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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나는 왜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는가

 

 

 

 

         

        

 

점점 차례가 다가온다. 조바심이 들고 손바닥에 땀이 난다. 드디어 내 차례다.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입이 마르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바짝 긴장이 된다.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겨우 소개를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우습게 볼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기가 힘들다.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많을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될 때 불안과 수줍음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것이다.

 

 

 

외향성 선호사상과 억지 외향성

 

 

 

예전에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처럼 조용하게 있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이 중심이 되고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되면서 점점 자기표현과 주장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예전의 ‘남아선호사상’처럼 ‘외향성 선호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남들 앞에서 말도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사교적인 사람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싫어하게 되고 외향적인 사람들을 모델 삼아 성격을 고치려고 한다. 심지어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임의 리더를 자처하거나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나 영업직 같은 일에 뛰어들거나 일부러 거친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억지 외향성’은 바라는 사교성도 얻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 조심성과 같은 성격적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사실 남 앞에서 위축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라면 아주 보편적인 반응이다.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50%가 남 앞에서 수줍음을 경험하고 있으며, 13%가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미국이 이럴진대 남을 더욱 의식하는 동양권의 경우에는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즉, 당신 주위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고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평가를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수줍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이 꼭 대인공포증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대인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은 수줍음이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을 지나치게 파국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나치게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사람들일수록 대인공포증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나친 타인의식’을 데이비드 엘카인드라는 심리학자는 ‘상상 속의 관중(imaginary audience)’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청소년 시기에 잘 나타나는 이러한 심리적 특징은 자신이 무대에 서 있는 주인공이고, 주위 사람들은 자신을 주시하는 관중으로 느끼는 왜곡된 자기중심성이다. 상상 속의 관중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약화되어간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이 약화되지 않은 채 성인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다른 사람들을 평가자라고 의식하고 살아간다. 만일 당신이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18세 때는 모든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한다. 40세가 되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60세가 되면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투명성 착각

 

 

 

대인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내적으로 긴장하면 자신의 상태가 밖으로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 상대에게 쉽게 읽힌다고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불안의 증후는 거의 없거나 일부에 불과할 뿐인데도 말이다. 특히 자신의 내면상태가 ‘눈’을 통해 다 드러난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선접촉이 불편해진다. 이쯤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나 상황이 들어올 리가 없다. 온통 상대방이 자신의 불안함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싶어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다. 그리고 상대방도 이런 자신을 보고 불편해할 거라고 속단해서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날 생각밖에 못 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자신의 내면상태가 투명한 유리창처럼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느끼는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많이 긴장해서 발표를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무난하거나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걱정하는 것만큼 당신의 긴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계산된 위험을 향해 얼굴을 돌려라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중에는 그 자신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많다. 합리적 정서치료의 시자인 앨버트 앨리스(Albert Ellis)시 그렇다. 그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었다. 특히 부끄러움 때문에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 점점 이성에 대한 공포증이 생길 정도였다. 19살이 되자 그는 자신의 두려움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뉴욕 식물원에 가서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네기로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말을 건네자 여성들은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그럼에도 혼자 앉아 있는 30여 명의 여성 모두에게 가서 데이트를 신청했고 모두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트를 성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절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계산된 위험을 향해 나아가 두려움을 정점까지 경험하게 되자 이후로는 두려움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즉,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두려움은 우리를 망가뜨리지만 스스로 용기를 내어 마주하는 두려움은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계산된 위험을 향해 걸어 들어간 만큼 삶은 우리에게 용기를 선사해주는 것이다.

 

 

글 / 문요한 더 나은 삶 정신과 원장.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출처 / 사보 '건강보험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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