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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잘 살수록 건강하다, 먹는 것의 양극화






잦은 음주와 폭식의 나날을 보내며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일날 것 같은 위기감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온갖 조언이 쏟아졌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운동은 하되 식단을 조절하라고 했다. 탄수화물 대신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팔랑귀인 나는 오랜만에 퇴근하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렀다. 소매를 살짝 걷고 새로 산 시계를 치렁거리며 자기 관리에 매진하는 젊은 직장인처럼 당당히 과일 코너를 물었다.





오우, 과일이 이렇게 귀하신 몸이었다니. 거봉 포도 2묶음이 14000원이다. 칠레산 레몬은 3개에 10000원, 쥐콩만한 사과도 몇 개 고르니 12000원을 달란다. 몇 개 꾸역꾸역 들고 파리바게뜨 문을 열었는데 샐러드 하나에 5000원이다. 오늘 쓴 30000원은 짜장면을 7번, 치킨을 2번, 피자를 1번 정도 시킬 수 있는 돈이다. 불현듯 얼마전 몽롱한 상태에서  썼던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사 생각이 났다. 잘 살수록 건강하다는 그 지극히 평범한 명제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수습기자 시절 알게 된 한 변리사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전날 술자리가 있었지만 오후 11시쯤엔 무조건 집에 온다. 1시간여 새벽 수영을 즐긴 뒤 바로 개인 사무실로 출근해 아내가 싸준 샐러드와 빵을 먹는다. 점심은 항상 약속이 있는데 밥을 반만 먹는다. 일주일에 2번은 대학원 동기들과 스쿼시를 치고 주말엔 골프, 시간이 가끔 날 땐 등산도 종종 한다. 그와 갔던 강남의 한 음식점은 1인당 10만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풀 쪼가리 몇 개랑 달착지근한 고기 몇 접시 나왔는데 그 정도다. 40대 후반이었던 그는 “또래와 다르게 배도 거의 안 나왔다”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었다. 뽈록 튀어나온 배를 가방으로 가리며 나는 그저 “아, 예예”하고 씨익 웃고 말았다.





강서의 한 고시원에 사는 그 아저씨도 그쯤 만났다. 역시 수습기자 시절 우연히 변사사건 하나를 들었는데 돌아가신 분이랑 같이 노가다를 뛰는 사람이었다. 대낮부터 약간 술에 취해있었는데 기구한 인생 역정을 듣다보니 정말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 좀 짠했다. 매일 7시간 넘게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들이 붓는데 놀랍게도 매우 뚱뚱했다. 6월이라 아직 여름이라 하기도 애매한데 땀을 뻘뻘 흘렸다. 일을 마치면 너무 피곤해서 바로 집으로 온다고 했다. 취재는 잘 안됐고 결국 기사도 킬돼서 밥이나 한 끼 사려 했더니 그 아저씨는 “싸고 양 많은 게 좋다”며 근처 돼지국밥집에 가자고 했다. 국밥 2그릇에 순대 1접시, 소주까지 시켜서 먹더니 살 것 같다고 좋아했다. 4만원 정도 나왔던 거 같다. 통닭도 하나 사주자 고맙다며 연신 사람 좋게 웃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참 악순환이다. 잘사는 사람은 양질의 음식을 먹고 운동도 하고 관리도 받고 해서 계속 건강하고 못사는 사람은 그 반대의 이유로 병에 더 자주 걸린다. 병원비가 더해지고 이게 그 자식에게로 대물림 된다. 휴가 갈 때 비즈니스석 내 앞에 앉았던 꼬맹이 하나가 빵이랑 고기는 안 먹고 샐러드랑 과일만 더 달라해서 먹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태어날 때부터 유기농 분유를 먹는 아이들과,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은 평생의 건강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장경제라지만, 정부에서 이런 먹거리 양극화를 혁파할 방안 몇개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