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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지친 퇴근길에 만난 행복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 어느 날 퇴근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겁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저의 시선은 신호대기 중에 멈추어 있던 한대의 버스로 향했습니다. 이 버스는 다름 아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타고 있는 스쿨버스였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모두가 중증도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 가득한 미소 " 였습니다. 세상 그어떤 걱정, 근심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미소에 신호대기의 그 짧은 시간동안 저 역시 가슴 시원한 행복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쿨버스는 지나갔고 그 자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무능한 .. 더보기
절친한 친구한테 사기를 당한 후, 찾아온 행복 절친한 친구한테 사기를 당해 재산의 절반을 날린 남편이 강물에 빠져 죽겠다며 난리치는 것을 붙잡고 다시 시작해보자며 울부짖었던게 엊그제 같다. 그러고 보니 벌써 7년이 흘렀다. 있는 돈 없는 돈 닥닥 긁어모으고, 시댁에서 도움 좀 받아 시내 변두리에서 방 한 칸이 딸린 통닭집을 빌려 장사를 한지도 7년이 된 셈이다. 처음 시작할 때 통닭 튀김집에 딸린 방은 정말 초라했다. 미닫이문 하나가 달린 방은 둘이 누우면 돌아누울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그 때문에 아이들 둘은 친정집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아이들 생각하면 친정 엄마와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겨울철 삭풍에는 연탄을 때는 방에서 남편과 부둥켜안고 자면서 ‘내일은 좋아지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를 그리며 잠을 청했다. 늘 돼지.. 더보기
남편의 도시락을 쌀 때 떠오르는 나의 반찬 투정 아침마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느라 허덕거리면서 새삼 친정 어머니의 노고가 생각납니다. 단 한 사람 분의 도시락을 싸면서도 반찬 걱정을 하는 지금의 저와 비교해보면 어머니의 고생은 참으로 컷을 것 입니다. 전기코드만 꽂아놓으면 밥이 되는 편리함도 없이 무쇠솥에 밥을 해야 했던 그 시절, 우리 잡에는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자식들이 6명이나 됐습니다. 위로 언니를 위시하여 어린 막내까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골고루 분포된 6남매의 도시락은 어머니께 분명 힘겨운 일이셨습니다. 없는 살림이어서 반찬걱정도 많으셨죠. 그렇다보니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그럭저럭 반찬을 싸갈 수 있었지만,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김치나 콩나물 무침 등을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요일과 금요일의 점심시간이 참 싫었습니다. 친.. 더보기
"두 명이 네 명이 되어서 행복이 배가 되었어요" 결혼 한 지 약 10년 만에 현수와 연진이를 낳은 김희선, 송창훈 부부에게 아이들은 누구 보다 각별하다. 한 때 부부끼리 행복하게 살까라는 고민도 했다는 부부는 아이를 낳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의 시험관 아기로 낳은 현수와 연진이 1998년에 결혼한 김희선, 송창훈 부부는 시험관 아기를 통해 작년 이란성 쌍둥이인 현수와 연진이를 낳았다. 결혼 초반에는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아 임신을 늦췄던 부부는 2006년부터 임신 계획을 세웠지만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불임으로조바심을 내지 않았지만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4년 전 도보여행을 다녀온 후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많이 걷고, 힘들었던 여.. 더보기
그녀의 훔치고 싶은 행복 그녀가 사는 곳은 작년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다. 집 앞으로는 전국 제일의 저 수지인 예당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로 옆에는 대흥 향교. 그리고 뒤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마 지막 본산인 임존성이 위치한 봉수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 그녀의 공간에서 행복을 조금 담아 가지고 온다. 그녀를 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4월,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어머님이 중풍으로 거동이 어려워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조사를 하면서였다. 쇼파에 누워 거동을 거의 못하시던 그녀의 어머니를 조사하면서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몇 개월 후 그녀가 서울 신문사에 근무했고, 글도 지으시는 작가분이며, 온양민속박물관장을 지냈다는 것을 이웃분들을 통해 자연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