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여행에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은 바로 동명항의 영금정과 등대전망대인데요. 속초 등대전망대는 일제 강점기 속초항 개발을 위해 영금정의 돌산을 깨뜨려 만든 등대로 속초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하얀 등대의 모습이 멋스럽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면 죽도, 영금정 끝의 오리바위, 해돋이정자, 조도와 속초항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설악산 대청봉과 달마봉, 울산바위까지 눈에 듭니다. 




주소

강원 속초시 영금정로5길 8-28(영랑동 1-7) 


전화번호

033-633-3406 


운영 시간

하절기-매일 06:00~17:30, 동절기-매일 07:00~16:30




영금정 입구에서 좀 더 걸어가면 등대전망대에 오르는 철제 계단을 만납니다. 꽤 높은 계단을 오릅니다. 이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앞에 걸어가는 커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온 푸른 바다와 그리고 동명항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오고 속초 시내가 발아래 펼쳐집니다.




속초항로표지관리소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이며, 속초등대전망대 계단 끝자락에 설치된 전망대

갈매기 날개 형태의 조형물이 있어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단을 한참 걸어 올라와 마주한 등대 입구


등대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의 항만 등 다양한 항만시설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속초해수욕장에 하얀 파도가 부딪히고 너른 겨울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모습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영금정


짙푸른 파도를 일으킨 바다 가운데로 나와 있어 속초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가는 속초 여행 필수코스입니다.




등대 전망대 뒤쪽으로 설악산이 병풍처럼 드리워 속초를 포근하게 감싸 안듯 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설악산을 향하는 즘. 겨울바람은 차갑게 볼을 때립니다.



동명항 부두와 속초 앞바다가 하나 되는 물길


영금정과 해맞이 정자 수협공판장까지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동명항 일대 건물들이 그림 같은 풍경으로 차가운 겨울 여행에도 따스한 속초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속초 등대전망대에 오른 또 다른 여행자도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포효하듯 큰 소리를 내며 바다를 향해 환호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등대를 찾아 떠나는 등대 스탬프 투어를 안내해놓았습니다.




외부에는 전망대에서 마주 볼 수 있는 곳곳을 소개해놓고 내부에는 해양안전에 대해 포스터와 등대를 주제로 한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등대전망대는 아이들과 오르면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휴식공간이 있어 무더운 여름에 찾으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등대전망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갈매기 모형 가로등이 배웅해줍니다. 또다시 높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며 전망대에 올랐던 시원한 겨울 풍경을 새깁니다.


속초등대전망대 찾아가는 길

영금정에서 해안길 따라 300m 거리 왼쪽 


인근 속초 가볼 만한 곳 & 속초 맛집

영금정. 동명항. 속초시 수협 동명활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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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술 작품 전시관으로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고암 이응노 화백은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현대미술사의 거장입니다.


현재 2018 이응노미술관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이응노 추상의 서사 전시 중입니다.


이응노 화백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고암 이응노 화백은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현대미술사의 거장입니다.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동서양 예술을 넘나들며 ‘문자추상’, ‘군상’ 시리즈 등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964년에는 파리에 위치한 세르누시 미술관 내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해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문화 전파에 힘쓴 교육자입니다.



추운 겨울 하얀 눈이 쌓인 거리를 지나 찾아간 이응노 미술관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화백의 작품 감상하며 화백의 화풍만의 작품에 몰입하고 탐미하고 있었습니다.



이응노 화백의 

1980년대 작품 군상

군상 연작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작가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창작되었으며 초기 군상 작품에서는 글자를 쓰듯 붓놀림과 흥과 멋이 춤추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대로 읽힙니다. 


대형 군상이 등장하는 80년대 중후기 작품에서는 글을 쓰듯 붓으로 그려 넣은 무수한 인간 형상들이 평범한 화면 위에 전면적으로 펼쳐지며 압도적인 운동감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한 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에서 받는 느낌은 율동적으로 실제 사람처럼 생생한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군상 작품에서 전해 오는 것은 인물마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움직임에 현실에 살아가는 삶을 압축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작품들 


1967년 이응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옥중에서도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 300여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프랑스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에서 크고 작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문자추상 작업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1970년대 문자추상은 서체의 부드러운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적으로 단단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문자추상 양식을 심화시켰습니다.



이응노화백의 

1950~60년대 작품들


도쿄 유학시절에 서양화 표현 방식을 접하고 문인화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상에 기반을 둔 사실적 화풍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50년대에는 점점 추상으로 흘러갔고 프랑스로 건너가기 직전까지 거의 완전한 추성으로 발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콜라주 작품 종이와 먹은 채색 방식에 있어 전통적이며 파리의 앵포르멜 양식과도 조응하는 색다른 감수성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때부터 한자의 형태를 추상 패턴으로 응용한 문자추상작품 시작되었습니다.



이응노 화백의 작품의 변화

그리고 별세


작품에는 인간의 형상은 항상 중심에 있습니다.


1960년대 추상화 속에서 발견되는 자연 속의 인간, 인간의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한 70년대의 문자추상 시리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붓놀림과 서체와 융합되어 독특한 패턴으로 변화해갑니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하기까지 제작된 ‘군상’ 연작은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는 이응노 예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9년 1월 이응노화백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별세합니다.


그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 세즈’ 시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파리, 뉴욕, 서울, 도쿄, 오사카 등지의 갤러리에서 추모전이 열렸고, 이응노의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의 퐁피두 센터, 국립장식미술관 및 스위스, 덴마크, 이탈리아, 영국, 대만,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전 이응노 미술관
위치: 대전 서구 둔산대로 157
전화 문의 042-611-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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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화도 여행은 모처럼 가족여행으로 다녀왔기에 아주 특별했습니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둘러보며 그중에 가장 특별했던 선물 같은 장화리 일몰조망지의 오메가 낙조야말로 가장 설레던 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여행을 자주 하면서 오메가를 여러 번 마주했지만 아들들은 처음 본 오메가 낙조에 신기해하고 놀라워했지요.





