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나절 오후 두 시쯤.

오늘 저녁때는 그저 손쉽게 해 먹으려고 생선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길 저만치서 노점상 할머니 한 분이 외로이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졌다.

 

할머니 노점에는 애호박, 무, 꽈리고추, 흙 묻은 더덕 같은 게 있었다.

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하여 다시 쳐다봤으나 역시 값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다.

 아무래도 저 할머니 물건은 좀 사 드려야 하겠다 싶어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다가갔다.

 

할머니는 이동식 부탄가스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는지 그 위에서 물이 끓는 게 보였다.

아, 할머니의 점심때인가 보다. 역시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면 봉지를 뜯어 끓는 냄비에 퐁당 집어넣으시더니 곧바로 종이 박스에서 검은 비닐에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꺼낸 다. 밥이다.

 

할머니는 밥을 펄펄 끓는 라면 냄비에 쏟아 붓는다.

그게 할머니의 라면 식사법인가 보다.

 

바로 옆에 놓인 손바닥만한 찬합.

마늘쫑과 함께 볶은 멸치, 그리고 깻잎 장아찌 두 종류가 전부인 밑반찬이 할머니 만찬(?)의 주요 메뉴였다.

 

한여름 지글지글 끓는 도로변 콘크리트 위에 놓인 버너.

그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라면을 끓이고 밥을 얹어 한 끼니 때우셔야만 하는 상황.

 

그냥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애호박과 더덕이라도 살 요량으로 다가선 순간, 내 배꼽을 잡아 빼게 한 할머니의 센스 작렬.

한 바가지 정도의 됫박에 호두가 담겨 있고 그 위에 부채 크기만한 넓이로 라면 박스를 쭉 찢어 써 넣은 호두의 원산지 표시 글귀가 있었는데.

 

“북한산 호두, 통일되면 국산”
나는 식사 준비를 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그 글씨를 보고 한동안 서서 웃고야 말았다.

 

머니의 고단함을 덜어 드리는 방법은 애호박 말린 것을 사지 않아도 잠시 말벗이라도 돼 드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할머니의 ‘오찬장’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할머니,   이 호박 잘 생겼네. 때깔도 참 좋아요. 근데 점심 혼자 드시면 맛없잖아요.

 왜 옆에 다른 할머니들이랑 같이 안 드셔요? (부질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오늘 많이 파셨어요?”

물건은 사지도 않는 인간이 뜬금없이 왜 혼자 밥 먹느냐고 묻느냐는 눈빛으로 뜨악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

 

그래도 대답은 시원하게 나왔다.

“아이구, 할망구들 장사해야지, 나랑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 애들 연필 값이라도 벌어야 할 거 아녀? 그 호박 살껴 안살껴?”
식사 중에도 구매 의사를 확실히 물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도심 속 한여름 풍경이 투영됐다.

 

모두가 종종걸음으로 왔다가 황급히 떠나가는 버스 정류장. 냉방장치 하나 없이 오로지 손주 연필 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하루를 버텨 내는 할머니들의 잔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 뜨거운 시멘트 바닥, 이미 낡을 대로 낡아 찢어진 골판지 위에 놓인 한 무더기의 흙 묻은 더덕의 주름살처럼 사실은 너도나도 다 같이 힘든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일하게 갖는 희망은,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다짐과 기대 아닌가.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운 것 같다.

할머니의 호박과 꽈리고추, 그리고 “통일되면 국산” 이 될 호두도 한 줌 덥석 사 들고 일어섰다.

 

“할머니 많이파세요.” 하며 돌아서는데 

“그려, 새댁도 감기 조심혀” 하는 다정한 인사.

 그 “새댁” 이라는 센스 넘치는 말에 또 꽂혔다. 앞으로 이 할머니 단골 돼야겠다. ㅎㅎㅎ

 

글 / 박나영  서울시 도봉구 창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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