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삼키는 큰 물고기는 작은 갈래의 흐름에서 헤엄치지 않는다. 큰 고니는 높이 날고 더러운 연못에 내려앉지 않는다. 그들의 꿈이 원대하기 때문이다.” 


≪열자≫에 나오는 문구로, 구름을 타고 다녔다는 열자의 꿈이 얼마나 웅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허황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 뜻이 가득한 것, 그게 도가(道家)의 묘미다. 



뭍에서

배를 부릴 수는 없다


높은 것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아래가 깊다. 우뚝 선 나무는 뿌리가 깊고, 우러름을 받는 지식인은 아는 게 깊다. 치솟은 빌딩은 지하가 깊고, 고고한 사상가는 철학이 깊다. 



깊지 않으면 높아지지 못한다. 깊지 않고 높은 것, 그게 바로 사상누각이다. 수시로 흔들리고, 언제든 무너진다. 깊어진다는 건 양심의 씨앗, 앎의 씨앗, 생각의 씨앗을 켜켜이 쌓아가는 수양이다. 촘촘히 쌓아서 깊어지는 것, 그게 진정한 높아짐이다.


장자는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우지 못한다”고 했다.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이 짧으면 깊은 물을 퍼 올릴 수 없다(관중). 벌집에는 고니 알을 담을 수 없고(회남자), 땅을 깊이 파야 시원한 샘물을 얻는다(채근담). 



스스로가 커야 큰 것을 담는다. 메추리는 결코 황새 알을 품지 못한다. 깊어야 높아진다. 건물을 세우고 지하를 파는 건축가는 없다. 채워야 넘친다. 밑이 뚫리면 한 치짜리 대롱에도 물을 채울 수 없다. 


종자기의 물에는 기껏 겨자씨나 지푸라기밖에 띄우지 못한다. 아무리 근사한 배라도 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뭍에서는 결코 배를 띄울 수 없다. 당신 삶에도 물을 채워라. 배를 띄우고, 꿈을 띄우고, 세상도 띄우는 그런 깊이로 물을 채워라. 한 방울씩 채워도 조금씩 깊어진다.



깊이 갈아야

수확이 풍성해진다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 과거를 답습하고 눈앞의 편안함만 좇으면서 적당히 땜질식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연암 박지원은 만년에 병풍에다 이 글을 써넣고 “천하만사가 모두 이 여덟 자로 무너진다”고 했다. 연암의 둘째 아들 종채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담은 ≪과정록≫에 나오는 얘기다. 



유가나 도가의 궁극적 지향점은 ‘평천하’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공자·맹자로 대표되는 유가는 배우고 익혀서 거기에 닿으라 하고, 노자·장자가 선봉인 도가는 비워서 거기에 이르라 한다.


장자의 비움은 크게 담기 위한 수양이다. 장자의 낮춤은 높아지기 위한 지혜다. 고을 하나 다스릴 만한 깊이로 나라를 맡으면 모두가 불행하다. 개인이 불행하고, 국가도 불행하다. 뭍에서 배를 끌면 몇 보 움직이기도 버겁다. 물에서 수레를 끌면 몇 발짝 나아가기도 힘들다. 



누구나 높아지기를 원한다.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탓하는 건 ‘나는 무능하다’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걸 비움으로 포장하는 것 또한 자기기만이다. 


문제는 당신의 진짜 키다. 당신은 한 자짜리 키로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는가, 아니면 수십 자 당신의 키로 세상을 당당히 내려다보는가.



끝보다 뿌리를 봐라


참 농사꾼은 땅에 정성을 쏟는다. 대충 뿌리면 대충 열리고, 깊게 갈면 튼실한 열매로 보답한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깊어야 담고, 깊어야 띄운다. 누구나 재주가 다르다.


한비는 “무릇 좋은 말과 수레가 있더라도 종놈에게 부리게 하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만 왕량(王良)이 부리면 하루에 천 리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웃음거리가 되고 천 리를 가기도 하는 것은 말과 수레가 달라서가 아니다. 그건 재주의 뛰어남과 졸렬함의 차이 때문이다. 내가 깊어야 남도 부린다. 가랑잎 하나 달랑 띄울 깊이, 햇볕 한 번 들면 바로 마르는 깊이로는 담을 수도 없고 부릴 수도 없다. 


급히 이룬 것은 급히 사라진다. 순간에 솟은 것은 순간에 무너진다. 뿌리가 없는 화병 속 꽃은 금세 시든다. 뿌리 얕은 나무는 잔바람에도 쓰러진다. 물이 얕아지면 놀던 고기도 떠나간다.


