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어블하고 당당한 엄마, 변정수. 지난 2월 24일 오전, 스튜디오 촬영 스케줄을 마치고 나오는 변정수를 청담동 ‘아름다운 북앤커피’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시절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여 지금은 연기자, 진행자, 사업가, 봉사자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그가 미시족으로 가장 빛나는 이유는 ‘패션’이라는 자기 전문성과 함께 ‘엄마’만 아는 아이 사랑을 ‘봉사’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건강보험>을 위해 자연스런 의상을 준비했어요

 

 변정수는 카페에 등장하기 바쁘게 표지 촬영 콘셉트를 물었다.

 “건강보험 사보 촬영이니 너무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의상을 준비했다.”고 한다.

 변정수는 모델답게 빠르게 다양한 포즈와 화사한 표정으로 표지 촬영을 마쳤다.

 

 인터뷰 도중에도 촬영이 계속되는지를 묻더니 티셔츠를 걸쳤다. 다른 느낌을 연출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꼼꼼함이 돋보였다.
 결혼 18년 차 주부이자 15살, 7살 두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상큼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그가 테이블에 앉았다.

 

 이기적인 몸매와 훌륭한 엄마로 손색없는 그에게 첫 번째 궁금함은 바로 그만의 건강비결,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하루 세끼 잘 챙겨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면 위궤양이 생긴다잖아요. 그래서 저희 집은 하루 세끼 잘 챙겨 먹는 것을 강조하죠.”
 ‘밥’ 잘 챙겨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변정수 가족의 건강비결은 ‘즐겁게 살기, 나누며 살기’에 있었다.

 

 

 

 해외 30여 명 후원한 지 10년째, 온 가족이 해외봉사

 

 나눔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 북한 아이들의 굶주린 모습이 자주 나왔다. 변정수는 과자 CF 출연료를 전액 과자로 바꾸어 북한 어린이에게 전달했다.

 

 국제구호개발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의 국내외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지도 올해로 10년째.  우리 아이가 소중한 만큼 세상의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깨달음을 실천한 것.

 

 결혼10주년 되는 해인 2005년, 방글라데시에 남편과 함께 봉사를 다녀왔고 이듬해인 2006년에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 채원이를 데리고 베트남 산골 마을에 다녀왔다.

 2009년부터는 두 살짜리 막내까지 온 가족이 매년 해외봉사를 다녀온다.  봉사 다녀올 때마다 알게 된 아이들을 후원하다보니 지금은 30여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고 매월 지출하는 후원비가 1백만 원이 넘는다.

 

 변정수는 지난해 11월 큰딸, 채원이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 근처인 산이시드로 지역을 다녀왔다.  2009년 태풍 피해를 핑계로 마닐라에 거주하던 빈민 5,000여 세대를 강제로 이주시킨 곳이다. 변정수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제인이라는 소녀와결연을 하여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굿네이버스에 2천만원도 기부했다.

 

 

 

 

 

 네팔, 필리핀, 탄자니아에 '맘센터' 건립예정

 

 “매년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오면, 내가 이렇게 화려하게 생활해도 되나 자책감이 들 정도입니다. 10년 정도 다니다 보니 제가 가서 밥 한 끼 먹여준다고 그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마음이 아팠어요. 한 번씩 도와주는 것보다는 엄마들이 스스로 일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둥지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변정수가 2010년 3월, 1억 원을 기부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지구촌 빈곤 아동을 보듬겠다.’라는 의미로 ‘맘(Mom)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변정수의 아이디어로 굿네이버스가 함께하고 여러 기업도 함께 하고 있다.

 

 

 네팔 꺼이날리에 올해 7월이면 ‘맘센터’ 1호를 열 예정이다. 

 필리핀에 2호를 건립하고, 3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건립할 계획이다. 1호를 건립할 때마다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기에 열심히 일하고 또 주위에 소문을 내서 후원자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변정수 가족은 앞으로 100곳에 ‘맘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발적인 행사를 뛰어넘는 자원봉사사업가라 해도 과장은 아닐 듯 싶다.

