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꽃은 견디고 핀다>

꽃이 아름다운 건

견디고 피기 때문이지

담장 옆 고개 내민 매화

엄동설한 추위 견디고

길가에 수줍은 민들레

무심한 인간 발길 견디지

무덤가 고개숙인 할미꽃

세월에 아픈 허리 견디고

뜨락에 엎드린 씀바귀

속세의 무관심 견디지

우리 삶이 아름다운 것도

견디고 피기 때문이지

찬바람 불면 되뇌어봐

견디면 꽃이 피겠구나


필자의 시집 <하루>에 실린 ‘견디고 피는 꽃’이다. 단지 시구만은 아닐 것이다. 만물은 견디고 핀다. 삶에 주어진 몇 해, 몇 날을 보내면서 우리 또한 견디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불교의 뜻처럼 삶 자체가 고해(苦海)라서가 아니다. 견디고 피는 건 어쩌면 만물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견디고 피어난

따스한 영혼


몇 해 전이다. 가을의 중턱을 넘어선 10월의 어느 날, 한 음악회에서 ‘소울 플레이어(soul player) 이남현 씨를 만났다. 그는 어깨 아래로 신경이 없는 전신 마비 장애인이다. 그의 운명은 타고난 게 아니라, 중간에 비틀렸다.


대학 시절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운명을 비틀었다. 그는 가혹하게 돌변한 운명에 무릎 꿇지 않았다. 목소리는 고사하고 재채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평범한 운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운의 운명’. 비틀린 운명에의 순응이 아닌, 가혹한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당차게 바꾼 당당함. 그 당당함이 쳐져가는 내 어깨에 힘을 얹혀준다. 그러면서 스치는 생각. 그는 그 무수한 날들을 어떻게 견디고 또 견뎠을까. 순간, 눈시울이 찡하니 불거진다.



절망이라는 이름의

쐐기를 박지 마라


절망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끌고 다니는 족쇄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는 도구를 파는 악마 얘기가 나온다.



한 악마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를 팔려고 시장에 내놨다. 도구 종류는 많았고, 악마의 물건답게 대부분 흉악하고 괴상망측했다. 한데 진열된 도구들 한쪽에 값을 매기지 않은 작은 쐐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건을 사러온 다른 악마가 궁금해 물었다.


“저건 뭔데 값을 매기지 않았나요?”


물건 파는 악마가 답했다.


“저건 절망이라는 도구인데, 파는 물건이 아니지. 나는 저걸로 틈을 벌려 강하다고 하는 어떤 사람도 쓰러뜨리지. 그래서 다른 건 다 팔아도 저것만은 팔 생각이 없어.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도구거든.”


시인은 절망에 빠질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늘 그 악마가 시인 마음의 틈새에 절망이라는 이름의 쐐기를 박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에게도 큰 울림을 준 얘기다. 운명이 아무리 버거워도, 삶이란 이름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육신의 고통이 아무리 견디기 힘들어도 ‘절망이라는 이름의 쐐기’를 박지 말자. 이미 박혀 있다면 온힘을 다해 뽑아내자.


“운명의 수레바퀴는 방앗간의 물수레보다 회전이 빠르지. 어제 꼭대기에 있던 자가 오늘은 바닥에 있고, 어제 바닥에 있던 자가 오늘은 꼭대기에 올라있으니.”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운명의 회전’이 얼마나 빠른지를 일러준다.



연은 역풍에

높이 난다


남의 사정을 살짝 들추면 다 다름의 사연이 있다. 물질이 풍족하지 못한 사람,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 육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자식으로 속앓이를 하는 사람…. 우리는 누구나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다. 그 무게는 나만이 온전히 근량을 측정하는 나만의 무게다.



세상의 말은 늘 한계가 있다. 어떤 위로도, 어떤 격려도 눈금의 어느 높이를 넘지 못한다. 내 삶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나만의 무게다. “거친 들판에서 발굽이 굳어진 짐승은 세상 어느 길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연은 역풍에 맞설 때 높이 오른다.


꿈을 잃으면 운명이 삶을 지배한다. 삶의 주인이 아닌 운명의 노예가 된다. 삶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왕복달리기다. 때로는 희망 쪽으로 다가가고, 때로는 절망 쪽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꿈은 꼭 움켜쥐자.


고난이 닥치면 그 안의 숨을 뜻을 살피자. 잠시 흔들려도 다시 바로 서자. 봄꽃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건 한겨울 칼바람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삶이 어찌 봄날처럼 따스하고, 봄꽃처럼 향기롭기만 하겠는가. 골목골목에 숱한 얘기가 깔힌 게 삶이란 여정 아닌가.


