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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아침부터 손님 부부가 큰 소리로 울어대던 날 어린 시절 해마다 봄이 되면 손님이 찾아왔다. 오라는 말도 없었고 온다는 소식도 없이 찾아왔지만 오는 이도, 맞이하는 이도 으레 당연하듯이 받아들 였다. 손님은 인사도 없이 자기 보금자리 짓기에 바빠진다. 지푸라기에 흙을 묻혀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작은 입으로 지푸라기를 한 올 한 올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누가 집 짓는 걸 가르쳐줬기에 저렇게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지을 수 있는지 대단하기도 하였다. 올해도 잊지 않고 손님이 찾아왔구나 하고 인식할 때 즈음엔 벌써 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린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솔직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세들어 사는지 모를 정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함께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린.. 더보기
'우리 엄마 맞아?' 라며 격렬히 반발하는 아이 '곧게 살자' 이거 말은 쉬워도 그다지 맘먹은 대로 되는건 아니다. 곧게 살기 위해선 정직해야 되고 적당히 손해도 봐야 하고, 그릇된 일을 보면 때론 싸움도 해야 하니까. 엄마 아빠들이 옳게 살면 자식들도 따라한다. 편법과 술수가 대물림 된다고나 할까. 중학교 다니는 아기가 얼마 전 봉사활동을 한다며 제 또래들과 쪼르르 나섰다. 해찰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라며 용돈도 쥐어주면서 '왜 장애인 시설에 가서 그분들 목욕 시켜드릴 생각은 못하고 편한 관공서만 찾아다닐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봉사활동을 하러 갔던 아이가 일찌감치 돌아왔다. 4시간을 기약하고 간 아이였기에 어찌된 건지 물었더니 그 곳 담당자가 평소 학업에 지쳐 있는 학생들이 안쓰러웠던지, 친절하게도 2시간만 .. 더보기
캔 고리에 감전된 남자가 사랑에 빠진 사연 까만 꽃씨 몇 알이 서랍장 속을 뒹군다. 버릴까 하다가 아이들 관찰용으로 키우면 되겠다 싶어 작은 화분에다 심었다. 날마다 물을 주며 어떤 싹이 올라올까, 땅을 유심히 살폈다. 여러 날이 지나 여린 싹이 흙을 밀어 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줄기가 올라와 많은 잎을 달고 꽃분홍색의 작은 나팔을 연주한다. 분꽃이었다. 아이는 조그만 씨속 어디에 큰 줄기와 꽃이 들어 있었냐고 신기해 하며 맑은 눈망울을 굴린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왜 그래요?"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짧은 지식으로 철학까지 더해가며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궁금해 하던 여러 현상들을 사소한 것까지도 스스로 알아내 오히려 엄마에게 설명을 해주곤 했다. 지금은 능청스럽게 엄마의 과거를.. 더보기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찌개 잘 끓인다" 라는 아버지 얼마 전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받자 "너 이놈! 네가 저절로 큰 줄 아니?" 하는 호통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작은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몸도 안 좋은 노인 양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손자도 보고 싶을 테고, 자주 찾아가 뵈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 뵌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예뻐서 번쩍 안아 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손자와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간간이 나.. 더보기
하루하루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 고마우신 분 저는 조그마한 병원에 근무하는 병리사입니다. 환자도 많고 검사도 많아서 늘 바쁘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곤 했죠. 정신없이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나면 똑같은 다음날이 기다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그런 하루하루. 매일의 지친 일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이 일 말고 또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1004라는 이름이 매일 아침 내게 안부를 묻는 메시시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궁금하기도 하고 내 주위에 매일 아침 내게 보낼만한 사람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짐작 가는 사람은 없었죠.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그게 건강에 좋아요..." "오늘 아침은 추우니깐 옷을 따뜻하게 입으세여..." "상쾌한 아침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침에 받는 한통의 .. 더보기