모도를 둘러보고 강화도 해담 펜션 김문배 사장님과 늦은 점심 후 아들 둘과 함께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며 서울로 돌아오는 길 카페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길거리를 감상합니다.





지난해에 얼음 빙하가 멋스러웠던 영하 20도의 추위에 사진을 담았던 장화리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일부러 찾아갔더니 정말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카메라 세워놓고 일렬로 노을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노을 지는 바닷가 반대편에는 낮달이 떠서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바닷가를 찾은 사진가들과 강화도 여행객들이 보입니다.





자그마한 섬 위로 떨어지고 있는 붉은 해넘이 순간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낮달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석양을 마주한 사람들의 긴 기다림이 순간의 낙조를 즐기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맞춥니다.






카메라 삼각대를 가져가지 않아 난간을 이용해 사진을 담으며 사진기의 기능을 활용해서 붉은 노을과 푸른 노을을 번갈아 담습니다.





해 질 무렵 푸른 하늘을 수놓는 갈매기를 보니,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메가 하나





오메가 둘, 드디어 오메가 형태의 일몰 조우를 만났습니다. 탄성을 지르며 반기는 사람들과 셔터 소리가 함께 짧은 순간을 즐깁니다.





마지막 바다에 몸을 담근 태양이 받침대를 만들어 태양을 떠받칩니다.





태양의 반을 숨긴 해넘이 그리고 그 풍경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 떼가 이리저리 배회하며 풍경을 만듭니다. 활홀한 설렘으로 가슴이 뜁니다.





사진 촬영하랴, 영상 촬영하랴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점점 바다로 가라앉는 태양을 솔 섬의 선명한 실루엣이 진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걸 담다 보니 서쪽 바다 위에는 멋있는 노을 빛의 그라데이션이 드리웁니다.





그 짧은 황홀함을 담아 하나둘 연인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아들 둘과 마주했던 오메가(오여사)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서울로 미끄러집니다.




글 / 자전거여행 작가 호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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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출발이다. 짐을 다 싸놓았지만 잠이 쉽게 오지는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도 언젠가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나고 말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이것은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기도 했다.  대형 마트에만 가도 길을 잘 못 찾는 날보고 남편은 '국내 길도 잘 못 찾으면서...'하며 나의 단독해외여행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내 생애 첫 해외 자유여행지는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 오래전 읽은 <길위에서-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라는 책을 보고 언젠가 그곳에 가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일단 항공권을 구입했다. 서점에 가서 태국여행책자를 사서 내가 갈 곳을 위주로 정독을 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여행지에서 해 봐야할 것들을 꼼꼼히 적어보았다. 같은 회사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은 혼자 유럽이며 먼 곳까지 제집 드나들 듯 여행을 한다.  나도 그래서 생각했었다. '나도 눈 있고, 귀 있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는데 내가 왜 못해?'


하지만 여행을 한3주 남겨놓고는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길치에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주변의 친구들은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용기가 대단해. 혼자가다니..”“ 나 같으면 엄두가 안 나서 못 갈 것 같은데....쯪.”. 하지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고 싶던 내게 혼자 가는 자유여행은 언젠가는 꼭 마쳐야만 할 인생의 중요한 숙제였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공항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그제서야 별 말없던 남편은 묻는다. “방콕에 내려서 숙소까지 어떻게 갈 건데?” 답장을 하고  드디어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내 자리는 창가 쪽. 점점 땅이 멀어지며 작게 보이는 지상의 건물들이 내뿜는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잠시 후 창밖은 어둠속으로 변했다. 그제서야 내가 혼자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났다.


기내에서 딱 물 한잔만 주는 저가항공을 타고 6시간만에 방콕의 수완나폼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고, 숙소까지 갈 택시를 탈 차례. 공항 1층의 택시 승강장에서 번호표를 뽑아서 그 번호의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 그 기사님은 태국어로 쓰여진 목적지를 보여주며 그리로 가자는 내말은 듣지 않고 무조건 택시비를 흥정하려고 했다. 나는 미터기를 켜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끝내 흥정을 하려고만 해서 적당한 선(가이드책자에 나오는 금액보다 쎈가격)에서 타협을 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까지 이 택시로 가는 건 포기하고 그냥 ‘카오산 로드’ 가자고 했다. 기사는 흥정한 500밧(태국돈)이 맘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하고 어떤 거리에 내려주었다. 내리고 보니 카오산로드는 엄청 밤이 화려하다던데 내려준 거리는 인적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속으로 엉뚱한 곳에 내려준건가 하는 두려움이 순간 엄습했다. 내려준 곳 근처에 있던 가게점원에게 물으니 손가락으로 옆골목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몇 걸음 걸으니 번화한 홍대 밤거리 같은 분위기의 카오산로드가 나타났다.


공항에서 로밍해온 핸드폰을 켜고 구글지도로 숙소를 검색하니 직진해서 2분거리다. 결국 오기 전 예약해둔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을 풀고 보니 거의 자정이 다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 먼 이국땅에 혼자 잘 찾아왔구나 하는 기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숙소를 나오니 숙소주변엔 많은 가게들,,,맛사지숍, 레스토랑, 술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음식이 맛있다는 태국! 알 수 없는 많은 음식노점이 있는 그곳에서 나는 유명한  ’태국산 ‘싱하’맥주에 망고밥을 시켰다. 달달하고 매끈한 감촉의 찰밥과 망고는 잘 어울렸다.