속히 이루려고 서둘지 마라. 뭍에서 배를 띄우지 마라. 얄팍한 마음으로 남의 생각을 저울질하지 마라. 자신의 공을 뽐내면서 남을 업신여기지 마라. 모두 자신의 깊이를 얕게 하는 어리석음이다. 올려다볼 때는 바닥이 단단한지를 먼저 살펴라.



장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맘껏 높아지라고. 맘껏 꿈을 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깊으냐고. 혹여 뭍에서 배를 띄우느라 끙끙대지는 않느냐고. 지푸라기 몇 개 띄울 물로 세상을 논하고 있지는 않으냐고. 


높아지기만을 바라는 세상이다. 깊이를 보지 않고, 바닥을 무시하고, 기둥을 간과하고 오직 끝단의 높이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너도나도 올려다만 볼뿐 아래를 보지 않는다. 아래가 깊으면 저절로 높아진다는 단순한 이치를 모르는 탓이다. 바다를 꿈꾸는가. 그럼 먼저 물을 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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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승이다. 누군가 당신을 배우고, 당신 길을 걷고자 한다. 당신을 닮고,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 


따르는 줄이 길다면 당신이 아주 근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은 반면교사다. 누군가는 당신이란 거울로 자신의 허물을 비춰본다. 


당신은 참스승인가, 아니면 당신의 허물로 남의 허물을 비추는 거울인가. 당신의 자녀가 당신을 닮아간다면 반길 일인가, 꺼릴 일인가. 이왕이면 참스승으로 살자. 누군가의 길이 되고, 꿈이 되는 그런 삶을 살자. 



큰 스승은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


그윽하면 오래 머물고 고요하면 절로 맑아진다. 높으면 푸르러지고 넓으면 깊어진다. 골짜기의 난초는 두루 향을 풍길 뿐 나를 알아달라고 목을 빼지 않는다. 그윽한 자태로 머물 뿐 나를 봐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군자는 난을 닮았다. 그윽이 덕에 머물고, 고요히 뜻에 머문다. 세상을 향해 요란스레 외치지 않는다. 큰 것은 담담하다. 바다는 고요하고, 태산은 늘 그 자리다. 


큰 부모는 자식에게 윽박질하지 않는다. 회초리를 들지 않고 스스로 모범이 된다. 모범으로 가르친 자식은 세상을 살면서 어긋남이 적다. 무언지교(無言之敎), 노자는 큰 가르침은 말이 없다고 했다.



빈 깡통이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물이 얕으면 자갈조차 소리를 내며 떠내려간다. 속이 비어서 시끄러운 줄 모르고, 아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짐이 가벼워서 덜컹대는 줄 모르고 많이 실은 때문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니 세상이 요지경이다. 행동으로 깨우치는 자가 진정 큰 스승이다. 


몸소 실천하지 않는 가르침은 헛된 교훈일 뿐이다. 작은 가르침은 빈말을 세상에 흔들어대고, 큰 가르침은 행함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인다. 


작은 지식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큰 지식은 자신을 스스로를 닦으려 한다. 세상 어디서나 작은 게 시끄러운 이치다. 



군자는

타산지석으로 옥을 간다


다른 산의 거친 돌로 자기의 옥을 간다(他山之石 可以攻玉). 《시경》소아편에 나오는 시의 한 구절이다. 


소인은 군자에게도 배우지 못한다. 군자는 소인에서도 배운다. 세상 만물 모두가 군자의 스승이다. 스승이 많으니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 


타산지석은 소인이고, 옥은 군자다. 군자는 타산의 거친 돌을 숫돌로 삼아 자기의 옥을 간다. 타인의 하찮은 언행이나 허물을 자기를 다스리는 거울로 삼는다. 


덕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인품을 되돌아보고, 앎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학문을 되돌아본다. 그러니 사방이 모두 스승이고, 세상이 큰 배움터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했다.      



소인은 남을 탓하고, 군자는 자기를 나무란다. 주자는 “안이 차면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이 비면 밖으로 객기를 부린다”고 했다. 


안이 차면 세상 보는 눈이 여유롭고, 안이 비면 세상 보는 눈이 날카롭다. 수시로 치르고, 수시로 찔린다. 소인이 목소리가 큰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소인은 용기와 만용의 구별이 서투르다. 만용을 용기로 착각한다. 진짜 가짜의 구별 또한 어설프다. 가짜를 진짜로 믿고, 사이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소인은 언변에 혹하고, 포장에 혹한다. 한데 사이비는 언변과 포장, 이 둘을 즐겨 쓴다.



