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불안은 사람을 잠식한다모든 두뇌작용이 불안감을 야기한 그 일에 사로잡히고뭔가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불안에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불안 장애는 전문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불안이 지속되면 우울증알코올 중독수면 장애 등 다른 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이렇게까지 심각하진 않더라도 일시적 불안은 누구나 경험한다힘든 일이 연이어 일어나거나갱년기에 접어들어 호르몬 불균형이 심해질 때평소 무던하던 이들도 나오기 어려운 불안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심호흡이나 명상을 통해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에서부터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되도록 피하는 방법거꾸로 이에 노출시켜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권고된다그런데 미국의 심리학자 알리시아 H 클라크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제시한 방법은 좀 다른 접근이다.


불안을 억누르거나 피하는 방법 외에 불안을 껴안아 삶에 도움이 되는 동반자로 삼으라고 하기 때문이다불안에 대한 개념을 재규정하고 이해하면 긍정적인 삶의 원천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Hack Your Anxiety>의 저자인 그가 말하는 불안을 친구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불안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신호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불안이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하려던 일을 멈추고 생각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마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 뭣 때문일까를 살피고 젖병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처럼불안이 느껴지면 무엇이 나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일까를 따져보라는 것이다그러면 불안이 막연히 억누르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나에게 필요한 무엇으로 여겨진다.



불안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재정의하는 것은 감정을 통제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된다가령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아 신경이 쓰여 죽겠다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자이성과 첫 만남을 앞두고 불안 초조해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관계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떤 식으로 불안을 재정의할 것인지는 각자 자신에게 달려있다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불안의 개념을 바꾸면 불안한 증상에 차분하게 대응하며 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긍정적인 사고는 우리 뇌가 불안을 관리하는 능력을 더욱 키워준다는 것은 기존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라고 클라크는 말한다.

 

사실 적당한 불안은 삶에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가령 마감 직전의 긴장상태는 평소와 다른 스퍼트를 내도록 해 마감에 맞추도록 하는 힘이 된다.


오히려 불안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소시오패스와 같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즉 정신없이 바삐 살며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 잘 모르고 지내기 쉬운 현대인에게무언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종을 울리는 경보 시스템이 불안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불안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고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불안의 확산을 막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다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희망이 솟아나고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이를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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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우리는 메르스 사태와 프랑스 테러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불안에 떨었다. 경제 위기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로 우리 삶에 뿌리를 내린 불안요소다. 이 외에도 개인마다 불안의 원인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면 몸과 마음은 황폐해 지기 마련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돌파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상상해 보자. 원시인들이 토끼 사냥을 하러 길을 가다가 갑자기 으르렁 거리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곰이나 사자를 만났다. 이 때 원시인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손에 땀이 나고, 어깨와 다리 근육에는 힘이 잔뜩 들어갈 것이다. 당장 어디로 도망쳐야 할 것 같은 불안에 압도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안전하게 도망을 쳤거나 우연히 던진 돌에 급소를 맞은 곰이나 사자가 쓰러져서 위기를 탈출했다면 불안 반응에서 벗어난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질테니 말이다.




불안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도망가거나 싸우도록 돕는 일종의 보호장치, 경보시스템이다. 현대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곰이나 사자라면 도망가거나 죽을힘을 다해서 싸우면 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도망치거나 싸울 대상이 없다.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끊이지 않는 경쟁과 압박 속에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이 없는데도 불안을 계속 느끼면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는 불면증이다. 현대인들의 50% 이상이 불면으로 힘들어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불면은 현대인의 숙명과도 같다. 불안과 수면은 상극이다. 생각해 보라. 곰이나 사자가 내 앞에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잠이 오겠는가?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질 좋은 수면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불안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공황장애다. 공황장애란 아무런 이유 없이 몇 분 이내에 심박수가 증가하고 호흡이 가빠지며 미칠 것 같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갑자기 엄습하여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취약할 경우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안의 시대를 잘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긍정의 힘, 즉 긍정력이다. 심리학자들은 2000년부터 어떻게 하면 긍정의 힘을 키울 수 있을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단점을 극복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려보자.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 하나 같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라고 말한다.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단점을 극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단점 극복을 그만두고 장점과 강점을 더 계발하라고 말한다.





