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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4 행복해도 괜찮아
  2. 2013.02.14 세계속의 ‘코리안’…꿈꾸고 도전하라 (2)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미래에는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변을 맴도는 행복을 끌어안지 않았을 뿐 돌아보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가 가득하다.

 

 

         

    

 

 

 

 "당신은 왜 살아가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대부분은 “행복하기 위해서요.”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미래에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삶에 어떤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미래마저도 행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행복에 집착하는 걸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찾듯이, 새들이 하늘을 날듯이, 사람은 저 깊은 속마음에서부터 행복을 추구한다. 그냥 그렇게 설계되었다. 어쩌면 태초에 조물주가 입력한 가장 중요한 유전자 암호가 곧 ‘행복실현의 욕구’가 아닐까?

 

실제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비록 높은 지위와 화려한 명예,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 앞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행복감은 삶의 완성품! 누구라도 행복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행복이야말로 삶의 참된 의미요, 절대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짓궂기 그지없다. 굉장한 실례다. 그저 친한 친구들에게나 할 수 있는 농담이다.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 필자가 이 질문을 던져 보니 선뜻 “맞소. 나는 행복하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보다 대답을 주저하거나 “글쎄요.”라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어찌해서 우리는 ‘왜 사느냐?’는 질문에는 ‘행복하기 위함’이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막상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왜 확연히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미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불행한 일이 적지 않다. 이 지구에는 전 세계 인구 73여억 명이 먹을 수 있는 두 배의 식량이 생산되지만, 아직도 인류의 1/6은 절대빈곤자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질병과 사건, 사고, 전쟁이 늘 끊이지 않는다. 내가 그런 아픔의 당사자일 수 있고, 설령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이와 같을진대 어떻게 내가 선뜻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곧 철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누구라도 위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위 질문은 곧 매우 큰 결례를 범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색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누구라도 행복하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행복을 굳이 말로써 드러낼 필요가 없다. 지극히 당연한 행복을 물어서 무엇하고, 내세울 건 또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내 행복을 꼭꼭 숨기거나 포기할 이유도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나만의 사정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이며 보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표현을 삼갈 수 있지만, 행복감만큼은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행복을 끌어안아야 행복하다

 

어느 날엔가 나는 50대의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몹시 불행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든요.”

“혹시 지금 부인은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난 사람에게 미안해서 행복을 멀리하려는 마음이 아닐까요?”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할 수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본래 행복하지만, ‘행복을 끌어안느냐, 떨쳐내느냐’의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서 곧잘 내 행복을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위대한 우리네 삶은 반드시 내 고집을 꺾고 나를 행복의 물결에 동참시킨다.

 

필자 역시 십여 년 전 사랑하는 혈연을 잃었다.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아니 행복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사는 동안 외로움에 몸부림쳤고 아픔만 겪다가 하늘나라로 가 버린 혈육이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나는 내 행복을 철저히 배격하고 거부했다. 나는 내 마음 둘레에 두꺼운 옹벽을 쌓고 행복의 요소들을 모두 차단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행복은 불과 수개월도 안 되어 내 마음 옹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소리 없이 파고드는 행복의 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토록 불행해지려고 굳게 다짐했지만, 행복의 에너지는 치밀하고 조용했고 거대했다. 나는 행복의 물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내 방어는 무력했고 내 저항은 초토화되었다. 완패! 나는 행복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게 행복이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내 행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사건들 역시 행복 덩어리일 수 있다. 행복하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불행하다는 것은 착각일뿐

 

마음병을 앓고 있는 29살의 한 청년이 말했다.

 

“집에 있는데 자꾸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게 해요. 특히 먹을 것 가지고 그러세요. 배가 불러서 더부룩하고 속이 울렁거리는데도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하시거든요. 왜 이토록 사소한 일로 제 삶이 불행해져야 하는 거죠?”

 

그는 불행한 게 아니었다. 불행의 이유를 붙인 것에 불과했다. 울고 싶을 때 누군가 뺨을 때려 주면 고맙지 않은가. 그는 스스로 뺨을 때릴 수 없었고 핑곗거리를 찾아내었다. 누구라도 불행하고 싶을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댈 만한 일들이 보이면 얼른 그것을 부여잡는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아직 어머님께서 젊으셔서 체력이 좋으시고, 치매도 없으시고 건강하게 살아계시잖아요. 지금의 이런 상황이 곧 행복 아닌가요?”

 

불행감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내가 행복을 멀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불행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혔을 뿐,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의 불행은 결국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그는 불행을 가장하여 행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데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는 타인에게 뺨을 맞을 수도 있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이 온다

 

행복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상대가 불행하다고 주장할 때, 그의 말에 속아줄망정 결코 속지 않는다. 만일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사기와 절도, 폭력, 그리고 그 이상의 범죄일 뿐이다. 설사 누군가가 언어폭력을 휘두를지라도 내가 듣지 않거나,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가까운 사람들의 잔소리라면 ‘자장가로 들리는 사랑의 노래’가 아닐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의 요소가 없는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기대치가 높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마음병이다. 마음병은 마음의 센서를 고치면 된다. 그 방법이 곧 자기수양이다. 성현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자기를 수양하면 바로 해결된다.

