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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그곳 밀양 표충사





표충사는 우리나라 3대 명루인 영남루,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냉기가 새어나오는 얼음골 등과 함께 경남 밀양을 대표하는 유적지입니다. 며칠 전, 업무 차 다니러간 밀양에서 잠시 짬이 나 표충사에 들렀습니다. 표충사는 언양 통도사의 말사로, 654년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천년역사를 지닌 곳이죠. 보우국사, 일연선사 등 숱한 고승들이 머물렀고, 특히 임진왜란 때 승려들을 이끌고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의 호국 성지로 유명합니다.


호국은 외세에 대항해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로, 다른 불교국가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은, 우리나라 특유의 불교사상입니다. 그 호국불교의 중심에 의승대장으로 이름난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가 있습니다. 표충사는 이분들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이 있고, 1839년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표충사(表忠祠, 사당)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사찰 이름을 표충사로 부르게 됐답니다.





표충사는 입장료를 따로 받습니다. 어른은 3,000원, 어린이는 1,500원입니다. 주차비도 중소형 차량 한 대를 기준으로 시간제한 없이 2,000원을 따로 받습니다.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국보 제75호인 청동은입사향완과 보물 제467호인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를 비롯해 사명대사의 유물 200여 점을 보존하고 있으므로 이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표충사의 일주문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찾았던 곳이라 발길도 많지 않고 주위 나무들까지 앙상하니 조금 을씨년스러워 보입니다.





일주문 옆에 표충사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표충사는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천황산과 재약산 끝자락에 자리해 있습니다. 특히 재약산은 산세가 수려한 밀양의 주산으로 등산코스로도 유명합니다. 8부 능선에는 광활한 사자평이 있죠.



표충사 현판이 붙은 ‘수충루’입니다. 보통 사찰과 달리 3문 누각 형태라는 게 특이합니다. 이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표충서원과 표충사당이 있기 때문에, 사찰 입구를 서원처럼 누각 형태로 세웠다고 합니다.






수충루를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에 표충서원, 표충사당, 유물관이 있고 오른쪽에 설법전 등이 있습니다. 세 분 대사의 위패를 모신 유교 서원인 표충서원과 표충사당은 성현을 기리고 유생을 교육하는 공간이죠. 이곳은 유교의 영역으로, 불교의 공간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공간입니다. 때문에 불교와 유교를 아울러 품고 있는 표충사는 우리나라 사찰의 독특한 유연성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표충사 유물관은 꼭 들러야할 호국박물관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국보급 보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선물로 받은 대형 목탁과 북을 포함해 직접 입었던 금란가사와 장삼 등 사명대사의 여러 유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국보 제75호로 지정된 청동은입사향완은 고려 명종 7년(1177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향로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향완은 부처님께 향을 공양할 때 사용하는 공양구입니다.





도량 내의 모든 악귀를 물리친다는 사천왕을 모신 사천왕문입니다. 표충사에서 사천왕문은 불교영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즉, 표충서원과 표충사당을 중심으로 한 유교영역에서 실제 불교문화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것이죠. 계단을 둘러싼 연등이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표충사의 불교 공간입니다. 가운데 삼층석탑과 대법당인 대광전, 관음상을 모신 관음전 외에 명부전, 팔상전, 범종각, 우화루 등이 너른 마당에 띄엄띄엄 자리해 있습니다.






보물 제467호로 지정된 높이 7.7m의 삼층석탑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균형 있는 비례와 우아한 모습이 같은 시기 석탑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습니다.






야외 참선 장소인 우화루입니다. 너른 루에 오르면 머리 위로는 단청이 아름답고 발아래 남계천 맑은 물이 흐르는 풍광이 멋지고 좋습니다.





사찰 뒤로 펼치는 재약산의 산세가 참 유려합니다. 더 가까이는 대나무 숲이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고요. 원효대사가 사찰을 처음 창건할 당시,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이는 것을 보고 터를 잡아 사찰을 세우고 죽림사(竹林寺)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나무 숲을 보고 있으니 죽림사로 명명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눈썰미 좋은 분들이라면 표충사의 백미인 백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이곳 백매는 수령이 15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겨울 끝자락에 매화는 벌써 꽃을 피웠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흰 매화가 나무 전체를 감쌀 테지요.





사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목마름을 달래줄 영정약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신라 흥덕왕 4년에 나병에 걸린 셋째 왕자가 이곳에서 병을 치유했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때문에 그때는 이곳을 영정사로 칭하기도 했습니다.





표충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산채비빔밥을 먹었습니다. 표충사 근교는 관광단지로 조성돼 있어 맛있는 식당이 곳곳에 있습니다. 간이 심심한 나물로 밥을 비비고 맛깔스런 찬들과 함께 먹으니 눈 깜짝할 새 한 그릇 뚝딱입니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 촌두부는 투박해도 그 맛이 일품이고요. 고즈넉한 표충사를 둘러보고 맛있게 배까지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표충사 사계는 밀양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따듯하고 꽃 피는 봄날, 표충사 나들이 어떠세요?


■ 위치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 문의 : (055)352-1150(종무소), (055)359-5646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글 / 이은정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