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2.24 행복해도 괜찮아
  2. 2013.06.10 불평불만과 행복의 상관관계 (1)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미래에는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변을 맴도는 행복을 끌어안지 않았을 뿐 돌아보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가 가득하다.

 

 

         

    

 

 

 

 "당신은 왜 살아가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대부분은 “행복하기 위해서요.”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미래에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삶에 어떤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미래마저도 행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행복에 집착하는 걸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찾듯이, 새들이 하늘을 날듯이, 사람은 저 깊은 속마음에서부터 행복을 추구한다. 그냥 그렇게 설계되었다. 어쩌면 태초에 조물주가 입력한 가장 중요한 유전자 암호가 곧 ‘행복실현의 욕구’가 아닐까?

 

실제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비록 높은 지위와 화려한 명예,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 앞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행복감은 삶의 완성품! 누구라도 행복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행복이야말로 삶의 참된 의미요, 절대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짓궂기 그지없다. 굉장한 실례다. 그저 친한 친구들에게나 할 수 있는 농담이다.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 필자가 이 질문을 던져 보니 선뜻 “맞소. 나는 행복하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보다 대답을 주저하거나 “글쎄요.”라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어찌해서 우리는 ‘왜 사느냐?’는 질문에는 ‘행복하기 위함’이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막상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왜 확연히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미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불행한 일이 적지 않다. 이 지구에는 전 세계 인구 73여억 명이 먹을 수 있는 두 배의 식량이 생산되지만, 아직도 인류의 1/6은 절대빈곤자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질병과 사건, 사고, 전쟁이 늘 끊이지 않는다. 내가 그런 아픔의 당사자일 수 있고, 설령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이와 같을진대 어떻게 내가 선뜻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곧 철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누구라도 위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위 질문은 곧 매우 큰 결례를 범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색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누구라도 행복하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행복을 굳이 말로써 드러낼 필요가 없다. 지극히 당연한 행복을 물어서 무엇하고, 내세울 건 또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내 행복을 꼭꼭 숨기거나 포기할 이유도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나만의 사정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이며 보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표현을 삼갈 수 있지만, 행복감만큼은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행복을 끌어안아야 행복하다

 

어느 날엔가 나는 50대의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몹시 불행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든요.”

“혹시 지금 부인은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난 사람에게 미안해서 행복을 멀리하려는 마음이 아닐까요?”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할 수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본래 행복하지만, ‘행복을 끌어안느냐, 떨쳐내느냐’의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서 곧잘 내 행복을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위대한 우리네 삶은 반드시 내 고집을 꺾고 나를 행복의 물결에 동참시킨다.

 

필자 역시 십여 년 전 사랑하는 혈연을 잃었다.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아니 행복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사는 동안 외로움에 몸부림쳤고 아픔만 겪다가 하늘나라로 가 버린 혈육이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나는 내 행복을 철저히 배격하고 거부했다. 나는 내 마음 둘레에 두꺼운 옹벽을 쌓고 행복의 요소들을 모두 차단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행복은 불과 수개월도 안 되어 내 마음 옹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소리 없이 파고드는 행복의 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토록 불행해지려고 굳게 다짐했지만, 행복의 에너지는 치밀하고 조용했고 거대했다. 나는 행복의 물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내 방어는 무력했고 내 저항은 초토화되었다. 완패! 나는 행복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게 행복이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내 행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사건들 역시 행복 덩어리일 수 있다. 행복하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불행하다는 것은 착각일뿐

 

마음병을 앓고 있는 29살의 한 청년이 말했다.

 

“집에 있는데 자꾸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게 해요. 특히 먹을 것 가지고 그러세요. 배가 불러서 더부룩하고 속이 울렁거리는데도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하시거든요. 왜 이토록 사소한 일로 제 삶이 불행해져야 하는 거죠?”

 

그는 불행한 게 아니었다. 불행의 이유를 붙인 것에 불과했다. 울고 싶을 때 누군가 뺨을 때려 주면 고맙지 않은가. 그는 스스로 뺨을 때릴 수 없었고 핑곗거리를 찾아내었다. 누구라도 불행하고 싶을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댈 만한 일들이 보이면 얼른 그것을 부여잡는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아직 어머님께서 젊으셔서 체력이 좋으시고, 치매도 없으시고 건강하게 살아계시잖아요. 지금의 이런 상황이 곧 행복 아닌가요?”

