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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3 "이 죽일 놈의 의사"라고 하지만... (6)

 1983년부터 만 10년간 방송된 KBS TV의 토크쇼 ‘사랑방 중계’는 당시 안방극장 의 맹주였다.

  오락과 교양을 적절히 아우른 이 프로그램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MC를 봤던 아나운서 원종배 씨도 각광을 받았다.
 한때 스타 MC의 대명사였던 원 씨가 공중파 방송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가 암에 걸려서 투병하고 있다는 풍문이 나돈 적이 있어서 더욱 궁금했다.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원 씨의 아내(김영빈 갤러리 ‘시몬’ 관장)에게 연락을 해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원 씨는 한 대학의 연기예술학과 겸임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는데, 토․일요일에만 나가는 것이라서 청취자들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올해 57세인 원 씨의 얼굴은 젊은 시절에 비해 투실해졌으나 선량해 보이는 특유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에게서 중병에 걸렸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지만, 그는 소문대로 지난 3년 동안 암 투병을 해 왔다고 말했다.

 2008년에 방광암을 발견했을 때 4기였다고 한다.

 의사가 그의 아내에게 ‘앞으로 2년 정도 살 거 같으니 준비하라’고 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암 치료 과정을 다 견뎌내고 완치 단계로 가고 있다. 

 

“지금도 병원을 계속 다니며 3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긴 하는데,  주치의가 자기가 그동안 봤던 임상 사례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고 해요.”

 

 그는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낙관적 생각으로 힘든 치료 과정을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투병 생활을 세세히 전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 담담하기만 해서 마치 수도자의 수행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원 씨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이야기도 할 필요가 있어요. 의사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오진에 관한 이야기는 꼭 해야 해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원 씨의 얼굴을 쳐다보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이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전제하면서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자신의 병이 의사의 오진 탓에 커졌다는 것이었다.   


 “암 발견 3년여 전쯤 소변 상태가 좋지 않아 어느 대학병원을 찾았더니 전립선 비대 때문이라며 그 치료만 했습니다.

  3년 여 간 전혀 차도도 없었어요. 제가 생활이 불편하니 수술을 하자고 했지요.

  담당의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크기라고 했지만 결국 전립선 비대에 따른 수술을 하게 됐죠.......

 

  그런데 마취에서 깨자마자 의사가 암이 발견됐다며 CT를 찍어서 결과를 본 후에 또다시 수술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다행히 악성 종양이 임파선까지는 발전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당혹감이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 씨는 그 병원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자료를 다 받아서 지금 치료받고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재검진 결과, 임파선에서도 큰 종양이 발견됐고 수술보다는 항암치료가 더 먼저라고 해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그전 병원의 의사 오진 때문에 4년 동안 암을 키워 온 것이지요. 그때 임파선에 종양이 없다고 생각해 바로 수술부터 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지요. 4기가 되기 1년 전에만 발견했어도 훨씬 가벼웠을 텐데….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2, 3차 검진을 더 받아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 씨처럼 의사의 오진 탓에 병을 키웠다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측에선 “이 죽일 놈의 의사가…”라는 막말을 쉽게 내뱉는다. 
 오진이 아니라도 환자들이 의사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가 심드렁해서 도무지 자신의 병을 정성껏 치료해주지 않는 듯싶다는 것이 그 불만의 고갱이다.  

 

 이런 불만을 지닌 사람들은 의사와 환자의 오진 시비가 붙었을 때 아무래도 의사 쪽을 불신한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정성이 부족한 탓에 병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의사의 오진과 불성실에 대한 불만은 의료 현장의 소통이 미흡한 탓이다.

 의과학이 첨단으로 발전해가고 있는데 왜 환자와 의사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불신이 늘어나는 것일까?

 

 

 정도언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실 교수는 최근 출가된 책 ‘의사들의 편지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태학사 발행)를 통해 그 원인을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첨단 진료법이나 전자의무기록 등이 환자와 의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의사가 새로운 기기를 이용한 첨단 진료법을 활용하면서 환자에게 자세하게 질문을 하던 문진(問診)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고, 전자의무기록의 도입과 함께 환자와 의사가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며 의사가 환자에게 공감하고 정서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을 피한 채 ‘방어진료’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송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질병에 대한 정보를 의사 뿐 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공유하는 세상이 되다보니까 환자들은 의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 뿐 만 아니라 환자가 의사를 틀린 진단이나 잘못된 치료로 고소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의사가 환자를 두려워해서 원활하게 소통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것이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의료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정 교수는 그럼에도 “의사는 환자를 돕는 교육과 훈련을 여러 해 동안 받은 사람으로서 환자를 선의로 도와야 한다는 의료현장의 진리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에 200회 특집을 한 EBS 메디컬 다큐멘터리 ‘명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비친 의사들의 모습이 모두 그들의 실체라고는 할 수 없다.

 시청자들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당위로 꾸며진 이야기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가리거나 다 드러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의사들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새삼 알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인 안선효 씨는 가까이에서 지켜 본 ‘명의’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본 명의의 모습은 때론 냉철했고, 때론 따뜻했습니다. 큰 수술 앞에서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예기치 못한 응급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떠난 보낸 환자를 걱정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환자들을 만나면 걱정스런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하고 완고한 마치 ‘한국의 아버지들’ 같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명의’는 단순히 병을 잘 고쳐서 이름난 의사일 뿐 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대한 소명감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성심(誠心)을 지닌 사람이다. 이름이 나서 명예를 누리고 그것을 돈벌이에 활용하겠다는 얄팍한 셈을 하는 이가 진정한 명의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다. 의사들 중에 진정한 명의가 되겠다는 이가 많을수록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의 불만이 줄어들 것임은 틀림없다.
 
 앞에 언급한 책에서 정도언 교수는 “의사는 환자를 위해 말을 하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한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의료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의사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말과 글을 절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의사들의 이런 고충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 것이다.  아픈 사람이 의사의 사정을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의사를 무조건 불신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손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도 있다. 나쁜 의사가 아니라고 판단이 된다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환자 자신에게 좋다는 것은 수많은 임상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에 바탕을 둔 원활한 소통이 의료 현장의 희망을 낳는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의사의 오진이 자신의 병을 키웠다고 믿는 방송인 원종배 씨는 암 말기를 극복해가는 으뜸 비결로 “의사가 하자는 대로 전적으로 따랐다”는 것을 들었다. 원 씨의 경험으로만 보면, 모든 의사들을 불신할 법도 하건만 그는 새로 만난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항암 치료에 임하고 수술을 받았다. 스스로 나을 수 있다는 낙관적 생각에 의사의 성심을 보태서 암을 극복해가는 희망을 일군 것이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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