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1.02 가족의 소중함을 알자
  2. 2012.02.08 [스타인터뷰] 효도 잘할 것 같은 가수 '장윤정' (6)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구성원이다. 더 소중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족 돌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일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최우선해야 한다. 가족을 챙긴다고 팔불출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땐 일에 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러나 나이들면서 그것을 깨우치게 됐다. 몇년 전부터 골프 나가는 것도 확 줄였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물론 골프는 재미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골프 중 택일하라면 가족을 택하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네 명. 장모님, 우리 부부, 아들이 전부다. 요즘은 장모님이 외출을 못 하신다.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 겨우 걸을 정도다. 그 전에는 항상 넷이 같이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를 잘 챙긴다. 아주 자상한 녀석이다. 딸을 뺨칠 정도. 아내도 마찬가지. 넉넉하진 못해도 집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 늘 고맙다.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출가하면 내 식구 챙기느라 소홀하기 쉽다.

 

근 형제들과 아주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우리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것. 생전 처음이다. 나의 9번째 에세이집 '오풍연처럼' 출간 기념도 겸한 자리였다. 세종에서 형님, 대전에서 남동생이 올라왔다. 나와 누나, 여동생은 서울, 부천에 각각 산다. 진작 이같은 모임을 가지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나와 누나, 여동생이 대전에 제사지내러 종종 내려갔지만 대전 형제들의 서울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수님과 제수씨가 즐거워 했다. 12시 정각 성북동 누브티스에 모두 모였다. 승용차는 나와 여동생만 가지고 갔다. 차량 두 대로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님이 멋진 점심을 내 놓으셨다. 풍'스 패밀리 메뉴까지 개발했던 것.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누브티스 바로 이웃에 있는 길상사에 들렀다. 서울에서 기를 받을 수 있는 3대 명당 중 한 곳 이란다. 이어 교보문고로 가서 누브티스의 '오풍연 쇼 케이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아내와 형수님, 제수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5남매만 경복궁에 들렀다. 나도 20여년만에 다시 가봤던 것.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경회루와 근정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여의도 산삼골. 오리훈제와 전골을 정말 맛있게 한다. 사장님이 안 계셨지만 직원들을 시켜 복분자 술도 내왔다. 형님과 남동생은 거나하게 마시고 내려갔다. 음력 11월 17일 어머니 제사 때 대전에서 다시 모인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나 역시 뿌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제사는 2010년 1월 1일이었다. 2008년 12월 14일 돌아가셨는데 윤달이 끼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엄숙한 가운데 제가 시작됐다. 맏상주였던 형님이 먼저 술을 부어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차남인 내가 가득 채웠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며 참배를 했다.

 

한 분이 어머님을 ‘작은 거인’에 비유하며 기도를 드렸다. 베풂의 삶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그랬다. 우리 다섯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친․인척 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중심에 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가족 대소사를 모두 챙기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내 대신 할머니 임종을 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군에 입대했다. 놈이 마침 외박을 나와 첫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놈이다. KTX로 상경하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셨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후.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제 녀석도 28살. 머지않아 장가를 갈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나 자신부터 가족을 챙기고,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23살. 아이돌 스타의 나이로 트로트를 부른 소녀 가수 장윤정. 어느덧 그가 서른 넘은 어른이 되었다.


  트로트
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시대를 열었던 장윤정.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부르는
몇 안 되는 가수다.  ‘효도’ 잘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때론 ‘저축왕’으

로 불리었지만 무엇보다 가수로서 ‘끼’를
발산하며 묵묵히 가수의 길을 걸어왔다. 


 ‘행사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가 싫었지만 행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의 팬을 만나며 그것이 장윤정의 힘이 되었고,

10여 년의 꾸준한 ‘저축왕’은 이제 남을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달렸던 해맑은 소녀

 

 가난했었기에 우리 집 갖는 것이 간절했던 소녀는 남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  갑자기 뜨고 쉽게 잊혀지는 세계에서 장윤정의 색깔로 10여 년을 걸어왔기에 이제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목표를 이루었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변함없이 달리고 있다.

 

 장윤정이 정말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 발랄한 미소와 목소리다. 노래다.

 

 기존의 트로트를 장윤정은 뛰어넘었다.  트로트가 대변해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남기되, 밝고 경쾌하며 따라 부를 수있는 리듬을 추가했다.  아빠들의, 엄마들의 노래로 맴돌던 트로트를 젊은 세대도 열창한다.

 장윤정이 이뤄낸 힘이리라.

 

 

 

 

  5년째 5월이면 여는'孝 콘서트'에 장윤정의 마음을 담아

 

장윤정을 말하는 키워드 중 ‘효도’를 빼놓을 수 없다.

 2007년부터 매년 5월이면 전국 투어 ‘효 콘서트’를 열고 있다. 5년 동안 이어진 일이다.

 

“어르신들은 젊은 가수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대견해하시는 거 같아요.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이 그 순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찡하더라고요. 