 

불행감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내가 행복을 멀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불행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혔을 뿐,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의 불행은 결국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그는 불행을 가장하여 행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데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는 타인에게 뺨을 맞을 수도 있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이 온다

 

행복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상대가 불행하다고 주장할 때, 그의 말에 속아줄망정 결코 속지 않는다. 만일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사기와 절도, 폭력, 그리고 그 이상의 범죄일 뿐이다. 설사 누군가가 언어폭력을 휘두를지라도 내가 듣지 않거나,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가까운 사람들의 잔소리라면 ‘자장가로 들리는 사랑의 노래’가 아닐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의 요소가 없는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기대치가 높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마음병이다. 마음병은 마음의 센서를 고치면 된다. 그 방법이 곧 자기수양이다. 성현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자기를 수양하면 바로 해결된다.

 

현실보다 더 많이 바라는 생각이 곧 기대치가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합한다(虛心合道)’라고 하였다. 자기만족의 기대치를 내리는 게 곧 ‘마음 비우기’다. 분수를 잊은 채 남처럼 되려는 마음,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만을 좇는 마음이 문제다. 도(道)란 곧 지극한 행복! 마음을 비우면 본래부터 있었던 지극한 행복감이 즉시 회복된다.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행복을 누리기 위한 투쟁으로도 규정해 볼 수 있다. 선을 추구하는 철학, 사랑과 자비를 실현시킨 종교, 민주화에 대한 열정, 그 모두가 후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선각자들의 치열한 노력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들의 뜻을 따라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선각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먼저 행복하고 그 행복한 에너지를 발판 삼아 다시금 다음 세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더 아름다운 자연을 남겨 주고, 기부문화에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내가 지금의 행복을 거부하고, 또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다시금 그 후대의 누구도 나처럼 따라 한다면 도대체 누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지금 마땅히 행복해야 하며, 기대치를 내려서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

출처 / 사보 '건강보험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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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주변에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은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하지 않을까? 이와 반대로

        불평불만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사람은 과연 어떨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하고,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 그럴까?

 

 

                           

 

 

 

피할 수 없는 불평불만

 

세상이 마냥 행복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둘 중 하나다. 도(道)를 깨달아 세상의 대소사를 초월했거나 아니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걱정과 불안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한 사람은 나름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끝날까봐 불안해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내가 땅을 사면 사촌에게 미안하다. 가진 자는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나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져서 분통을 터뜨린다.

 

어떻게든 우리 마음은 편치 않을 때가 많고 이럴 때 터져 나오는 것이 불평불만이니, 어쩌면 불평불만은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 만드는 불평불만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삶의 고통이 자신의 생각에서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불교와 힌두교를 중심으로 발달한 명상과 수행에서는 생각을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을 없애는 다양한 방식들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원리를 수십 년 전부터는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적극 받아들여서 다양한 방식의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부정적 생각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온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면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뿐 아니다. 불평불만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제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주어도 불평불만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처리하는 경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결국 불평불만이란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부정적 생각을 표출하는 동시에, 주변 사물을 계속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함을 느끼고 하나 둘 떠나버리면 불행의 최고봉에 설 수도 있다.

 

 

 

행복하게 만드는 불평불만

그런데 불평불만을 어느 정도 한 후에는 이내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자신의 기분회복을 위해서 불평불만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많은 학자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심리학자 로빈 코발스티는 걱정을 묶어두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격려한다. 걱정을 늘어놓는 것이 우울증 등 심신의 질병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절하게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자신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끙끙대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탄식이 정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많은 문화권에 존재하는 ‘애가’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눈물과 탄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치유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서양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恨)’이라는 정서가 있다. 우리민족은 한이라는 정서를 노래와 민담, 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기도 했다.

 

 

 

어떻게 불평불만을 해야 하나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기 만들기도 하는 불평불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불만을 하기 전에 불평불만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겠다는 목적이라면 좋다. 다시 말해 여기서 불평불만을 하고 나름의 위로를 받겠다고 결심하고 불평불만을 하면 정화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하는 고백성사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평불만을 잘 받아줄 대상이 필요하다. 고백성사는 사제가 받아주고, 심리상담에서는 심리학자가 받아준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아가도 좋고,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가까운 사람(가족, 친구 등)을 찾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이런 명확한 목적의식 없이, 그리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불평불만은 하면 할수록 고통에서 빠져나기 힘들다. 부정적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더 커지고 구체화된다. 이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떠날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함께 모여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불평불만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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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도한 피터팬 2013.06.10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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