<왕궁에 온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들>



이튿날엔 방콕의 대표적 볼거리인 왕궁투어에 나섰다. 거리엔 온통 검은 상복을 입은 태국인들의 물결로 가득 찼다. 지난달인 10월13일에 현재 국왕이던 라마9세, 푸미폰국왕이 서거해서 지방에서부터 온 국민들이 왕궁으로 참배를 드리러 가는 모양이었다. 향년 90세인 국왕은 60년의 긴 재위기간동안 온갖 험한 일을 마다않고 어진 통치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한다.





왕궁 안과 여러곳의 사원주변에서는 국왕을 조문하는 사람 모두에게(나같은 외국인포함)제례음식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한끼 식사로 손색없는 음식부터 간식, 찬생수,각종 쥬스와 커피 등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꽤나 떨어져있는 왕궁 2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로드 먹방을 찍는 듯 온갖 태국음식과 간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동안 작은 구멍가게부터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서거한 국왕의 사진과 영정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고 국민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념품가게의 모든 인물사진도 모두 국왕사진뿐이었고 태국의 모든 화폐에도 국왕의 얼굴이 들어있다. 영어 및 3개국어에 능통하고 재즈작곡가이며 섹서폰 연주자이기도 했다던 푸미폰 국왕.


같은 동양이면서도 태국은 한번도 외세의 식민지였던 적이 없었던 태국에서 국왕은 인기스타처럼 보였다. 여러차례의 군사 쿠테타가 있었지만 불교를 국교로 하고 국왕을 마치 아버지처럼 사랑했던 태국국민들이 요즘의 한국 상황과 비교했을 때 부러운 맘이 들었다.





낮기온 29도의 11월의 태국은 우리나라의 더운 여름날씨다. 왕궁과 사원은 거리에서 만나는 경찰에게 물어보거나 구글지도와 가이드책자를 보아가며 찾아갔다. 여러차례 거리에서 파는 달달하고 맛있는 과일쥬스를 사먹으며 화려한 태국의 사원을 구경했다.





금박과 스태인드 글라스등 화려하게 장식된 태국의 사원건축물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타일,스테인드글라스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태국사원의 건축물들은 그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왕궁과 왓프라깨우, 왓포등 태국전통사원에는 단체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불교국가이니만큼 태국의 사원에서는 관람객에게 단정한 복장을 요구했다. 소매없는 옷이나 반바지차림으로는 관람이 제한된다.





여행가서 모든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 온지 두 번째 날,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에머랄드사원으로 불리우는 왓 프라깨우에서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웅전격인 그곳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반드시 벗어야했다. 신발 두는 곳엔 분실 시 책임 안진다고 영어로 써 있었다.



<높이 48미터의 거대한 황금 와불(누워있는 불상)-사원 왓포의 대표적인 볼거리였다.>




관리인인듯한 사람에게 들고 들어가는건 괜찮냐고하니 괜찮다고해서 한손에 신을 들고 들어간 나는 대웅전 지킴이(?)인듯한 이빨 빠진 할아버지에게 쫒겨나듯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들고간 신발이 문제였나보다. 허락받은거라는 말도 할 겨를없이 나온 나는 이번엔 신발을 건물밖에 두고 들어갔다.에머랄드불상(푸른 도자기로 덮인 작은 불상)을 모셔둔 대웅전안은 샹들리에가 천장에 있고 화려하고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당연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또 그 이 빠진 할아버지가 나를 입구 쪽 어떤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쫒아내는 거였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안내판에 사진이나 동영상금지라고 쓰여져 있었다. 내 핸드폰속 찍은 사진을 지우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삭제하고 “아임 쏘리”를 연발하고 그곳을 나왔다. 어딜 가든 안내표지판을 잘 보고 다녀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을 안고 이번엔 동양최대규모의 와불(누워있는 불상)로 유명한 ‘왓포’라는 사원으로 갔다. 금박을 입힌 48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태국도 중국만큼이나 크고 화려하고 번쩍이는 것을 좋아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왓포’라는 이 사원은 태국전통의학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먹고, 마시고 바르는 전통약제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태국맛사지의 본산이라는 이곳에서 나는 30분간 전신 맛사지를 받아보았다.  평소 운동도 전혀 안해서 온 몸이 굳었을거라 짐작은 했지만 정확한 경혈자리를 누르는 매서운 맛사지사의 손길에 나는 '악!'소리가 나고 눈물이 나오는걸 억지로 참았다.


카오산로드로 돌아온 나는 북적이는 음식점(술집)에 들어가 맥주한잔을 주문했다. 이곳은 볼거리 많고 음식 맛있고, 호텔등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있어 유난히 서구백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이곳에서 그들은 친구,가족,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나 같은 동양여자,그중에도 나이먹은 여인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뭐,, 그게 대수일소냐? 하며 둘러보니 음식점안에는 나처럼 혼술을 하는 사람들도 어럿 보였다.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상인들을 구경하며 맥주한잔을 마시면서 여행자의 외로움도 느껴보았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카오산로드’에 내가 드뎌왔구나..버킷리스트중 하나가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 충만함이 느껴졌다.


태국은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어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돈 600원정도면 파인애플, 망고등 맛있는 과일과 주스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비닐 한팩에 한국돈 680원 정도하는 망고!- 싸고 맛있어서 거의 매일 사 먹었다. / 바나나구이다. 달달하면서도 쫀득한 맛이다.>



거리에서 파는 무슨 돼지고기나 소시지등의 꼬치도 참 맛있었다. 방람푸라는 숙소주변의 재래시장. 이곳에서는 깔끔하게 포장된 많은 식재료를 팔고 있었는데 태국인 일반 가정집에서도 직접 음식만들기보단 사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쳐다본 음식도 많았다.