민수와 철수가 과일 한 상자씩을 구입해서 먹는다고 하자. 민수는 상자의 과일 중에서 썩거나 상한 것부터 먼저 먹고 좋은 것은 나중에 먹기로 한 반면, 철수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멀쩡한 것도 썩거나 상하기 마련이니 일단 제일 좋은 것부터 먹기로 했다. 둘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민수는 과일 상자를 열 때마다 제일 썩은 것부터 찾았고, 철수는 제일 상태가 좋은 것부터 찾았다. 이런 식으로 과일 한 상자를 다 먹었다고 했을 때 민수는 계속 썩은 것만 먹었고, 철수는 계속 좋은 것이 된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단점은 극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극복해도 또 다른 단점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마치 민수의 사과 상자처럼 말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보자.





둘째, 감사일기와 편지를 써보자. 매일 삶을 마감하면서 감사거리를 찾아서 일기를 써보자. 처음에는 감사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찾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감사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건강을 감사할 수 있고, 몸이 아픈 사람은 더 아프지 않거나 한 쪽만 아픈 것에 감사할 수 있다.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어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편지를 써보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옛 은사를 비롯해서 내 삶에서 소중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이왕이면 손 편지를 써보자. 편지를 쓸 때는 고마웠던 기억과 마음을 전한다는 설렘으로 행복할 것이고, 받는 사람의 반응을 보고서는 더 큰 행복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런 작은 실천이 우리의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킨다. 이것은 그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연구해본 결과 이런 작은 감사와 노력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며 더 오래 살고, 업무능률도 향상시킨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활동이다. 2016년 한해 동안 긍정의 힘을 키워보자.



글 / 강현식 심리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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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땅에서 불과 35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했으니 말이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에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되었다.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물론 1997년부터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지만 전 국민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4년 만에 전액 상환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엄청난 성과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는, 죽도록 일하는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에 주당 근무시간은 가장 높고, 수면시간은 가장 적은 나라라고 한다. 이 정도 했으면 좀 쉬어가만도 한데 현실은 다르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특히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국가도 기업도 모두 위기라고 말한다. 국가는 기업을, 기업은 국민의 고삐를 계속 죄고 더욱 박차를 가한다. 지금까지도 죽을힘을 달렸지만 또 다시 달려야 하다니! 국민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이른바 번 아웃 신드롬이다.

 

 

 

 

 

아웃이란 완전히 지쳐서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번 아웃은 단순한 신체적 피로나 피곤과는 다르다. 몸이 지친다면 푹 자거나 쉬면 회복이 된다. 핸드폰 베터리가 방전이 되었을 때 충전기만 꽂고 기다리면 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번 아웃은 더 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 즉 베터리의 수명이 다 된 상태다. 아무리 충전기를 꽂아도 소용없다.

 

번 아웃이 되면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이 자더라도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지친것이 아니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일 생각이 떠나지 않아 괴롭고 불안하다.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일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불면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은데, 눈을 붙여도 잔 것 같지가 않다. 꿈에서도 무엇에 쫓기거나 조바심을 내는 일이 많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허기가 지는 것은 배가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 아웃은 크게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심리적 증상으로는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이나 불안, 분노와 짜증이 있고, 신체적 증상으로는 불면증이나 폭식증, 대인기피나 출근(직무)거부가 있다. 번 아웃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알코올이나 게임, 쇼핑중독에 빠질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빈번하게 겪기에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을 수도 있다. 당연히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극단의 고립감과 무기력, 자기비난에 빠져서 자살시도나 자해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수면과 섭식 문제와 스트레스 때문에 온갖 신체적 질병에 취약해지기 쉽다.

 

 

 

 

 

어떻게 해야 번 아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번 아웃은 일종의 경고등이다. 자가용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제대로 된 수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달린다면 폐차를 시켜야 할지 모른다. 번 아웃은 우리 삶의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알려주는 빨간불이다.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일하기 위해 살게 되지는 않았는지,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지만 정작 일 때문에 가족이 고통 받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필요하다면 이직을 고려하거나 새로운 삶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만약 현재의 삶의 방식과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 되도록 일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직장에서 성공을 쫓아가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좋겠다. 어떻게 되었든 시간을 확보해 제대로 쉬는 것이 필요하다. 제대로 쉰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의 휴식이 먼저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방법으로는 적절한 강도의 운동이 좋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긴장감, 심박의 증가도 느끼고 운동 이후의 이완과 상쾌감을 느껴보자. 이와 더불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뿌리부터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서로를 대상화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며, 상대를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번 아웃에서 회복될 수 있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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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정이 늘고 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혼밥’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혼자가 편하고, 인맥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린다.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 하지만 그 속에서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은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혼자가 편한 것일까? 정말 혼자가 편한 것일까? 

