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로(季路)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죽음에 ‘훈수’를 뒀다. “사람이 죽음을 지나치게 공포스러워하는 건 삶이 바르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운 죽음은 하루하루 삶으로 다가온다. 그건 순리, 만물의 이치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순리는 마음으로 오롯이 받는 게 지혜다. 순리에 맞서는 자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벼워야 멀리 걷는다. 가벼워야 지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불경은 일종의 철학이다. 단순히 왕생극락(往生極樂)의 종교적 내세관을 넘어선다. 윤회(輪廻)·색(色)·공(空)·연기(緣起)는 생(生)과 사(死), 만남과 이별의 이치를 담는다. 불교에서 시작과 끝은 대척점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커다란 고리다. 만물은 흐른다. 어느 형상, 어느 본질도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집착하는 색(色)은 결국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주는 공으로만 가득하진 않다. 공은 다시 색으로 형상을 바꾼다. 공과 색은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이다. 인간은 부모를 보내고, 자식을 맞는다. 나는 부모의 자식, 자식의 부모다. 만물은 돌고돈다. 대지는 공평하다. 장자(莊子)는 “천도(天道)는 넘침에서 덜어내 부족한 곳을 채운다”고 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윤회의 고리다. 세상은 고(苦)다.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집(集)은 고(苦)의 뿌리, 색(色)은 잠시 곁에 머무는 형상이다. 돈·명예·권력·인기는 잠깐 유(留)하는 객(客)이다. 오는 객은 반갑게 맞고, 때가 되면 아쉬워도 떠나보내는 게 예(禮)다. 집착을 떨치면 고통도 멸(滅)한다. 큰 깨달음, 즉 도(道)를 걸으면 고통은 가벼워진다. 불교는 도에 이르는 수양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한다. 석가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천명을 다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正念), 바르게 마음을 다스리면(正定) 도에 이른다고 했다. 도는 결국 ‘바르게 걷는 길’이다. 고(苦)의 진리→집(集)의 진리→멸(滅)의 진리→도(道)의 진리는 커다란 고리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윤회다.



 
흐르는 건 강물만이 아니다. 시간도 흐르고, 생각도 흐른다. 흐름을 ‘허무’로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마음을 실어 세상을 가볍게 걷고자 함이다. 이마의 주름을 보고 마음에 주름을 만들기보다 더 큰 덕을 베풀 경륜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다. 인도의 승려 나가르주나는 “욕망은 괴로움의 근본이며 모든 재앙의 뿌리다. 덕이 상처를 입고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고 했다. 포용은 커지고, 아집은 작아지는 게 진짜 연륜이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길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 들었다고 한숨짓는 건 연륜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만물은 변하고,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순간이다. 살아온 날의 후회가 살아갈 날의 꿈을 덮게 하지 말자. 지난 일을 되돌이킬 순 없어도 이 순간 새로 시작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그 일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서는 일, 넓게 보는 일, 답게 사는 일,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일, 지식을 채우는 일, 관용을 키우는 일…. 둘러보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봐달라고 손짓한다. 퇴계 이황은 죽는 날 아침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그는 죽음에 초연했고, 삶도 초연했다.




두려움은 짙은 안개다. 시야를 가리고, 길을 잃게 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고 했다. 삶은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믿음의 싸움이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The One Thing)에는 두려움과 믿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어느 저녁, 한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그 싸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단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그리고 무대책을 가지고 다니지. 다른 늑대는 믿음이지.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행동을 데리고 다닌단다.”
그 말을 듣던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둘 중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순리는 마음으로 받아라. 지는 게 두려워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먹이를 줘라. 세상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떠나야 할 삶의 무대다. 무대는 수시로 주연이 바뀐다. 그래서 새롭고, 그래서 설렌다. 인생이 무대에 비유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듯싶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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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입시 제도를 바꾼다’라는 말은 반향이 크다. 다른 학교들이 슬금슬금 서울대를 따라가서다. 서울대 교수가 성추행을 했다거나, 서울대 로스쿨 학생회가 사시 존치에 반발해 집단 사퇴했다는 뉴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한민국 1등 대학의 일은 소소한 신변잡기라도 얘기가 된다. 학벌에 따라 달라지는 기사의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이게 학생의 자살로 옮겨오면 울림이 좀 달라진다. 지난해 말 서울대생이 몸을 던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중의 반응은 아마 이 즈음일 거다. 그렇게 똑똑한 애가 무엇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제일 좋은 학교 갔는데 왜? 앞으로 미래가 창창한 인재가 도대체 왜? 남들은 그 학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인생의 1막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학생이 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주일 거다.


