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1.24 선물, 때론 사람을 감동시킨다
  2. 2015.11.02 가족의 소중함을 알자

  

 

 

 

 

4~5년 전 일이다. 휴일을 보내고 아침 회사에 출근했다. 책상 위에 노란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크기가 적당한데다 포장도 세련됐다. 보낸이는 잘 알고 지내는 대기업 사장이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남녀 손수건과 함께 흰 봉투가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문상한 데 대한 답례였다. 작지만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우선 기분이 좋았다. 그 분의 인품도 다시 보였다.


 

 

 

상을 치르고 나면 보통 인사장을 돌린다. 조문과 조의에 대한 답례에서다. 정황이 없기에 먼저 서면으로나마 인사치레를 하는 것. 요즘은 문자 메시지로 대신하기도 한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 됐다. 그러다보니 정도 메말라감을 느낀다. 전화조차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화와 인사장, 문자메시지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감동을 줄까. 전화일 게다. 목소리의 울림을 통해 서로의 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예 답례를 하지 않는 이들도 본다. 먼길을 다녀왔는데도 인사가 없으면 솔직히 서운하다. 그런만큼 나부터 잘 챙겨야 한다. 나는 제대로 못하면서 남에게서 바란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는 한 치 앞도 못보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 봉투 속에 든 선물을 보면서 애경사의 예절을 거듭 되새겼던 일이 기억난다.


 

 

 

아내의 생일 이야기다. 그동안 아내에게 특별히 해준 것이 없다. 케이크나 하나 자르고, 외식하는 정도로 남편 노릇을 해왔다. 기념될만한 선물을 한 적도 없다. 값비싼 선물을 요구하지 않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다. 만약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면 안 사주기도 어려울 터. 내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서 그럴 게다.


무엇보다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어지럼증이 있긴 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내조만큼은 확실히 해주었다. 내가 손님을 아무리 많이 데리고 집으로 와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귀가하기 전까지는 평상복 차림으로 있던 아내다. 내가 집에 들어와야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곤 했다. 오늘날까지 별 탈 없이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내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작더라도 선물을 할 요량으로 물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했다. 돈으로 달란다. 생활비로 쓰지 않고 마음껏 쓰고 싶다고 했다. 큰 돈도 아니다. 수십만원. 부담이 안되는 액수다. 수백만원을 요구했더라면 난처했을텐데 다행이었다. 아들도 엄마에게 선물 대신 돈을 주었단다. 돈보다 더 좋은 게 없는가 보다. 돈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남자에게 가장 흔한 선물이 술과 넥타이다. 자기가 먹거나 매지 않더라도 남에게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늘어간다. 부하직원이나 지인들도 스스럼없이 건네고, 받는 이도 부담을 덜 갖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 역시 옷장에 넥타이가 많다. 100장은 족히 넘는다. 아직 뜯지 않은 것도 있다.


 

 

 

실제로 매는 넥타이는 5~6장에 불과하다. 주 5일제가 되면서 다섯 개면 충분하다. 매일 바꿔 매도 지루하지 않다. 그 중에서 빨간 넥타이를 제일 아낀다.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 때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러니까 10년도 넘었다. 동네 가게에서 2만원 안팎을 주고 샀단다. 그것을 매고 나가면 많은 이가 잘 어울린다며 칭찬한다.


그 때마다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릴 적 형과 나는 용돈을 아껴 아버지께 라이터를 사드렸다. 당시 1000원쯤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랑을 하시며 돌아가실 때까지 그것을 애용하셨다. 빨간 넥타이도 영원히 맬 생각이다. 아들의 정성이 깃든 선물이기에. 아들 녀석에게서 최근 옷 선물을 받았다. 녀석이 준 상품권으로 티셔츠를 사 입은 것. 아내와 둘이 백화점에 들러 옷을 샀다. 사실 옷은 안 사도 된다. 지금 있는 옷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옷은 나름 의미가 있다. 결혼 28주년 기념 선물로 받은 것. 무엇보다 마음씨가 기특하다. 생일은 몰라도 결혼기념일까지 챙겨주는 녀석.