삶의 어느 구간이 버거우면 견디고 견뎌 새로운 디딤돌 하나를 또 건너가자. 그렇게 하나하나 건너 참 귀한 삶이란 길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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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승이다. 누군가 당신을 배우고, 당신 길을 걷고자 한다. 당신을 닮고,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 


따르는 줄이 길다면 당신이 아주 근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은 반면교사다. 누군가는 당신이란 거울로 자신의 허물을 비춰본다. 


당신은 참스승인가, 아니면 당신의 허물로 남의 허물을 비추는 거울인가. 당신의 자녀가 당신을 닮아간다면 반길 일인가, 꺼릴 일인가. 이왕이면 참스승으로 살자. 누군가의 길이 되고, 꿈이 되는 그런 삶을 살자. 



큰 스승은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


그윽하면 오래 머물고 고요하면 절로 맑아진다. 높으면 푸르러지고 넓으면 깊어진다. 골짜기의 난초는 두루 향을 풍길 뿐 나를 알아달라고 목을 빼지 않는다. 그윽한 자태로 머물 뿐 나를 봐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군자는 난을 닮았다. 그윽이 덕에 머물고, 고요히 뜻에 머문다. 세상을 향해 요란스레 외치지 않는다. 큰 것은 담담하다. 바다는 고요하고, 태산은 늘 그 자리다. 


큰 부모는 자식에게 윽박질하지 않는다. 회초리를 들지 않고 스스로 모범이 된다. 모범으로 가르친 자식은 세상을 살면서 어긋남이 적다. 무언지교(無言之敎), 노자는 큰 가르침은 말이 없다고 했다.



빈 깡통이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물이 얕으면 자갈조차 소리를 내며 떠내려간다. 속이 비어서 시끄러운 줄 모르고, 아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짐이 가벼워서 덜컹대는 줄 모르고 많이 실은 때문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니 세상이 요지경이다. 행동으로 깨우치는 자가 진정 큰 스승이다. 


몸소 실천하지 않는 가르침은 헛된 교훈일 뿐이다. 작은 가르침은 빈말을 세상에 흔들어대고, 큰 가르침은 행함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인다. 


작은 지식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큰 지식은 자신을 스스로를 닦으려 한다. 세상 어디서나 작은 게 시끄러운 이치다. 



군자는

타산지석으로 옥을 간다


다른 산의 거친 돌로 자기의 옥을 간다(他山之石 可以攻玉). 《시경》소아편에 나오는 시의 한 구절이다. 


소인은 군자에게도 배우지 못한다. 군자는 소인에서도 배운다. 세상 만물 모두가 군자의 스승이다. 스승이 많으니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 


타산지석은 소인이고, 옥은 군자다. 군자는 타산의 거친 돌을 숫돌로 삼아 자기의 옥을 간다. 타인의 하찮은 언행이나 허물을 자기를 다스리는 거울로 삼는다. 


덕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인품을 되돌아보고, 앎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학문을 되돌아본다. 그러니 사방이 모두 스승이고, 세상이 큰 배움터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했다.      



소인은 남을 탓하고, 군자는 자기를 나무란다. 주자는 “안이 차면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이 비면 밖으로 객기를 부린다”고 했다. 


안이 차면 세상 보는 눈이 여유롭고, 안이 비면 세상 보는 눈이 날카롭다. 수시로 치르고, 수시로 찔린다. 소인이 목소리가 큰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소인은 용기와 만용의 구별이 서투르다. 만용을 용기로 착각한다. 진짜 가짜의 구별 또한 어설프다. 가짜를 진짜로 믿고, 사이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소인은 언변에 혹하고, 포장에 혹한다. 한데 사이비는 언변과 포장, 이 둘을 즐겨 쓴다.



당신은

스승이면서 제자다


세상의 인정은 생각보다 가볍다. 굶주리면 아부하고 배부르면 떠난다. 이익 앞에서는 너절한 태도로 굽신거리고, 손해다 싶으면 의로움까지 냉정하게 팽개친다. 


물론 깊은 인정도 있다. 후한 시대 설포(薛包)는 상당한 재산가였다. 어느 날 조카가 재산을 나눠달라고 하자 늙은 노비는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나와 일한 지가 오래되어 네가 부리기 어려울 것이다.” 


황폐한 땅과 기울어진 농막은 자신이 갖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내가 젊었을 때 관리한 것이어서 정이 깊다.” 



남루한 그릇과 물건은 자신이 취하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평소에 쓰던 것이어서 내 몸과 입에 편하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흰색끼리 모이면 검은색을 흉보고, 검은색끼리 모이면 흰색을 비웃는다. 그게 세상의 인정이다. 


누가 당신을 참스승으로 부른다 해서 당신이 참스승이 되는 건 아니다. 악은 악을 선으로 부른다. 