<방람푸 시장안의 깔끔한 쌀국수집에서 먹은 어묵 쌀국수! - 우리돈 1500원정도>


<돼지고기와 바질이라는 향신야채를 볶은 밥. 우리돈 약 1,600원정도 - 느끼하지않고 맛있다>


<해산물 똠얌꿍! 알 수 없는 향신료냄새가 났지만 적당히 매콤하니 아주 맛있었다.>



처음 보는 시장의 갖가지 채소, 과일, 생선, 물건들이 있었다.





<메클롱 시장안에 진짜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다.>



마지막날은 도둑시장,또는 위험한 시장이라는 메클롱 시장과 수상시장인 암파와 시장에 갔다. 메클롱시장을 구경하고 수상시장인 암파와 시장구경하고 식사후 배를 1시간정도 타면서 밤에만 볼 수 있는 반딧불이를 보는 코스였다.


좁은 철길을 따라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각종 식재료를 늘어 놓고 파는 시장인 ‘메클롱시장’. 물건이 펼쳐져있는 그곳으로 진짜 기차가 다닌다는 곳이었다. 하루 4번 기차가 들어돈다는 그곳에 기차가 들어오면 상인들은 잽싸게 천막과 물건을 걷고, 기차가 지나간후 거짓말처럼 다시 장사를 했다.


다음 코스로는 ‘암파와 수상시장’에 갔다. 이곳에서 같은 투어상품으로 만난 한국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함께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함께 했다. 두팀이었는데 각자 고교동창들과 온 그들은 벌써 이번이 태국에 열 번 이상 온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암파와 수상시장의 배 점포 - 저기 보이는 잘 익은 오징어와 새우가 참 맛나게 보인다.>



이들과 같이 재래시장인 암파와 수상시장에서 같이 구경하고 이야기도하며 같이 보트도 탔다. 1시간정도 배를 타면서 강가주변나무에 사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아 진짜일까 의심도 했지만 우리의 맘을 아는 듯 몇 마리가 날라다녔다.


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갈 때 느껴지는 강바람은 시원했다. 마침 하늘에는 수많은 별과 초승달이 떳는데 그 모습도 한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웠다. 수상시장 관광일정동안 내 옆에 있던 이태리 여인‘제니’(그녀는 간호사로 1년간 동남아 여행중이라한다-긴 휴가를 낼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카오산로드에서 지인들에게 줄 몇가지 선물을 샀다, 새벽 한시반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하는 나를 공항에 데려다 줄 직원이 왔다. 탑승수속을 마치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서울인천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깜깜한 밤을 지나 한국에 도착했다. 이륙을 기다리며 드는 감상은 버킷리스트를 이룬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내안의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았고, 뿌듯했다.


여행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엮어낸 끝없는 이야기를 남긴다. 나 역시 그랬다. 행에서 만나 각자 인생의 한 조각 시간과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의미있고 즐거웠던 시간들과 함께 나의 첫 해외 배낭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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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기록적인 가마솥 무더위는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이 빚어낸 지구온난화로 인해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오염물질을 마구 쏟아내어 지구생태계를 파괴한 환경재앙이라는 사설을 읽은 적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발생했는데, 프랑스와 중국에서는 호우로 인해 홍수가 발생하는가 하면, 인도와 상하이 등 남부지역에서는 4~5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 되고, 미국의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는 43도의 체감 온도가 관측돼 고온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하는 등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홍수와 폭염 등 이상 기온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의 온도 상승이 유발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1993년 영월 일대에 대홍수가 발생해 정부는 영월댐[동강댐] 건설을 계획하고 댐 건설사업을 시작했으나,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고 한다.


이러한 계획이 백지화된 것에는 자연생태계의 최적의 장소인 동강에 사는 여러 종류의 희귀동식물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동강은 어떠한 곳인가?






자연유산의 멋들어짐이 그대로 살아있는 동강은 영월의 대표적인 자연관광지이면서 래프팅의 최적지로도 유명하다. 영월은 단종과 김삿갓의 유적지, 20여개가 넘는 다양한 박물관, 동강, 한반도지형과 똑같이 닮은 선암마을, 선돌, 어라연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카누 등 다양한 레저가 있는 지역이다. 영월의 대표적인 자연관광지인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읍 남쪽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7km 구간을 '동강'이라 부른다.





동강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의 사행천으로 대부분 석회암층으로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또 동강 유역에는 지표운동과 지하수·석회수의 용식작용 등으로 인해 많은 동굴이 형성되어 있고, 석회암으로 구성된 바위절벽에는 돌단풍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강물 속에는 쉬리, 민물조개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백로, 원앙 등의 조류와 수달 등과 같은 희귀동물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명승 제14호로 지정된 영월 어라연은 강원도 여행지중 손꼽히는 영월 10경중 8번째로 영월의 동쪽을 흐르는 동강 윗줄기에 해당하는 계곡이다.





강물 속에 뛰노는 물고기들의 비늘이 비단같이 빛난다’는 뜻의 ‘어라연’(魚羅淵)은 원래 지명이 어라연(於羅淵)이였으나 죽은 단종의 혼령이 이곳의 경치를 보고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였는데 이때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들어 비늘을 반짝이며 반겼는데, 그 일대의 모양새가 마치 물고기비늘로 뒤덮힌 연못과 같았다고 하여 ‘어라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동강의 중앙부 바위섬이 위치한 어라연은 돌로 된 바위 위에 분재와 같은 소나무와 물에 잠긴 너럭바위에서 반사되는 햇살, 병풍 같은 절벽이 감탄을 자아낸다. 분재와 같은 소나무는 달력표지의 대표 사진으로 많이 활용되며, 사진작가들의 사진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어라연 계곡의 주변에는 경사가 심하며, 계곡의 바로 위에는 칼날 능선이 형성되어 있다. 강의 위쪽부터 아래로 3개의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라 불리는 역암으로 된 ‘삼선암’은 옛날 선인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여 정자암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삼선암은 원래 하나의 바위였으나 하천운동으로 인해 3개로 나뉘어졌다고 하며, 하선암에는 한 때 댐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아두어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어라연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차량출입이 통제되어 트레킹으로 잣봉을 경유하여 어라연을 돌아보는 방법과 래프팅을 타고 둘러보는 방법이 있다.






