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정상은 바로 그 너머에 있다.


숨은 8부 능선에서 가장 가쁘다. 닿을 듯 닿지 않고, 되돌리기엔 흘린 땀이 아까운 바로 그 지점이다. 고지를 밟는 자와 포기하는 자는 여기서 갈린다. 아홉 길 산을 만드는 일도 한 삼태기 흙에서 어긋난다. 고지는 고비 몇 보 앞에 있다. 숨이 차다는 건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조금만 더 버텨봐라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고자 할 때는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근골을 피곤케 하고, 그의 창자를 굶주리게 한다”고 했다. 심신을 지치게 하고 뜻이 어긋나게 함으로써 의지를 단련시키고 능력을 키우려는 하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견디고 피는 꽃이 아름답다. 매화는 추위를 견디고, 난초는 적막함을 견디고, 국화는 뙤약볕을 견디고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사철 비바람을 견디고 꿋꿋이 선다. 인간이 4군자를 좋아하는 건 그들이 견뎌낸 ‘꿋꿋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게 쉽지 않음을 아는 연유다.


무릇 일에는 고비가 있다. 큰일일수록 고비는 더 험하다. 난관도 천만 갈래다. 섣달 매화꽃 향기는 뼈를 애는 추위를 견딘 선물이다. 견딘 만큼 더 멀리 향을 뿜어낸다. 그건 “나는 추위를 견뎌냈다”는 ‘자기선언’이다.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고 했다. 세상사 뒤돌아봐야 아는 게 참으로 많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반전한다(物極則反). 어둠은 빛으로, 추위는 더위로 세상사는 끝없이 유전한다. 삶은 매 순간 달라지고, 무언가로 변해간다. 고비를 넘어야 꿈에 닿고, 허물을 벗어야 새로운 세상을 본다. 


혹여 지금 당신은 고빗길에 서 있는가. 지치고 두렵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그럼 한 번만 더 용기를 내봐라. 조금만 더 견뎌봐라. 당신은 용기로 시작했다. 그러니 끝도 용기로 맺어라. 추위를 견디고 향기를 뿜어내는 섣달 매화를 그려봐라.



두려움에 지지 마라


두려움은 악마들이 즐겨 쓰는 무기다. 사람에게 두려움만 심어놓으면 싸움은 ‘백전백승’이다. 물론 악마가 전승을 챙겨간다. 두려움은 암세포만큼이나 증식이 빠르다. 스스로 퍼져가고, 스스로 강해진다. 두려움이 벽을 치면 인간은 한 발도 못 나간다. 


그러니 높아지기 전에 미리 허물어야 한다. 그게 용기다. 그게 희망이다. 공자는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를 쌓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고, 평탄한 땅에 한 삼태기를 붓고 나아가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만사 결국은 ‘나’다. 내가 나아가고, 내가 물러난다.



고빗길에선 잠시 멈춰도 된다. 숨을 골라도 된다. 하지만 너무 뒤를 돌아보지는 마라. 뒤돌아볼수록 걸음걸이가 꼬인다. 인생은 앞으로 가는 여정이다. 숱한 고비를 넘는 산행이다. 정상에 오른 자와 중턱에서 내려온 자가 산에서 본 세상 풍경은 너무 다르다. 


산에 정상은 무수하다. 모든 꼭대기에 오를 필요도, 오를 이유도 없다. 다만 당신이 간절히 이르고 싶은 어딘가가 있다면 그땐 힘을 내봐라. 힘껏 내디디고, 두려움에 맞서라. 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잊지 마라. 고비 몇 보 앞에 닿고자 하는 ‘그곳’이 있다는 사실을. 



강을 건너야 바다에 이른다


“어부들은 바다의 위험과 폭풍우의 괴력을 잘 안다. 그런데도 그게 바다로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된 적은 없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인간이 위대한 건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용기라고 강변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불굴의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바다에는 이 세상처럼 친구도 적도 있지만, 인간은 결코 쉽게 패배하는 존재가 아니다”고 되뇐다. 그건 자신에게 용기를 심으려는 주문이다.



한 걸음을 내디뎌도 당신 걸음이고, 한 걸음을 물러서도 당신 걸음이다. 당신 걸음은 오롯이 당신 것이다. 고비에서 앞으로 나아갈지, 뒤로 물러설지의 선택 역시 온전히 당신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삶에는 무수한 고비가 있고, 고비마다 물러서면 당신은 결코 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개울을 건너야 강에 이르고, 강을 건너야 바다에 닿는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이 말의 성찬이다. 시비를 가리는 말, 으스대는 말, 위로하는 말, 나무라는 말, 큰 말, 자잘한 말이 빼곡하다. 장자는 “도(道)는 조그마한 성취에 숨겨지고, 말은 화려함에 가려진다”라고 했다. 언어의 유희를 겨냥한 일침이다. 