사특한 자는 당신에게 붙어 사욕을 취하려고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중요한 건 누가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하느냐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며 누군가의 제자다. 당신은 누구의 스승인가. 반면교사의 스승인가, 정면교사의 스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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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가 모여 길이 된다. 길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니 삶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삶이 희망인 건 걸어갈 길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삶에 용기가 필요한 건  그 길을 내가 선택해야 하는 까닭이다. 


삶에 정해진 길은 없다. 당신의 길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 걷는 길이다. 마음의 찌꺼기를 비우고 가볍게 걷자. 희망을 품고 담대하게 걷자. 다투지 말고 웃으며 걷자. 이전의 발걸음이 어긋났다면 이후의 발걸음은 바로 하자. 행복한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초심(初心)은 처음의 마음이다. 길을 택할 때의 각오, 첫걸음의 설렘이다. 누구나 길을 가면서 하나둘 초심을 잃어간다. 각오가 물러지고, 설렘은 무뎌진다. 순수에 탁함이 끼고, 무심에 탐심이 얹힌다. 처음에는 털끝만 한 갈림이 끝에는 천 리나 어긋난다. 선택도, 발걸음도 온전히 당신 몫이다. 


자유의 이면은 불확실이다. 선택의 끝이 불확실하고, 끝에 이르는 시간이 불확실하고, 끝에 달할지도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이 두려운 자는 자유를 포기한다. 자신의 길을 타인에게 의탁하고,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긴다. 주인의 삶을 포기하고 하인의 삶을 택한다.    



인생의 길 곳곳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그 두려움은 길을 가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 길이 확실하냐고, 나누면 당신 몫이 적어지지 않냐고, 평범한 걸음이 편하지 않냐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은 그때마다 주춤댄다. 세상 눈치 보느라 주춤하고, 당신 길에 의구심이 생겨 주춤한다. 그게 길이다


돌부리에 채고 큰 산에 막히는 게 길이다. 때로는 훈수꾼이 수를 더 잘 본다. 생각을 비워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남의 길을 수시로 기웃대면 내 길이 흐려진다. 남의 말에 촉을 세우면 내 말을 잃는다. 생각이 지나치면 지혜를 잃는다.




물에 떠다니는 가랑잎을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선택권이 없으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루소는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는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주인은 선택권을 행사하고, 하인은 주인에게 선택권을 위임한다. 


“귀와 눈은 소리와 색을 즐기느라 힘을 다 쓰는데, 마음마저 겉치장에 힘을 다 쓴다면 몸 안에 주인이 없게 된다.” 한비는 몸 안에 주인이 없으면 재앙이나 복이 구름이나 산처럼 몰려와도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내 안에 내가 없으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길흉화복조차 감지하지 못한다.



아닌 길은 물러서고, 가야 하는 길은 더욱 힘써라. 그게 길을 가는 자의 지혜다. 지혜의 실천에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섬을 생각하면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은 면할 것이다.(채근담)” 나아가고 멈추고 물러서는 데는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갑시다.’ 이 말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그대로다. 길이 아니다 싶으면 앞에서든 뒤에서든 다시 가야 한다. 남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제라도 당신 길을 가고, 너무 채워 영혼이 무겁다면 이제라도 비워야 한다. 



  

행복한 길을 걷는 자는 물질로 영혼을 덮지 않는다. 한 소년이 어느 날 길에서 돈을 주웠다. 소년은 횡재다 싶어 그날 이후 땅만 보고 다녔다. 그는 평생 길에서 큰돈을 모았다. 한데 잃은 게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했고, 무지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을 몰랐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보지 못했다. 《채근담》에 나오는 얘기다. “사람이 어질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의 뜻을 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하게 된다.(소학)” 인간은 재물의 주인이다. 한데 자칫 잘못 부리면 재물이 주인 행세를 한다. 재물이 앞서고 주인이 따르는 길은 인간의 길도, 자연의 길도 아니다. 잘못된 길은 걸을수록 화가 커진다.



맹자는 “보통 사람은 행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고, 익숙해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모르고, 평생을 따라가면서도 그 뜻을 모른다”고 했다. 길이 헷갈리면 좀 걸어보는 것도 요령이다. 인간은 걸으면서 배운다. 자식 기르는 것 다 배우고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고 했다. 


