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스리랑카의 허준   한규언

  한의학을 스리랑카에

 

 

 

 

 

 

 

 

 

 한규언은 1956년에 태어나,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Ethiopia), 알바니아(Albania) 그리고 라오스(Laos) 등지 에서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2004년 KOICA(한국국제
력단) 정부파견한 의사로 스리랑카(Sri Lanka) 콜롬보 보렐라의 국립 아유르베딕 교육병원(National Teaching Hospital of Ayurveda)에 부임하였습니다.

 

 정부파견한의사 제도가 2008년에 끝나자 아쉬웠지만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리랑카 정부는 현지 보건의료 환경개선 및 국민건강증진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그의 재 파견을 수차례 요청했으며,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등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계속 의술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의사 한규언은 정부파견한의사로 활동하면서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료봉사활동과 우리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였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역할로 한국 한의학 이론에 근거하여 침 치료를 하는 스리랑카인 침의사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부임하면서 스리랑카 국립 아유르베딕 교육병원에 클리닉을 설립하고 한의학에 관심이 있는 스리랑카 인 전통의사를 대상으로 침구학 교육과정을 운영해왔습니다.

 

 특히 2005~2008년 사이 그가 직접 훈련 육성한 스리랑카 전통의사 36명을 중심 으로 ‘스리랑카 침구의료 봉사단’을 조직하여 한의의료시술의 현지화와 토착화를 일궈냈습니다.  또한 2008년에는 4기 수료자 19명의 전통의사들에 대해서 스리랑카 전통의학부 아유르베딕 청장이 수료증을 인증함으로써, 텃세 심했던 그곳에 한국 한의학을 국가 제도화하는 개가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는 근무 기간 4년 동안 약 8만 천여 명에 이르는 환자를 진료하였고, 분기에 한 번씩 지방 순회 무료 봉사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저녁식사 일찍하기, 소금 섭취 줄이기 등 식생활 개선 건강 증진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2005년. 그는 사상의학과 체질 침을 포함하는 한의학 침구서적《Acupuncture in Oriental Medicine》을 영문으로 저술하여 한국침구학의 우수성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저서를 통해 영문으로 사상의학 이론과 체질 침을 소개했으며, WHO(세계보건기구) 발행 표준 경혈명칭 규격집의 용어를 사용하고 한국식 영어 명칭을 우선 표기했습니다. 이 저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스리랑카 정부에서 발행하는 전통의학 전문학술지 《아유르베다탐구(Ayurveda Sameekshawa)》 2010년 10월호에 한국 침을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중국의학의 아류라 인식되던 한의학의 가치와 위상을 널리 알렸습니다.

 

스리랑카의 《아유르베다》는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전래되고 있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 건강과 장수의 방법으로 요가와 자연 식이요법, 오일마사지, 약물요법 등을 처방하는 전통의학 체계를 일컫습니다.  한국의《동의보감》인 셈입니다.

 

아유르베딕 교육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받는 전통의사들도 한의학 교육과 실습에 참여하면서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의 접목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전통의학병원 소속의사 및 콜롬보대학교 전통의과대학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의학의 특징, 양의학과 한의학, 음양이론, 침술의 요소 등 침구 경혈학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리고 전통의학병원 인턴 및 콜롬보대학교의과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실습을 실시하였습니다.

아유르베딕 의사들을 위한 수료증 수여식 관련기사

 

스리랑카 사람들은 손을 제대로 씻지 않기 때문에 피부병, 배탈, 설사 등이 자주 발생하였고, 살생을 금하는 불교적인 전통 때문에 모기를 잡지 않아 뎅기열이 만연하였습니다. 모기를 잡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웃으면서 쫓을 뿐이고, 그가 손바닥으로 모기를 잡을라치면 웃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혈압, 당뇨, 비만과 같은 성인병도 심각하였습니다.

 

 스리랑카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의학은 종족과 밀착한 3가지 부류가 있어 늘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 왔습니다. 북부인도와 남부인도 그리고 아랍에서 전파된 전통의학입니다.  

 

 그들의 전통의학은 인류 4대문명의 하나인 인더스문명의 일부로서, 전통의학을 전담하는 장관을 따로 둘 정도 로 전통의학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리랑카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150년가량 씩, 450년간 경험한 나라이기 때문에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2006년 그들의 민족해방전선 열기는 거셌습니다.

 

  민족해방전선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시각에서는 한규언의 한의학 진료가 지금은 무료이지만, 언젠가는 스리랑카 국민들 모두가 필요로 하게 되면 비싸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차가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오랜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 사람들의 당연한 조급증이었습니다.  그가 귀국을 고심할 정도로 민족해방전선의 압박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마침내 KOICA의 중재 아래 스리랑카 전통의학 대표, 민족해방전선 대표, 한국의 한규언 그리고 그에게 침구학을 배운 제자 대표가 모여 타협안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한약처방은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침 시술에만 주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사활동이 침 시술로 제한된 다음에 그의 능력과 한의학의 우수성은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였습니다. 그의 활동이 다소 위축된 지 6개월가량 지난 때였습니다.

 당초 한의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민족해방전선에서 파견된 병원관리가 갑작스레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호소하면서 다급하게 그에게 진료를 의뢰하였습니다. 진료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있었습니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딸꾹질을 심하게 하여 본인은 물론 주위사람들조차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한 환자가 그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치료해주자 이 환자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의 제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침술로 딸꾹질인 흘역을 치료해주었는데, 치료받은 환자 한 명이 한의학 침구과정을 교육받았던 침의사가 근무하던 병원의 병원장에게 한밤중에 고맙다는 전화를 해서 병원장이 침구과정에 등록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2008년 9월에는 침구학과정 수료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체인 SAMST(Sri Lanka Acupuncture Medical Service Team)을 구성, 지방순회 진료를 실시했으며, 스리랑카 전통의학부의 요청으로 벽지 순회 진료에 나섰습니다.