 

  

‘혼자’가 좋은 이유?! 성격을 들여다보자

 

몇 가지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어렸을 적부터 혼자서 지낸 것을 학습한 경우다. 요즈음 혼자 노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핵가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도시문화 속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렸을 적부터 함께 어울려서 집단으로 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혼자 놀았던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본래 좋은 것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것을 찾는 법이다. 중년이나 노인들을 보라. 그들도 어린시절 경험으로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여전히 즐겨 하지 않는가.

 

그 다음은 성격 때문이다. 성격적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먼저 회피적인 성격은 혼자 지낸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수용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여 만남을 회피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항상 인정받고 수용 받기는 힘 들다. 때로는 무시당할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정말 믿 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과만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꺼린다. 차라리 혼자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성격 역시 혼자 논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음식도 마다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들은 자기중심적 사람들에게 심리 적 불편감인 불안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불안을 떨쳐 버리기 원한다. 결국,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하기는 것이 과도한 불안을 초래하기 때문에 혼자 노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나를 만든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한다.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함께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잡기 원한다. 혼자 있다 보면 함께 있고 싶어지고, 함께 있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대부분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의 마음이 라고 할 수 있다. 계속 혼자 있는 것이 좋다거나, 계속함께 있어야만 한다면 이것은 심리장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이유 도 현대 사회가 사람을 혼자 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해도 누군가와 늘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통신의 발달은 결국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워주었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집을 뛰쳐나가면, 부모는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자녀를 찾아 헤맸다. 지금은 어떤가? 자녀들이 집을 나가면 일단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인터넷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집에 가서도 회사 일을 거 의 똑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혼자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핸드폰 위치 추적을 해서라도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전국에 깔린 수억 개의 CCTV를 통하여 지금도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원한다. 함께 있는 것이 지겹고, 함께 있다 보면 ‘나’는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처음에는 좋지만 조금씩 심심해지고, 처음에는 독립감이었는데 나중에는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고, SNS로 안부를 남긴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서 문명사회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한편 언제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물꼬를 마련해주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너무 식상한 표현이다. 너무 식상하다는 것은 그만큼 맞는 것이다. 맞기 때문에, 계속 회자되고 그래서 식상해지는 것이니까. 언제나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사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끔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꿀맛 같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기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인생이다.

 

만약 혼자 지내다가 다시 사람들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면, 그것은 사람들 자체가 싫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있든지 자기 생각과 감정, 욕구와 의지는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자신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 누다심(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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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가 훨씬 큰 법이다. 영화에서도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깔리는 스산한 배경음악이 더 소름을 돋운다. 중국 황제가 머물고 있는 열하(熱河)로 향하는 연암 박지원은 어두운 밤에 극한의 공포를 마주한다. 깜깜한 어둠, 그것도 하룻밤에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 것은 매순간이 절체절명이다. 어둠 아래 깔린 물, 그 공포스런 흐름의 소리, 말 위라는 불안감…. 그건 분명 공포의 극한조합이다.

 

 

 

스스로를 먼저 채워라

 

 

 

공포는 마음의 평정심이 깨진 상태다. 극도로 불안한 마음이다. 불안은 눈과 귀, 마음이 예민해진 결과다. 그 예민함을 둔화시키면 공포가 가라앉고 평상심으로 마음이 옮겨간다.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연암은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명심(冥心)’, 즉 평상심을 찾는다. 그리하니 그 험악한 강물 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니, 물소리는 그 물소리인데, 마음이 잠잠해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열린 마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생생한 여행기다. 또한 물에서 깨달은 마음의 이치를 담고 있기에 더욱 뜻이 깊다.  