당신은

스승이면서 제자다


세상의 인정은 생각보다 가볍다. 굶주리면 아부하고 배부르면 떠난다. 이익 앞에서는 너절한 태도로 굽신거리고, 손해다 싶으면 의로움까지 냉정하게 팽개친다. 


물론 깊은 인정도 있다. 후한 시대 설포(薛包)는 상당한 재산가였다. 어느 날 조카가 재산을 나눠달라고 하자 늙은 노비는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나와 일한 지가 오래되어 네가 부리기 어려울 것이다.” 


황폐한 땅과 기울어진 농막은 자신이 갖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내가 젊었을 때 관리한 것이어서 정이 깊다.” 



남루한 그릇과 물건은 자신이 취하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평소에 쓰던 것이어서 내 몸과 입에 편하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흰색끼리 모이면 검은색을 흉보고, 검은색끼리 모이면 흰색을 비웃는다. 그게 세상의 인정이다. 


누가 당신을 참스승으로 부른다 해서 당신이 참스승이 되는 건 아니다. 악은 악을 선으로 부른다. 


사특한 자는 당신에게 붙어 사욕을 취하려고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중요한 건 누가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하느냐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며 누군가의 제자다. 당신은 누구의 스승인가. 반면교사의 스승인가, 정면교사의 스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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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애쓰지 않는다. 거슬러 오르려고 무리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 강에 닿고 바다에 이른다. 물은 자연의 이치를 안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고, 사물은 각자의 법칙이 있음을 안다. 


세상은 틀림이 아닌 다름의 모둠이다. 다르다고 따돌리지 마라. 어울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라. 함께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봐라. 나의 마음으로 너를 헤아려라. 



세상의 다른 결을

인정해라


목수는 나무의 결을 안다. 결을 거스르지 않아야 무늬가 산다는 걸 안다. 대패는 결을 따라 움직인다. 결은 사물의 이치이자 본래의 모습이다. 



타고난 고유성, 너와 다른 나만의 색깔이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다. 결은 일종의 DNA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소 잡는 백정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소 잡는 솜씨가 경지에 이른 백정에게 문혜왕이 물었다. 


“참으로 훌륭하다. 재주가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느냐.” 


백정이 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그 도가 재주보다 앞섭니다. (중략) 소의 본래 몸을 따라 칼을 쓰므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을 건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를 건드리겠습니까.”



그는 또 능숙한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건 살을 자르기 때문이고,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건 뼈를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칼은 19년간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숫돌에 새로 간 듯 날이 서 있다고 했다. 


역시 장자는 이야기꾼이다. 맛깔난 비유로 말하고자 하는 뜻을 짚어준다. 


도(道)는 결국 결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을 인간 중심이라고 우길 때, 인간을 내 중심이라고 고집할 때 결이 어긋난다. 장자는 인간의 결만 고집하지 말고 세상의 결을 보라 한다. 내 결만 곱다 하지 말고, 너의 결도 살펴보라 한다.



최고 화술은

언변이 아닌

독심(讀心)이다


한비는 유세(遊說)가 어려운 건 앎이 얕기 때문도, 논리가 부실한 때문도, 용기가 부족한 때문도 아니라 했다. 


진짜 어려운 건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상대가 왕이라도 된다면 유세는 목숨을 건 도박이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을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한비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일깨운다.



남의 의중을 헤아리면 절반은 성공이다. 이미 절반쯤 설득하고, 절반쯤 성사시킨 거다. 의중은 마음의 결이다. 헤아림은 그 결을 거스르지 않는 거다.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 그게 정상이다. 결이 모두 다른데 어찌 한마음이겠는가. 그릇이 큰 자는 세상의 결들을 두루 보고, 그릇이 작은 자는 자신의 결 하나로 만물을 재단한다. 


성숙은 다름의 인정이다. 소는 다리가 네 개고, 닭은 두 개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지랑이는 위로 피어난다.



속도에

너무 매이지 마라


인(仁)을 묻는 궁중의 질문에 공자가 답했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바라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성경도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을 대하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으로 남을 헤아리는 혈구지도(絜矩之道) 역시 ≪대학≫이 강조하는 덕목이다. 우리는 이 ‘처세의 황금률’을 거꾸로 적용한다. 


내가 바르다고, 그러니 내게 맞추라고 한다. 약을 독으로 쓰고, 황금을 쇠붙이로 쓰는 격이다. 지켜야 할 때 공격하고, 떠나야 할 때 머무는 식이다.     



먼 길은 쉬며 걸어라.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뛰면 그림자를 떨쳐낼 거로 생각했다. 


한데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뜀박질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숨이 차도록 뛰다 죽었다. ≪장자≫ 어부 편에 나오는 얘기다. 