노자는 “말이 많으면 궁해진다(多言數窮)”고 했다. 말로만 사람을 살피면 어긋남이 많고, 말로만 자기를 내세우면 손가락질당하기에 십상이다. 입으로만 재간 부리고 마음에 참됨이 없는 영혼이 가장 허접하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라 했다. 정담도 길어지면 잔말이 된다. 흐린 말은 수다스럽다. 포장할 게 많은 탓이다. “사람들의 입을 이길 수는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게 논쟁가의 한계다.” 장자는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말이 진정한 언변이라 한다. 


장자와 혜자는 벗이다. 둘은 여러 길을 걸었다. 장자는 도의 길을, 혜자는 속세의 길을 갔다. 두 길은 때로는 만나고 때론 멀어졌다. 길은 달라도 마음은 통했다. 혜자가 죽자 장자가 통곡했다. “내가 이제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다”고 애통해했다.



“혜자는 남을 이기는 것으로 이름을 얻고자 했다. 본래 모습에는 약하고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좁고 굽은 길을 걸었다. 재능을 논쟁에 탕진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혜자의 죽음을 그리 슬퍼한 장자지만 평가는 가혹하다. 장자의 눈에 혜자는 단지 변설가다. 혀를 남을 누르는 데 쓰고, 그 혀로 인해 되레 좁고 굽은 길을 간 자다. 말로만 세상을 시끄럽게 산 허세가다. 몸체는 못 보고, 그림자와 씨름한 자다. 


빈 수레가 시끄럽고,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물었다. 귀한 말씀을 달라고 스승을 조른 셈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돌아가고 만물이 자라지만 무슨 말을 하더냐.” 공자 또한 큰 이치는 말이 없다고 가르친다. 험담을 줄이면 스스로가 맑아지고, 시비를 줄이면 스스로가 고요해지고, 허세를 줄이면 스스로가 단아해진다.

 


말로 죽고

말로 살린다


반면 순자는 언설(말로 설명함)에 뛰어나야 군자라고 했다. 순자는 제나라 경공 얘기를 비유로 든다. 새를 무척 좋아한 경공은 촉추에게 관리를 맡겼다. 어느 날 촉추가 부주의로 새를 날려버렸다. 노한 경공이 죄를 물어 촉추를 죽이려 했다. 


당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안자(晏子)로 존칭 받는 안영이 서둘러 경공을 찾았다. “촉추는 군주께 세 가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군주 앞에서 그 죄를 물은 뒤 처형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안영을 촉추를 쏘아봤다. “너는 지엄한 군주의 새를 잃어버렸다. 그게 첫 번째 죄다. 너는 또 새 몇 마리 때문에 군주가 사람을 죽이게 했다. 그게 두 번째 죄다. 너로 인해 천하의 제후들이 우리 군주는 인재보다 새를 중시한다고 여기게 됐다. 그게 세 번째 죄다.” 


안영이 경공에게 다시 머리를 숙였다. “이제 그를 죽여도 되겠습니까.” “그냥 둬라. 내가 깨달았느니라.”



말이 고우면 그 메아리도 곱다. 말을 줄이면 허물도 줄어든다. 고운 말을 담으면 덕이 두터워진다. 말을 너무 아끼면 사람을 잃는다. 말이 너무 헤프면 나를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나도 잃지 않는다. 말을 독으로 쓰지 않고 약으로 쓴다. 말 한마디가 만사를 그르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험담하지 마라. 굿 뒤에 날장구 치지 마라. 말에 지나치게 기교를 넣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허세는 그림자가 몸통을 닮지 못한 말이고, 위선은 거짓이 참을 덮은 말이다. 열자는 “말이 아름다우면 그 울림도 아름답고, 말이 악하면 그 울림도 악하다” 했다. 


원천이 맑아야 흐름이 맑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곱고, 입이 고우면 발길이 아름답다. 입은 작고 발은 크다. 입은 참 자신이 아니다. 


참 자신은 발걸음이다. 발걸음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꿈을 좇는지, 가면 벗은 모습이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입은 자주 속인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포장이 알맹이를 감추고, 화려함이 담박함을 밀쳐낸다. 



뱉은 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말이 입을 떠나면 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비밀을 나누면 한마음(?)이 된다고 착각한다. 나누는 순간 비밀이 아님을 모르고 서로 입조심하자 한다. 그러다 둘만이 안다고 믿은 게 흘러라도 다니면 서로를 의심한다. 