그래서 언론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에 주목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라는 구절이다. 가져다 박기만 해도 얘기가 되는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이다. ‘흙수저’와 ‘서울대’. 기회는 이때다 싶어 흙수저 서울대생이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손길이 바빠졌다. 서울대생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누구나 부러워 할 학생인데도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구나, 하는 것들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수저론에 반대한 명문대생의 자살’이라는 4마디로 규정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좀더 얘기되게 하기 위해 대통령 장학생이라는 설명도 붙여진다. 플롯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러던 중 유서에 이름이 나온 한 학생의 글을 봤다. 자살한 학생과 학보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 그는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너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한다. 명문대생이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살려는 ‘노오력’을 덜 했다고 훈계를 한다. 언론에서는 이때다 싶어 네 죽음을 수저론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환원시킨다. 널리 퍼뜨리고 싶었을 너의 마지막 말이, 사람들에게는 한낱 가십거리로 소비되어 버린다’라고 적었다.





‘죽음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S가 유언을 널리 퍼뜨리려 한 것은 슬픔을 전염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S는 힘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위로가 돌아가는 세상을 바랐다. 오늘도 내일도 지겹게 살아남을 나는 그의 준엄한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살 것이다’란 그의 해석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S라는 학생이 꿈꾸던 사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 한곳 기댈 데 없는 삭막한 시대에 몸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회복시킬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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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되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 세계 2차 대전.

 이 전쟁을 최악의 전쟁으로 만들어 놓은 중요한 사건은 바로 유태인 포로수용소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했던 포로수용소는 많이 알려진 아우슈비츠였다.  이 수용소를 통해 죽은 유태인들은 250~400만 명(추정)이라고 한다.  그야 말로 죽음의 수용소였다.

 

 이 수용소에서 죽은 유태인의 상당수는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굳이 가스실이 아니더라도 수용소 환경은 죽음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히 열악했다.

 비위생적인 시설, 최악의 식사, 단열과 보온이 전혀 안 되는 숙소 덕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배고픔으로 죽어갔다.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했을 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그곳의 수용소의 유태인 담당 주치의의 이야기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 동안 수용소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중노동이나 음식의 악화, 날씨 및 전염병이 아니었다. 이런 악조건은 늘 존재했다.

 

 빅터 프랭클은 그 원인을 삶의 의미에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많은 이들이 성탄절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가냘픈 희망에 기대를 걸었는데, 성탄절이 지나도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되자 용기를 잃고 실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신체적 저항력까지 떨어져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다...

 

 정말 삶의 의미를 잃는 것과 죽음은 연관이 있을까? 그렇다. 이에 관한 연구도 있다.  

 미국 UC 샌디에고의 사회학자 필립과 동료들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살고 싶은 소망이 실제로 잠시 동안이라도 삶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여성노인의 사망률이 축제일 동안이나 축제일 전에 감소하지만  그 후에 증가하고, 유태인의 경우에도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 전에는 31%나 감소하고 그 후에는 그만큼 증가한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 역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21세인 1963년 소위 루게릭 병이라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1930년대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선수였던 루게릭이 이 병으로 진단을 받고 2년 만에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병은 신체의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근육이 위축되고, 근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이 병의 원인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진행속도가 대체적으로는 빠른 편이어서 대개 수년 안에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븐 호킹 역시 의사로부터 1~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호킹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끊임없는 연구에 몰입했다. 놀랍게도 그는 아직도 왕성한 연구활동과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그의 생존을 ‘우연’으로 돌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약 이것을 우연이라고 하면, 분명 호킹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필연은 삶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의미치료...