속도에 매달린 그는 몰랐다. 그늘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절로 없어진다는 것을, 한숨 돌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을. 


삶에는 속도가 필요하다. 한데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빠름도 속도지만 느림도 속도라는 사실을. 크면 만 길도 내어준다. 작으면 한 치도 다툰다. 그 한 치가 작은 자의 전부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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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정상은 바로 그 너머에 있다.


숨은 8부 능선에서 가장 가쁘다. 닿을 듯 닿지 않고, 되돌리기엔 흘린 땀이 아까운 바로 그 지점이다. 고지를 밟는 자와 포기하는 자는 여기서 갈린다. 아홉 길 산을 만드는 일도 한 삼태기 흙에서 어긋난다. 고지는 고비 몇 보 앞에 있다. 숨이 차다는 건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조금만 더 버텨봐라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고자 할 때는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근골을 피곤케 하고, 그의 창자를 굶주리게 한다”고 했다. 심신을 지치게 하고 뜻이 어긋나게 함으로써 의지를 단련시키고 능력을 키우려는 하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견디고 피는 꽃이 아름답다. 매화는 추위를 견디고, 난초는 적막함을 견디고, 국화는 뙤약볕을 견디고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사철 비바람을 견디고 꿋꿋이 선다. 인간이 4군자를 좋아하는 건 그들이 견뎌낸 ‘꿋꿋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게 쉽지 않음을 아는 연유다.


무릇 일에는 고비가 있다. 큰일일수록 고비는 더 험하다. 난관도 천만 갈래다. 섣달 매화꽃 향기는 뼈를 애는 추위를 견딘 선물이다. 견딘 만큼 더 멀리 향을 뿜어낸다. 그건 “나는 추위를 견뎌냈다”는 ‘자기선언’이다.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고 했다. 세상사 뒤돌아봐야 아는 게 참으로 많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반전한다(物極則反). 어둠은 빛으로, 추위는 더위로 세상사는 끝없이 유전한다. 삶은 매 순간 달라지고, 무언가로 변해간다. 고비를 넘어야 꿈에 닿고, 허물을 벗어야 새로운 세상을 본다. 


혹여 지금 당신은 고빗길에 서 있는가. 지치고 두렵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그럼 한 번만 더 용기를 내봐라. 조금만 더 견뎌봐라. 당신은 용기로 시작했다. 그러니 끝도 용기로 맺어라. 추위를 견디고 향기를 뿜어내는 섣달 매화를 그려봐라.



두려움에 지지 마라


두려움은 악마들이 즐겨 쓰는 무기다. 사람에게 두려움만 심어놓으면 싸움은 ‘백전백승’이다. 물론 악마가 전승을 챙겨간다. 두려움은 암세포만큼이나 증식이 빠르다. 스스로 퍼져가고, 스스로 강해진다. 두려움이 벽을 치면 인간은 한 발도 못 나간다. 


그러니 높아지기 전에 미리 허물어야 한다. 그게 용기다. 그게 희망이다. 공자는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를 쌓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고, 평탄한 땅에 한 삼태기를 붓고 나아가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만사 결국은 ‘나’다. 내가 나아가고, 내가 물러난다.



고빗길에선 잠시 멈춰도 된다. 숨을 골라도 된다. 하지만 너무 뒤를 돌아보지는 마라. 뒤돌아볼수록 걸음걸이가 꼬인다. 인생은 앞으로 가는 여정이다. 숱한 고비를 넘는 산행이다. 정상에 오른 자와 중턱에서 내려온 자가 산에서 본 세상 풍경은 너무 다르다. 


산에 정상은 무수하다. 모든 꼭대기에 오를 필요도, 오를 이유도 없다. 다만 당신이 간절히 이르고 싶은 어딘가가 있다면 그땐 힘을 내봐라. 힘껏 내디디고, 두려움에 맞서라. 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잊지 마라. 고비 몇 보 앞에 닿고자 하는 ‘그곳’이 있다는 사실을. 



강을 건너야 바다에 이른다


“어부들은 바다의 위험과 폭풍우의 괴력을 잘 안다. 그런데도 그게 바다로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된 적은 없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인간이 위대한 건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용기라고 강변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불굴의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바다에는 이 세상처럼 친구도 적도 있지만, 인간은 결코 쉽게 패배하는 존재가 아니다”고 되뇐다. 그건 자신에게 용기를 심으려는 주문이다.