 

 

 

 

 성대 결절 후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아

 

 에너지 넘치는 슈퍼우먼 변정수도 늘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엔 성대 결절 수술을 받았다.  바쁘게 달려만 오다가 병원에 다니며 힘들었다는 그.

 “가수도 아닌데 성대가 왜 아팠는지 모르겠어요.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은 기회였다.”라고 웃으며 회상했다.

 

 아플 때 이야기를 물으니 변정수가 되물었다. “성대 수술할 때 건강보험이 일부 적용되지 않아 병원비가 아주 비쌌어요. 왜 그렇죠?”라고.

 

 건강보험공단 박봉서 홍보부장이 특진료, 상급병실 이용료 등 보험 적용이 안되는 항목이 있어 그럴 것이라며,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 그리고 암환자 진료비 경감, 건강검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다양한 건강보험의 혜택을 설명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변정수는 매월 15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는 고액 국민건강보험료 납세자다. 변정수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건강검진은 얼마나 자주 받는 것이 좋은지, 아이들의 필수 예방접종 항목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물었다.

 

 

 

 

 엄마가 멋있어야 아이들도 남편도 좋아해요

 

 연기자 변정수는 MBC 주말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 반년째 변주리 역으로 살다가 지난

1월부터는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토크 앤 시티’ 진행자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디자이너 숍을 방문하여 옷을 입어보고, 구두를 신어보고, 스타일에 맞는 액세서리를 고르는 과정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에게 쇼핑하는 법, 패션어블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변정수만의 센스와 열정이 느껴지는 프로그램.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패션’이라는 아이콘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재미있습니다. 패션뿐만 아니라, 육아와 인테리어, 아트까지 아우르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섬유미술학’을 전공한 모델출신 엄마이기에 그는 이 프로그램이 더 더욱 재밌다고 했다.

변정수에게 알뜰 패션 노하우를 물었다.

 

 “엄마들이 돈 걱정하느라 자기 옷을 사입지 않잖아요. 엄마가 멋있어야 아이들도 기가 살고 남편도 좋아합니다.  패션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보고 자주 입어보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아요. 

 

 연예인들 옷 입는 것을 눈여겨보고, 옷 가게 가서 자주자주 입어보고 자기 스타일을 찾으면 되요. 제일 중요한 것은 항상 깨끗하게 관리하고, 슈퍼에 나가더라고 비비 크림 정도는 바르는 부지런함이죠.”라고 아줌마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말했다.
 레깅스와 민소매 셔츠, 화이트 셔츠를 기본 아이템으로 갖추고 스타일에 맞추면 멋스럽다고 덧붙였다.

 역시 ‘패션’ 이야기를 시작하니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변정수의 행복은 두 딸과 남편으로 부터

 

 변정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좋은 엄마’다. 은 엄마가 되려고 누구보다 공부하고 노력하는 엄마다.  아이 이야기를 물으니 그의 표정은 생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둘째 정원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1년 동안 생활한 모습을 담은 앨범도 보여주었다.  정원이 친구와 친구 가족들끼리 함께한 사진 속 변정수는 평범한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들 덕분에 요즘에는 ‘화내지 않는 법’, ‘우아하게 대화하기’를 남편과 함께 연습 중이란다.

 

 변정수의 모든 것은 가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는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 마음을 가족에서 한계 짓지 않고, 다른 아이들의 행복까지 챙겨주는 글로벌한 엄마다.  평범한 엄마로, 패션어블한 연예인으로, 지구를 사랑하는 봉사자로 살아가는 그가 멈추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글 / 김성숙 기자,  사진 / 김윤해 사진가,  사진제공 / 굿네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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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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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2.03.21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정수씨가 훈훈한 사랑을 실천했네요~

  2. 2012.03.21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슈바이처  이용만

  즐겁지 않으면 이일을 못한다.