 

암에게 명심이란 깨달음을 준 물은 삶에 던져주는 함의가 적지않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채움이다. 자신의 낮은 곳을 채운 뒤에 비로소 흘러간다. 스스로도 부족하면서 남의 모자람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은 채우지 않으면서 남의 비어있음을 탓하지 말라는 무언의 교훈을 흘려준다. 천하를 다스리는 출발이 ‘스스로의 마음 닦기’라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도 맥이 닿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라

 

 

 

물은 꿈이고 변화다. 시냇물에 안주하지 않고 강으로,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쉬지 않고 흘러서 좀 더 큰 세상을 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행복도 쌓아두며 향기가 사라진다고 귀띔한다. 그날 구운 빵처럼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행복이 더 향기로움을 일깨운다. 그건 게으름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굽어 살핀다’는 말이 있다. 임금이 백성을 굽어살피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굽어살피고, 강자가 약자를 굽어살피면 세상이 따스해진다. 굽어살핀다함은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을 아래로 쏟는 것이다. 또한 굽어살핀다함은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시소는 균형이다. 어른과 아이가 시소를 타면 어른이 아이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야 높이가 맞춰진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다가가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다가가고, 많아 배운자가 덜 배운자에게 다가가야 사회가 조화롭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부자가 있기에 가난한 자가 있고, 배운 자가 있기에 못 배운 자가 있다. 내 위엔 더 부자가, 아래엔 더 가난한 자가 있다. 그러니 누구나 굽어봐야 할 대상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굽어보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굽어봐야 한다. 굽어보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공자의 인(仁)도, 맹자의 덕(德)도 결국 더불어함에 깃든다.

 

 

 

크게 보고 화합하라

 

 

 

물은 화합이다. 만산의 골짜기 물들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란 넓은 바다에서 꿈을 합한다. 흘러서 하나가 되는 물은 사소로움으로 편을 가르지 말고, 어깨동무를 하고 큰 세상을 함께 보라고 조용히 인간을 꾸짖는다. 노자는 ‘물이 깨져도 다시 붙는 것은 그 성품이 부드럽고 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약돌의 날카로움을 다듬어 주는 것은 결국 물의 부드러움이다.

 

세상의 이치가 꼬이고,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라. 마음이 탁해지는 듯하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어보라. 유유히 흐르는 그 물이, 청량한 그 소리가 연암만큼의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의외로 삶을 정화시키고 신선한 에너지를 줄지도 모른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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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불안이나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 중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가 중요하니 웬만하면 참고 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이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지 않 아도 어려운 사회생활에서 마음을,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덫이 있으니 바로 뒷담화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뒷담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그 대상이 되기도

       하는 뒷담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또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뒷담화를 하는 이유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정서적 지지 때문이다. 누군가 때문에 힘들거나 억울할 때 뒷담화를 통해 위로와 지지를 받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은 옳고(정상이고) 그 사람은 틀렸다(이상하다)는 식의 논리가 뒷담화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과 친해지기 위해서다. 서먹한 사람과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친해지게 된다. 공통의 관심사란 드라마나 스포츠, 연예인일 수도 있지만 직장이라면 직장 내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통제에 대한 욕구도 뒷담화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뒷담화는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는 말로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과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아주 강하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뒷담화를 통해 정보를 구하는 것이다.

 

 

 

뒷담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수집과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심리학과의 브루어(W. Brewer)와 동료들은 실험을 위해 피험자들을 모집한 후, 교수연구실에서 대기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후 실험실로 인도받은 그들에게 종이 한 장이 주면서 방금 전 대기하던 곳에서 보았던 물건을 기록하라고 말했다. 대부분은 교수연구실에 있을 법한 물건(책과 노트 등)을 적었지만, 이것들은 연구자가 미리 치워놓았다. 반면 연구자들이 가져다 놓았던 농구공이나 벽돌을 적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 아닌 보았다고 ‘생각’한 것을 적은 셈이다.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그대로’ 옮긴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을 옮기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없는 정보도 생기게 되고 있는 정보도 없어지게 되며, 작은 정보가 커지기도 하고 큰 정보는 작아지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잘못된 정보들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집단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주변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하면서 동의를 구하기에 금세 동조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뒷담화에 열성을 올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착한(친사회적)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는 구성원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전파하는 것이다.