걸으면서 몇 가지는 짚어봐야 한다. 바른길인가, 내 길인가, 행복한 길인가는 필수 점검 항목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바른길을 걷고, 내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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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번 뿐, 현재를 즐기자’


올해 상반기 사회 문화 트렌드로 새롭게 떠오른 키워드를 꼽자면 바로 ‘욜로(YOLO)’일 것이다. 인생은 한 번 뿐, 현재를 즐기자는 뜻이 담긴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2011년 가수 드레이크가 발표한 ‘The Motto’라는 곡에 등장했던 이 가사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내세웠던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 케어’ 홍보 영상에도 직접 ‘욜로’를 외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달 9월에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신조어로 등재될 정도였다.



국내에서도 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욜로 라이프’를 실천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를 즐기자는 취지에 맞게 적당한 소비를 통해 취미 생활도 갖고 여행을 가는 등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획일적인 가치를 중시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 각광 받았다. 


지금 즐겨야 하는 것들을 참고 인내하면서 희생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시대에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고, 현재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욜로가 이 시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 건강을 돌보며 여유를 갖자는 취지도 담겨있다.



욜로는 사회 곳곳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여유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취미와 여가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생활의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욜로는 충동적 의미가 아닌, 후회 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삶의 철학이 담긴 트렌드다. 바쁜 일과에 지쳐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소비문화다. 이렇듯 긍정적인 측면이 많지만 최근에는 마치 큰 씀씀이를 통해 가치 소비를 실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아무래도 취미생활과 여가 등을 즐기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소비가 동반되어야 하다 보니 ‘프리미엄 소비 문화’로 변질된 측면도 많다. 소비를 부추기며 욜로족들을 겨냥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지상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욜로라는 주제로 출연진들이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갑자기 주어진 자유 시간에 어리둥절한 출연진들의 표정과 소비가 커질수록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욜로를 두고 현실 도피 수단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해야 할 일들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욜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중에는 불확실성 시대에 오히려 미래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는 당장의 소비, 여가보다는 저축이나 일터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긍정적인 욜로라이프를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 단순히 물욕을 채우거나 큰 돈, 부담스러운 여가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자. 작은 책 한권이, 집 앞 산책로가, 가족과 함께한 소박한 저녁이 욜로라이프일 수도 있다. 욜로라이프를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지금을 맞을 수 있도록, 또 그러한 오늘이 쌓여 행복한 내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나 자신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욜로 라이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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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그의 첫 마디는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그냥 드릴게요" 였다. 지금 살고있는 오피스텔로 이사온 첫날 새벽, 1층 편의점 알바생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삼각김밥의 뒷면을 봤다. 유통기한이 고작 3분 지났는데 연신 미안해하던 그는 기어코 김밥을 무료로 줬다. 다음날 한 라면을 집어들자 그는 "그거 별로 맛없어서 별로 안나간다"고 했고, 언젠가 술을 마시고 비틀대며 집으로 들어가는데 오피스텔 입구서 담배를 피던 그가 황급히 여명808을 들고 뛰어와 손에 쥐어줬다. 자기도 동생이 있는데 매일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비슷해서 주는 거라고 했다.





그는 모든 이에게 친절했다. 근처 타임스퀘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찾아오면 "서 계시느라 힘드시죠?"라고 먼저 묻고, 술먹고 매장안에서 토하는 이를 다독여 집으로 올려보낸뒤 토사물을 묵묵히 걸레로 닦았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오피스텔 1층 편의점서 일한지 벌써 3년 반이 넘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여기저기 직장을 전전했지만 잘 되지 않아 아는 형님이 차린 편의점일을 돕고 있단다.





신기한 건 오피스텔에 사는 모든 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납게 생긴 15층 아저씨도 10~20분씩 그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걸 여러번 봤다. 도도하게 생긴 6층 처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긴 고민을 묻기도 했다. 신기한 건 그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19층 신혼부부는 꼭 아이스크림을 6개 사서 1개를 그에게 줬다. 우리 옆옆집 아저씨는 라이터를 빌린 뒤 사과 2개를 건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오피스텔에 사는 손님들의 직업 등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내 목에 걸린 네임택을 본 뒤부터는 나에게도 "김영란법 시행되면 더 자주 오시겠네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그런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두마디씩 얘기를 나누는 게 그렇게 힐링이 됐다.





손님이 계산대로 다가오면 손을 뻗어 받아들고, 항상 웃고,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해주는 그에게서 이 삭막한 오피스텔 사람들이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서 더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는가 보다, 했다. 잇속을 챙기고, 주판알을 굴리고, 상대방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따지는 실날같은 인간관계가 판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에게서 조금씩 배우는 거 같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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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이란 즐거운 롤러코스터 2016.11.21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경험해봤어요. 그 편의점은 뭐든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으면 30% 할인해서
    판매하는 곳인데, 샌드위치 사러 갔다가 저도 경험했었어요. 제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걍 주더라구요.