 

 

 

 

 

 

 1992년 겨울. 아내와 함께 퇴근하던 의사 이용만은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해외에서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로마의 케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듯이 한국의 이용만은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 셈이었습니다.

 

 1993년 겨울. 그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의 자격으로 방글라데시(Bangladesh)로 갔습니다. 부부는 한국을 떠날 때, 자녀들이 살던 아파트 한 채만 남겨놓고 모든 재산을 처분했습니다. 마치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않겠다는 배수진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둥이였으니,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였습니다.


 이용만은 조선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업을 마쳤습니다. 서울에서 병원을 개원하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고 편안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사가 되면 신앙인으로서 봉사하는 기회를 반드시 갖겠다고 서원했던 대학시절의 각오가 항상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정부파견의사로 파견되기 전에 그는 내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를 두 차례 방문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누나가 여행경험에 대하여 묻자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사진 속에 있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카딩턴 박사였습니다.

 그는 한국전쟁직후 혼란기에 자궁외 임신에 의한 심한 출혈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수술을 해 누나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연락이 끊어져 생사조차 몰랐는데 그 고마운 카딩턴 박사를 의사 이용만이 방글라데시 여행 중에 같이 사진을 찍게 되어 누나에게 소식이 전해졌던 것입니다. 운명이란 것이 그를 이끌었던 모양입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근교 통기병원 내과에서 그는 인술을 펼쳤습니다.

 

 외국인 의사에 대한 현지 의료인들의 배타적인 상황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하였으며, 일과 후에는 교민들을 위한 예방접종 및 각종 상담에 응하였습니다. 그가 KOICA에 알린 실적보고서에는 무려 40여 종에 달하는 질병을 진료하였으며, 매 분기마다 3,0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환자를 진찰할 때 옷을 입은 채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다정한 인술은 꽃을 피웠고, 그의 병실에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료 시작은 아침 9시인데 7시부터 기다리고 있었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환자들도 오래 기다리다 보면 화장실에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치기를 당할까 봐 참고 기다리다가 병실에서 실례를 하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의사 이용만이 묵묵히 진료하던 중에 언제부터인가 여자 환자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부다처제 아래서 여성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고민에 대해 귀를 기울여주다 보니 큰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한 지 3개월이 지난 무렵, 병원 복도에 누워 있는 세 살가량의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버려진 아이였고,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실조였습니다.  

 아이를 병실로 옮기고, 우유와 햄 그리고 빵을 사다가 옆 침대의 여인에게 먹여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일주일 쯤 지나 아이를 찾아가 상태를 보니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부인이 아이에 게 줄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당황한 그는 직접 아이에게 음식을 주기 시작했고, 한 달가량 지나면서 아이가 뚜렷하게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주변에서는 아이를 양녀로 삼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 한 고위공무원이 입양하겠다며 그의 의향을 물어와 아이의 장래를 위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훗날 양부모와 함께 가끔 병원을 방문한 그 아이는 공주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3년을 근무한 후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비자연장을 받지 못해 네팔(Nepal)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네팔정부로부터 지정받은 국립 박따뿔(Bhaktapur)병원은 어쩌면 본격적인 봉사와 희생의 마당이었습니다.

네팔은 비록 후진국이지만 국가가 보건예산을 전체 예산의 7%를 배정할 정도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팔의대에서 배출되는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높았습니다.

 

 네팔 사회에서 의사들은 가장 우수한 인재로 간주되며,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권력층과 연결된 집안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의과대학 학자금은 너무 비싸고, 가난한 집 출신들은 장학금 수혜가 많지 않은 여건에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엘리트의식
과 자존심이 강하였습니다.

 어쩌면 신성한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이 이미 폐지된 카스트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 의사에 대해 차별적이었고, 병원의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담하였습니다.