 

현실보다 더 많이 바라는 생각이 곧 기대치가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합한다(虛心合道)’라고 하였다. 자기만족의 기대치를 내리는 게 곧 ‘마음 비우기’다. 분수를 잊은 채 남처럼 되려는 마음,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만을 좇는 마음이 문제다. 도(道)란 곧 지극한 행복! 마음을 비우면 본래부터 있었던 지극한 행복감이 즉시 회복된다.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행복을 누리기 위한 투쟁으로도 규정해 볼 수 있다. 선을 추구하는 철학, 사랑과 자비를 실현시킨 종교, 민주화에 대한 열정, 그 모두가 후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선각자들의 치열한 노력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들의 뜻을 따라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선각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먼저 행복하고 그 행복한 에너지를 발판 삼아 다시금 다음 세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더 아름다운 자연을 남겨 주고, 기부문화에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내가 지금의 행복을 거부하고, 또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다시금 그 후대의 누구도 나처럼 따라 한다면 도대체 누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지금 마땅히 행복해야 하며, 기대치를 내려서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

출처 / 사보 '건강보험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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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동굴 속에 손발이 묶인 채 벽만을 쳐다보는 사람들. 그들은 동굴 벽에 비친 어른거리는 자신들의 그림자가

         세상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한번도 동굴 밖 세상을 본적이 없기에 허상인 그림자를 실상인 본 모습으로 착각한다.

         누군가 과감히 쇠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강렬한 태양에 눈을 뜰 수 없지만 점차 그의 눈에 본질의 세계가

         들어온다….

 

 

         

         

 

 

 

 

글로벌로 무대를 넓혀라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관념의 감옥’에 갇힌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한다. 본질과 소통하지 못하는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 광활한 세상이 보이는 탁트인 광장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다. 뒷산에 오르면 동네가 보이지만 태산에 오르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과 맥이 통한다. 무대는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이다. 한국의 축구선수들이 국내에서만 뛰던 시절, 그들의 무대는 한국이었다. 하지만 유럽으로, 중동으로 무대를 넓히면서 그들의 그라운드는 전 세계로 확대됐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개인의 기량이 좋아지고 ‘축구 한국’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됐다.

 

21세기의 화두는 글로벌이다. 글로벌은 한마디로 활동무대가 전 세계로 넓어진다는 의미다. 하루가 다르게 국제 간 교역속도가 빨라지고 통상범위는 무한히 확장된다. ‘글로벌’은 개인에게든 국가에든 기회이자 도전이다. 개인은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국가는 글로벌 시장으로 ‘부(富)의 원천’을 확대한다. 글로벌 무대를 외면하고 로컬 무대에 안주하는 국가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하기 십상이다.

 

 

 

국제기구 '빅3중' 2곳 수장에

 

지난해 재미(在美) 한국인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 것은 한국인의 글로벌 활동무대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는 한인 1.5세대(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이민 온 세대)로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 총재가 된 것은 세계은행 67년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2003년엔 이종욱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국제사회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한인 1.5세대뿐만이 아니다. 학자, 운동선수, 연예인 등 지구촌에서 ‘코리안’의 성가를 높이는 한국인들은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개인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도 든든한 원군이다.

 

2006년 초 당시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세계인들은 그저 무모한 도전쯤으로 여겼다.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대표하기엔 영토의 크기나 국력에서 게임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지구촌은 한국인의 저력에 깜짝 놀랐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지 불과 15년 만에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이로써 세계 국제기구 ‘빅3’(유엔, 세계은행, IMF) 중 두 곳을 한국인이 차지하게 됐다. 유엔은 글로벌 정치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기구다. IMF는 경제위기 국가들에 구세주이자 때론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금을 장기 저리로 제공하는 것이 주업무다.

 

 

 

글로벌 지식+열정의 합작품

 

한국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열정과 글로벌지식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의 활약은 국제기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지식을 전파하는 학자, 병원에서 의술을 펼치는 의사, 정치인, 예술인, 운동선수 등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1.5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성 김, 미국 벨연구소 역대 최연소 및 최초 외부인 출신 소장인 김종훈,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두리 정 등은 세계에서 주목 받는 한인 1.5세대다.

 

한인 성공 스토리의 키워드는 목표의식, 열정, 다문화, 글로벌 지식 등이다. 김용 총재는 자신의 성공을 실용과 거대담론이라는 두 줄기로 설명한다. 그가 브라운대에 다닐 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그의 대답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의대)인턴은 끝마쳐라.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그의 글로벌 무대 성공 키워드는 실용과 이상의 조화다.

 

 

 

대한민국 브랜드도 원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도 막강한 원군이다. 김용 총장이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대사, 존 케리 미 상원의원(현 미 국무장관),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위상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력이 핵심이다. 물론 정치·문화도 국가 브랜드의 주요 요소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은 국제사회에서 ‘코리안’의 위상을 높이고 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혀주는 선순환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기문 총장 등 국제무대 ‘선구자'들의 리더십이 호평을 받는 것도 한국인에게 국제문호의 무대가 넓어지는 이유다.

 

 

 

꿈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

  

세계를 무대로 뛰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글로벌 기업에서 꿈을 펼치려는 젊은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생의 커리어로도 제격이고, 보수도 후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전 세계로 꿈의 무대를 넓히려는 청소년들에게 글로벌 지식은 필수다. 이론과 실무경험의 조화로운 스펙 관리도 필요하다. 어학실력, 풍부한 경험, 전문성은 세계로 무대로 넓히려는 청년들이 갖춰야 할 3박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과 의지다. 모든 걸 갖춰도 열정이 없으면 동굴을 뛰쳐나오려는 용기를 내지못한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가 언제나 명언인 이유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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