 

 빅터 프랭클은 전쟁이 끝나고 정신과 의사라는 본업으로 돌아온 뒤 ‘의미치료

(logotherapy)’라는 새로운 심리치료 이론을 만들었다.  

 

 인간에게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심리적 고통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의미를 찾게 하면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신념은 실제로 효과적이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 수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종교인들과 교사들이 그의 이론을 실천하면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람이란 본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심을 가진 긍정심리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삶을 긍정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이 하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에게 찾아온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의 과거는 어떤 의미인가?...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의미를 찾아보자.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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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2.05.21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요즘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는데,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

  2. 꽃보다미선 2012.05.21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를 찾는다는거 생각보다 어려운거 같아요.
    하루하루 가끔씩 생각해 보지만 여전히 답은 "?" 네요
    ㅎㅎ 좋은글 잘봤어요!

    • 국민건강보험공단 2012.05.21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거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수도 있지만 또 쉬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역활론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삶의 기대하는것 또한 삶의 의미가 될수 있다는 걸 유념을 하시면 답을 쉽게 찾으실수 있을꺼라 믿어요 ^^

  3. +요롱이+ 2012.05.21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너무너무 잘 보구 갑니다..!!
    좌우간..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네요!!
    아무쪼록 이번한주도 힘찬 한주 되시기 바랍니닷..!!

  4. 아레아디 2012.05.21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한주의 시작이군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셔서!!
    성과있는 하루 되시길 바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금융연합 2012.05.21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많은 이들이 삶과 죽음을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둘이 언제나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난다.

  삶을 보다 행복하고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너무 당연한 명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같다

 

 평생을 자동차 정비사로 살아온 카터(모건 프리먼 분)과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재벌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악성 뇌종양 때문이었다.

 

 이 둘은 사실 악성 뇌종양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게 되었다는 것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흑인과 백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과 혼자인 사람.

 

 이 두 사람은 그 동안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정도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둘은 인생의 마지막에서 만났다.

 바로 죽음의 목전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살아간다.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면서 상대를 부러워하거나 무시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다. 모두들 태어날 때로 빈 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 손으로 간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모두 동일하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

  

 카터는 침상에서 몇 가지를 적는다.

 그것은 바로 버킷리스트(Bucket List)다.  ‘죽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의 속어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말로,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은 목록을 의미한다.

 

 이를 알게 된 에드워드는 가진 것이 돈 밖에 없는지라, 그것을 모두 해보자고 제안한다. 병원 침대에서 죽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든 어차피 죽을 거라면 후자가 낫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장관(壯觀) 보기 등 하나씩 하나씩 버킷 리스트를 지워나간다.

 

 

 많은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혹은 과거의 실수를 회복하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한다.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과거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면서 고군분투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암묵적 가정이 있다. 자신은 지금 당장 죽지 않을 것이라는. 하지만 정말 이 가정이 맞을까?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죽을 시점을 알 수 없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차라리 병을 얻어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며칠이나 몇 주, 몇 개월이나 몇 년의 인생이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몸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나 실존주의 심리치료자들은 한 결 같이 말한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빛을 지각하는 이유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불행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불사(불노)와 영생을 꿈꿔왔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큰 숙제다.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다.

 그러나 죽음이 주는 이득도 만만치 않다.

 

 죽음이 없다면 그 누가 오늘을 열심히 살까? 죽음이 없다면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면에서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일지 모른다. 

