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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너무나 미안한 인연 아내가 주는 감동의 편지 예기치 않은 지병으로 저는 두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습니다. 제 몸 어딘가에 저도 모르는 돌멩 이 하나가 숨어있었나 봅니다. 1.5cm밖에 안 되는 그 작은 돌멩이 하나에 쓰러진 저는 307호실이라는 새 로운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가려 했던 것이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전 이곳에서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차마 그 고마움을 몰랐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HD40인치 TV는 아니지만 저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오래된 TV라는 친구, 가끔씩 소화불량이 있는지 ‘쿵’ 하며 소리를 내는 낡은 냉장고 아주머니,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 방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넉넉한 의자 아저씨, 모든 것을 잊고 잠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침대 부인…. 이들과행복하게 지내고.. 더보기
손가락은 날로 섬섬옥수가 되어가고, 얼굴은 달덩이? "너 요즘 왜 이리 얼굴이 달덩이야?" 살찌는 것에 별 무감한 사람이라도, 이런말을 연거푸 듣게 되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느라 손가락은 날로 섬섬옥수가 되어가지만, 나도 내 몸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해서,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차를 타고 가던 거리를 걸어다니기로 했다. 역시나 처음 얼마간은 집에 도착하면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박동탓에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점차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어느 한때 지겹도록 걸었었다는 생각과 함께 오래된 기억도 새롭게 했다. 아직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산허리를 지나 학교까지 무려 한시간 반 정도를 걸어 다녔던.. 더보기
속담도 있었는데 깨닫지 못한 내 자신이 한스럽고 밉다. 얼마 전 노인요양병원에 두 달 반째 입원해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결국 통증과 투병을 이기지 못한 채 끝내 여든 여섯으로 목숨을 거두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를 여의고 오빠 두 분과 딸인 나를 키우느라 온갖 고생과 설움을 극복하면서 악착같이 살아오신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부모를 다 잃은 고아가 된 셈이다. 작년 12월 새벽에 홀로 사시던 방에서 소변을 보러 일어났는데 평소에 잘 가던 화장실 방향을 잘못 알아 창문이 있는 문갑 쪽으로 일어서자마자 텔레비전에 부딪쳐 넘어지면서 엉치등뼈와 넓적다리가 연결되는 고관절을 다쳤다. 연세가 고령이어서 수술해도 완치는 힘들며 혹시 마취했을 때 깨어나지 못하거나 기억상실이나 감퇴현상이 올 수도 있다기에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었다. 가.. 더보기
아침부터 손님 부부가 큰 소리로 울어대던 날 어린 시절 해마다 봄이 되면 손님이 찾아왔다. 오라는 말도 없었고 온다는 소식도 없이 찾아왔지만 오는 이도, 맞이하는 이도 으레 당연하듯이 받아들 였다. 손님은 인사도 없이 자기 보금자리 짓기에 바빠진다. 지푸라기에 흙을 묻혀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작은 입으로 지푸라기를 한 올 한 올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누가 집 짓는 걸 가르쳐줬기에 저렇게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지을 수 있는지 대단하기도 하였다. 올해도 잊지 않고 손님이 찾아왔구나 하고 인식할 때 즈음엔 벌써 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린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솔직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세들어 사는지 모를 정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함께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린.. 더보기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찌개 잘 끓인다" 라는 아버지 얼마 전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받자 "너 이놈! 네가 저절로 큰 줄 아니?" 하는 호통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작은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몸도 안 좋은 노인 양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손자도 보고 싶을 테고, 자주 찾아가 뵈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 뵌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예뻐서 번쩍 안아 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손자와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간간이 나.. 더보기