래프팅은 장애물이 있거나 물 깊이가 얕아도 물이 있고 급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지만, 원시의 숲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 천혜의 자연을 거느린 동강은 완만한 물살과 급류를 모두 갖추고 있어 스피드와 스릴을 즐길 래프팅의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래프팅은 5월부터 시작하여 11월까지 할 수 있는데, 보통 5~6월에 학생들의 수련회나 수학여행, 7~9월초까지는 여름 성수기로 주말에 만 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최고조에 이르다가 10~11월에는 사진작가들과 산악인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동강 래프팅의 코스로는 3~4가지 코스가 있지만, 주로 이용하는 코스가 문산나루터에서 시작하여 섭세나루터까지이다. 보통 2~3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코스는 약 12km로 영월읍 문산나루터에서 출발하여 두꺼비바위-어라연-돤꼬까리-만지-섭세강변까지 진행하는 코스로 경관이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래프팅 강사 경력 4~5년차인 강사 홍정의는 고등학교 때 영월의 친구를 통해 동강 래프팅을 처음 접한 후 여름 성수기와 주말을 이용해 래프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만, 래프팅의 매력에 푹 빠진 그가 래프팅을 통해 전해주는 동강 어라연의 자잘한 이야기는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동강의 상류에 위치한 두꺼비 바위는 어라연의 수호신으로, 바위의 모양이 두꺼비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며, 된꼬까리는 옛날 떼꾼들이 제일 넘어가기 힘든 물길로 ‘되다(된)’ ‘꼬인다, 뒤틀린다(꼬까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관광객들에겐 가장 스릴이 넘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힘든 물길을 건너면 만지라고 하는 주막터가 있어서 이곳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가곤 했다고 한다.





동강 어라연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차량출입이 통제되어 트레킹이나 래프팅으로만 볼 수 있다. 동강에 들어올 수 있는 배도 허가된 배만이 들어올 수 있어서 제한이 따른다.


동강 래프팅의 코스길이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하천운동으로 인해 강물이 불어나 동강 내의 바위나 돌들이 굴러 다니면서 길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길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때로는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곳에는 급류가 심하여 간혹 위험한 일이 발생될 소지도 높다.





영월의 동강유역에서만 자생하며 3~4월에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은 세계에서 유일한 희귀식물로 동강 주변 석회암 절벽에서만 자생한다. 할미꽃은 호석회성 식물로 일반 토양이 점차 산성화되면서 할미꽃도 줄어들게 되었는데, 동강할미꽃이 절벽에 자생하는 이유도 석회암 때문이다.


이렇듯 동강은 여러 종류의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손이 가장 적게 닿는 지역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청정지역 1급수에서만 사는 다슬기가 강가 바위와 돌틈에 가득 자생할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해서 때로는 물이 거울과 같이 되어 물 속에 비친 산을 뚜렷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낸 환경재앙인 영월 대홍수로 동강댐 건설을 계획했다가 백지화했지만, 30년 뒤에 건설하겠다는 뒷담화도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한 희귀식물인 동강할미꽃이 수몰 위기에 처한 동강을 구해냈고, 올여름 몸으로 체험한 가마솥 더위가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의 모습임을 안다면, 자연유산을 그대로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자연유산의 지킴이 동강’이 그 일에 선봉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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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이 계속되는 여름이다.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례도 이어질 만큼 더위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자연은 인간이 순응해야 할 대상이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도 하다. 고온다습한 제주에 살고 있는 필자는 한가지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짠물 바다가 시작되는 해안가에서 냉장고에서 꺼낸 듯 시원하고 맑은 물이 샘솟고 있던 것이다. 바로 지하의 천연 암반수라 할 수 있는 용천수가 바로 그것이다.




용천수는 말 그대로 지하에서 흐르다 땅위로 솟아오르는 물을 말한다. 평소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오르는 형식이다. 과거에는 식수로도 많이 활용될 만큼 깨끗함을 자랑하는 물이다. 주로 해안가 마을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용천수가 밀집된 지역인데 발만 담궈도 온몸이 떨릴 만큼 시원함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만들어져 결국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이다. 특히 솟아나는 물의 양은 마을의 크기를 결정하는 근간이 되어 솟아나는 물의 양이 많을수록 마을 인구수는 더 늘어났다. 제주도에 분포한 용천수는 지난 1999년 조사한 결과 제주시에 540개, 서귀포시에 371개 해서 총 911개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들어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개발이 계속 이어져 도로 등이 개설되면서 물의 양이 줄어들거나 용천수 자체가 파괴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용천수가 제주의 마을을 이루로 역사를 이어오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현상이다.




제주에 분포한 용천수의 수가 900개가 넘을 만큼 방대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명소가 있다. 우선 제주시에서 가까운 곳부터 꼽자면 제주도 애월읍 신엄리에 위치한 중엄새물이다. 애월해안도로를 따라 절경이 구경하다보면 신엄리에 끝자락에 위치한 용천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산책로로 잘 형성돼 있어 여행의 길에 잠시 발을 담그고 몸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또 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곽지과물해변 용천수도 사람들에게 신비로움을 선물하는 곳이다. 짠물 바다 속 모래에서 솟아오르는 찬물 덕에 여름철 내내 바다는 시원함을 자랑한다. 물이 워낙 시원하다보니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폭염의 날씨에도 오랜 시간 몸을 담그기 힘들 정도다.





