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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강요하는 긍정은 긍정이 아니다.. '긍정의 배신'

 

   낙천성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성의 이면이다.       -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中 -

 

 

 

 

 

  긍정이 싫다구요?

 

“자칭 긍정적이라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못 봤어요. 모두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죠.” “여기도 긍정, 저기도 긍정. 난 이제 긍정이 너무 지겨워요!”

 

 요즘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긍정을 ‘강조’하는, 아니 ‘강요’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 역시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긍정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힌다.

 

 그녀는 지난 2000년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던 중 한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 집단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자못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암도 축복”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이 고백을 강요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진 ‘긍정주의’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긍정을 강조함으로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에 주목했다.

 

 

 

  긍정주의 vs 긍정심리학

 

 <긍정의 배신>에서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주의의 기원을 미국의 신사상 운동에서 찾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긍정주의는 우리 삶과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외면하게 만들었고, 실패의 원인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긍정주의와 긍정심리학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배경이 다르다.

 긍정주의의 배경이 신사상 운동과 신자유주의라면,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그간의 심리학이다.

 

 따라서 긍정주의가 ‘부정적인 측면을 외면하는 긍정’을 말한다면, 긍정심리학은 ‘부정적인 측면을 상쇄시키는 긍정’을 말한다.  긍정주의는 실패한 사람을 낙오자로 만들지만, 긍정심리학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게 만든다.

 

 

 

  긍정의 주인공은 바로 나

  

 정말 중요한 점은 긍정주의냐 긍정심리학이냐가 아니다. 긍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다.

 

  만약 직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교육하면서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한다면 그 긍정은 틀린 것이다. 끊임없이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에게 ‘하면 된다’를 실천해 보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왜곡된 긍정이다. 암에 걸려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암은 축복”이라고 말하게 하는 것은 오만한 긍정이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누구에게도 긍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강요하는 순간 긍정은 부정이 되고 만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강요받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참된 긍정은 타인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 슬픔을 승화시키는 긍정, 우울을 덜어내는 긍정,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긍정의 주인공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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