30년 가까이 교편을 잡은 부모님을 두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 유난히 그랬다.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저기 혹시 박모 선생님이세요?” 뒤를 돌아보니 옷을 팔고 있는 한 청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5년 전 선생님께 배웠다며 활짝 웃는다. 15살짜리 중학생은 어느덧 스무살의 청년이 됐다. 학창시절 깊은 교감도 없었고,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다. 교내 먼 발치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래도 선생님을 만난 게 그저 반가운 거다. 그의 이름 맞추기에 실패한 아버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열심히 일하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매장 사장이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괜히 으쓱해진다. 교권이 무너진다고 그렇게 난리여도 선생님이란 직업이 주는 울림이 아직 이 정도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사 경력 30년에 부모님의 첫 제자들도 어느새 나이가 꽤 들었다. 중학생이었던 소년 소녀가 어느새 불혹을 넘긴 중년이 됐다. 그들은 가끔 한 손엔 먹을 거리를, 다른 손엔 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온다. 웃으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또 때로는 얼마나 자상했는지 이런저런 일화를 털어놓는다. 몇십년전 과거를 들춰내며 한 아저씨 아줌마가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부모님과 함께 한바탕 웃는 장면은 퍽 정겨운 것이었다. 퇴직한 교사에게 훈장처럼 남는 것은 제자의 주기적인 방문이다. 교사 생활을 어떻게 보냈냐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국영수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이 인생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칠 터였다.





아버지는 교육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15~20년 전 교복이 없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에게 교내에서라도 체계적인 지원을 하자고 주장했다. 아직도 천안 집에는 헌 교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많다. 학생들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는 소위 1진 애들 잡는 아줌마 교사였다. 젊은 선생님에겐 그렇게 버릇없던 학생들도 어머니가 한번 째려보면 고개를 숙였다. 쌍둥이 키워낸 경력이 어디가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서산, 당진 등을 거쳐 천안으로 터를 잡았을 때 시골의 순박한 학생들은 두 교사에게 이별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 편지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요즘 애들 영악하다고 때려야 한다고 하면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라고 두 교사는 여전히 애들 편을 든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촌지를 받거나 애들에게 비인격적인 욕을 하거나 무작정 때리는 교사는 아니었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다. 재미가 없어보였고, 학부모의 극성에 그저 고개를 숙여야하는 것도 싫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문제아들의 부모들은 항상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아들은 죄가 없다”고 소리쳤다. 당신네 아들이 친구를 때려서 이 사달이 났는데도 무조건 학교의 책임이라고 했다. 오해라고 삿대질을 했다. 부모님의 시름섞인 표정을 보며 내 성질에 저렇게 가만히 있기는 고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인권 운운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믿지 않는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그네들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말이 장황해진 건 얼마 전 여자 선생님을 폭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찍으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학생들의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그 선생 내가 묵사발 만들었어! 라며 끼리끼리 즐거워할 그의 인생은 어찌 그리 불쌍할까. 안타까울 뿐이다. 선생님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질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희망과 함께 삶의 길을 가르쳐줄 인생의 스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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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道家)의 대가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가슴에 오롯이 담으라 했다.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면 영혼이 맑아지고, 천하도 거느릴 수 있다고 했다. 도가의 도(道)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의 길, 천하를 다스리는 치세(治世)의 길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쉬운 게 도라는 길이다. 도가의 무위(無爲)는 한가하게 산천만 거니는 유유자적한 삶이 아니다. 그건 영혼의 티끌을 비우는 수양의 과정이다. 채우기도 어렵지만 비우기는 더 어렵다. 비움에 ‘도(道)’가 붙어다니는 이유다. 완전한 비움의 경지, 그게 바로 도의 경지다.




“도(道)에 가장 가까운 건 물이다(上善若水).”
노자는 만물 중 물이 도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싫어하는 ‘낮고 더러운 곳’으로 흐르는 물에서 대도(大道)를 봤다. 고정된 자기 형상이 없으면서도, 억지로 길을 내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풍요롭고 번성케 하는 물에서 스스로 낮춰서 높아지는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봤다. 자신을 먼저 채운뒤 흐르는 겸허함을,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는 포용성을, 유약한 듯하면서 때론 거대한 바위도 밀쳐내는 엄청난 내공을 봤다.





물은 만물을 두루 적신다. 하지만 먼저 자신부터 채운 뒤 흐른다. 그 겸허함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자기 형상을 고집하지 않는다. 처마의 낙숫물이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다고 한탄하지 않고, 대해(大海)가 크고 넓다고 목에 힘을 주지 않는다. 시냇물로, 샘물로, 때론 강물로 대지를 넉넉히 적실 뿐이다. ‘나를 닮으라’고 강요하지도, 앞물을 앞서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모든 물을 받아 바다가 된다. 물은 스스로 낮춰 바다가 되는 이치를 안다. 태산은 곧은 나무 굽은 나무를 가리지 않고, 바위와 티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 아우름으로 산은 절로 태산이 된다. 다 받아주니 태산(太山)이다. 산은 크게 품어 높아지는 이치를 안다.




