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1.02 가족의 소중함을 알자
  2. 2015.09.03 5060세대는 고달프다
  3. 2010.07.07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하는 수상한 부자지간 (8)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구성원이다. 더 소중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족 돌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일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최우선해야 한다. 가족을 챙긴다고 팔불출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땐 일에 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러나 나이들면서 그것을 깨우치게 됐다. 몇년 전부터 골프 나가는 것도 확 줄였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물론 골프는 재미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골프 중 택일하라면 가족을 택하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네 명. 장모님, 우리 부부, 아들이 전부다. 요즘은 장모님이 외출을 못 하신다.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 겨우 걸을 정도다. 그 전에는 항상 넷이 같이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를 잘 챙긴다. 아주 자상한 녀석이다. 딸을 뺨칠 정도. 아내도 마찬가지. 넉넉하진 못해도 집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 늘 고맙다.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출가하면 내 식구 챙기느라 소홀하기 쉽다.

 

근 형제들과 아주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우리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것. 생전 처음이다. 나의 9번째 에세이집 '오풍연처럼' 출간 기념도 겸한 자리였다. 세종에서 형님, 대전에서 남동생이 올라왔다. 나와 누나, 여동생은 서울, 부천에 각각 산다. 진작 이같은 모임을 가지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나와 누나, 여동생이 대전에 제사지내러 종종 내려갔지만 대전 형제들의 서울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수님과 제수씨가 즐거워 했다. 12시 정각 성북동 누브티스에 모두 모였다. 승용차는 나와 여동생만 가지고 갔다. 차량 두 대로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님이 멋진 점심을 내 놓으셨다. 풍'스 패밀리 메뉴까지 개발했던 것.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누브티스 바로 이웃에 있는 길상사에 들렀다. 서울에서 기를 받을 수 있는 3대 명당 중 한 곳 이란다. 이어 교보문고로 가서 누브티스의 '오풍연 쇼 케이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아내와 형수님, 제수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5남매만 경복궁에 들렀다. 나도 20여년만에 다시 가봤던 것.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경회루와 근정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여의도 산삼골. 오리훈제와 전골을 정말 맛있게 한다. 사장님이 안 계셨지만 직원들을 시켜 복분자 술도 내왔다. 형님과 남동생은 거나하게 마시고 내려갔다. 음력 11월 17일 어머니 제사 때 대전에서 다시 모인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나 역시 뿌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제사는 2010년 1월 1일이었다. 2008년 12월 14일 돌아가셨는데 윤달이 끼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엄숙한 가운데 제가 시작됐다. 맏상주였던 형님이 먼저 술을 부어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차남인 내가 가득 채웠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며 참배를 했다.

 

한 분이 어머님을 ‘작은 거인’에 비유하며 기도를 드렸다. 베풂의 삶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그랬다. 우리 다섯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친․인척 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중심에 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가족 대소사를 모두 챙기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내 대신 할머니 임종을 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군에 입대했다. 놈이 마침 외박을 나와 첫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놈이다. KTX로 상경하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셨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후.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제 녀석도 28살. 머지않아 장가를 갈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나 자신부터 가족을 챙기고,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아들 녀석이 장가는 가겠다고 한다. 만약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도 걱정일 터. 따라서 며느리도 보고, 사돈도 생길 것 같다. 아들은 올해 28살. 언제 갈지는 모르겠다. 3~4년 안에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며느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하다. 우리에게 딸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에게 한 살 위가 가장 좋다고 한다. 말하자면 연상녀. 그래서 29살 먹은 아가씨를 보면 더 유심히 본다. 며느리를 삼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돈될 분들도 궁금하다.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나 말고도 형제가 넷이나 있지만 사돈과도 형제처럼 지내려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사돈은 어렵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 둘 다 사람을 특히 좋아한다. 남도 아닌데, 사돈이면 얼마나 각별하겠는가. 공개적으로 사돈을 모시고 싶다. 장가는 아들이 가는데.


요즘은 미소년들이 인기다. 아주 잘 생겼다. 조각같은 외모를 자랑한다. 텔레비전도 그들이 점령하고 있다. 어떤 채널을 돌리든 항상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지만 입심도 대단하다. 연기력도 뛰어나 기성 배우들을 위협한다. 한국을 벗어나 아시아존에서는 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결혼관도 많이 바뀌었다. 서로 눈만 맞으면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가 서너살 많은 것은 옛말이 됐다. 나이 어린 신랑, 연하남이 추세란다. 여자쪽, 신부가 능력이 있다 보니 남편감을 고른다. 한 두 살 연하남은 적지 않게 본다. 대여섯 살, 심지어 열 살 까지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사랑엔 국경선이 없다더니 나이는 이제 더 이상 장애물이 못 되는 것 같다.


남자들은 연상녀에 대해 관심을 갖곤 한다. 동아리 선배나 누나 친구들이 곧잘 대상이 된다. 그들은 남자 후배들에게 자상하다. 일종의 모성애를 느낀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결혼에 이르기 어려웠다. 집안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연하남이여! 당당한 남편이 되라.