 새로운 병동도 지어졌고 KOICA의 지원으로 시설도 개선되었지만, 그가 진료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분만을 하기에는 너무 시설이 열악하여 산모와 신생아 모두에게 위험해 보였고, 진료 중에 정전도 잦았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나라 네팔에서는 병이 생기면 무속인, 민간요법, 시골 약국이나 보건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70대 할머니의 종양을 제거한 수술은 하나의 전설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배가 산처럼 솟은 노인을 초음파로 진단해보니 커다란 물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수술을 권유했지만 ‘70이 넘은 내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수술하겠느냐’며 거부하는 환자를 설득해서 18Kg이나 되는 종양을 들어냈습니다.

 수술 받은 후 퇴원했다가 세 손녀와 함께 그를 찾아와 이제는 살 맛이 난다고 고마워하였습니다.

 이 환자가 수술 받은 후 의료진과 함께 찍은 사진과 들어낸 물혹 사진은 지금도 그 병원에 걸려 있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수술을 감행한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응급실로 환자가 들어왔는데 유방염이었습니다. 응급실의사는 환자를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자고 제안했지만, 그가 만류했습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산부인과과장은 그를 유방농양치료전문가(Breast Abscess Specialist)라 부르면서 부러워하였습니다.

 

네팔에서는 남자들이 또삐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데, 오직 또삐만을 만들어 살아가는 환자가 선물한 것을 그도 쓰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보통 높이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것을 주면서 당신은 반드시 이걸 써야한다고 해서 영문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상류층이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를 극구사양하고 보통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낮은 또삐를 쓰고 다녀 더욱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2003년은 박따뿔병원 개원 100주년이었습니다.

 

 네팔 왕실은 의사 이용만에게 각별한 인사말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그의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치하하였습니다.
 이용만은 KOICA의 전적인 지원을 받아 2009년에 개원한 한국·네팔 친선병원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박따뿔병원에서 진료 받던 환자가 멀리 떨어진 이 병원까지 그를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노래를 하면 아내도 따라서 부른다고 했던가요. 이용만의 부인 박영례도 묵묵히 남편을 돕다가 봉사에 나섰습니다.


 2002년, 2층짜리 주택을 임대해 고아원 ‘시온의 집’을 열었습니다. 부모가 없거나 결손가장 출신이며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원거리 시골출신 아이 12명을 자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못 먹고 못 배우던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회계사와 의사 등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이용만 의사 부부가 없었다면 학교에 가지도 못하였을 것이니, 자신들의 인생이 완전히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시온의 집’ 어린이를 지도하다가 의과대학에 합격한 시골청년에게 이용만 부부는 입학금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후원하였습니다. 그 가난했던 청년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6개월 동안 연수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의사가 부족한 시골 주민들을 위하여 일하고 있으며, 이용만 부부를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고 있습니다

의사 이용만과 네팔인 양아들    

  

 그가 방글라데시로 가던 해 집안에는 고등학교 3학년인 대학입시생이 있었습니다.

 3남매를 남겨두고 부인과 늦둥이인 막내만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어찌 보면 자식에게는 무심한 부모였습니다.

 이용만은 지금도 20년 전 양복을 입고 다녀서 주위에서는 유니폼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둘째 셋째 딸 결혼식에 친구와 시댁 조카 한복을 빌려 입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마음으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였습니다.

 

 그는 2000년 적십자 박애상 금상, 2005년 KOICA 표창 그리고 2008년 외교통상부가 후원하고 KOICA와 KCOC(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8년 KOICA에서 거행된 제3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면서 그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말없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 사람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럽다.

 의사 이용만의 자랑스런 해외봉사 이야기는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20년 세월.

 즐겁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한다고 그는 겸손하게 말합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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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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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인배닷컴 2011.08.26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진 분들이 많네요. :)

  2. soybbay 2011.08.26 1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천사님도 글로써 여러사람들의 건강을 챙겨주고 계시잖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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