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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억지로 웃는 것도 건강에 좋을까?'

 

  “영화 중간에 일어나서 나갈까 말까 정말 고민했어요.” “예상보다 못한 작품이더군요.” 

 

 영화 ‘가문의 영광 4-가문의 수난’ 시사회가 끝난 후 내가 만난 몇몇 기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떤 기자는 “수준을 언급할 값 어치 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나  “이 영화가 추석 극장가에서는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기자들도 그 말에 동조했다.  "왜 수준을 언급할 값어치조차 없는 영화가 명절 극장가에서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일까?" 

가족들이 함께 극장을 많이 찾는 시기에 나온 유일한 국산 코미디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명절에는 가족이 부담 없이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코미디인 ‘가문의 수난’이 유리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작품의 1,2,3편이  모두 재미와 감동을 함께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그 유명세 덕도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가문의 수난’은 실제로 추석 극장가에서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추석 직후에 역사물 ‘최종병기 활’ 에 밀리고,  ‘도가니’,  ‘투혼’ 등의 수작이 새롭게 등장하면서는 흥행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수준 낮은 웃음 코드가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가문의 수난’ 의 흥행 추이는, 웃음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개그맨 이윤석은 얼마 전에 '웃기지 않은 과학책'이라는 부제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정식 제목은 ‘웃음의 과학’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웃음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유머집처럼 웃기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 위해 부제를 ‘웃기지 않은 과학책’ 이라고 한 것이다. 개그맨의 재치가 엿보인다. 


 이윤석은 이 책에서 병원의 환자들에게 선택권 없이 무조건 정해진 코미디 영화만을 보게 한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 결과, 환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진통제를 필요로 했다.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를 강제로 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의 실험이 증명해주는 셈이다.”

 

 이윤석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요한 볼프강 괴테대학교 교수인 디터 자프가 가상의 콜센터에서 40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도 인용한다. 실험 결과,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 웃음을 지은 사람은 후에도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화 ‘가문의 수난’ 이 주는 억지 웃음은 관객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웃음을 연구해 온 의학자들은 사람들에게 틈날 때마다 억지로 웃으라고 권유한다.

 

 우리 자신의 의도적으로 웃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 뇌와 몸에 연결된 신경 회로와 근육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진짜로 웃을 때와 동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근육이 수축하고 이는 뇌를 자극하며 마치 즐거운 일이 있을 때처럼 엔도르핀 등의 면역력을 높이는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그 결과 실제로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지고, 즐거움의 이유까지도 찾아낸다. 

 

 인간의 삶을 80년으로 본다면, 보통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밥 먹는 데 6년, 사람을 기다리는 데 6년, 웃는 데 22시간 3분을 보낸다고 한다.  일생에 걸쳐 단 하루분의 양도 웃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강천사 독자들은 과연 얼마나 웃는지 한 번 되돌아 볼 일이다. 


 많이 웃을수록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은 상식이다.  

 웃음이 수많은 호르몬과 면역 물질을 생성하고 활성화시키는 까닭이다.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을 동시에 수축시키고 몸속에 있는 650개의 근육 중 231개를 움직임으로써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뱃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은 복식 호흡이 되어 횡경막의 상하 운동을 증가시키며 이 때 내장 마사지 효과가 나타나 내장 운동을 활발하게 해 준다.

 

 

 

 

  이렇게 웃음이 건강에 좋으니까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권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언급한 것처럼 억지웃음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으니, 웃을 수도 그렇다고 웃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윤석은 “억지 웃음의 스트레스를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고 제안한다.  억지웃음이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말한다. “웃는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이기고 있다는 반응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고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으면 우리는 웃을 수 있다.”


 그의 말을 믿자면, 저질의 코미디를 본 후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나, 그것을 새로운 웃음으로써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코미디를 보고자 하는 그 의욕으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웃음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석은 지상파 방송 뿐 만 아니라 케이블 TV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 후배들의 방송 연기를 지도한다. ‘국민 약골’로 불리는 그의 신체적 조건으로는 버티기 힘든 살인적 스케줄이다.

 그래도 그가 늘 웃는 얼굴인 것은, 웃음 전도사로서 억지로라도 웃기 때문에 과로의 스트레스를 이기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윤석의 동료, 후배 개그맨들이 만드는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그 발상의 기발함에 늘 놀라게 된다. 웃음을 만들어내기까지 개그맨들의 고충이 절로 느껴진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그들의 스트레스는 얼마나 심했을까?

 

 

 

 그 덕분에 시청자가 웃는 것이니 정말 마음껏 웃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이가 실컷 웃어주는 것만이 개그맨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길임에 틀림없다. 시청자들이 크게 웃으면, 개그맨들도 자신의 고충을 잊고 함께 웃을 수 있고, 그래서 더 건강하고 풍성한 웃음이 넘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TV의 개그 프로그램에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만나는 주변 사람들과도 가능하면 유쾌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을까.

 웃음과 짜증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스스로의 삶에 좋을지는 굳이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윤석이 '웃음의 과학' 맨 마지막에 써 놓은 글은 범박하지만 울림의 여운이 있다.

 

 “건강과 행복으로 이르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주, 크게, 더불어 웃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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