중년들이 고달퍼졌다. 특히 50~60대가 그렇다. 베이비부머 세대도 여기에 해당된다. 70~100세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20~30대 자식도 뒷바라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다들 그와 같이 살고 있다. 고령화, 청년실업 등에 기인한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은 좋다. 부모님이 오래 사신다고 원망할 수 있겠는가. 자식이 취직 못한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자식과 부모로서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자식들의 혼수비용이 부담스럽다. 예전에는 숟가락 두 개만 있으면 결혼을 시킨다고 했다. 전·월세도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단칸 셋방에서 시작을 해도 얼마 안 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요즘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됐다. 부모가 보태주지 않으면 자식이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할 처지다. 세태를 탓할 수만도 없지 않겠는가. 자식 결혼을 위해 적금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특히 아들 둘 이상 둔 부모의 걱정이 크다. 최소한 전셋집을 마련해주려면 목돈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딸 가진 부모는 그래도 낫다. 대학원 박사 과정의 큰아들과 직장에 다니는 둘째 아들을 둔 지인과 점심을 했다. "아들 한 명당 5억원씩 필요한 것 같아요. 강남 전셋값이 매매가와 비슷하더라고요" 10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산층에게는 꿈만 같은 소리다. 그러나 그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난 다행히 아들 녀석을 하나만 두었다. 둘 이상 낳지 않은 것을 가장 잘한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중에 쥔 돈도 없다. 그분의 얘기를 들으니 귀가 먹먹해졌다. 무능한 아버지가 된 것 같아 녀석에게도 미안하다. 대신 "몸만 건강하면 된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실제 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딸 가진 부모보다 아들 가진 부모의 부담이 훨씬 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데 따르면 아들의 결혼 비용이 딸 비용보다 3배 정도 많았다. 아들의 결혼 비용은 평균 1억735만원, 딸의 결혼 비용은 3540만원이었다. 이 비용 중 결혼 당사자인 아들이 직접 부담한 비용은 3496만7000원, 딸이 직접 부담한 비용은 1623만9000원 이었다. 딸의 본인 부담 비용은 아들 본인 부담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는 부모의 몫. 적지 않은 돈이어서 허리가 휠 만하다.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 비싼 예식장 등 허례허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노총각, 노처녀가 많은 것 또한 사회적 낭비다. 게다가 결혼 비용 때문에 딸을 선호하는 현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정백 과장에게는 아버지가 한 분 더 있다. 바로 천운경 할아버지다. 건강보험료를 조정하기 위해 찾아온

  천운경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는 것을 알면서 자주 전화하고, 찾아뵈며 누구보다 끈끈한 부자(父子)의 연을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의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2년 전인 2008년 봄, 천운경 씨는 건강보험료를 조정하기 위해 고양지사를 직접 찾았다. 공공기관 방문이 부담되고 절차를 잘 몰랐던 천운경 씨는 긴장까지 되어 이 과장을 만났다.

 


민원업무를 맡고 있던 이정백 과장은 70세를 훌쩍 넘긴 천운경 씨가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고양지사를 찾아온 것만으로 도 괜히 죄송했다. 그리고 관련 서류를 다시 작성해서 오면 건강보험료를 조정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어르신 주소를 보니 저희 집과 어르신 댁이 아주 가까웠어요. 다음부터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직접 오시지 말고 저에게 연락하면  ‘제가 직접 찾아뵐게요’ 라고 말씀드렸죠.”

천운경 씨는 자식들이 있지만 홀로 사는 것이 편해 혼자 살고 있었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이정백 과장은 그 후로 자주 전화를 드려 안부전화를 드리고,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찾아가곤 했다. 천운경씨가 바깥나들이로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 마음은 고스란히 천운경 씨에게 전달되곤 했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셔서 자주 찾아뵙지 못 했는데 어르신이 마치 부모님처럼 느껴졌어요.”


“저도 이정백 과장이 마치 친아들 같아요.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남을 이렇게 챙겨주겠어요. 일하느라 바쁠 텐데도 전화하고, 찾아와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어려운 분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이정백 과장의 친절함은 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는 일을 하면서 지키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 바로 고객을 상대할 때‘규정이 아닌 마치 내 형제, 가족이 온 것처럼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한 고객은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받은 적이 없어요.” 라며 무엇인가가 싸인 종이를 놓고 갔다.

 

“종이를 펴 보니 목걸이와 귀걸이가 있었어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드릴 것은 없어서 목걸이와 귀걸이를 놓고 간다는 거예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받을 수 없었죠. 나가는 그 분을 뒤쫓아 돌려드린 적이 있어요.”


이런 이정백 과장의 친절함은 경인지역본부의 ‘친절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남다른 특기가 있다. 표정만 봐도 웃기는 익살스런 모습과 재치 있는 말솜씨,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탁월한 유머감각과 레크레이션 자격증 소유, 봉사활동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배운 마술 등을 특기로 공단의 교육과 행사 등에서 행복한 웃음을 더하는 국내 최초 공공기관 전문 MC로 활동하고 있으며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정백 과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공연이 있다. 화상환자 위문공연을 위해 한 병원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아이를 안고 있는 한 보호자가 공연 도중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이정백 과장 역시 진행을 하지 못하고 보호자, 환자와 함께 울었다.


“어려움을 안고 계신 분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웃어주는 것이 공단 직원으로서 해야 할 사명감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소외계층을 찾아 웃음과 감동을 전하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만나는 분들마다 건강보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고요.”

 

이정백 과장은 천운경 씨의 손을 잡았다.

아플 때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보다 건강할 때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것이 건강보험의 고유 목적이라고 말하는 이정백 과장은 천운경 어르신에게 더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식사와 건강을 꼭 챙기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글 / 장애란 , 사진/ 장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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