특히 곽지과물해변에는 용천수를 이용한 노천탕이 있어 시원한 물줄기로 샤워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서귀포시 하예동에 위치한 논짓물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용천수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자연풀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오른다. 길이는 짧지만 아이들이 이용 가능한 워커 슬라이드도 있어 어른과 아이모두 만족할 만한 여행지로 손꼽을수 있다. 썰물 시간대에는 물이 바닷물로 흐르지 못한 조수웅덩이가 형성되는데 이곳은 해양생태환경의 보고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해 또 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제주도 동쪽인 제주시 삼양동 삼양검은모래해변 옆의 삼양물통도 제주도민들이 꼽는 최고의 물놀이 장소다. 이곳은 풍부한 수량과 시원한 지하수로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며, 바로 옆이 포구라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 안전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주변도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 좋아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좋은 곳이다.



글 / 김지환 프리랜서 기자(전 청년의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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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 여름철 불청객중 하나가 바로 더위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매일같이 땀을 흘리고 있으니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밤에는 또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아침에 눈을 떠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일주일 내내 비소식 조차 들리지 않는다. 가족들과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몸을 식혀보지만 온몸 구석구석 모래가 가득하니 빨래하기도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더위사냥법이 바로 계곡이다. 제주도는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평소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주도에도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는 계곡들이 몇 있다. 이에 더운 여름철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기억해둘만한 좋은 코스로 대표적인 계곡 5곳을 소개해본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고까지 표현하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계곡이 바로 돈내코 계곡이다. 돈내코는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에 위치한 계곡으로 깊은 골짜기와 폭포,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 중앙에는 5m 높이의 원앙폭보가 있는데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물맞이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물맞이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면서 통증을 낫게 하는 민간요법 중 하나로 여인들의 잊지 못할 코스로 꼽을만하다.





특히 돈내코 맞은편에는 야영장이 있어서 여름철 제주도를 대표하는 피서지로 삼을만 하다. 또 원앙폭포 입구의 나무목재길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친환경공법으로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무엇보다 시원하고 또 깨끗한 한라산의 물줄기가 이곳의 최대 매력인 만큼 가볍게 준비한 도시락과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여름철 남부럽지 않은 피서를 즐길 수 있다.




강정천은 서귀포시 강정동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흐른다. 이곳은 서귀포시 식수의 70%를 생산 공급할 만큼 깨끗함을 자랑한다. 총 16km의 하천 길을 따라 양쪽으로는 기암절벽과 노송이 우거져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듯한 절경이 펼쳐져있다. 특히 강정천에는 1급수 어종인 은어가 서식하는데다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이 무리지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깝게도 아름다운 강정천의 절경 옆으로 해군기지가 건설돼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있지만 강정교 밑으로 흐르는 물은 여전히 맑고 시원하다. 여름 계절에는 강정교 밑에 대형 그늘막을 설치, 계절음식으로 백숙을 선보이기도 해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도 손꼽는다. 강정교 옆에는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어 주차 후 다리 밑으로 40~50m만 걸어가면 시원한 강정천물을 만날 수 있겠다.




계곡 상록수림의 높은 가치로 지난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아름답기도 유명한 계곡이 바로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안덕계곡이다. 과거 감산천계곡, 창고천계곡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추사 김정희가 찾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김정희는 이곳의 풍광에 반해 종종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산책로부터 잘 정비돼 있다.





입구에서 300여m만 걸어가다 보면 울창한 숲이 마치 지붕처럼 햇빛을 가리고 있어 계곡안은 시원하면서 신비로운 장관을 만들어낸다.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물살이 빠르지 않고 깊지 않아 가볍게 휴식을 취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안덕계곡 일대에는 300여 종에 달하는 상록수림과 양치식물들이 가득하며 특히 희귀식물인 담팔수와 상사화 등이 자생해 학술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제주도 제주시 외도2동에 위치한 생태하천인 월대천은 과거 숨겨진 명소로 이름을 알려왔다. 숲속이 아닌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곳인 만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수령이 무려 500여년이 된 팽나무와 250년은 된 소나무 등이 하천을 따라 자리하고 있고 밀물때는 해수가 들어오면서 은어, 숭어, 뱀장어 등이 서식하기도 한다.





하천이 넓고 물이 풍부해서 튜브, 보트를 타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어두운 밤 달빛이 비추는 풍경은 시인이나 가객들이 이곳을 찾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매년 잔잔한 물위에 등을 띄우는 유등축제는 이곳의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제주시 오라2동에 위치한 방선문은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인 한천 상류에 위치한 계곡이다. 과거 구멍이 뚫려서 들린 바위라는 뜻의 제주어인 '들렁궤'라고 불렸는데 한자음을 차용해 등용구라고 표기되다 근래에 신선이 방문하는 곳의 뜻을 담아 방선문이라고 불린다. 암반과 기암괴석들이 골짜기를 이룬 곳으로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다는 전설로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오래 전부터 수많은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찾았다. 다만 건천인 이곳은 비가 오거나 겨울철 쌓인눈이 녹아야 비로소 물길이 열린다. 숲속 나무가 주는 그늘은 물이 없어도 시원함을 안기기에 충분하며, 힐링을 위한 코스로 꼽기에 손색이없다. 특히 바위에 감흥을 새겨 넣은 바위서각인 마애명이 50여개인데다 글씨도 비교적 선명해 역사적인 가치 또한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에 201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2호로 지정됐다.




다른 지역의 계곡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도의 계곡은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소나기를 포함해 비가 오면 하천범람 위험이 높기 때문에 즉시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지역의 강수량이 적더라도 한라산 중심에서 많은 비가 올수 있기 때문에 하천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매우 거셀 수가 있다.