물은 만물을 이루고도 공(功)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적시면 그뿐,  다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왼손이 시작하기도 전에 오른 손이 먼저 아는 ‘인간의 손’을 부끄럽게 만든다. 봄에 만물을 싹틔운 물은 그 싹에 걸터 앉아 ‘내 공이요’라며 으스대지 않는다. 다만 여름으로 슬며시 옮겨갈 뿐이다. 노자는 “자연은 만물을 낳고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물을 위하되 ‘나만 믿으라’ 하지 않고, 만물을 길러주되 ‘내 뜻’대로 주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루고도 드러내지 않아야 제대로 이룬 것이다. 드러냄은 인정 받고자 함이다. 그 조급함이 상처를 부른다.





세상엔 공(功)으로 되레 해를 입는 어리석음이 의외로 많다. 옛말에도 ‘곧은 나무가 먼저 베이고, 맛좋은 샘이 일찍 마른다’고 했다. 경솔하면 근본을 잃기 쉽다. 작은 공을 부풀리지 마라. 그럼 그 작은 공적이 더 작아진다. 노자는 “성과를 이루고도 뽐내지 말고, 성과를 이루고도 으스대지 말며, 성과를 이루고도 교만하게 굴지 마라”고 했다. 세상의 평판에 목을 빼지 마라. 이루면 이미 그것으로 족하다. 작든, 크든 그게 당신이다.




삶은 맑고 좀 투박한 게 좋다. 그런 삶은 스스로에게 은혜가 되고, 타인에게도 덕이 된다.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부시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는 “곧아도 방자하지 말고, 빛나도 눈부시지 마라(直而不肆 光而不耀)”고 했다. 이익에만 집착하고, 명성에만 매달리면 영혼은 늘 요동을 친다. 외물(外物)은 언제나 마음을 휘젓는다. 인간은 ‘외물적 동물’이다. 보이는 것에 울고 웃는다. 현대인에게 최대 건강의 적이라는 스트레스도 대부분 외물에서 온다. 남보다 낮아서 스트레스고, 남보다 작아서 스트레스고, 남보다 덜 빛나서 스트레스다. 당신의 무게를 늘 ‘남의 저울’로 잰다.





물은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다. 한데 스스로 고요함에 머물러 탁함을 청아함으로 정화한다. 고요함에서 멀어질수록 탁함이, 스트레스가 그 틈새에 끼어든다. 고요함은 스트레스의 천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방탕했다. 그런 그가 ‘발가벗은 속죄’ 위에 하느님을 향한 반석 같은 믿음을 세웠다. 그의 <고백론>은 애절한 죄의 고백이자, 주님을 향한 간절한 다가섬이다. 믿음을 채운 자에게나, 믿음을 비운 자에게나 그의 고백은 애잔한 울림을 준다. 특히 이 고백이 그렇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대 안으로 들어가라.”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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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은 1988년 1월 1일. 최초 가입자다. 지금까지 335개월을 부은 것으로 나와 있다. 만 60세까지 385개월을 납부한 뒤 받을 수 있는 연금은 1496000원(현재 가치). 150만원이 채 안되는 셈이다. 앞으로 50개월을 더 부어야 한다.


그리고 만 62세(2022년 4월) 다음 달부터 연금을 지급받는다. 향후 소득과 물가 상승에 따른 미래가치 예상연금월액은 1850000원 이었다. 연금을 받는 시점의 예상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수입은 이것이 전부인데 생활비에도 부족할 터. 수입을 보충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내가 70까지는 현역 생활을 할 테니까 큰 걱정을 하지 말라." 물론 내 생각이다. 경제활동 나이를 70으로 잡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모든 여건이 맞아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현역을 유지할 수 있다. 새벽마다 열심히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생활도 그때까지 했으면 좋겠다. 글쓰기와 취재는 나의 천직이다. 대학 강의도 마찬가지.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고 할까.


얼마 전 기사다. 뉴욕타임스가 식자재 배달사업도 한단다. 생뚱 맞은 소식 같지만 사실이다. 신문사가 유통업에 뛰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최고의 권위지다. 왜 그럴까. 돈 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신문이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다. 광고수입도 줄고, 판매수입도 형편 없다. 오히려 버티는게 신기할 정도다.