"엄마는 왜 화를 내?" 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엄마, 나 아파요" 하며 현관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니 이마가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그랬냐며 놀라서 물으니 "앉아 있다 일어나다가 길다란 쇠에 부딪혔어요" 한다. "그러길래,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빨리 들어와서 소독하고 약 발라" 하며 야단을 쳤다. 그런데, 이 녀석이 며칠 뒤에는 거실에서 굴러가는 구슬을 잡겠다고 뛰다가 푹 엎어졌다. 일어나는데, 얼굴을 보니 코피가 엄청 흐르는 것이다. 코피 덩어리가 뚝뚝 떨어져 코 뼈가 부러진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엄마가 항상 조심하라고 했잖아. 너는 왜 항상 얼굴만 다치냐? 맨날 코만 다쳐서 코피가 자주 나잖아. 이것 봐, 이렇게 많이 흐르잖아"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코피를 닦아주니 나중에는 머리가 어지럽단다. 그러고나서 이틀이 지나지 .. 더보기
전철 안 외국 근로자의 빈 옆자리가 씁쓸했던 이유 이른 새벽,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으로 바삐 걷던 중 공중전화 박스 안에 있는 한 외국인 노동자를 보았다.그저 약간의 호기심에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그 청년을 지켜봤는데…. 앗, 그가 울고 있었다. 한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통화를 했다. 지금의 내 아내도 20대 간호사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로자 파견을 나가 3년간 근무하다 돌아온 경력이 있는데 그때 너무나 고국이 그립고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전화기를 붙잡고 울고 있는 그 청년에게 안쓰러움이 생겼다. 아침이 되면 자기가 일하는 직장으로 출근을 해야 할 텐데 그는 아마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고향의 어머니께 전화를 하면서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있는 듯 했다. 음료수 하나 마시기 위해 슈퍼에 들렀다가 나왔는데 그는 여전.. 더보기
봄, 정직한 마음과 붉은 낙조를 만나고 싶다면... 떠나는 마음은 가벼울수록 좋다. 거창한 계획이 없더라도 일단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보자. 잔뜩 움츠렸던 추운 겨울을 보내고 조심조심 따뜻한 봄의 기운이 밀려오는 5월의 문턱. 정성껏 흙을 빚어 나 만의 그릇을 만들어 보는 즐거운 도자 문화 체험에 바다 구경까지…. 올봄엔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서해로 출발! 함께 떠나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의 등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과 충남 당진을 연결하는 서해대교가 개통되면서 바야흐로 서해안 시대가 힘찬 포문을 열었고, 서해대교를 건너 서산과 태안으로 이어진 서해는 풍부한 해산물과 천연갯벌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세우며 새로운 주말여행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서해대교에서 송악 IC를 빠져나와 첫발을 내딛는 땅 당진은 38번 국도를 따라 한진 포구와 내도라. .. 더보기
친절히 붙여준 파스에도 분통 터트리는 남편 가족보다 조기축구를 더 사랑하는 남편. 건강이 최고라며 주말마다 거의 목숨 걸고 나가서 공을 차고 돌아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깨가 좀 결린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축구를 하다가 근육이 놀랬나 싶단다. "오십견인가? 그게 요즘은 사십대에도 찾아와 사십견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남편은 계속 기침을 하면서 급기야는 가슴까지 결린다고 고통스러워했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가봤더니 뼈에 이상은 없고 근육에 약간의 염증이 있으니 마사지나 열심히 하란다. 다음날 아침, 화장대에 놓인 파스가 눈에 띄기에 옳다구나 싶어 막 출근하려던 남편의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정성스레 파스를 붙여 주었다. "여보, 이게 건강파스예요~옹.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겨진거 알죠?" 라며 내가 생각해도 제법 닭살 돋게 애교를 부려줬다. .. 더보기
‘귀여운 악마’ 같은 할머니의 유혹에 넘어가다 “에미야, 귤 한 개 더 넣었다.” 이렇게 다정한 말을 해주시는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당연히 친정 엄마 아니면 시어머니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코 아닙니다. 그럼 누구? 지금부터 이분에 대해 말씀 드리렵니다. 이분은 바로 ○○은행 앞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고요. 그 다정한 말은 바로 그분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저랑은 인연이 꽤 되었지요. 사람들이 수시로 오고가는 은행 앞 고정된 자리에서 항상 계시기 때문에 그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저로서는 참새와 방앗간이 된 셈이죠. 저를 멀리서 보시곤 소리치는 한 말씀. “오늘 포도 들어왔어! 아주 싱싱해! 한 바구니 가져가, 옛다! 오천 원만 받을게.” 하시며 내미는 거친손 끝에 걸쳐진 검은 봉지는 어느새 제 손에 들려 있지요. “오늘 포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