비밀은 온전히 마음에만 담아라. 그래야 진짜 비밀이다. 말로 은밀한 상처를 건드리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오롯이 담으려면 바닥이 새지 않아야 한다. 금간 옥잔은 온전한 흙잔만 못하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갈래가 모여 길이 된다. 길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니 삶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삶이 희망인 건 걸어갈 길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삶에 용기가 필요한 건  그 길을 내가 선택해야 하는 까닭이다. 


삶에 정해진 길은 없다. 당신의 길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 걷는 길이다. 마음의 찌꺼기를 비우고 가볍게 걷자. 희망을 품고 담대하게 걷자. 다투지 말고 웃으며 걷자. 이전의 발걸음이 어긋났다면 이후의 발걸음은 바로 하자. 행복한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초심(初心)은 처음의 마음이다. 길을 택할 때의 각오, 첫걸음의 설렘이다. 누구나 길을 가면서 하나둘 초심을 잃어간다. 각오가 물러지고, 설렘은 무뎌진다. 순수에 탁함이 끼고, 무심에 탐심이 얹힌다. 처음에는 털끝만 한 갈림이 끝에는 천 리나 어긋난다. 선택도, 발걸음도 온전히 당신 몫이다. 


자유의 이면은 불확실이다. 선택의 끝이 불확실하고, 끝에 이르는 시간이 불확실하고, 끝에 달할지도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이 두려운 자는 자유를 포기한다. 자신의 길을 타인에게 의탁하고,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긴다. 주인의 삶을 포기하고 하인의 삶을 택한다.    



인생의 길 곳곳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그 두려움은 길을 가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 길이 확실하냐고, 나누면 당신 몫이 적어지지 않냐고, 평범한 걸음이 편하지 않냐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은 그때마다 주춤댄다. 세상 눈치 보느라 주춤하고, 당신 길에 의구심이 생겨 주춤한다. 그게 길이다


돌부리에 채고 큰 산에 막히는 게 길이다. 때로는 훈수꾼이 수를 더 잘 본다. 생각을 비워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남의 길을 수시로 기웃대면 내 길이 흐려진다. 남의 말에 촉을 세우면 내 말을 잃는다. 생각이 지나치면 지혜를 잃는다.




물에 떠다니는 가랑잎을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선택권이 없으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루소는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는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주인은 선택권을 행사하고, 하인은 주인에게 선택권을 위임한다. 


“귀와 눈은 소리와 색을 즐기느라 힘을 다 쓰는데, 마음마저 겉치장에 힘을 다 쓴다면 몸 안에 주인이 없게 된다.” 한비는 몸 안에 주인이 없으면 재앙이나 복이 구름이나 산처럼 몰려와도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내 안에 내가 없으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길흉화복조차 감지하지 못한다.



아닌 길은 물러서고, 가야 하는 길은 더욱 힘써라. 그게 길을 가는 자의 지혜다. 지혜의 실천에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섬을 생각하면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은 면할 것이다.(채근담)” 나아가고 멈추고 물러서는 데는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갑시다.’ 이 말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그대로다. 길이 아니다 싶으면 앞에서든 뒤에서든 다시 가야 한다. 남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제라도 당신 길을 가고, 너무 채워 영혼이 무겁다면 이제라도 비워야 한다. 



  

행복한 길을 걷는 자는 물질로 영혼을 덮지 않는다. 한 소년이 어느 날 길에서 돈을 주웠다. 소년은 횡재다 싶어 그날 이후 땅만 보고 다녔다. 그는 평생 길에서 큰돈을 모았다. 한데 잃은 게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했고, 무지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을 몰랐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보지 못했다. 《채근담》에 나오는 얘기다. “사람이 어질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의 뜻을 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하게 된다.(소학)” 인간은 재물의 주인이다. 한데 자칫 잘못 부리면 재물이 주인 행세를 한다. 재물이 앞서고 주인이 따르는 길은 인간의 길도, 자연의 길도 아니다. 잘못된 길은 걸을수록 화가 커진다.



맹자는 “보통 사람은 행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고, 익숙해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모르고, 평생을 따라가면서도 그 뜻을 모른다”고 했다. 길이 헷갈리면 좀 걸어보는 것도 요령이다. 인간은 걸으면서 배운다. 자식 기르는 것 다 배우고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고 했다. 