 

 

 

뒷담화에서 조금은 자유롭기

 

뒷담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그 폐해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뒷담화의 확산을 직접 막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다수의 압력에 소수가 동조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함을 증명하였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개인(소수)이 자신의 주장을 확신 있게 하고, 지속적으로 하며, 일관되게 하다 보면 다수가 개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부당한 뒷담화를 한다면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자.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주장하면 침묵을 지키던 누군가는 당신의 의견에 찬성하게 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바뀔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바뀌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사실은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뒷담화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힘이 작용할 여지는 더 많다.

 

두 번째는 자신이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을 경우다. 뒷담화란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라서 해명할 기회도 없고, 해명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이럴 경우엔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자.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어쨌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나 아니던가! 연예인들도 한참 잘 나갈 때 악플(악성 댓글)이 달리지, 인기가 식으면 악플도 없는 법이다. 만약 자신에게 잘못이나 부족함이 있다면 고쳐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면 아마 시기와 질투, 혹은 오해 때문일 수 있다. 어느 집단이든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반대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뒷담화만 하면서 어중이떠중이로 살기보다는, 그 대상이 되는 리더로 살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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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통한 자기표현이다. 현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어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고 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바로 비언어적 단서다. 얼굴표정이나

       눈짓, 손짓과 몸의 자세, 시선을 들 수 있다. 이런 비언어적 단서를 잘 읽는 것은 정신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눈치와 비언어적 의사소통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마음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서양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할 때 “불안해”, “우울해”라면서 직접 표현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몸이 안좋아”, “머리가 아파”라면서 마음이 아닌 몸의 증상으로 돌려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언어적 단서도 이런 간접 표현 방식의 하나다. 화가 났을 경우 말로 직접 표현하기보다는 문을 쾅 닫는다던지, 인상을 찌푸린다던지 한다. 구구절절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하여, 자신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1989년 TV전파를 탔던 ○○파이 CF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걸”

 

혹자는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아느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문화에서는 타인의 비언어적 단서를 제대로 읽고 반응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자 덕목이다. 이런 사람은 소위 눈치있는 사람, 그래서 사회생활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심리학자 최상진은 한국의 문화를 눈치문화라고 분석하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눈치가 발달한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눈치는 서양에는 없는 개념이라 영어로도 nunchi라고 표현한다.

 

 

 

대인관계, 불안과 우울

 

‘눈치 있으면 절간에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비언어적 단서를 잘 읽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러나 비언어적 단서를 틀리게 읽는다면 불난 집에 휘발유를 뿌리는 결과가 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한 호감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이와 반대로 비웃음을 호감의 웃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멀리하게 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애쓸 것이다. 당연히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타인의 눈치를 계속 보게 되고, 불안과 우울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눈치가 없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는 이유는 비언어적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오랜 시간 처해 있던 사람들이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올바른 해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눈치를 제대로 보기 위해

 

비언어적 단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할까? 가까운 사이라면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나 허물없이 지내는 직장동료 사이라면 가능하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따지듯이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너 지금 그게 무슨 표정이니!”라고 표독스럽게 물으면 상대방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화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널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데, 지금 나한테 어떤 마음이야? 불편하더라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는데 누가 외면하겠는가?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이런 질문을 하기가 어렵다. 직장 상사나 거래처 사람에게 표정의 의미를 물어볼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럴 경우는 상대방의 비언어적 단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고, 더 많은 증거를 찾아보자. 상대의 웃음이 비웃음이라면 다른 면에서도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과 언사를 더 많이 할 것이고, 호감의 웃음이라면 이와 반대의 증거를 얻을 것이다. 상사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나 있다면 자신에게 계속 짜증을 내겠지만, 자기 집안 일 때문이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짜증을 내거나 조퇴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섣불리 판단하지만 않고 더 많은 정보를 모아도 비교적 정확하게 비언어적 단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혹자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다. 한국에 사는 이상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눈치, 절간에서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는 눈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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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건강과 달리 정신건강은 별로 티가 안 난다. 드러나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자신도, 타인도 금방 알아차린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면 타인도 잘 모를뿐더러, 심지어는 자신이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몸이 아프면 전문가(의사, 약사,

      한의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만, 마음이 아프면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해 혼자서 끙끙대다가 더 마음의 상처만

      키운다. 웰빙시대에 걸맞게 사느라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은 가리지 않고 

      먹는다. 하지만 정작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별로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건강을 챙기는 방법 하나를 소개고자

      한다.