한 걸음을 내디뎌도 당신 걸음이고, 한 걸음을 물러서도 당신 걸음이다. 당신 걸음은 오롯이 당신 것이다. 고비에서 앞으로 나아갈지, 뒤로 물러설지의 선택 역시 온전히 당신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삶에는 무수한 고비가 있고, 고비마다 물러서면 당신은 결코 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개울을 건너야 강에 이르고, 강을 건너야 바다에 닿는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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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가 모여 길이 된다. 길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니 삶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삶이 희망인 건 걸어갈 길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삶에 용기가 필요한 건  그 길을 내가 선택해야 하는 까닭이다. 


삶에 정해진 길은 없다. 당신의 길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 걷는 길이다. 마음의 찌꺼기를 비우고 가볍게 걷자. 희망을 품고 담대하게 걷자. 다투지 말고 웃으며 걷자. 이전의 발걸음이 어긋났다면 이후의 발걸음은 바로 하자. 행복한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초심(初心)은 처음의 마음이다. 길을 택할 때의 각오, 첫걸음의 설렘이다. 누구나 길을 가면서 하나둘 초심을 잃어간다. 각오가 물러지고, 설렘은 무뎌진다. 순수에 탁함이 끼고, 무심에 탐심이 얹힌다. 처음에는 털끝만 한 갈림이 끝에는 천 리나 어긋난다. 선택도, 발걸음도 온전히 당신 몫이다. 


자유의 이면은 불확실이다. 선택의 끝이 불확실하고, 끝에 이르는 시간이 불확실하고, 끝에 달할지도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이 두려운 자는 자유를 포기한다. 자신의 길을 타인에게 의탁하고,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긴다. 주인의 삶을 포기하고 하인의 삶을 택한다.    



인생의 길 곳곳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그 두려움은 길을 가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 길이 확실하냐고, 나누면 당신 몫이 적어지지 않냐고, 평범한 걸음이 편하지 않냐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은 그때마다 주춤댄다. 세상 눈치 보느라 주춤하고, 당신 길에 의구심이 생겨 주춤한다. 그게 길이다


돌부리에 채고 큰 산에 막히는 게 길이다. 때로는 훈수꾼이 수를 더 잘 본다. 생각을 비워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남의 길을 수시로 기웃대면 내 길이 흐려진다. 남의 말에 촉을 세우면 내 말을 잃는다. 생각이 지나치면 지혜를 잃는다.




물에 떠다니는 가랑잎을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선택권이 없으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루소는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는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주인은 선택권을 행사하고, 하인은 주인에게 선택권을 위임한다. 


“귀와 눈은 소리와 색을 즐기느라 힘을 다 쓰는데, 마음마저 겉치장에 힘을 다 쓴다면 몸 안에 주인이 없게 된다.” 한비는 몸 안에 주인이 없으면 재앙이나 복이 구름이나 산처럼 몰려와도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내 안에 내가 없으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길흉화복조차 감지하지 못한다.



아닌 길은 물러서고, 가야 하는 길은 더욱 힘써라. 그게 길을 가는 자의 지혜다. 지혜의 실천에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섬을 생각하면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은 면할 것이다.(채근담)” 나아가고 멈추고 물러서는 데는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갑시다.’ 이 말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그대로다. 길이 아니다 싶으면 앞에서든 뒤에서든 다시 가야 한다. 남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제라도 당신 길을 가고, 너무 채워 영혼이 무겁다면 이제라도 비워야 한다. 



  

행복한 길을 걷는 자는 물질로 영혼을 덮지 않는다. 한 소년이 어느 날 길에서 돈을 주웠다. 소년은 횡재다 싶어 그날 이후 땅만 보고 다녔다. 그는 평생 길에서 큰돈을 모았다. 한데 잃은 게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했고, 무지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을 몰랐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보지 못했다. 《채근담》에 나오는 얘기다. “사람이 어질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의 뜻을 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하게 된다.(소학)” 인간은 재물의 주인이다. 한데 자칫 잘못 부리면 재물이 주인 행세를 한다. 재물이 앞서고 주인이 따르는 길은 인간의 길도, 자연의 길도 아니다. 잘못된 길은 걸을수록 화가 커진다.



맹자는 “보통 사람은 행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고, 익숙해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모르고, 평생을 따라가면서도 그 뜻을 모른다”고 했다. 길이 헷갈리면 좀 걸어보는 것도 요령이다. 인간은 걸으면서 배운다. 자식 기르는 것 다 배우고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고 했다. 


걸으면서 몇 가지는 짚어봐야 한다. 바른길인가, 내 길인가, 행복한 길인가는 필수 점검 항목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바른길을 걷고, 내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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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임에 몇 해 전 가입했었습니다.