걸으면서 몇 가지는 짚어봐야 한다. 바른길인가, 내 길인가, 행복한 길인가는 필수 점검 항목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바른길을 걷고, 내 길을 걷자. 행복한 나로 살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이 줄을 그어댄다. 적군과 아군을 가르고, 왼쪽과 오른쪽을 나눈다. 어정쩡하게 선을 밟고 있으면 채근하는 시선을 쏘아댄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니 적군과 아군, 왼쪽과 오른쪽만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 


무리를 벗어나면 왠지 벌거벗은 느낌이다. 그럼 저편으로 삿대질하며 다시 ‘우리’를 회복한다. ‘갇힌 우리’에서 큰 세상을 본다고 착각한다.  




맹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지혜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맹자에 따르면 시비지심은 지성과 인성의 실마리다. 장자는 생각이 다르다. 장자에게는 구별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음이 큰 앎이다. 


만물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다. 예(禮)는 질서요, 악(樂)은 조화라는 게 유가적 생각이다. 인(仁)의 구별에서 불인이 생기고, 의(義)의 구별에서 불의가 생긴다는 게 도가적 생각이다. 장자는 인의가 되레 거짓된 형식을 낳는다고 한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가름은 자신을 차단하는 벽이 되고, 높낮이와 좌우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어리석은 건 가름으로 자신을 ‘이분법 상자’에 가두는 일이다. 아군과 적군, 나와 너를 구별 짓는 편 가르기다. 다름에 틀림이라는 선을 긋는 편견이다. 이것이 저것으로 연결되는 이음매를 잘라내는 차단이다. 


노자는 “대도(大道)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서고, 가족이 무너지니 효가 나서고, 나라가 어지러우니 충이 나선다”고 했다. 너무 가르지 마라. ‘크다’ ‘작다’, ‘높다’ ‘낮다’, ‘오른쪽이다’ ‘왼쪽이다’, ‘귀하다’ ‘천하다’로 가르지 마라. 




다르니 삶이다. 너와 내가 다르니 사람이고, 봄과 가을이 다르니 계절이다. 산과 바다가 다르니 풍경이고, 내 뜻과 네 뜻이 다르니 마음이다. 



모든 구별은 상대적이다. 모래가 있기에 자갈이 크고, 자갈이 있기에 바위가 큰 것이다. 자갈은 모래보다 큰 것이고, 바위보다 작은 것이다. 그러니 자갈을 ‘크다’ ‘작다’로 구별하지 말고 그냥 자갈로 보면 된다. 


철학자는 앞다퉈 세상을 갈랐다. 실존과 본질로 칸을 치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위아래를 분리하고, 경험과 이성으로 편을 나누고, 유신과 무신으로 담을 쌓았다. 


그 가름들이 섞여 철학이 됐다. 다르니 삶이고, 다르니 철학이다. 산이 산인 건 계곡이 있고 중턱이 있고 정상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크면 너와 나, 크고 작음을 가르지 않는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가르는 세상이다. 장자는 인의예지로 세상을 가르는 유가를 호되게 나무란다. 울타리 없는 자연의 길에 경계를 치지 말라 한다. 높낮이로 평가하지 말고, 귀천으로 구별 짓지 말고, 대소로 나누지 말라 한다. 


두루 품어 참된 관계를 회복하라 한다. 가르기의 굴레를 벗고 온전한 세상을 보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냥 밝게 비추라 한다. 삶은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이고, 죽음은 만물이 모두 같은 것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가름의 기준이 공평하냐고 묻는다. 그 기준에 당신의 이익, 당신의 이념, 당신의 편견이 끼어있지 않은가 돌아보라 한다. 자신을 공정히 들여다보는 건 여간 어렵지 않다. 당신 안의 무수한 변호사가 당신을 끊임없이 옹호하기 때문이다. 


당신 판단이 옳다고, 잘못은 저쪽에 있다고, 당신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저쪽은 핑계라고, 당신 기준이 합리적이라고. “사랑해도 그 악함을 알고, 미워해도 그 선함을 알아야 한다. (예기)”  재주가 어중간한 사람은 매사를 함께하기 어렵다. 나름의 생각과 지식이 있다고 여겨 억측과 시기가 많다. (채근담)”



함부로 헤아리지 말고, 섣불리 가르지 마라. 자기 논의 잡초는 뽑지 않고 남의 논의 풀만 뽑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마라. 당신과 다른 의견을 그르다 하지 말고, 당신과 같은 의견을 옳다 하지 마라. 


당신 생각이 그르다면 당신 생각에 동조자가 많은 게 부끄러운 일이다. 마음을 키워라. 그래야 삶이 풍성해진다. 태산은 좋고 싫음을 내세우지 않아 그리 높아졌다. 


바다는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아 그리 넓어졌다. 시비가 어지러우면 당신이 작다는 증표다. 시비에 민하면 당신 심성이 거칠다는 증거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지사항

Yesterday1,194
Today568
Total2,120,734

달력

 « |  » 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