신문을 보지 않는 것은 전 세계가 비슷한 현상. 우리나라 신문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원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신문사는 대기업에 비하면 하꼬방 수준. 경영이라고 할 것도 없다. 구멍가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니 직원 대우도 대기업에 훨씬 못 미친다. 내가 1986년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신문사 월급이 일반 대기업의 2배 정도 됐다. 그래서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역전됐다. 지금은 대기업과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신문사가 돈을 잘 벌지 못하니 대우를 잘해 줄 수 없다. 그래도 천직이려니 하고 다닌다. 오늘의 나와, 우리 가족을 있게 해준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난 솔직히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어놓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내일 죽음이 닥친다 해도 무섭지 않다. 마음을 비운 뒤로 생긴 변화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 다만 건강은 챙긴다.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요소도 건강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몸이 아프면 소용 없다. 건강해야 돈도 쓸 수 있는 것. 몸이 성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70까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목표도 70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 물론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건강을 유지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나이 먹었다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럼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 나이 들수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파이낸셜뉴스에서 모셨던 김성호 전 주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 원래 TBC, 중앙일보 출신. 중앙일보에서 정년퇴직한 뒤 문화일보를 거쳐 파이낸셜뉴스에 오셨었다. 영원한 현역으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기자생활만 50년 가까이 하셨다.


우리 논설위원들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광화문에 나가 저녁을 함께 했었다. 당시도 굉장히 건강해 보이셨다. 적어도 백수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을 두셨다. 가정도 다복했다. 그리고 독실한 크리스찬.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편찮으신 데도 없었다.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세상 누구도 모른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서 만난 '나눔모임' 회원들과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인생 80이라도 해도 길지 않다.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할 일을 뒤로 미루면 안 된다. 나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을 중시한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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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할까.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구는 돈을, 또 건강을 얘기할지도 모른다. 재미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적당한 수입과 인간 관계가 행복의 조건이란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수입도 천차만별일 터. 한 달 기준으로 수천만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수 백만원, 수 십만원이면 족한 사람도 있을 게다. 돈은 쓰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나도 용돈을 적게 쓰는 편이 아니다. 한 달에 평균 100만~150만원 가량 쓴다. 주로 차 마시고 식사비로 사용한다. 넉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나에게 적당한 규모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바라지 않는다. 이 정도 규모로 살 생각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관계다. 돈이 많다고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관계의 으뜸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있어야만 오래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끝까지 옆에 있는 사람은 가족 뿐이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 간에도 인간 관계는 중요하다. 존경과 헌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럼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 스스론 행복을 느낀다. 행복도 실천에 있음은 물론이다.


5년 뒤의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우리 나이로 61살, 환갑이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논설위원, 대학 초빙교수, 작가, 외부 칼럼니스트, 인터넷강사. 다섯 모두 비정규직이다. 따라서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내 신조는 매일 최선을 다하는 것. 따라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걱정한다고 될 일은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노력하는 것이 훨씬 낫다. 뭐든지 공을 들인만큼 돌아온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얘기다. 복은 그냥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신경쓰는 대목은 건강이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것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누구를 만나도 똑같은 얘기를 한다. 명예도, 재산도 건강 다음이다. 아둥바둥대면 건강도 잃는다. 여유를 갖자. 그것은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다들 자리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거의 예외 없이 그렇다. 사실 직장인이라면 승진하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에 바짝 신경을 쓰는 까닭이다. 보통 2년 단위로 인사를 한다. 부서를 옮기기도 하고, 승진을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희비가 교차한다. 인사엔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잘 나갈 때도 있고, 이른바 물 먹을 때도 있다.


항상 나만 잘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욕심이다. 나도 2012년 2월 서울신문 국장을 끝으로 사표를 낼 때까지는 그런 조직과 분위기에 있었다. 인사에 초연했다면 거짓말. 서울신문을 떠난 이후론 자유인이 됐다. 자리 욕심을 내려고 해도 낼 수 없다. 지금은 정규직이 아니어서 관심 밖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편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불안은 커진다. 언제 내려올지 몰라 걱정하고, 더 올라가고 싶어 항상 긴장한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그것을 비우기란 쉽지 않다. 말로는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성은 찾기 어렵다. 그럼 나는 어떤가. 바보처럼 살고 있다. 욕심이, 목표가 없는 사람처럼 비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다.


신문사 논설위원은 내부에서 한직 취급을 받는다. 취재 현장을 떠나 사설과 칼럼만 쓰기 때문이다. 논설위원을 선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편집국장을 마치고 가는 자리도 논설위원이다. 논설위원은 대부분 부장급 이상. 고참기자라고 할 수 있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따분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일에 지장받지 않는 한 외부 활동도 가능하다. 나는 논설위원을 즐기는 편이다.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이 네 번째. 앞서 서울신문에서는 논설위원을 세 번 했다. 회사에서 사설이나 칼럼을 쓰지 않으면 가욋 일을 한다. SNS 활동도 하고, 외부 칼럼도 쓴다. 대신 책은 새벽에 집필한다. 자기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아야 보람도 생긴다.


