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에 사는 한 젊은이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서 대도시 걸음걸이를 배웠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 걸음걸이를 채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마저 잊었다네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엉금엉금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 갈 수밖에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습니다. 남의 길이 멋져 보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키가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 길을 주춤거리고, 남의 떡을 넘보고, 발끝으로 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들은 늘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발끝으로 걷지 말라’고 합니다. 발끝으로 걸으면 키는 좀 커보이겠죠. 한데 그런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몇 보나 걷겠습니까. 이치에 어긋나는 건 대개 그 끝이 흉합니다. 누군가 ‘삶은 주막’이라고 했습니다. 비유가 참으로 맛깔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입니다. 정거장은 출발점이자 도착지이고, 길이 갈리는 교차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갈림길에서 서성댑니다. 확신이 부족해서 머뭇거리고, 못가는 길이 아쉬워 되돌아보고, 남의 길이 좋아보여 곁눈질을 합니다. 당신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그도 그렇습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비뚤어 풀어보면 인간은 모두 ‘방황하는 동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걸음걸이가 최고입니다. 당신의 스타일, 당신의 꿈이 제격입니다. 그게 바로 당신 삶이기 때문입니다. “밝음을 가리고 가려서 나의 갈 길을 그르치지 마라. 내 가는 길 물러났다 돌아갔다 하며 나의 발을 다치지 않게 하라.”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길을 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마 그건 거짓을 걷어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자문해봅니다. 어둠이 밝아지고, 좁음이 넓어지고, 작은 앎이 큰 앎이 되는 게 참된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길에는 자연의 길(天道)이 있고, 사람의 길(人道)이 있다. 억지 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길이고, 억지로 번거로워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자연의 길이 군주이고, 사람의 길이 신하다. 그런데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자≫ 재유편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장자는 “천도는 남는 데서 덜어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인도는 부족한 곳에서 빼앗아 넘치는 곳을 더 넘치게 한다”고 꼬집습니다. 저에겐 이익만 좇아가는 소인배들을 겨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로 들립니다. 속세와 너무 뒤섞으면 길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길이 더 흐려집니다. 장자는 “세상은 길을 잃고, 길은 세상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돈에 얽매인 자, 명예를 좇는 자, 권세에 매달리는 자가 세상에 넘쳐난다는 한탄으로 들립니다.





속세를 사는 인간이 속세를 등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삶이 반드시 고상한 것도 아닙니다. 장자는 백이숙제의 정절을 높이 사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것도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매인 삶에도 따끔한 경계의 시선을 보냅니다. 장자는 세상사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고 합니다. 의연히 가고, 의연히 오라고 합니다. 삶을 받아도 기뻐하고, 삶을 잃어도 그러라고 합니다. 어려운 주문입니다.


세속에 너무 밝으면 삶이 고달픕니다. 눈이 너무 밝으면 시야가 흐려지고, 귀가 너무 밝으면 소리가 흐려지고, 탐심이 너무 밝으면 마음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길을 잃습니다. 세속에서 조금 거리를 둬보십시오. 그럼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지도, 남의 키가 높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 떡이 맛있고, 내 걸음으로 편히 걷습니다.





삶의 소소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삶의 자잘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당신입니다. 그 선택들이 쌓여 내일이 되고, 내일의 당신이 됩니다. 선택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 삶에 조언가는 많습니다. 그래도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당신입니다. 누구도 당신 삶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왕이면 이웃과 더불어가는 길, 당신의 자아가 빛나는 길, 더 풍요로워지는 길을 걸어보십시오. 누구나 잠시 빌려 걷는 길입니다. 답답하고 좁은 길에서 헤매지 말고, 당신만의 큰 길을 걸어보십시오. 당신 삶에 응원자는 참으로 많습니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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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골치 아픈 일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내게 예외적이고 놀라운 경험이 있다. 

 

1993년 여름이었다. 느닷없이 금융실명제가 발표됐다. 증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갖고 있던 주식이 폭락한 것이다. 이때 나도 모르게 글을 끄적였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듯 싶다. ‘당장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힘들지만 나중에는 이 상황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괴로운 마음도 표현했다. 주식 상품에 들라고 강권한 회사에 대고 욕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도 썼다.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신기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화가 삭여졌다.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위암 선고를 받은 날도 그랬다. 분노와 원망을 폭풍 같이 써 갈겼다. 다음날에도 썼다. 그럼에도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쓸 것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셋째 날에는 저절로 회개하는 글이 나왔다. 참회의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이렇게 잘못한 게 많은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두 시간여 글을 썼을까. 암 덩어리가 모두 씻겨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돌아보면, 그 이전에도 힘들 때마다 글을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칠판에 시를 썼다. 친구들이 저녁 먹으러 간 시간에 시 같지도 않은 자작시를 한 편씩 써놓았다. 무슨 생뚱맞은 짓이냐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암울한 고3 현실에 관한 고발이고 투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군에 있을 때는 아예 일기를 썼다. 30개월 간 쓴 일기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를 보냈구나. 위로가 되었다. 나에 대한 힘찬 격려였다. 

 

 

 

 

애써 외면해왔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직시하는 데 있다. 회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글쓰기는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자신과 대화하게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풀린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미움, 시기, 질투, 배신, 욕망의 금기어들이 그것이다. 이들을 꽁꽁 동여매지 않고 글로 풀어헤치자. 그랬을 때 순화되고 정제된다. 내가 그로부터 해방된다.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다독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게 한다.

상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로 아물지 않는다. 그것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괜찮아’ ‘잘했어’ ‘누가 그랬어? 혼내줄게’ ‘잘될거야’ 나는 요즘도 과거에 썼던 내 글을 보며 또 위로를 받는다.

 

걱정, 근심, 슬픔을 떠나보낸다.

치열한 글쓰기는 이런 감정들을 불태워 날려 보낸다. 진짜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것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까짓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를 발견하게 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희망을 본다. 주변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한다.  

 

지금 당장 글을 써보라. 몸과 마음과 인생을 치유하는 경험이 거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종이와 펜, 그리고 솔직한 영혼뿐이다. 

 

글 /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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