여배우 박진희 씨였다. 후배의 전언에 의하면, 박 씨는 올해 장애인의 날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는 청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장애인 관계기관에서는 행사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촉박하게 요청을 했던 탓에 바쁜 연예인이 수락을 하지 않을까봐 내심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박 씨는 기껍게 홍보대사직을 맡았을 뿐 만 아니라 당일 식장에서 장애인들과 더불어 일반석에 앉아 모든 행사를 함께 지켜봤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특별대기석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정중하게 사양했다는 것이다. 

 후배에 따르면, 연예인이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서 일반석에 앉겠다고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장애인을 위한 선행으로 유명한 모 가수도 어느 해의 행사에서 특별 대기석에 앉아 있다가 자기 인사가 끝나자 바로 식장을 떠났고,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관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진희 씨는 이날 일반석에서 행사를 끝까지 지켜봤을 뿐 만 아니라 식이 끝난 후에도 청주성심학교의 장애인 야구단 아이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갔다는 것이다.
 후배로부터 박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작년 이즈막에 그녀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가 출연한 ‘친정엄마’라는 영화를 개봉하기 직전이었다.  

 

  

  박 씨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끼끗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솔직히 제가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김태희 씨나 송혜교 씨 같은 분은 얼마나 예뻐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 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요.”
 꽤 많은 여배우를 인터뷰했지만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이는 처음이었다. 겸손이 최고의 자만이라는 것을 아는 배우일까.

 나는 그 즈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그랬듯이 그녀에게도 한 권의 시집을 선물했다. 박 씨는 시집을 펼치더니 그것들을 자세히 읽어나갔다. 책을 받으면 의례적 인사만 하고 금세 치우는 여느 연기자들과는 달랐다. 
 그런 감흥 때문에 그날 영화에 대한 것 뿐 만 아니라 그녀가 환경 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자동차 보다 자전거를 타려고 애쓰고, 화장지 대신 손수건을 쓰려 한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실천 행위를 공개하는 것이 쑥스럽지만, 환경 보호 운동이 전파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감내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녀가 쓴 대학원 석사논문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에까지 미쳤다. 그녀는 연기자들의 스트레스가 자신의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박 씨의 얼굴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과는 전혀 상관없게 환하기만 했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박 씨는 데뷔 이후 주로 밝은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영화 ‘친정엄마’에서는 달랐다.
 그녀는 극중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30대 방송작가 지숙으로 나온다. 지숙은 전라도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 친정 엄마(김해숙)를 찾아가 병을 밝히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고 잠깐 동안 행복한 여정을 함께 한다.  엄마는 즐거워하면서도 평소와 다른 딸의 행동에 의심을 품는데, 말 못할 비밀을 품고 있던 지숙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쓰러진다.

 
영화 ‘친정엄마’ 속에서 지숙은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다한 모습이다.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치료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기울이는 장면이 꽤 나오는 것이 보통 극(劇)의 상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대목이 작다. 

 
그것은 췌장암의 예후가 매우 나쁜 탓이다. 이 병에 걸리면 5년 생존율이 5% 이하라고 한다. 대부분 암이 진행된 후에 알게 되기 때문에 발견 당시 수술 절제가 가능한 경우가 20% 이내다. 육안으로 보기에 종양이 완전히 절제되었다 하더라도 미세 전이 탓에 생존율을 높이기 힘들며, 항암제 및 방사선 치료에 대한 반응이 낮다고 한다. 

 
췌장은 위(胃)의 뒤쪽에 있는 길이 약 15cm의 가늘고 긴 장기(臟器)다. 이자(pancreas)라고도 불리는 이 장기의 주된 역할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등 여러 호르몬과 소화액을 만드는 것이다.

 
췌장암의 분명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암 전 단계의 병변 역시 뚜렷하지 않다.  45세 이상의 연령, 흡연 경력, 두경부나 폐 및 방광암의 과거 병력, 오래된 당뇨병, 지방이 많은 음식 섭취 등이 췌장암 발생률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여느 암처럼 유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친정엄마’의 엄마는 자신 탓이라며 가슴을 쥐어뜯기도 한다. 

 
췌장암의 증상으로는 복통, 체중감소, 황달 등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영화 속 지숙이 황달을 엄마에게 숨기려 애쓰고, 복통으로 남몰래 괴로워하는 것은 그 탓이다. 
 당뇨병이 새로 발생하거나 기존의 당뇨병이 악화되기도 한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소견이다. 갑자기 당뇨가 나타나거나 원래 당뇨병이 있는 경우에는 정기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암 예방에도 바람직하다.

 
어느 병이나 그렇지만 췌장암의 경우에는 특히나 조기 진단이 중요한데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어서 일찍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 만큼 위험 요인으로 알려진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흡연자가 췌장암에 걸리는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2~5배 높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피해서 비만을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육식보다는 과일과 채소를 위주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췌장암 뿐 만 아니라 모든 암을 예방하는 좋은 습관이다. 

 
화학 물질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췌장암의 위험 요인이 되는 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논란거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화학물질에 신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 장비 착용이나 안전 수칙을 엄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암연구학회(American Academy of Cancer Research) 102차 연례회의에 보고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스피린을 고단위이든 저단위이든 한 달에 한 번 이상 복용하면 췌장암에 걸릴 위험도를 최고 35%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 내 한 연구팀의 보고 내용이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하고 폭넓은 임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췌장암에 대한 희망적 연구 결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영화 ‘친정엄마’ 속에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다 뺐던 박진희 씨는 그 이후에도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자이언트’ 등에서 맹활약을 했다. 며칠 전에는 그녀가 2011년 지구의 달 캠페인 '깨끗한 물 보호' 캠페인을 벌이며 청계천 광장을 씩씩하게 걸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물을 아껴 쓰자”고 호소하는 사진에서 순수한 열정이 오롯이 묻어났다. 아름다운 젊은이가 사람의 향기가 나는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끌밋한 나무에서 신록이 돋아나는 것을 보는 것만큼이나 흐뭇한 일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세상의 미래를 환하게 밝히는 모습을 오래 오래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나이가 들어서도 청계천 광장을 튼튼한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야 할 것이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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