또 돌이 매끄러워 종종 미끄러 넘어지면서 크고작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계곡 한 가운데는 물의 깊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섣불리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주의해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글 / 김지환 프리랜서 기자(전 청년의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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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대천)여행 날짜: 2016. 3. 9-11
보령 가볼만한곳: 첫날; 보령 죽도-무창포해수욕장
이듵날: 개화예술공원,개화허브랜드,석탄박물관, 대천항수협위판장,대천해수욕장
사흩날: 갈매못성지(천주교), 오천항, 충청수영성





터미널에서 개화예술공원까지 택시로 이동하는데 이날따라 새벽부터 내린 비가 종일 추적추적였습니다. 우산 들고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우중의 홀로 여행은 사색의 시간이었습니다. 개화예술공원과 개화 허브랜드에서 아름다운 허브 꽃밥을 먹고 모산미술박물관장님도 뵈었지요.


가까운 석탄박물관을 둘러보고 대천항으로 향했습니다. 다음날의 날씨가 좋다는 예보에 더 좋은 풍경을 담겠다고 하루 더 머물게 됩니다. 다행히도 해돋이 풍경은 담지 못했지만 갈매못성지와 오천항에서는 맑고 푸른 하늘의 싱그러운 풍경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가오리? 홍어? 분명히 어민들에게 배워왔는데 또 헷갈립니다. 홍어는 코가 뾰족하다고 한 거 같은데요.





이건 뭘까요? 사진에 놀라지 마세요. 어촌이나 어시장 가까이 있었다면 잘 아시겠지만 저처럼 육지에서 태어나 자란 바다치라면 저 모습을 보고 당연히 생선 내장인지 알았을 거예요. 무슨 실타래를 흩어진 모양인데 알고 보니 바로 아구의 알이랍니다. 놀랍고 신기합니다.





비가 종일 내리다가 오후에 겨우 그쳤는데요. 날이 여전히 흐리고 혹시나 하고 대천항 노을을 기대했건만 가는 날이 장날이네요. 오전에 경매로 이뤄진 다양한 생선들은 얼음을 채워 포장해서 전국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대천해수욕장 멀지 않은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는데 역시 비 내린 바닷가 풍경이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여전히 보슬비가 내리고 있어 바닷가도 가지 않고 멀리서 풍경 몇 컷만 담아 왔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어 다시 대천항수산시장 대천항 수산 시장의 우성수산에서 조개샤브와 칼국수 특별히 서울서 왔다고 서비스로 주신 큰 소라 하나와 전복까지 항구라 그런지 다 신선한 맛을 볼 수 있었답니다.





둘째 날, 혹시나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잠을 자고 새벽부터 창밖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기만 합니다. 결국 하루 더 머물면서 일출이라도 담으려고 했건만 이번에도 바닷가 석양이나 해돋이는 담지 못 합니다. 보령 갈 때마다 해넘이를 제대로 담았던 적이 없었을 정도에요. 날이 밝아 오면서 대천항을 3번째 방문했습니다.





새벽에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이 경매시간에 맞추어 항구로 들어오기 바쁩니다. 이때 만난 멋진 청년, 눈에 띄는 패션에 시선이 머뭅니다.





하얀 장화. 달라붙은 짙은 남색의 타이즈 빨간 운동복 상하의, 노랑 고무장갑 얼굴 윤곽이 훤히 드러나는  버프 곤색의 선글라스와 파랑 모자 제대로 변장한 모습인데도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어마어마한 수협위판장이에요. 마침 이른 아침이라  막 경매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어느 시간이 되자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특유의 주문처럼 들리는 경매사들만의 언어 그리고 수화도 아닌 손가락으로만 표시하는 경매 가격 마치 투수와 포수의 사인처럼 이 보입니다.





생선 이름도 다 모를 정도인데요. 생김새 하나하나 어쩜 독특하고 마지막 죽음 앞에 절규하듯 또는 포효하는 물고기들 복어와 가재미는 볼수록 귀요미입니다. 마지막 그물에 잡히기 전까지 생선을 잡아먹던 삼치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경매시간 마지막에 도착한 꽃게 배 잡은 꽃게를 옮기는 모습이 정말 분주합니다.





수협위판장 앞에는 커다란 배와 작은 배들로 가득합니다. 만선으로 귀항한 배에서 내린 바다 생선은 수협위판장 바닥을 덮을 정도입니다.





오전의 대천항은 비릿한 생선 냄새와 다양한 생선 사이를 오가는 어민들의 분주하고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은 활력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언젠가는 대천항의 아름다운 석양을 꼭 담고 싶습니다.



글 / 호미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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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문명의 손이 덜 간 곳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살면서 평생 한번을 못 가보기도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울릉도이다. 기후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당일 출항 결정은 그날 아침이 되어서나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계획부터가 어렵다. 동해 바다의 파도가 섬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해 주는 셈이다.





참으로 날씨가 맑은 날이었다. 깨끗하고 파란 하늘은 마치 눈을 씻어주는 듯 했다. 이곳은 도착하면서부터 신기한 광경이 보인다. 깍아지른 듯 절벽 위에 집이 있고 도로는 울퉁불퉁 좁기만 하다. 그야말로 ‘작은 섬 이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 울릉도까지 와서 살게 됐다는 렌터카 아주머니가 울릉도 지도를 펴고 설명이 시작되니 5분 만에 울릉도를 다 돌아본 듯 했다. 실제로 섬이 작아서 차고 2시간 정도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않아 갔던 길로 되돌아 와야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 주의 할 점
- 주유소는 2곳
- 1차선 도로 신호엄수 2곳

울릉도는 육지에서 꽤나 많이 떨어져 있어 시설이나 집 등이 좀 낙후되어 있다. 그에 반해서 자연은 많이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이 섬을 방문 하는 사람들은 보통 순수 관광, 레포츠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과 경제활동을 위해 유입되는 사람 이렇게 크게 나뉘는 것 같다. 울릉도의 특산품과 관광산업에 관계된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 같다. 퇴직 후 이 섬에 들어와 노후를 보내며 소일거리 한다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








특히, 예쁜 자연에 빠져 길을 잘못 들었다가 하마터면 낭떠러지를 만날 뻔도 했다. 가끔 산나물 채취하는 분들이 길을 잘못 들어 사망사고도 매년 발생한다고 한다. 가파르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곳은 숲이 우거져 길이 잘 구분 안 되기도 한다. 특히 등산객들은 주의해야 한다.





