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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성형미인'이 넘치는 나라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사람의 신체와 터럭,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흔히 쓰는 말대로 ‘공자님 말씀’이다. 공자가 2500년

    뒤에 환생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둘러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황당할까, 아니면 먼 훗날을 꿰뚫어보지 못한 자신의 단견을

    한탄할까. 재미있는 상상이다.

 

 

 

 

 

 

형을 유혹하는 ‘비포-애프터’

 

CNN 등 외신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은 ‘성형공화국’ ‘성형의 메카’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를 나란히 비교시키며 성형을 유혹하는 광고가 즐비한 것을 보면 외신의 표현이 지나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여성의 40% 가까이가 성형 경험이 있다니 얼추 젊은 여성 두 명 중 한 명은 ‘성형미인’이라고 봐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성형이 젊은 여성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옛날 얘기다. 성형외과와 비만클리닉이 ‘수능특수’를 누린 지도 오래다.

 

“세계적인 성형 수술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 CNN이 한국의 성형 열풍을 다루면서 붙인 제목이다. 물론 수도는 서울이다. CNN은 서울을 ‘성형의 메카’로 소개했다. 외국인들이 성형을 받으러 서울로 몰려드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영국 BBC는 한국의 성형 열풍을 심하게 비꼬아 네티즌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서울 강남 압구정과 부산 서면 일대는 대표적인 성형의 거리다. 압구정역 인근 2km엔 성형외과만 250여개가 밀집해 있다. 병원마다 하루 수십~수백명이 상담과 시술을 받을 정도로 붐빈다. 살림살이가 퍽퍽해졌다고 아우성이지만 이 곳은 전혀 딴세상 분위기다.   


 

 

예뻐지고 싶은 본능을 누가 막을까

 

한국의 성형 열풍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엇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접근하면 답이 쉬워진다. ‘여자는 무인도에서도 화장을 한다’는 말처럼 남에게 좀더 매력적으로 보일려는 것은 남녀노소 모두의 본능이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 잠재해 있던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한 셈이다. 주변 환경을 모두 인공적으로 바꿔온 인간이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미지에 투자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심미주의’ 논리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휴대폰도 디자인이 강조되고, 신문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세련된 편집이 필요하다. 셰익스피어가 ‘보이는 것과 실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보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돈의 지출이든, 노동의 제공이든 경제학적으로 모든 비용에는 효용이 주어진다. 씀씀이를 줄이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성형에 지출하는 것 역시 그만큼의 효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효용은 자신감이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뿐더러 일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 예일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의 연봉은 평범한 외모의 사람보다 5~1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가 사실이라면 외모는 바로 직장의 경쟁력이고 성형은 취업과 결혼의 스펙인 셈이다. 취업난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이 성형외과로 몰리는 것 역시 이를 입증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외모와 경쟁력의 방정식을 잘 설명한다. 미(美)에 대한 본능적 욕구 분출에 ‘외모=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형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성형 열기 왜 한국에서 뜨거울까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년 세계 성형시장 규모는 200억달러(21조원) 정도다. 뷰티(3300억달러)

나 다이어트(400억달러)보다는 작지만 만만치 않은 시장규모다. 우리나라 성형시장은 45억달러(5조원)로 전 세계의 4분의1를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앞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도 한국보다 성형시장 규모가 작다. 미국 일본 중국 브라질 인도 이탈이라가 한국보다 시장이 크지만 수년내 한국이 이 중 몇나라를 제칠 가능성이 크다.

 

성형 열풍이 왜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거센지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신드롬으로 불리는 한국인 특유의 ‘따라하기’를 이유로 꼽는 전문가도 많다. 한국인은 뭔가 유행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따라가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부동산투자, 주식투자, 조기유학, 이민, 로또 등의 열기가 한때 뜨거웠던 점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쏠림 현상은 사회발전의 에너지가 되지만 때론 분열을 증폭시킨다. 대중 매체가 ‘얼짱’ ‘몸짱’ 신드롬을 자극적으로 조장해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美가 획일화된 사회는 과연 좋을까?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요즘 TV를 보면서 흔히 하는 말이다. 오똑한 콧날, 짙은 쌍꺼풀…. 마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보듯 요즘 연예인들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저럴려면 왜 성형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다. 비포(before)가 훨씬 좋았는데…. 굳이 외모지상주의라는 표현까진 쓰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집착이 좀 과하다는 우려가 분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때 가수의 꿈을 키울 만큼의 미모를 가졌던 50대 여성이 수차례의 불법 성형시술을 받으면서 얼굴이 선풍기처럼 부풀어 올라 ‘선풍기 아줌마’가 된 것은 과도한 외모집착이 낳은 부작용의 상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분명 인간의 기본적 욕구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형미인이 넘쳐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다소 시대착오적일지 몰라도 ‘개성이 사라진 얼굴’이 이 시대 미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공자의 과유불급(過有不及)은 바로 이를 경계한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