 마치 죽음 앞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얻었던 영화의 두 주인공처럼 말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시간은 오늘, 아니 오늘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잡아라(현재를 즐겨라)는 의미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자.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검색 "버킷리스트 -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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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2.04.23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킷리스트라...
    저도 한번 작성해봐야겠는데요!? ㅎ

  2. Hansik's Drink 2012.04.23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보고 간답니다~ ㅎㅎ
    새로운 한주가 다시 시작되었네요~
    오늘 하루 힘차게 시작해보세요~ ^^

  3. +요롱이+ 2012.04.23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게 너무 잘 보구 갑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네요~
    이번주도 알~찬 한주 되시기 바래요..^^

  4. 아레아디 2012.04.23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요일이군요!!
    개인적으로 힘이 쫌 빠지는 월요일인..ㅠ
    그래도 화이팅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5. 아레아디 2012.04.24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즈음은 아침도 별로 안춥고 상쾌하네요!
    날씨만큼이나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저희 아파트 단지 앞에는 할머니께서 항상 앉아 계십니다. 뻥튀기를 파시는 것이죠. 몸집도 조그맣고 얼굴도 아주 곱게 늙으셨어요. 한 80세로 접어드신 것 같아요. 젊으셨을 때는 참으로 미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오는 날만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셔서 앉아 계시는 겁니다. 일요일에도….

제가 시간만 나면 가서 할머니께 뻥튀기를 사오곤해요. 여름에는 더우니까 시원한 음료수라도 갖다 드리곤 한답니다.

 

제가 묻죠  "할머니 힘드신데 집에서 쉬시지 왜 나오셔서 고생하세요? "

 

  그럼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나마 건강할 때 나와서 천 원이
  됐든 이천 원이 됐든 뻥튀기를 팔아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보람이 있어. 사는 맛이 나"
 
하시는
  겁니다. 차으로 할머니께서는 자신 스스로 열심히 사실려는 모습이 나의 나태한 사고방식을 채찍질해 줍
  니다.


제가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쉬기 때문에 종종 시간이 되면 쪼르륵 과일 음료수를 좀 싸들고 할머니께 마실을 갑니다. 할머니 옆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인생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더 열심히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머리에 새겨집니다.

언젠가는 할머니께서 보이지 않길래 걱정이 되더라고요. 어디가 아프신가, 아님 방정맞은 얘기지만 혹 돌아가신게…, 별생각이 다 들었답니다. 할머니 가게, 뭐 가게라고까지 할 수 있나요? 큰 도로변 옆 인도길에 할머니 낡은 의자 하나 있는 게 전부거든요. 지나갈 때마다 할머니 의자만 초라하게 있는 걸 보고 걱정이 많이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께서 다시 보이시는게 아닙니까? 얼마나 기뻤는지 저는 할머니께 다가가 왜 그동안 안나오셨냐고하니까 며칠 아파서 누워있었다고 하시더군요. 늘 건강하셔서 그 자리에 변함 없이 항상 앉아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오늘도 지나가면서 할머니께 묻습니다. 할머니 오늘 뻥튀기 많이 팔았어요? 곧바로 할머니의 말씀이 내 귓전을 때립니다. 


"오늘은 뭐 한개도 못 팔았어, 내일은 좀 팔릴려나… " 하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내일의 희망이 엿보입니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


최미향/ 대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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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수 2010.10.02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게 인생 사는 맛인 갓 같아요.^^
    ㅎㅎㅎ 불타는 주말 보내시길...

  2. 레오 ™ 2010.10.02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하신 분이시군요 ^^

  3. 굄돌 2010.10.03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한 처자이시네요.
    복 받으시겠어요.
    서로 서로 보듬고 살아야지요.
    등이 되어주고 어깨가 되어주며....

  4. 탐진강 2010.10.03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훈훈한 이야기네요.
    집에서 노는 것 보다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 좋긴 하겠네요

  5. 엉클 덕 2010.10.06 0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 항상 건강하세요.... 따듯한 글에 많은 여운이 남네요.

  6. 정민파파 2010.10.06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을이면 야외로 아이와 함게 나들이는 많이 하는데..
    주의를 해야 겠네요.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분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7. repair iphone 2011.06.13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도 또 좋은 글 기대 할께요. 퍼가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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