이처럼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멀리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명심하자.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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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일 게 있다면 뭘까. 바로 친구다. 마음이 통하는 벗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실제로 형제보다도 더 자주 만난다. 마음에 맞는 친구 몇이 있다면 인생을 아주 잘 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친구 사이에도 예를 갖추어야 한다.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가 바로 친구다. 그냥 욕이나 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친구가 아니다. 그것을 친구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말 친구는 내가 아껴야 한다. 말 한 마디도 가려서 해야 함은 물론이다. 행여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저씨가 있어서 좋겠어"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 두고 하는 말이다. 아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친 모양이다.

 

 

 

 

일찍 서울로 올라와 자수성가한 친구다. 최근 여의도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먹었다. 한달에 적어도 서너번은 만난다. 일주일쯤 보지 못하면 궁금해진다. 내가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약속을 비워두는 이유다. 자꾸 미루다보면 얼굴을 보지 못한다. 친구도 자주 만나야 훨씬 가까워진다. 안 보면 남이 된다. 주먹보다 큰 사과를 한 상자 갖고 왔다.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사들고 온 것. 청송 사과란다. 새벽에 일어나 1개를 깎아 먹었다. 엄청 맛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맺은 친구들도 좋다. 얼마 전 아들과 남도여행에서도 페친을 만나 환대를 받았다. 여수의 이상철 대표님.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90년대 중반 고향으로 내려갔단다. 수산물 유통업과 대형 식당을 운영하신다. 원래 여수에 갈 생각은 없었다. 광주에 내려갔다가 연락이 닿았다. 광주에서 여수까지는 140km.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이 대표님의 식당에서 맛 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 그리고 직접 담근 새우장도 싸주셨다. 서울에 가지고 올라왔더니 장모님과 아내가 좋아했다. 나는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책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 페친이 있는 편이다. 대도시는 거의 있는 것 같다. 동갑내기 친구인 전주의 김종선 회장도 페친. 대전 조웅래 회장, 박원천 사장, 최순희님도 페북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어디를 가든 페친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타지에 가면 그쪽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광주 조영호 사장님께는 일부러 연락을 안 드렸다. 안경점을 하셔서 주말에도 바쁘다. 광주 정기식 사장님은 마침 중국 여행 중이라 못 만났다. 순천 김선일 대표님도 연락이 닿았지만 행사 관계로 뵙지 못했다. 페북이 아니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분들이다. 나에겐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인연은 이렇게 쌓이는 법이다.

 

케이디파워 박기주 의장도 회사엘 다녀갔다.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행사를 마치고 밤 늦게 회사를 찾아왔다. 나도 마침 회사 인근에서 저녁 모임이 있어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의장이 지난 번 장모상을 당했는데 문상을 못 갔었다. 미안하던 차에 친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사는 친구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나도 열심히 사는 편이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산다. 그래서 오늘날 KD그룹을 일궜다. 언제봐도 에너지가 넘친다. 항상 먹거리를 찾아 세계를 누빈다. 요즘 그의 먹잇감은 중국 대륙. 수시로 중국을 오간다. 최근 관심 분야는 헬스 케어. 대략 사업 구상을 들어보니 아이디어가 훌륭했다. 그 친구라면 반드시 해낼 것이다. 나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다.

 

우리 논설위원실에서 한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저녁도 거른 그였다.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졌다. 50년, 100년 후를 내다보는 친구다. 미래를 꿰뚫는 눈을 가졌다. 춘천의 카이로스도 그렇게 탄생했다. 케이디파워와 박 의장의 미래는 밝다.

 

벗. 친구. 어감이 참 좋다.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게 친구다.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사귀기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어울려 노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한다. 친구가 20~30명 된다고 떠벌리는 이들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를 합치면 그 정도는 될 듯 싶다. 그렇다면 진짜 친구는 어떻게 정의할까.

 

 

 

 

속마음도 터 놓을 수 있는 사이가 친구 아닐까. 과연 그런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1~2명만 돼도 적지 않다고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과연 자기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는지. 고교 대선배 네 분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선배님들, 친구 있습니까.” 그들 모두 한참 망설였다. 그러더니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마음에 맞는 친구를 얻기 어렵다는 얘기일 터.

 

쉰이 넘어 만난 친구가 바로 케이디파워 박기주 의장이다. 인생 설계도 함께 한다. “자네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일세.”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맙네.” 그 친구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화답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물론 그 뿌리는 믿음이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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