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묻어나는 음악, 라울 뒤피의 작품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불안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건강한 몸을 위한 보건 방역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방역도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다. 일상과 방역이 함께 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하루하루, 이럴 때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미술사에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화가는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와 함께 ‘라울 뒤피’가 있다.
라울 뒤피는 샤갈과 마티스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19C 말 인상주의 미술부터 20C 중반에 이르는 모든 미술 경향을 두루 섭렵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갖추었다. 무명의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발굴한 미국의 컬렉터이며, 여류작가인 ‘거트루트 스테인(Gertrude Stein)은 “뒤피의 작품은 즐거움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라울 뒤피의 작품은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 유명 회사의 달력에 많이 실리는데, 자유로운 선과 경쾌하고 율동적인 색채 구성은 관람자들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 행복감을 준다.
자화상(1899)
‘라울 뒤피’(Raoul Dufy, 1877년~ 1953년)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가난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예술가 집안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궁핍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르아브르 시립 미술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1900년에는 장학금을 받으며, 파리에 있는 국립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했는데, 그는 회화뿐 아니라. 판화, 디자인 등에도 뛰어났다.
그는 1905년 야수파의 대표 작가인 마티스의 <사치. 평온. 쾌락>이라는 작품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고, 선명한 색채의 대담한 표현으로 야수파 화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좌=Bateaux Pavoises(1946) / 우=천사의 해변(1926), 개인소장
그의 작품 중에는 그가 어릴 때 늘 보아 왔던 해안가 풍경이 많다. 넓은 바다 위에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보트들, 자유로운 선과 강렬한 색채 속에는 시원함과 즐거움이 가득 담겨있어 답답한 가슴이 펑 뚫리는 듯하다.
좌=모차르트에게 헌정함(1915) / 우=클로드 드뷔시에게 바침(1952), 니스 예술박물관
음악을 즐기는 가족들의 분위기에서 자란 라울 뒤피는 음악이 주제가 되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렇지 않은 작품에도 리듬감 있는 붓 터치로 음악을 미술에 담고 싶어 했다. 특히 그는 음악가를 예찬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그가 좋아했던 드뷔시∙바흐∙모차르트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남겼다.
1915년에 그린 ‘모차르트에게 헌정함’은 입체주의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붉은색을 주로 하여 남색과 대비되어 있다. ‘클로드 드뷔시에게 바침‘은 뒤피가 1952년 74세의 나이에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물체를 표현했는데, 피아노 악보대에는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라고 크게 씌어 있고, 벽면의 꽃잎들은 리듬을 타고 경쾌한 음악처럼 끝없이 뻗어 나가고 있다.
좌=화가의 방(1947) / 우=검은 화물선(1945-1950)
‘화가의 방’은 작가의 작업실로 여인의 전신 조각상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채 이젤 위에 놓여 있다. 이젤 위의 이 작품은 나중에 완성된 ‘검은 화물선’이다. 라울 뒤피는 말년에 심한 관절염으로 힘들어했는데, 이때의 우울한 마음을 검은 화물선으로 표현했다.
전기의 요정(1937),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라울 뒤피는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가로 60m 세로 10m인 초대형 작품을 출품한다. 250개의 합판 패널로 구성된 ‘전기의 요정’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이며, 전기 발명과 관련된 과학자들에 대한 경의와 역사를 기리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중앙에 전기의 요정이 빛을 발하며 날아가고 그 아래에는 전기의 영광을 기리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표현되어 있다. 뒤피는 이 작품 속에 전기와 관련하여 인류에 공헌한 에디슨, 벨, 와트 등 역사적인 인물 100여 명을 그렸다. 라울 뒤피가 후에 석판화로 표현한 ‘전기 요정’(1952~53)은 1952년 제2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으나, 그 이듬해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1953년 생을 마감했다.
일생동안 색채와 빛의 연구에 힘쓴 라울 뒤피. 유년시대의 궁핍함을 거쳐 1, 2차 세계대전의 험난한 시대를 맞고 말년에 관절염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으나, 그의 작품 속에서는 불우한 기억은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는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을 지우도록 되어 있다“고 말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The Red Concert(1946), 개인소장
이 작품은 ‘나의 청춘을 달래준 것은 음악이다’라고 말한 드뷔시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 이전과
다른 기준의 세상에서 서로 간의 거리로 답답할 때 라울 뒤피의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그림을 마음으로 옮겨오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에 모차르트의 경쾌한 음악을 곁들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