천혜의 자연에 빠져 넋 놓고 감상할 만한 곳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빠져나와 자연의 색에 눈을 쉬게 해주고 탁한 공기에서 깨끗한 공기로 숨을 쉬어 주니 그야말로 편안한 안식처이다.





이른 새벽 일출을 보려고 나왔다.
섬에 들어올 때 화창했던 날씨와 달리,
구름이 많았다.
저 구름이 비를 담고 있다면
폭풍이 칠 것이고
밤새 차가워진 바다공기가
태양과 함께 온 따뜻한 공기와 만나서라면
화창한 오후가 되리라.
난 행운아다.
화창한 하늘아래 잔잔한 바다를
유유히 나올 수 있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을 방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행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연간 수십억명이 세계 각 나라를 여행한다. 그래서 항공산업도 비약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세계는 하나가 됐다. 비행기를 탈 경우 하루 이틀이면 모두 갈 수 있다. 더 이상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운이 좋아 세계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녔다. 미주,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까지 발을 디뎠다. 순전히 여행 목적으로 간 것은 한 번도 없었다. 취재차, 견학차 나갔다. 시간이 넉넉할 리 없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맛만 봤을 뿐이다. 그래도 외국여행은 설레임을 자아낸다. 그것 역시 좋다.

 

 

 

 

몇 해 전엔 친구의 초청으로 호주 멜버른을 다녀왔다. 덕분에 5대양 6대주를 돌아보게 됐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당시 3년만에 국제선을 탔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직장인은 외국여행을 자주 할 수 없다. 경제적 사정도 그렇지만, 시간을 내기도 여의치 않다. 큰 맘을 먹어야 떠날 수 있다. 아내와 동행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아내는 토라질만도 하지만 정성껏 짐을 챙겨주었다. 그런 아내가 있어 더 행복했다.


노는 것 만큼 재미있는 게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무엇을 제일 하고 싶으냐.” 십중팔구 대답은 똑같다. “놀고 싶다.”고 얘기한다. 어른 역시 마찬가지다. 놀 때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놀면 사정이 달라진다. 노는 것이 일과라고 생각해 보라. 무엇을 하고 놀까 고민을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게될 터. 적당히 일을 하고 노는 것이 가장 좋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것을 무위도식이라고 한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된다면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팔자가 좋다고 부러워할 이도 있을 것이다. 노후를 여유있게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일주일에 3~4번 골프를 친다. 해외여행도 자주 한다. 이들에게 고민이 없을 법하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무미건조하단다. 자기만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이런 저런 욕심 부리지 않을 걸세. 우리 주유천하하면서 살아가자구….” 친구의 마음이 읽혀졌다. 즉각 화답했다. “잘 생각했네. 그것이 잘 사는 길이야.”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특히 마음이 맞는 벗과 주유천하를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있겠는가.


 

 

 

2009년 3월. 우리 가족 셋은 집을 나섰다. 아들 녀석의 입대를 앞두고 가족여행을 떠났던 것. 안동 하회마을을 가자는 아내와 녀석의 제안을 따랐다. 모두 초행길이었다. 서울에서 제법 거리가 멀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하회마을은 사진에서, 텔레비전에서 본 그대로였다. 1시간 30분가량 걸으며 정취를 만끽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찾은 곳이 봉정사.


아주 오래된 절이었다. 선조들의 얼이 느껴졌다. 어머니 가슴같은 푸근함이 묻어났다. 참배를 한 뒤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기와불사도 했다. 식구들의 건강을 빌었다. 녀석에게 말했다. “제대를 하면 꼭 다시 한 번 찾아오자.” 아내와 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봉정사를 갔다오면 좋겠어요.” 그래서 뜻하지 않은 가족여행을 했다.


 

 

 

최근 아들 녀석과 1박 2일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녀석은 이제 28살. 어엿한 직장인이다. 아들과 남도 여행은 정말 재미 있었다. 다시 한 번 혈육의 정을 느꼈다고 할까. 그 누구도 피붙이를 대신할 순 없다. 무엇보다 아들 녀석이 좋아했다. 말하자면 힐링이 된다고 했다. 1박 2일을 아주 짜임새 있게 썼다. 그냥 허비한 시간이 없었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맛 있는 것도 먹었다. 여행의 묘미다.

 

 

 

 

순천과 여수는 나도 처음 가본 곳. 두 곳 모두 인상적이었다. 여수도 아주 예뻤다. 부산 못지 않았다. 부산이 동적이라면, 여수는 정적이었다. 고요함 속에 낭만이 있었다. 시간이 없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여수 엑스포공원까지 KTX가 닿았다. 나중에 날을 잡아 본격적으로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했다. 순천 또한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순천만 생태공원과 국가 공원. 연휴 때문인지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자연을 즐기러 이곳을 방문한 것. 옥의 티라면 교통 정체 현상. 하마터면 렌터카 반납시간을 못댈 뻔 했다.


예전엔 서울에서 광주까지 2시간 40분 가량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1시간 가까이 당겨졌다. KTX 호남선이 개통된 덕이다. 광주도 반나절 생활권이 된 것. 서울에 올라오면서 아들이 내 손을 꼭 잡는다. "아빠 즐거웠어요." 둘만의 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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