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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2 우울증의 또 다른 이름은 외로움 (2)

 

휴대전화의 번호 목록에서 배우 차인표 씨 이름을 볼 때마다 슬몃 웃음이 난다. 아나운서 차인태 씨 바로 밑에 있기 때문이다.   차인표 씨가 배우로 데뷔해서 아직 이름이 크게 나기 전에 중장년의 시청자들은 그의 이름을 차인태로 착각해서 부르곤 했다.  ‘장학퀴즈’로 명성을 날리던 아나운서의 이름이 입에 익숙했던 탓이다.

 

 

  차인표 씨 이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왠지 그가 친겹게 느껴져서다.

 

  그와 사적으로 교우할 기회가 없었고 오로지 기자와 배우로서 공적인 일로만 대화를 나눠왔는데도 그렇다.  이는 그가 세상과 이웃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어서일 것이다.


 지난 설에 “연휴를 어떻게 지내느냐”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공적으로 받은 문자 메시지 답이므로 ‘건강천사’ 식구들에게 공개를 한다. 읽으면 건강에 좋은 내용이므로.^^)


 “관심 가져 주어 감사합니다. 연휴엔 어머니 모시고 가족들과 일박이일 곤지암으로 여행갈 예정입니다.

여행지에서 떡국을 온 가족이 만들어 먹으려고요. 연휴 중에 함께 봉사하는 컴패션밴드 중 떡국 못 먹은 젊은 멤버들을 초청해서 떡국 파티도 계획하고 있어요. 풍성한 설 되세요.


문자를 길게 쓴 정성도 그렇거니와 거기에 담긴 내용도 훈훈한 느낌을 준다. 이 답을 받은 후 마치 그 ‘젊은 멤버들’과 함께 떡국 파티에 참여한 듯한 기분을 지닐 수 있었다.

 

차인표 씨가 최근에 소설책 ‘오늘 예보’를 출간했다. 2009년에도 첫 장편소설 ‘잘가요언덕’을 펴낸 바 있다.
두 번째 장편 소설을 쓴 작가인데도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미덥지가 않았다.

출판사의 보도 자료를 통해 ‘힘들게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차 씨의 휴머니즘이 글쓰기에도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소설 문학으로서의 어떤 재미와 감동을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평소 친절하게 대해 준 차 씨에 대한 예의로 작품을 읽어나가다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건 예사 솜씨가 아니잖아.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어법으로 다루는 필력이 여느 작가 못지않았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한 ‘진짜 문학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선 세 남자의 이야기다.

 152센티미터의 작은 키로 ‘쫌만 더’라는 별명을 내세워 웨이터 생활로 제법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하지만 거듭되는 실패로 노숙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나고단.

 주식 투자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탕진한 후 아들과 함께 고시원 생활을 하며 드라마의 보조 출연 일을 하게 된 이보출.

 폭력 조직에서 발을 빼며 가까스로 마련한 사업 밑천을 고향 후배의 꼬임에 빠져 날려 버리고, 늦둥이 딸이 희귀병에 걸리는 바람에 삶의 의욕을 잃고 허둥대는 박대수.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 ‘펄프 픽션’에서처럼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식이다.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막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소설 곳곳에서 주인공들의 능청스런 사설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잘 살아 보려고 해도 자꾸 인생의 허방에 빠지는 상황으로 인해 눈물이 솟구치게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억울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을 한 번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빈털터리가 돼 노숙자가 되고,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탓이다. 


 “부끄러움은 이미 배고픔이 먹어버렸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있다. 억울함이다. 무엇이 억울하냐고?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동급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죽도록 억울한 것이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이름은 다 다르지만, 모두 싸잡아서 세 글자로 불리운다. 노숙자.”(21쪽)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억울함은, 세상천지에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적막강산의 외로움과 동의어다. 죽을 것 같은 외로움은 세상에 대한 부질없는 오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세상살이를 끝내겠다고 마음먹은 나고단이 한강에서 투신하려고 옷을 벗는데, 때마침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던 제작진이 카메라 앵글에 걸린다며 빨리 비키라고 성화다. 나고단은 비키지 못하겠다고 버틴다.


 “오밤중에 사람이 한강 둔치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옷을 벗고 있으면 대충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만큼 배운 인간들이,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앵글에 걸리니까 비키라니, 절대 못 비킨다.”(79쪽)
 
 억울하고 외로워서 세상을 등지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세가 우울증이다. 근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놀라게 한 연예인, 방송인들의 대부분이 우울증을 겪었다. 그것은 굳이 경찰의 사인 발표가 아니더라도 상식선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배우 박진희 씨가 지난 2009년에 석사 논문(‘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전공)을 위해 206명의 연기자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40%가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연기자들의 우울증은 톱스타로 꼭 성공을 하고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근년에는 자신의 실체와는 다른 루머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겪는 일도 늘어났다.