 

  

 

 

 

 

문명과 도시, 그리고 정신건강 문제

 

사회가 도시화되고, 문명화될수록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더욱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시와 문명은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살게 하고,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서 성공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유와 편안함보다는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서 살던 때에는 자연의 순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하지만, 또 편히 쉬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명과 도시는 끊임없이 일하도록 만든다. 전기로 빛을 만들어 어두움을 정복한 것 같으나, 이 빛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고 업무와 공부에 시달린다. 자동차를 만들어 먼 거리를 빠르게 갈 수는 있으나, 그만큼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명과 도시가 주는 폐해로, 도시를 떠나 문명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문명과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명과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몸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챙겨야 할 것이다.

 

 

 

직면해서 맞서라

 

정신건강의 최대의 적은 불안(anxiety)이다. 물론 모든 불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 비유하자면 불안은 세균과 같다. 세균도 일정 수준까지는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등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건강을 해친다. 불안도 그렇다. 적정 수준의 불안은 위험을 피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지만, 지나칠 경우 온갖 정신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삶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불안이 찾아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에는 도망가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 많은 이들은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려고만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대처방식은 불안에 더 취약하게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자주 듣는 말 중의 한 가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 있다면 바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일 것이다. 유태인 정신과 의사이자 자신의 경험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펴낸 빅터 프랭크는 이를 가리켜 역설적 의도(paradoxi cal intention)라고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것과 반대되는 방법을 사용하면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을 피하고 싶다면, 불안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불안의 대표적 치료법인 노출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폐쇄공포증인 사람을 치료한다고 밀폐된 공간에 가두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은 그 분위기가 음산하게 나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방법은 정신건강 전문의와 심리학자들이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노출법이라는 것이다. 노출법은 불안해 하는 그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 그 대상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새공포증이 있다면 안전한 환경에서 상상이나 실제로 새와 마주하게 하고, 발표 불안이 있다면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아니 죽을만큼 불안해서 도망가고 싶을 텐데, 어떻게 그런 불안한 상황에 있으라는 거야?”

 

실제로 우리 생명에 위협이 되는 대상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공포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제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과도하게 불안을 느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피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피하지 말고 계속 직면하다보면 적응하게 되고, 결국 벗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노출법으로 불안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으로 도전했다고들 말한다.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불안이 과도한 것이라면 피하지 말고, 맞서보자. 물론 필요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잊지 말자.

 

글 / 강현식 심리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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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2012년 우리나라 자살률이 6년만에 감소했다는 소식이다. 그래도 여전히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에서 압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지는 못했지만 ‘감소’

       라는 말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감소라는 말에서 희망이 묻어난다. 우리가 좀더 이웃을 바라보고, 배려하고,

       더불어 살면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는 따스한 느낌이 다가온다.

 

 

 

 

 

 

 

 

 

자살률, 6년만에 감소하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2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고귀한 목숨을 버린 사람은 1만 4160명이다. 자살 사망자 수는 2011년보다 1746명(-11%) 줄었고,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8.1명으로 전년보다 3.6명(-11.8%) 낮아졌다.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 모두 줄어든 것은 지난 2006년이후 6년만에 처음이다. 자살 사망률 감소는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특히 10대와 40대를 제외하면 모든 연령층에서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두 자릿수 감소했다.

 

물론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줄었지만 절대적 수치는 여전히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 12.5명에 비하면 28.1명이라는 우리나라 수치는 한참 부끄럽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2위인 일본(20.9명)과도 부끄러운 격차가 너무 크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그리스(3.3명)와는 비교자체가 안된다. 2012년에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줄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끄러운 수치는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10년전인 2002년 자살 사망자는 8612명이었는데 2012년에는 이 숫자가 1만4610명으로 크게 늘었다. 당연히 자살률도 2002년 17.9명에서 지난해에는 28.1명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자살의 사망원인 순위도 8위에서 4위로 올라섰다.

