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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24부 이우혁(우즈베키스탄) (5)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이우혁

  산 설고 물 선 우즈베키스탄에서

 

 

 

 

 

 

 

  

  예전부터 봉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 지금껏 한국에서 쌓아온 한의사로서의 입지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리하고 나니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2003년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으로 떠나며 가진 민족의학신문과의 인터뷰입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1966년에 태어나 경산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4년째 운영해 오던 한의원을 과감히 정리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2년간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7년 포항에 있는 시골의 한 폐교를 임대해 친구와 함께 한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3년간 암환자 등 주로 난치병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환경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자신이 가진 의술로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으로 정성스레 돌보았는데, 진료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손수 음식까지 장만해 올 때는 따스한 정을 느꼈습니다.

 

 특히 네팔(Nepal)에 있는 한 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치료 한 번 받으려면 하루나 이틀씩 걸어와야 하고, 돈도 없고 의사도 없어 사소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욱 체계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03년 우즈베키스탄 파견의사를 지원했습니다...

 

 2003년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파견할 의사의 자리가 몇 달째 비워져있다는 글을 보게 되고,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염려하던 아내와 자녀들을 설득하였습니다.

 

 한의사 동료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이 아깝지 않으냐며 어리둥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든 갈 수 있는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동안 한국에서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에 결정을 쉽게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독립하였습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며 공화제로서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였습니다. 지역별로 병원이나 보건소가 있었지만 시설이 허술하고 의사가 없어 각종 질환으로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의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장으로서 진료업무와 현지직원 관리 그리고 병원경영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무료로 진료하는 병원이어서 항상 환자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치료할 환자를 한 번에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예약하는 날은 수천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어 병원직원 모두가 나서서 예약을 받느라 진땀을 빼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료와 원무가 분리되어 의사는 진료만 하면 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장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잡다한 업무들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예약되지 않은 환자들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거나, 고위직의 엉뚱한 진료 청탁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군에서 받은 훈장을 내밀며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진료소에 보낼 약품을 KOMSTA(대한한방의료봉사단)으로부터 어렵게 지원받았는데, 세관에서 이유도 없이 일 년 가까이 통관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세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가져다주면 기다리라 하고, 또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다주면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무능한 공무원인지 부패한 세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라 국민을 치료해 주고 무상으로 나누어 줄 약품 통관에 딴죽을 걸었습니다. 결국 법원의 힘을 빌려 약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적응해야 하는 건 한의사 이우혁만이 아니였습니다...

 

 이우혁의 정신적인 버팀목으로 사랑의 힘을 실어주었던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들도 우즈베키스탄의 어려운 생활에 적응하여야 했습니다.  그가 거주하였던 지역은 비교적 좋은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가스공급이 부족하였습니다.  난방이 끊겨 자다가 일어나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면서 길고 긴 겨울밤을 지새웠고, 예고 없이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색다른 환경을 감내할 수 있었지만,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나가면 불평도 없이 촛불에 의지하여 학교 숙제를 즐겁게 하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정도의 그곳에서의 생활은 예측이 없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은 항상 가득 채우고 다녀야 했는데, 주유소에서는 기름이 떨어지면 영업을 며칠씩 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구하지 못하면 허가 없이 파는 곳에서 몇 배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도처에 슈퍼마켓이 있는 한국과는 양식을 구입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처음 한 달 정도 임시로 아파트에 살 때였습니다. 그들은 주식으로 리뾰슈까라는 둥글고 넓적한 빵을 먹는데, 한번에 20~30개가량을 구입했습니다. 가방 가득 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마치 빵을 팔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큰 가방에 빵을 가득 들고 가는 것을 보고서 빵을 몇 개 사려고 하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영문을 몰라 웃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생떼를 쓴 꼴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돈을 안받고 빵 세 개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만났을 때 돈을 드리려 하였지만 한사코 받지 않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산 설고 물 선 이국땅이었지만 보람도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떨어진 시골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이동 진료를 하였는데, 그 지역은 구소련시절의 협동농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탈린 독재시절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이 농사짓고 손자들을 키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병원시설은 처참할 정도 여서 입원하면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길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의료진이 도착하니 지역 주민들이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타슈켄트에서 1,200km 정도 떨어진 누크스에 한방진료소가 있어 고려인 의사를 교육시켜 진료하고 있었는데, 1년에 한두 번씩 의사교육과 진료를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이 지역은 아랄해가 마르면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희귀난치병으로 살기 힘든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랄해에서 날아오는 소금이 눈이 온 것처럼 토양을 뒤덮고 있어 농사짓기도 어렵고, 소금이 지하수를 오염시켜 피부병과 눈병 그리고 각종 내과질환을 유발하였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한정되어 있고 의약품도 부족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풍부한 부존자원을 갖추고 있어 한국과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국민복지와 교육문화에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2004년 12월, 생필품과 먹을 것을 사서 병원직원들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치료받으면서 기부금으로 주고 간 것을 1년 동안 모은 것이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터라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기로 사전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선물을 나누어 주려고 하니, 원장이 나중에 자기들이 전달하겠다고 그냥 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직접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신발도 신겨주고 모자도 씌워주고 과자도 건넸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고아원을 나설 때, 원장과 직원들의 차가운 눈빛이 마음을 씁쓸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앞에서 (이우혁원장 오른쪽에서 3번째)


 2년간의 정부파견 한의사로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무사히 마친 한의사 이우혁은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대한민국정부의 파견의사를 환영하고 좋아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모른 체하고 있어서인지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그 당시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들은 다 잊고 즐겁고 좋은 추억만이 남아있어 가끔 그 때가 그립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좋은 일을 더 많이 했더라면 보람이 있었을 것을 하며 아쉽다. 기회가 주어져 다시 파견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2008년부터 정부파견의사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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