 

그중에는 유명한 성우도 있었고 탤런트, 국어선생님 연극배우도 계셨지요. 모두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 보이지도 않을 손짓, 몸짓 연기까지 섞어가며 재미있게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 까지! 다음 주에 계속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고맙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봉사자는 유명 성우도 탤런트도 배우도 아닌 칠순의 할머님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도착할 시간이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서 있기까지 했습니다.

언제나 두툼한 돋보기를 걸치고 책을 펼쳐들어 '안경 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

 

“ 어디 보자…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음… 그래 여기다!”드디어 할머니의 책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도착한곳은 추억의 나라였어요. 그곳에는 치르치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어요. 앗! 할아버지 할머니닷! 미치르가 외치는 소리에 졸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눈을 떳습니다.”

 

“하,하,하… 와, 재밌다. 할머니,최고!”

 

 

돋보기를 써도 글씨가 잘 안보여 더듬거릴 텐데… 잇새로 바람이 새서 발음도 정확하지 않을 텐데… 노인 냄새도 날 텐데… 다른 봉사자들은 안경 할머니의 인기비결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왜들 안경할머니를 좋아하지?”

“그러게…”

 

그런데, 사람들의 대답은 참 간단했습니다.

 

“안경 할머니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아, 예… 그거야 할머니는 늘 손을 꼭 잡고 책을 읽어 주시거든요.”

“아… 예… 그렇군요.”

 

시각 장애인들에게 책 속에든 몇 줄의 정보, 몇 줄의 지식보다 더 값진 것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임혜란/경기도 구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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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누이 댁에 가며 이틀동안 제게 휴가를 줄테니, 저 하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이틀을 보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하며 친구랑 영화를 보러갈까, 바람을 쐬러
  갈까 하다가 친정에 혼자 계실 엄마를 뵈러 가기로 했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멸치를 볶고 장조림도
  만들고 몇 가지 마른반찬을 챙겨 친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막내딸을 보신 우리 엄마, 과연 어떤 표정이실까 생각하니 세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친정집은 텅 비었더군요. 친 자매처럼 지내시는 뒷집 할머니 말씀이 시장에 가셨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질 않습니다.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압력솥에 밥을 안쳐놓고 돼지고기 넉넉히 넣어 김치찌개도 맛나게 끓여 놓았지요. 집에 들어오시자 마자 화로에 숯불을 담아 읍내서 사온 꽃등심도 구워드릴 요량이었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새 무료함을 때울 겸 청소를 시작했지요. 우선 방 청소를 끝낸 다음 철 수세미에 비눗물을 풀어 켜켜이 앉은 싱크대의 먼지를 닦아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때까지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대체 뭘 하러 가셨기에 늦도록 오시지 않나, 걱정스런 마음에 막마중을나가려는참, 불이 켜진 걸 보고 깜짝 놀라신 우리 엄마 눈이 동그래져 들어서십니다. 반가운 마음에 철딱서니 없이 와락 안기는데 우리 엄마, 들고 계시던 함지를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우시더군요.


 

그걸 놓치지 않고 뭐가 들었나 하여 보니 팔다 남은 나물이 들어 있지 않겠어요?  세상에, 그 시간까지 노인네가 시장에 계셨다는 겁니다. 나물 몇 가지 팔아봤자 얼마나 한다고 청승을 떠는 엄마를 보니 속도 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은 뭐 하시고 남세스럽게 왜 그러시냐고 엄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막내딸년 핀잔에 속이 상하실 만도 하시련만 엄마는 늙은 몸 그저 놀려 뭐하냐고 하십니다. 힘든 일도 아니고 쉬엄쉬엄 재미삼아 하는 일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러나 어떤 자식인들 칠십 넘은 노인네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 장사 하시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까요.


화도 내었다가, 제발 하지 마시라고 애원하는 딸자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엄마, 고기를 구워 제 접시에 날라 주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 먹이느라 언제 입이 호사 한 번 해봤냐고 하시며…. 다른 엄마들은 집에서 편히 쉬는 겨울철에도 엄마는 냉이와 시래기, 칡뿌리나 약초 등 돈이 될만한 것들을 함지박으로 가득 담아 읍내장으로 향하곤 하셨지요.