 

 

 

청년에게 꿈을 심어줘라

   

지난해 전체 사망자(26만7000명)의 사망원인은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자살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자살이 4위라는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연령별 사망원인에선 10대, 20대, 30대 모두 자살이 1위이고, 40~50대도 2위라는 사실은 거의 쇼크로 다가온다. 10~30대의 자살은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고시, 현대고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높아진 취업문, 학교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려는 사회 풍토, 치열해진 경쟁, 세대간의 단절된 소통, 동료·부모와의 소통부재 등이 이들을 자살로 내몬다. 청소년의 자살은 외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나 억울함에 대한 반응인 경우도 많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5위, 수출만으론 세계 7위의 경제강국이다. 이런 나라가 청년을 자살로 내모는 건 아이러니하다. ‘청춘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 했다. 그런 청춘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청춘의 특권인 이상과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청춘의 이상과 꿈이 사라지는 책임이 기성세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듬고 청춘의 가슴에 이상과 희망이 움트고 자라도록 보살펴야 하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학교성적이란 잣대만 들이대지 말고 재능과 개성을 함께 보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마주해야 한다.

 

 

 

이젠 그 작은 희망을 키우자

   

미래가 불안하고 좌절스러운 건 청년만이 아니다. 부모도, 직장인도, 은퇴자도, 노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이 시대는 모두가 불안의 공포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자살을 잉태하는 우울증의  바탕엔 불안이 도사린다. 우울을 치료하는 명약은 웃음과 소통이다. 얼마전엔 우울증에 관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의 자살률을 높이는 우울증은 ‘멜랑콜리아형’이라는 것인데 즐거운 감정을 못느끼고, 심하게 식욕이 줄고, 이유없이 체중이 감소하고, 안절부절 못하거나 행동이 느려지고,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찍 깨는 것 등이 대표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사계절의 변동이 큰 나라에서 더 심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런 증상이 의심되면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어르신 당신은 소중합니다’ 경기도 양평군노인복지회관 주관으로 지난달 ‘노인자살 예방’을 위한 가두 캠페인을 벌일 때 치켜든 소중한 생명지키기 슬로건이다. 우주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생명의 고귀함이야 어찌 글로 표현하겠는가. 어르신의 생명도, 청소년의 생명도, 중년층의 생명도 더 없이 고귀하기는 마찬가지다. 6년만에라도 자살자와 자살률이 줄었다는 건 생명의 고귀함이 우리나라에 조금 움을 틔운 것 같아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희망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소중히 가꿀때 새싹처럼 가지를 뻗는 법이다. 나누고, 배려하고, 소통하고, 보살피고…. 자살률 감소라는 작은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으자.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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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의미하는 자존감(self-esteem)은 심리학자들의 주요 연구주제였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주요 연구주제라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존감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자존감, 자존심, 자만심

 

자아존중감이라고도 하는 자존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와 많이 혼동되는 자존심, 자만심과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자존감, 자존심, 자만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성공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느낌이라면 자존감은 타인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느낌이다. 당연히 타인과의 경쟁에서 실패한다면 자존심은 곤두박질치지만, 자존감은 그렇지 않다.

 

또한 자신을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자존감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번져나가지만, 자만심은 자신만 귀하다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상태로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만, 자만심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밖에 없다.

 

 

 

자존감의 영향

 

심리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 심리적 기제인지를 밝혀냈다. 정말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존감은 우울이나 불안, 분노(화)와 공포(두려움) 같은 부정적 마음과 부적 상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 높을수록 이런 부정적 마음은 적게 나타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더 잘나고 예뻐서가 아니었다. 이보다는 자신의 외모와 신체적 특징에 대해 주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존감은 학업 성적이나 또래관계와 정적 상관이 있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성적이 좋고, 또래와의 관계도 좋았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비해서 공감능력도 뛰어났고, 당연히 리더가 될 가능성도 높았다.

 

이 외에도 자존감의 중요한 삶의 부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행복의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자존감이 높기를 바라고, 모든 상담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가 자존감이 높아져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심리학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의 설명을 참고해보자. 그는 자존감을 다음의 공식으로 설명했다. 

 

  

 

 

설명하자면 자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잠재력에 비해 자신의 실제 능력이 얼마나 큰지가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기대했는데, 막상 잘 해내지 못했다면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자존감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서 자신의 잠재력보다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에 맞게 낮추는 것이다.

 

심리상담의 목표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현실감 있게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능력 이상의 기대는 떨쳐버리고, 또 이후 성장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경험으로 갖게 된 지나친 자기비하도 떨쳐버리게 한다. 그래서 현실감 있게 자신을 알고,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다.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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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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