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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겨울철 식중독의 주범 노로 바이러스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의 세계에서도 ‘세대교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콜레라ㆍ

       이질ㆍ장티푸스ㆍ파라티푸스 같은 세균이 일으키는 수인성 전염병은 이제 구세대다. 요즘엔 노로 바이러스ㆍ

       A형 간염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가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세균보다 훨씬 작은 존재인 바이러스가

       신세대 수인성 전염병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철 기승을 부리는 노로바이러스

 

이중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미국에선 ‘윈터 보미팅’(winter vomitting)으로 통한다. 겨울에 구토를 하게 하는 병이란 뜻이다. 그만큼 구토는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의 가장 흔한 증상이다. 노로 바이러스가 겨울 질환이란 것은 국내ㆍ외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환자수가 겨울에 압도적으로 많다. 

 

노로 바이러스가 겨울에 유행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살모넬라균ㆍ병원성 대장균 O-157균ㆍ포도상 구균 등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들은 기본적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증식을 멈춘다. 우리가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식중독 세균들의 이런 특성을 이용하는 셈이다. 반면 노로 바이러스는 온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제 세상을 만난다.  

 

노로 바이러스는 실온에선 10일가량 살 수 있지만 냉장온도(4도)에선 2개월, -20도의 냉동상태에선 수년∼수십 년을 버틴다. 겨울철에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ㆍ감기(라이노 바이러스 등)ㆍ구제역(구제역 바이러스) 등 다양한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들이 잦은 것은 이래서다. 

 

 

겨울 가뭄도 노로 바이러스 발생을 높이는 요인

 

게다가 겨울엔 “날씨가 찬데 가열하지 않고 먹은들 무슨 탈이 나겠어…”라며 방심하고 물ㆍ음식 관리에 소홀히 하는 것도 겨울철에 노로 바이러스의 발생이 빈번한 요인이다. 

 

겨울 가뭄도 노로 바이러스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특히 식수난을 겪고 있는 일부 농촌지역이 문제다. 수돗물 공급이 끊기거나 제한 급수가 이뤄지면 안전성이 의문시되는 지하수ㆍ농산물 전(前)처리용 물 등을 식수로 마시거나 이미 쓴 물을 재사용할

수 있어서다. 

 

겨울엔 설 명절로 인해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는 것도 노로 바이러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살모넬라 식중독 등 세균에 의한 식중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되지 않는다. 설령 살모넬라 식중독에 걸린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수건 등 물건을 공유하더라도 식중독이 옮겨지지 않는다. 반면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은 ‘맨 투 맨’(man-to-man) 감염이 가능하다. 

 

노로 바이러스 전파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어린이ㆍ성인ㆍ노인 구별 없이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다. 한번 걸렸던 사람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 얼마 있다 재발할 수 있어서다. 다행히 증상은 가벼운 편이다. 건강한 성인이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에 걸리면 설사를 하다 며칠 내 자연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린이, 특히 2세 이하의 영ㆍ유아가 감염되면 심한 설사ㆍ탈수ㆍ구토 등의 증세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한다. 

 

 

 

예방 백신ㆍ치료ㆍ검사법이 없는 ‘3무’의

 

노로 바이러스는 1968년 미국 오하이오 주 노와크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식중독 환자의 가검물에서 처음 발견됐다. 처음엔 이 지명을 따서 노와크바이러스라고 불렸다. 1990년 걸프전 때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한 미군 병사의 가검물에서도 검출됐다. 당시 작전명을 따서 ‘사막의 방패 바이러스’라고도 불렸다. 또 칼리시바이러스ㆍSRSVㆍNLV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2002년 노로 바이러스로 병명이 통일됐다. 영하 80도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등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다. 그러나 85도에서 1분만 가열해도 활성을 잃는다.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식중독 원인 1위이다. 

 

국내에선 이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가 1999년부터 시작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에 잘 걸리는 혈액형(O형)과 잘 걸리지 않는 혈액형(B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노로 바이러스는 예방 백신ㆍ치료ㆍ검사법이 없는 ‘3무’의 질환이다. 따라서 손을 잘 씻고 물을 끓여 마시고 음식을 충분히 익혀 먹는 등 개인위생이 중요하다. 이렇다 할 치료약도 없다. 물을 자주 마시는 등 탈수 예방에 주력하면서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ㆍ굴ㆍ일부 채소의 잎 등에 오염된 노로 바이러스는 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밖의 식품들에 노로 바이러스가 오염돼 있다면 이를 확인할 검사법이 없다. 식중독 사고가 발생해도 어떤 음식이 노로 바이러스를 유발했는지 ‘진범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사상 최대 규모의 학교급식 사건으로 통하는 2006년 ‘CJ사건’에서도 원인균은 노로 바이러스로 확인됐지만(학생들의 가검물에서 검출) 원인식품은 깻잎 등 몇 가지가 거론되다 끝내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글 / 박태균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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