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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눈으로 보는 말


  배우 김재원을 보면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주인공 차동주 역을 열연하고 있는 그는 올해 만 30세다. 연기경력이 10년이 넘는데, 20대 초반의 신인 시절에 찍은 드라마 ‘로망스’(2002년) 때의 풋풋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로망스’는 극중 여교사 역을 맡았던 김하늘의 명대사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로 유명하다. 여교사를 좋아하는 고교생 역으로 나온 김재원의 ‘살인 미소’가 태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김재원은 군대에 갔다 오는 등의 개인 신상 문제로 5년 여간 국내 드라마를 쉬었다가

‘내 마음이 들리니’로 복귀했다.

그의 여성 팬들은 그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해사한 얼굴에 선한 반달눈으로 짓는 ‘살인 미소’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재원이 연기하는 차동주는 극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봉우리(황정음)나 봉영규(정보석) 앞에서는 소년처럼 천진한 미소를 짓지만, 자신의 양아버지 최진철(송승환) 앞에서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그는 어린 시절에 최진철이 자신의 집안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친할아버지의 목숨을 빼앗는 장면을 본 후에 그 충격으로 사다리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청력을 잃었다.

 

 최진철은 내연 관계인 강신애(강문영)와 함께 이 드라마에서 악역을 담당한다. ‘순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순박하고 선량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최진철의 포악스런 성격은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들어먹을 수밖에 없다.

 

 최진철과 같은 캐릭터가 많아지면 자칫 ‘막장’ 드라마로 치닫기 십상이다. 얽히고설킨 극단적 인간관계로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해서 시청률을 높이는 게 막장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욕 하면서 그 갈등 구조에 빠져서 계속 보게 되는 것이 막장 드라마의 아이러니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작가 문희정 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녀는 “막장 드라마의 폐해를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런 식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악역을 한정시키고 그들이 일으키는 갈등도 미리 한계를 둬서 리얼리티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문 작가는 바보스러운 남자 봉영규와 순박한 아가씨 봉우리가 상처 입은 젊은이 차동주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남보다 더 똑똑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좀 더 바보스럽게 살자고 말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니 처음엔 시청자들의 반응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따뜻함을 전하는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면 곧 알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드라마 제목처럼 작가도 시청자 여러분께 ‘내 마음이 들리니’ 하는 거죠.”

 

 문 작가의 말에서 유추해보면, 최진철은 시청자들의 욕을 다 감당해야 하는 불쌍한(?) 캐릭터인 셈이다. 그 역할을 송승환이 하고 있다는 것은 묘한 감회를 일으킨다. ‘난타’의 기획자로 유명한 송승환은 대학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는 배우다. 그는 후배 김재원과 같은 나이에는 아가씨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은 청춘 스타였다.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쇼 프로그램의 사회를 도맡으며 화려한 인기를 구가하던 그가 50대 중반의 중년 나이에 악역 변신을 해서 아들뻘 후배 김재원과 연기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김재원으로서는 차동주 역할을 통해 대선배인 송승환과 경연을 하게 된 것이 큰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 중 동주는 최진철로부터 집안의 회사를 찾아오기 위해 자회사를 맡아 운영한다. 그는 청각 장애인이 아닌 척 연기를 하며, 사람들의 입술을 읽어서 의사소통을 한다.

 

 동주는 상대방의 입술이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서는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도 듣지 못한다. 어렸을 때 친구인 봉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마음 아파하지만, 동주 앞에서 애써 밝은 얼굴을 꾸며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 애쓴다.

 

 봉우리 역의 황정음은 적역을 맡았다는 평을 들으며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걸그룹 출신으로 한때 ‘발 연기’ 논란에 휩싸였던 그녀는 ‘지붕 뚫고 하이킥’‘자이언트’ 등을 통해 연기 공력을 갖추며 배우로서 거듭나고 있다.

 

 극중 봉우리는 세상 풍파를 씩씩하게 헤쳐 나가지만, 가슴 속 깊숙이엔 청각장애인이었던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 청각 장애는 차동주와 봉우리, 두 주인공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청각 장애는 한자(聽覺障礙)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거나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의 장애를 뜻한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거나 잔존 청력이 있다하더라도 소리만으로는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를 농(聾)이라 하고, 보청기와 같은 기구의 도움으로 잔존 청력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를 난청(難聽)이라 한다.

 

 의학계에 따르면, 청각 장애의 원인으로는 아동기 이전에는 유전적 요인, 모체의 풍진, 조산, 뇌막염 등이 많고 성인기에는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극중 동주처럼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불의의 사고로 청력을 잃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청각 장애를 예방하려면 아기를 가진 모체가 풍진과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조산아나 미숙아를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난청을 동반하는 바이러스 질환을 막기 위한 예방 접종도 필수적이다. 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독성(耳毒性) 약물을 불가피하게 복용해야 할 때 그 양과 기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소음에 노출되는 환경을 피해야 한다.

 소음이 큰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귀마개를 하는 등 일상적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MP3,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음악을 크게 듣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청각 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으로는 손을 사용해 의사 표시를 하는 수화(手話)가 널리 알려져 있다. 수화에서 한글 자모음이나 알파벳, 숫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지화(指話)라고 한다. 잔존 청력에 의지하거나 입술을 읽는 독화(讀話)로 상대방의 음성을 이해하는 구화법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 마음이 들리니’의 차동주는 상대방의 입술을 읽는 독화(讀話)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 드라마에는 동주의 의사소통을 돕는 손목 시계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시계는 집에 누군가 방문하여 초인종을 누르면 초인종 그림이 표시되고, 주전자의 물이 끓으면 주전자 이미지가 뜨는 등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또 동주는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는 전화기에 상대방의 말이 한글 문자로 전환돼 표시해주는 기능이 있는 덕분이다.

 

 드라마 제작진에 따르면, 동주의 시계와 휴대전화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것이다. 외국에 이런 기능을 지닌 시계와 휴대전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국내에는 아직 보급되지 않은 상황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청각장애인들이 모두 차동주의 시계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극중 봉우리는 동주의 청각 장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반드시 그의 앞으로 가서 말을 한다.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에는 말하는 사람 쪽을 향하여 보고 있을 때,

말을 거는 것이 바른 예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청각장애인을 대할 때는 장애로 인한 특징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을 할 때에는 보통크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입모양은 과장하여 크게 하거나 어물거리지 말고 또박또박 차분히 의사를 전달하는 게 좋다. 특히 담배를 피우거나 껌을 씹으면서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대화 중에 청각장애인이 이해하고 있는지 때때로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글씨를 써가면서 말하는 배려를 하는 것이 더 좋다. 또 청각장애인의 말소리가 이상하더라도 정정하려 들거나 웃지 말고 찬찬히 들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청각장애인’을 ‘벙어리’라고 낮춰 부르는 언어 습관이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동주가 극중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며 마음에 새겨본다.

 

 

“귀로 듣는 말은 흘리면 그만이지만 눈으로 보는 말은 마음에 새겨져.”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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