 힘들 때 그렇게 환호해주던 분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을 위해 노래하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어르신에게 사랑받는 장윤정은 집에서는 어떤 딸일까?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도 특별한 활동을 시작하지 못한 장윤정은 2004년 ‘어머나’ 로 뜨기 전까지 가정 형편이 심하게 어려웠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끼니를 걱정했고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지내느라 헤어드라이어로 이불을 데워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집 사드리고 가족여행도 다녀왔지만 대화가 최고예요

 

 장윤정이 부모님께 가장 해드리고 싶은 선물은 그래서 ‘우리집’ 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적금을 부어 2006년 강원도 원주에 집을 지어 부모님께 선물했다.  그 다음으로 해 드리고 싶었던 ‘가족여행’ 선물은 지난해 여름에 드렸다.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 순찰을 서주는 경찰관들이 고마워 ‘전·의경 한마음 체육대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안의 장녀인 장윤정이 말하는 효는 뜻밖에 평범한 것....

 

 “효도 잘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매번 뽑히는 게 좀 부끄러운데요. 내가 부모님께 잘해 드리고 있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직업이 연예인이다 보니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신 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사소하지만, 많이 해 드리려고 합니다.  때론 깊은 이야기도 하고요.”

 

 장윤정이 하는 일, 생각 등을 자주 이야기하며 부모님이 괜한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효라고 말한다.

 

 

 

 

  쉬지 않고 무대에 설수 있었던 체력, 수영과 반신욕으로

 

 장윤정은 2011년만도 50회가 넘는 콘서트를 했다. 스타 대열에 올랐음에도 적지 않은 공연을 강행했는데 무명의 시절 얼마나 많은 현장을 뛰었을까.

 

 ‘어머나’로 장윤정 돌풍을 일으킨 2004년에는 무려 500번 넘게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얼마나 돌아다녔으면 ‘행사의 여왕’이라고 불렀을까?  그러다 영양실조에 걸려서 쓰러지기도 했고 감기와 고열로 드러눕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금세 일어나 다시 행사를 뛰었고 방송에 얼굴을 내비쳤다.  지독하리만큼 성실하게 달려왔다. 의 체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밥이 보약이라고 하잖아요. 되도록 제때 끼니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틈틈이 집에 있을 때는 운동기구를 이용해 근력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다 보니 편안한 음악을 틀어놓고 반신 욕을 하는 것을 즐깁니다.”

 

 장윤정은 그렇게 몸과 마음을 아껴준다고 했다.

 바쁠 때는 잠도 부족하고, 좋아하는 수영할 시간도 없어 보약으로 버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실컷 울다가, 이제는 내려놓기 생각 끊기

 

 

 장윤정은 평소 음색을 보호하기 위해 목에 좋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

 스타이기에 외모를 가꾸는 일도 빠질 수 없는 일.
 화장을 잘 지우고 물을 많이 마셔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는 외유내강형인지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것도 중요한 일.

 스트레스 쌓이면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목욕을 한다. 그래도 안된다면 혼자서 실컷 울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되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제가 늘 밝은 모습만 보여 드렸지만 사실 소심한 면도 많아요.

 남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에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하게 사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이게 나잇값인가 봐요.”라며 생각 끊기, 내려놓기 연습 중이란다.

 

 

 

 

  홀로 사는 노인 콘서트에 초대하고, '김치'기부하고

 

 오직 달리기만 바빴던 장윤정은 이웃과 함께하는 일에 시선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림프성 백혈병을 앓고 있던 최희주(15세) 양이 평소 좋아하던 장윤정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듣고 대구 콘서트에서 만났다. 그 후 최희주 양이 정상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지난해 5월에 연 ‘효 콘서트’에 홀로 사는 노인 100명을 초대했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김치 올래’ 5,000포기를 저소득 조손 가정에 전달했다.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 찌아찌아족 어린이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꼭 큰 게 아니더라도 제가 가진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요. 홍보대사, 무료 공연 등 저는 어렵지 않은 일인데 많은 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또 다른 기쁨을 느꼈습니다.” 라며 좀 더 이웃에게 관심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여는 2012년 모두 함께 발전하는 해로

 

 정통 트로트부터 세미 트로트까지, 발라드에서 디스코까지 어떤 장르라도 장윤정만의 발랄하고 경쾌함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그의 활동이 2012년에는 어떻게 이어질까?

 

 

 “지난해 신곡을 내지 않고 팬들을 만나 왔는데요, 올해는 좋은 노래가 있다면 신곡을 발표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올해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방송활동과 김치사업을 하면서 내 주변의 가족과 소중한 사람을 더 잘 챙기고 싶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물 흐르듯 2012년을 보내고 싶다는 장윤정.

 

 그는 마지막으로 건강보험 독자에게 “독자 여러분,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2012년 흑룡해를 맞아 모든 분이 용솟음치듯 삶에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새해 덕담을 건넸다.

 

삶의 무게를 뛰어넘는 ‘해맑은 웃음’으로 성실하게 한 길을 걸어온 장윤정은 2012년 어떤 표정의 즐거움을 선사해줄까?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기에 국민은 마냥 기대고 싶어진다

 

 

 

글 / 김성숙 기자

사진 / 아시아경제DB, 인우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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