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시대가 도래하다

 

마음의 치유를 의미하는 힐링. 대한민국은 힐링 열풍이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그리고 누구를 만나도 힐링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힐링 열풍이 가장 강하게 불어 닥친 곳은 출판업계다. 인터넷에서 ‘힐링’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국내 서적만 100여권이 검색된다. 서점 진열대의 에세이 코너를 살펴봐도 온통 힐링 관련 책들이다. 단지 양만 많은 것이 아니다. 종합베스트셀러 목록에 힐링을 다룬 책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인기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2011년 베스트셀러 1위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이었다. 2위와 격차가 매우 컸다고 한다. 2012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 역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소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교보문고를 비롯해 다른 서점의 집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힐링 열풍이 출판업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계에서도 힐링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SBS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를 들 수 있다. 기존의 토크쇼가 연예인들이 가벼운 주제로 입담을 겨루는 식이었다면, 이런 프로그램은 유명인을 초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는 포맷으로 진행된다. 진행자도 게스트도, 시청자도 모두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강호동씨의 잠정 은퇴로 폐지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MBC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도 마찬가지다.

 

또한 젊은 세대를 겨냥해 명사들이 주축이 되어 아픔을 위로하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강연과 토크쇼도 많다. 몇몇 여행사에서는 힐링을 주제로 한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관광 가이드가 아닌 심리치료사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힐링을 내세우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2017년까지 힐링랜드를, 강원도 평창군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까지 힐링센터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 외에도 힐링은 음악이나 콘서트와 만나고 있으며, 스포츠는 물론 패션과 음식에도 심지어 주택시장에서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왜 힐링일까?

 

힐링이 몸의 치유가 아니라 마음의 치유를 의미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이 때는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본격 이행하게 된 시점이다. 공장과 도시, 상품의 산업 중심에서 지식과 창의성 중심의 정보로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를 썼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다. 그 결과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다. 마치 지금의 힐링처럼 출판계와 방송계를 장악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위기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도전하려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다. 치유가 필요한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 바로 힐링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불교쪽 명상서적이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았다. 서구의 경우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는데 200~300년이 걸렸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 역시 서구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던 덕분에 100년 이상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어떤 이들은 일제강점기를 산업화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일본의 대륙침략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온전한 산업화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한국의 산업화를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0년대로 잡는다. 이렇게 따지면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이 모든 것을 겪었다. 지금 20~40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조부모는 농경 사회, 부모는 산업화 사회, 그리고 자신들은 정보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꼴이다. 당연히 세대차는 클 수밖에 없고 세대 간 갈등 역시 골이 깊다. 이런 경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거다. 연령별로지지 정당이 이렇게 갈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 말이다. 힐링 열풍의 중심이 되는 세대가 20~40대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은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땅에서 불과 30 여년 만에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는 ‘한강의 기적’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리고 2012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아픔이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신문기사를 보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범죄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 직장과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 교권의 추락, 학생들의 자살, 기업의 일방적인 근로자 해고, 정치권의 해묵은 갈등까지. 대한민국은 정말 힐링이 필요하다.

 

 

 

지금의 힐링, 과연 진정한 답일 수 있을까

 

그러나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지금의 힐링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반감이 들 정도다. 이 느낌은 힐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힐링의 방식에 대한 것이다. 지금의 힐링을 다른 말로 하자면 ‘자기치유’다. 자기치유가 못 마땅하다니 이상한 심리학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자기치유는 별 다른 대안이 없이 자기‘만’ 치유하자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상처 입은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주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공감과 위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있다. 어떤 상담자들은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와 공감을 하면, 나머지는 내담자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상담자들은 이것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알아서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전문가를 찾아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상담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작 상담자도 내담자를 어떻게 도와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변명이자 책임회피라고 말한다. 상담자는 위로와 공감 이후에 대해서 내담자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힐링도 마찬가지다. 힐링은 분명 상처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상처를 싸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상처가 생겼는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상처가 어떻게 해야 안 생길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나 친구로 인해 생긴 상처를 혼자서 치유할 수 있을까? 사회구조로 인한 상처를 혼자서 싸맬 수 있을까? 이런 중요한 질문과 현실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혼자 책을 붙잡거나 여행을 떠나면서, 그리고 음악을 듣거나 맛난 음식을 들으면서 힐링이니 자기치유니 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도피이자 현실 왜곡일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진단도 다르지 않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국내로 파급돼 불안과 스트레스는 가중되는데, 조직이나 가족은 더 이상 안정과 위로를 주지 못하니 결국 ‘자기치유’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급한 대로 자기치유와 힐링이 필요할 수 있다. 순서는 제일 처음일 수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시급하게 싸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다시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혼자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책으로 힘을 얻었다면, 다시 그 사람과의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 관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힐링이다. 이런 면에서 혼자 하는 힐링은 자기기만일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 <밀양>을 보면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 위해 감옥으로 가는 준이 엄마(전도연 분)가 나온다. 유괴범을 만나 용서하겠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유괴범은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받았으며 마음이 평안하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 준이 엄마는 충격을 받는다.

 

사실 유괴범이 자신이 지은 죄에 용서를 구할 대상은 신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힐링의 방법은 신앙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했다. 물론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힐링을 경험했더라도, 분명히 진지한 마음으로 준이 엄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힐링 열풍도 이런 식이 아닐까 한다.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면 힐링은 필요하다. 그리고 득이 된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도피처라면 힐링은 우리에게 독이 된다.

 

                                                                                                                                         글 /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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