 

 

 

 

나 하나, 아내 하나씩 골랐다. 마냥 어린애 같은 녀석이 커서 부모님을 기쁘게 한다고 할까. 우리에겐 딸이 없다. 녀석이 딸 노릇도 톡톡히 한다.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것. 백화점도, 미장원도 같이 간다. 그런 녀석이 예쁘고, 고맙다. 결혼 기념일에 맞춰 나는 하루 휴가를 냈고, 녀석은 쉬는 날이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시내 이태리 식당인 라칸티나를 예약했다. 나의 30년째 단골이다. 장모님도 함께 모시고 갈 참. 말하자면 네 식구 전체 회식을 하는 셈.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식구와 함께라면 무엇을 먹어도 좋다. 아들, 땡큐!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구성원이다. 더 소중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족 돌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일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최우선해야 한다. 가족을 챙긴다고 팔불출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땐 일에 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러나 나이들면서 그것을 깨우치게 됐다. 몇년 전부터 골프 나가는 것도 확 줄였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물론 골프는 재미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골프 중 택일하라면 가족을 택하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네 명. 장모님, 우리 부부, 아들이 전부다. 요즘은 장모님이 외출을 못 하신다.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 겨우 걸을 정도다. 그 전에는 항상 넷이 같이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를 잘 챙긴다. 아주 자상한 녀석이다. 딸을 뺨칠 정도. 아내도 마찬가지. 넉넉하진 못해도 집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 늘 고맙다.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출가하면 내 식구 챙기느라 소홀하기 쉽다.

 

근 형제들과 아주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우리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것. 생전 처음이다. 나의 9번째 에세이집 '오풍연처럼' 출간 기념도 겸한 자리였다. 세종에서 형님, 대전에서 남동생이 올라왔다. 나와 누나, 여동생은 서울, 부천에 각각 산다. 진작 이같은 모임을 가지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나와 누나, 여동생이 대전에 제사지내러 종종 내려갔지만 대전 형제들의 서울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수님과 제수씨가 즐거워 했다. 12시 정각 성북동 누브티스에 모두 모였다. 승용차는 나와 여동생만 가지고 갔다. 차량 두 대로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님이 멋진 점심을 내 놓으셨다. 풍'스 패밀리 메뉴까지 개발했던 것.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누브티스 바로 이웃에 있는 길상사에 들렀다. 서울에서 기를 받을 수 있는 3대 명당 중 한 곳 이란다. 이어 교보문고로 가서 누브티스의 '오풍연 쇼 케이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아내와 형수님, 제수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5남매만 경복궁에 들렀다. 나도 20여년만에 다시 가봤던 것.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경회루와 근정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여의도 산삼골. 오리훈제와 전골을 정말 맛있게 한다. 사장님이 안 계셨지만 직원들을 시켜 복분자 술도 내왔다. 형님과 남동생은 거나하게 마시고 내려갔다. 음력 11월 17일 어머니 제사 때 대전에서 다시 모인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나 역시 뿌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제사는 2010년 1월 1일이었다. 2008년 12월 14일 돌아가셨는데 윤달이 끼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엄숙한 가운데 제가 시작됐다. 맏상주였던 형님이 먼저 술을 부어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차남인 내가 가득 채웠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며 참배를 했다.

 

한 분이 어머님을 ‘작은 거인’에 비유하며 기도를 드렸다. 베풂의 삶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그랬다. 우리 다섯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친․인척 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중심에 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가족 대소사를 모두 챙기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내 대신 할머니 임종을 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군에 입대했다. 놈이 마침 외박을 나와 첫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놈이다. KTX로 상경하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셨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후.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제 녀석도 28살. 머지않아 장가를 갈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나 자신부터 가족을 챙기고,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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