연기자들의 그것보다 강도가 낮다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성공에 대한 강박과 타인의 시선에 의한 우울증을 많이 겪고 있다. 차인표 씨 소설에서처럼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밑바닥 인생에 처한 사람들은 억울함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다.

 

우울증은 환자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겠다는 극단적인 결심까지 하게 만든다는 데 그 심각성이 더하다.

조사 기관마다 통계가 다르긴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3분 2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가 실제로 시행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가진 미국 영화 ‘비버’의 주인공 윌터(멜 깁슨)도 우울증 탓에 만취해 발코니에서 투신을 시도한다. 윌터는 자살하려는 순간에 손인형인 비버가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목숨을 구한다. 장난감 제조회사의 회장인 윌터는 이후에 오로지 비버와만 대화를 하고, 비버를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손인형과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얼마나 눈물 나게 외로운 광경인가.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감독인 조디 포스터가 연출을 한 이 영화는 경쟁지상주의가 만연한 미국 사회의 그늘을 우울증을 통해 보여준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그늘을 꽤 많이 갖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 듯해서 마음이 서늘해진다.
 
 흔하게 알고 있는 우울증을 굳이 정의하자면, 삶의 의욕 저하와 우울감이 인지 및 정신, 신체 장애를 일으켜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증세를 말한다. 주요 원인으로는 뇌 안의 물질이 변화를 일으키는 생화화적 요인, 가족력에서 비롯된 유전적 요인, 혼자서 대처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 등이 꼽힌다. 


여느 질환이나 그렇지만 우울증도 조기에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우울제 개발이 크게 진전됐기 때문에 약물 치료 효과가 과거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견해다. 

약물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의 권고대로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증세를 악화시킨다.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주문일 수도 있겠으나 병을 극복하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수 출신으로 연기자로 변신한 한 여배우가 우울증을 운동으로 극복한 사례는 시사적이다. 

 

"우울하니까 먹게 되고 살이 찌니까 더 우울해졌어요. 체형 자체가 너무 망가져서 연기자로서 관리 안 된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독하게 친구들도 안 만나고 하루에 2시간씩 꾸준히 운동했어요.  식이요법도 한 달간 병행하고요. 운동을 하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고 긍정의 에너지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정리가 많이 되기도 했죠."

차인표 씨 소설의 보조출연자 이보출은 매사에 감사하는 것으로 우울증의 그늘로부터 자신을 구해내고, 빚쟁이에게 쫒기는 극한의 삶을 견딘다.

 

 “나는 요즘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인 민속촌 주차장의 공중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비록 차디찬 변기였지만 그것이 수세식이라는 것에, 그리고 변기 옆 휴지 보관대에 아주 소량이지만 휴지가 달려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지난주, 황무지에서 촬영할 때는 화장실이 없어서 참아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119~120쪽)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절제 있는 섭생을 하며 적절한 운동으로 자신을 가꾼다면 우울증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병이 너무 깊어진 탓이다.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고 불면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역으로 그것들이 우울증을 깊게 하는 악순환이 되면 세상을 버리겠다는 충동에 휩싸일 수 있다. 
 

차인표 씨는 그런 악순환의 가운데에 외로움이 있다고 본다. 그는 동료, 후배들이 잇달아 우울증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쓰러진 그들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넸더라면,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함께 가자고 등 한번 두드려주었다면, 울고 있는 그들의 손을 맞잡고 함께 울어주었다면, 그들은 오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누리며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차 씨는 그런 생각의 넌출을 뻗어서 자살 위기에 빠진 소설의 주인공들을 모두 살려낸다.

춥고 배고픈 남자 나고단에게 이보출이 무심코 건넨 5000원의 돈이 생명의지를 되살리는 밥이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 거기에 있다.

 소설의 끝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행복해진다. 이런 결말은 픽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의 따뜻한 격려와 관심 덕분에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기자로서 사회 현상을 취재하다가 그런 사례를 숱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차 씨가 책의 끝부분에 적어놓은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나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때로 낄낄거리며 웃고, 때로는 훌쩍이며 울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말이다. 결국 부대끼며, 의지하고, 서로 토닥거리며 끝까지 살아야 하기에. 휴식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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