 

 

그리고 시장이 파한 후에도 차비 몇 푼을 아끼신다고 시오리도 넘는 길을 걸어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신 엄마가 이제 편히 쉬셨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시장에 나물을 팔러 다니시니 자식으로서 여간 속상한 게 아닙니다. 그날 밤, 엄마와 굳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지요. 다시는 읍내로 나물 팔러 다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탄 버스가 멀어지자마자 당신은 호미를 챙겨 들고 양지쪽으로 냉이를 캐러 가실겁니다. 그리곤 안다니시는 척 시치미를 떼시겠지요. 그게 바로 우리 엄마의 사랑 법입니다. 엄마께서 주신 냉이를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두고 조금씩 아껴 먹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냉잇국 한 사발에 마음은 고향 봄 언덕에 앉은 듯 따뜻해지고 기운이 펄펄나니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 엄마,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자식들 곁에 언제나 봄볕처럼 머물러 주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


이효민/ 인천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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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이 된 내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친구였던 피터 팬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예쁜 꿈을 간직한 아이들을 늙지 않는 나라로 데리고 가는 동화 속 친구의 그 순수함을
  지니고 싶다.


얼마 전, 나는 그토록 그리던 피터 팬을 만나게 되었다. 내 아이가 바로 피터팬이었다. 아이를 보며 참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아이에게 무한정 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장 아이로 인해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

 

며칠 전의 일이었다. 출근하기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이의 내복이 덜 말라서 드라이기로 아이의 내복을 말리고 있었다. 드라이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으로 인해 내복 바지가 꼭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며 아이는 즐거워하며 웃어댔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즐겁게 한다.


"  찬아! 옛날에 할머니들은 아이들 옷을 아랫목 따뜻한 곳에 두었다가 밖에 나갈 때 따뜻하게 입혀 주셨대, 할머니들 진짜 착하시지?  " 했더니 갑작스레 아이가 나의 목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우리 엄마도 정말 착해!  "  뜻밖의 말과 함께 한동안 꼭 껴안아 주는 아이 때문에 너무 감동하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고맙다. 우리 찬이도 너무 너무 착하고 엄마가 아주 많이 사랑해! 자, 옷입자!  "

 

 아이는 내복을 입는 내내 따뜻해서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한다. 이런 작은 일로도 감동 받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아이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본다.


모든 아이들의 친구인 피터 팬처럼 나도 내 아이의 피터 팬이 되고 싶다. 아이와 함께 나이가 들지 않는 피터 팬의 나라에서 영원히 순수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김선란/ 서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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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야, 귤 한 개 더 넣었다.”

이렇게 다정한 말을 해주시는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당연히 친정 엄마 아니면 시어머니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코 아닙니다. 그럼 누구? 지금부터 이분에 대해 말씀 드리렵니다. 이분은 바로 ○○은행 앞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고요. 그 다정한 말은 바로 그분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저랑은 인연이 꽤 되었지요.

사람들이 수시로 오고가는 은행 앞 고정된 자리에서 항상 계시기 때문에 그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저로서는 참새와 방앗간이 된 셈이죠. 저를 멀리서 보시곤 소리치는 한 말씀.

“오늘 포도 들어왔어! 아주 싱싱해! 한 바구니 가져가, 옛다! 오천 원만 받을게.”
하시며 내미는 거친손 끝에 걸쳐진 검은 봉지는 어느새 제 손에 들려 있지요.


“오늘 포도 들어왔어! 아주 싱싱해! 한 바구니 가져가, 옛다! 오천 원만 받을게.” 하시며 내미는 거친손 끝에 걸쳐진 검은 봉지는 어느새 제 손에 들려 있지요.

할머니 동작 정말 빠르죠? ‘사겠다. 안 사겠다.’말할 기회도 없이 그냥 씨익 웃으며 돈을 드리면 되는 거죠. 제가 볼 때 할머니 장사 수단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꼭 하시는 말씀 “에미야! 작은 것 한 송이 더 넣었다.” 하시며 거친 손으로 주름 패인 이마를 쓸어 올리시며 저를 보는 표정은 두 얼굴의 모습이죠.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의 그 어색한 미소 있잖아요.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계신 할머니의 언제나 변함없는 뽀글파마와 그 웃을 듯 말 듯한 그 미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똑같은 모습에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곤 합니다.

어쩌다 한번인가 할머니께서 안 보이길래 ‘두리번 두리번’ 하자  “에미야! 나 여기 있다” 하시며 앉아계신 곳은 조금 떨어져 있는 노점친구 할머니의 채소 가게였습니다. 숨차게 뛰어올 거리는 아니었지만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오시어 하시는 말씀

“어제 딸기 사 갔잖아. 벌써 다 먹었어?”

저는 “아니요. 할머니가 안 보이시길래요.”

할머니는 “내일와. 내일 딸기 또 들어 올 거야. 오늘 것은 어제 팔던 거라서 덜 싱싱해.” 이 상황에서 저는 당연히 할 말이 없겠죠?

“할머니 많이 파시고요.” 하고 가면 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가슴 한편이 찡한 건 왜 인지.