 

 

스리랑카 중부 내륙 팔레깰레 지역에서의 지방 순회 진료모습

 


 2009년 타밀반군과의 26년간에 걸친 내전이 종식되면서 전후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북부지역에서 전통의학 분야에서의 병원보수와 신축사업이 강화되었고, 병원에 부속된 식물원이 새롭게 개원되었고, 제약회사가 설립되었으며, 서양의학과 전통의학의 협진시스템이 스리랑카 최초로 시도 되었습니다.

 

 

 

이제 한의사 한규언에게 스리랑카는 떠날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스리랑카의 환자들을 생각하면 그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허준의 후예로서, 스리랑카 환자를 치료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오래도록 드높일 것입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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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인배닷컴 2011.09.16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이 포스팅 보면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걸 알 수가 있네요. :)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2. 불탄 2011.09.16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덕분에 한규언 한의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네요. ^^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스리랑카의 허준  이상호

   아름다운 촛불

 

 

 

 

 

 

 

 

 

  보우머 이쓰뚜띠, 마터 고닥 싼또레이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스리랑카(Sri Lanka) 사람들이 그에게 전하는 영원한 인사말입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 말하고,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그는 한국과 스리랑카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한의사 이상호.

1968년에 태어나,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한의사로 인술을 펼치다가 2004년 7월 8일 새벽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 트링코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그곳에서 하루 100~200여 명 에 달하는 환자들을 보살피느라 누적된 피로가 뼈아픈 요인이었습니다.
그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3년 스리랑카 콜롬보의 보렐라 교육병원에 정부파견한의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장마비로 순직하였으니, 1년 3개월간 그의 꿈을 뜨겁게 펼친 셈이었습니다.

 

이 슬픈 소식이 매스컴을 탔을 때,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행적을 깊이 새겼습니다.
한의대 본과 시절, 다일공동체에서 한의사인 아내 황경선과 함께 주말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젊고 촉망받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시절, 학교에 남아달라는 부탁이 이어졌지만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거웠습니다.

 

2001년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단원으로 스리랑카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날씨는 더웠고 몸은 피곤했지만 당시의 감동은 여느 때의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2002년 다시 스리랑카에 왔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한의학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자기 인생에 큰 보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는 정부파견한의사에 지원했습니다.

 

 

 

 

  다음은 정부파견한의사 지원 동기서의 내용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재능을 통해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리라 확신한다.

 

나와 나의 아내는 한의사이다.

의료는 다른 직종에 비해 그 특성상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직업이고 직종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의료봉사에 관심이 있었고, 본과 3~4학년 때는 다일공동체(청량리소재)에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주말 무료봉사를 했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경희의료원 한방재활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 때(2000년 11월), KOMSTA의 일원으로 스리랑카로 해외의료봉사를 가게 되었다.

 

날씨는 더웠고, 피곤한 몸으로 많은 환자를 보았지만, 잠시 스쳐가는 일회성 봉사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때의 감동은 여느 때의 봉사에서 느꼈던 것 이상이었다. 이듬해 다시 한 번 스리랑카로 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왔으며, 나는 2번의 스리랑카 의료봉사를 통해 이곳에서 내가 가진 의술, 한국이 한의학으로 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큰 보람이며 아울러 영광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의료봉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한의학을 세계화시킨다는 것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배우고 익힌 의학지식이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의학적인 도움이든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든지 간에……)

 

아내와 함께 고민하며 결정한 것이 있다. 그것을 지킬 수 있을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은 60세 이후부터는 full time으로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며 살자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시기를 조금 앞당겨 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이웃을 위해 살지 못한다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한번 살아 보자는 것이 지금 나와 나의 아내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스리랑카 정부파견한의사에 지원한다.


대학에 남아 한의학 이론을 세워 존경 받는 교수가 되어도, 한의원을 개원하여 이웃을 도우면서 명예를 쌓아도 될 터인데, 그는 자신을 태워 주위 를 밝히는 촛불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습니다.의서 《의방유취醫方類聚》에서 강조하는 ‘환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는 인술을 태생적으로 갖춘 아름다운 한의사 이상호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을 이렇게 다독였습니다.

 

배우고 익힌 의학지식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돼서는 안 되며,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이웃을 위해 베풀며 살고 싶다.    가난한 자가 가장 서러울 때는 제대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때이다.

 

그는 스리랑카의 전통의학을 존중하는 아유르베딕(Ayurvedic) 교육병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부속 종합병원 같은 곳입니다. 곳에서 진료실 설치, 진료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유르베딕 의사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고 병원에 개설된 Korea Clinic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하였습니다.

 

경혈침구학 기본과정을 만들어 1기생 10명을 배출했으며, 2기생 18명을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구하기 힘든 약재들이 많았으나, 홀로 돌아다니며 구했습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도 참기 힘들었고, 불규칙한 전력공급에다가 의료기기도 지원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늘 환하게 웃었습니다. 자녀교육에도 빠듯한 월급이지만, 아내 그리고 1남 1녀의 자녀와 너무나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주위에서는 뭔가 이룩하려 하지 않고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라고... 그를 그렇게 기억했습니다.

2005년 제33회 보건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했습니다.

신앙인이었던 그는 훈장을 받으며 생전에 하던 말 처럼 이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그냥 삶입니다. 나를 낮추기만 하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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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돌이^^ 2011.08.12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사가 아닌 그냥 삶이라고 하신 부분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soybbay 2011.08.12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듯요.. 저라면 절대 못할텐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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