하루하루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 고마우신 분 저는 조그마한 병원에 근무하는 병리사입니다. 환자도 많고 검사도 많아서 늘 바쁘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곤 했죠. 정신없이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나면 똑같은 다음날이 기다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그런 하루하루. 매일의 지친 일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이 일 말고 또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1004라는 이름이 매일 아침 내게 안부를 묻는 메시시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궁금하기도 하고 내 주위에 매일 아침 내게 보낼만한 사람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짐작 가는 사람은 없었죠.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그게 건강에 좋아요..." "오늘 아침은 추우니깐 옷을 따뜻하게 입으세여..." "상쾌한 아침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침에 받는 한통의 .. 더보기
친절히 붙여준 파스에도 분통 터트리는 남편 가족보다 조기축구를 더 사랑하는 남편. 건강이 최고라며 주말마다 거의 목숨 걸고 나가서 공을 차고 돌아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깨가 좀 결린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축구를 하다가 근육이 놀랬나 싶단다. "오십견인가? 그게 요즘은 사십대에도 찾아와 사십견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남편은 계속 기침을 하면서 급기야는 가슴까지 결린다고 고통스러워했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가봤더니 뼈에 이상은 없고 근육에 약간의 염증이 있으니 마사지나 열심히 하란다. 다음날 아침, 화장대에 놓인 파스가 눈에 띄기에 옳다구나 싶어 막 출근하려던 남편의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정성스레 파스를 붙여 주었다. "여보, 이게 건강파스예요~옹.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겨진거 알죠?" 라며 내가 생각해도 제법 닭살 돋게 애교를 부려줬다. .. 더보기
‘귀여운 악마’ 같은 할머니의 유혹에 넘어가다 “에미야, 귤 한 개 더 넣었다.” 이렇게 다정한 말을 해주시는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당연히 친정 엄마 아니면 시어머니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코 아닙니다. 그럼 누구? 지금부터 이분에 대해 말씀 드리렵니다. 이분은 바로 ○○은행 앞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고요. 그 다정한 말은 바로 그분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저랑은 인연이 꽤 되었지요. 사람들이 수시로 오고가는 은행 앞 고정된 자리에서 항상 계시기 때문에 그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저로서는 참새와 방앗간이 된 셈이죠. 저를 멀리서 보시곤 소리치는 한 말씀. “오늘 포도 들어왔어! 아주 싱싱해! 한 바구니 가져가, 옛다! 오천 원만 받을게.” 하시며 내미는 거친손 끝에 걸쳐진 검은 봉지는 어느새 제 손에 들려 있지요. “오늘 포도.. 더보기
내 손가락 찌르며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유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실로 동여맨다. 어디서 본 가락대로, 일단 바늘을 콧김으로 소독한다고 소독 하고 엄지손가락에 가져다 대는데…. 도저히 내 손가락은 못 찌르고 애꿎은 살만 슬슬 파내고 있다.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소화제만 연거푸 먹어보지만, 소화제조차 얹히 공간 위에 더 얹혀졌는지 전혀 풀어주지도 못하고 머리조차 띵해졌다. 어린시절, 내가 체할라치면 할머니는 내 손가락을 따주셨다. 내 엄지손가락에 실을 동여매고, 바늘쌈지 안에서 제일 깨끗한 바늘 하나를 골라. 머리카락 속에 한번 쓱쓱 문지른 후 콧김을 쐬어 가차없이 손가락을 찌르셨다. 그럴라치면 그 시커먼 피와 함께 속이 뻥 뚫린 듯하던 신기한 경험. 그 경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라 할머니 흉내를 내 보려는데 차마 내가 내 손가락을 못 따고.. 더보기
어릴적 도둑질로 평생 계란을 못먹는 사연 종미네 집으로 넘어가는 밭둑에 새로 꽃피운 조팝나무가 가득하다. 꽃 더미를 헤집으며 혼자 놀던 나는 기겁하여 놀라 뒤로 움찔 물러섰다. 갑자기 암탉 한 마리가 날개를 치며 튀어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그 다음이다. 덤불 밑의 우묵한 바닥에 여섯개의 알이 하얗게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종미네 닭이 낳은 게 틀림없었다. 제 둥우리를 두고 왜 여기다 낳았을까?' '종미네 집에 가서 알려줄까. 아냐, 이런 데다 낳은 걸 꼭 종미네 알이라고 할 순 없지. 매일 하나씩 나을 테니 다음에 가져가?' 절반인 셋만 가져가기로 작정한 나는 살그머니 집어 들어왔다. 온기가 가득했고, 옷 앞자락에 주섬주섬 담았다. 갑자기 나타난 종미 아버지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뒷덜미를 움켜잡히는 섬뜩한 긴장 속에서 몇 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