할머니께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몇몇 과일을 팔고 계셨지만 또 한 가지의 과일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항상 느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먹을 수 없는 그런 과일이 더 있었지요. 그 과일은 바로 ‘정’ 이라는 과일이었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마음속에 담아두고 파는 과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싸 주신 검정 봉지는 언제나 다른 봉지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나 봅니다.

어느 날인가 급해서 막 뛰어가는 저를 보셨는지 제 뒤통수에 대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죠.

“은행 볼일 다보고 들려. 알았지?” 하고요. 그래서 제 발걸음을 또 망설여지게 하셨지요.

 “과일 집에 있는데요?” 하면
할머니께서는 “포도 다 먹었잖아, 오늘은 단감이 아주 맛나.”


하시며 저를 또 유혹하십니다. 정말 ‘귀여운 악마’ 같은 할머니의 유혹에 넘어가 오늘도 제 손에는 묵직한 단감봉지가 저희 집까지 따라 옵니다. 딸기, 수박, 포도, 사과, 감 그리고 귤…. 이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어 언제나 저는 행복하답니다.

하루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만났던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오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뽀글 파마머리의 할머니 모습…. 아마 꿈속에서도 저를 또 유혹하지 않을까요?

“에미야~” 하고 말입니다.

 

지영숙/ 강원도 원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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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우리 외식한 지 반 년은 지난 거 알아요?”

 일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리모콘을 붙잡고 거실 바닥에 앉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빨랫감
 을 가지고 거실을 오가던 아내가 반쯤 누
운 내 다리를 슬쩍 걷어차며(?) 약간 짜증 투로 한마디 툭 던졌
 다.
얼떨결에 "짜장면이나 먹자" 고 하자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1인분에 몇 만 원짜리는 못 먹어도 와인 같은 거 주는데 한번 가보자고요.”

 마누라가 참았던 말을 결국 목구멍 너머로 내놓았다. 아내의 표정을 대충 이해한 내가 마지못해(?) 동의하고 점심 때 아이들과 함께 데리고 꽤나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갔다. ' 이 정도면 돈이 좀 나오겠는걸.' 하는 여러가지 계산이 연산되자 갑자기 '나는 느글거리는 음식 싫어하잖아.' 라는 멘트가 떠올랐다.


“여보. 나는 감자탕이나 순두부찌개 같은 거 좋아하잖아.”
“??#%$^&..........”

예상은 했지만 내 멘트를 받은 아내의 표정은 '이 인간이 왜 이래?' 하는 그런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 아차' 싶어 얼른 수정발언을 날렸다.

“아니 뭐, 그렇다는 거지. 여기는 레스토랑이니까…. 당신하고 애들 먹고 싶은 거 시켜 봐.”

잠시 후 종업원이 들어와 뭘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저희 레스토랑은 티본 스테리크, 립아이 스테이크, 뉴욕 스테이크, 오스탑 스테이크…”

직원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이상한 말’로 메뉴를 소개했고 아내가 무엇인가 주문한 뒤 와인까지 한 병을 시켰다. 직원이 총총총 사라진 뒤 아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묵직하고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약간의 공포(?)가 느껴졌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웬 뜬금없는 '무슨 날???’성탄절은 아니고 발렌타인? 화이트데이? 마누라 생일?… 뭐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 어어어???? 혹시……'

“우리가 결혼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7, 8, 9년도 아니고 10년째라고요. 10주년!


작은 소리로, 굳은 표정으로 10주년을 강조하던 마누라 입에서 ‘그것도 모르냐? 이 짜식아!’ 라는 말이 안 나온 게 이상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정말
서운해서 말도 하기 힘든 표정을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외식은 반 년만인데 다른 날도 아닌, 결혼 기념일. 그것도 10주년이었는데, 시집 와서 애 둘 낳아 잘 기르고 시부모한테 효도하며 살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인간은 날짜 기억은 물론 기껏 순두부찌개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여보……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미안… 미안… 너무나 미안…….”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백 배 사죄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던가. 눈물까지 글썽이는 아내.


“이거… 당신 먹어!!…”

 

 

 
이내 음식으로 나온 고기를 잘라 아내의 입에 넣어주며 내가 진심어린 표정으로 사과하자 아내는 어두운 표정을 약간 거두었다. 그러나 아내는 먹
성 좋은 아이들을 떼어주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날 우리 부부는 몇 년 만에 처음 맛보는 와인을 마시며 결혼 10주년을 자축했다.

에구, 회사 다니며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는데 이젠 살림하고 애들 키우면서 맞벌이 직장까지 다니는 마누라한테 더 잘 해줘야겠다.


 

남민배 제주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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