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나절 오후 두 시쯤.

오늘 저녁때는 그저 손쉽게 해 먹으려고 생선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길 저만치서 노점상 할머니 한 분이 외로이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졌다.

 

할머니 노점에는 애호박, 무, 꽈리고추, 흙 묻은 더덕 같은 게 있었다.

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하여 다시 쳐다봤으나 역시 값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다.

 아무래도 저 할머니 물건은 좀 사 드려야 하겠다 싶어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다가갔다.

 

할머니는 이동식 부탄가스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는지 그 위에서 물이 끓는 게 보였다.

아, 할머니의 점심때인가 보다. 역시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면 봉지를 뜯어 끓는 냄비에 퐁당 집어넣으시더니 곧바로 종이 박스에서 검은 비닐에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꺼낸 다. 밥이다.

 

할머니는 밥을 펄펄 끓는 라면 냄비에 쏟아 붓는다.

그게 할머니의 라면 식사법인가 보다.

 

바로 옆에 놓인 손바닥만한 찬합.

마늘쫑과 함께 볶은 멸치, 그리고 깻잎 장아찌 두 종류가 전부인 밑반찬이 할머니 만찬(?)의 주요 메뉴였다.

 

한여름 지글지글 끓는 도로변 콘크리트 위에 놓인 버너.

그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라면을 끓이고 밥을 얹어 한 끼니 때우셔야만 하는 상황.

 

그냥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애호박과 더덕이라도 살 요량으로 다가선 순간, 내 배꼽을 잡아 빼게 한 할머니의 센스 작렬.

한 바가지 정도의 됫박에 호두가 담겨 있고 그 위에 부채 크기만한 넓이로 라면 박스를 쭉 찢어 써 넣은 호두의 원산지 표시 글귀가 있었는데.

 

“북한산 호두, 통일되면 국산”
나는 식사 준비를 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그 글씨를 보고 한동안 서서 웃고야 말았다.

 

머니의 고단함을 덜어 드리는 방법은 애호박 말린 것을 사지 않아도 잠시 말벗이라도 돼 드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할머니의 ‘오찬장’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할머니,   이 호박 잘 생겼네. 때깔도 참 좋아요. 근데 점심 혼자 드시면 맛없잖아요.

 왜 옆에 다른 할머니들이랑 같이 안 드셔요? (부질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오늘 많이 파셨어요?”

물건은 사지도 않는 인간이 뜬금없이 왜 혼자 밥 먹느냐고 묻느냐는 눈빛으로 뜨악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

 

그래도 대답은 시원하게 나왔다.

“아이구, 할망구들 장사해야지, 나랑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 애들 연필 값이라도 벌어야 할 거 아녀? 그 호박 살껴 안살껴?”
식사 중에도 구매 의사를 확실히 물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도심 속 한여름 풍경이 투영됐다.

 

모두가 종종걸음으로 왔다가 황급히 떠나가는 버스 정류장. 냉방장치 하나 없이 오로지 손주 연필 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하루를 버텨 내는 할머니들의 잔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 뜨거운 시멘트 바닥, 이미 낡을 대로 낡아 찢어진 골판지 위에 놓인 한 무더기의 흙 묻은 더덕의 주름살처럼 사실은 너도나도 다 같이 힘든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일하게 갖는 희망은,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다짐과 기대 아닌가.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운 것 같다.

할머니의 호박과 꽈리고추, 그리고 “통일되면 국산” 이 될 호두도 한 줌 덥석 사 들고 일어섰다.

 

“할머니 많이파세요.” 하며 돌아서는데 

“그려, 새댁도 감기 조심혀” 하는 다정한 인사.

 그 “새댁” 이라는 센스 넘치는 말에 또 꽂혔다. 앞으로 이 할머니 단골 돼야겠다. ㅎㅎㅎ

 

글 / 박나영  서울시 도봉구 창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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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누이 댁에 가며 이틀동안 제게 휴가를 줄테니, 저 하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이틀을 보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하며 친구랑 영화를 보러갈까, 바람을 쐬러
  갈까 하다가 친정에 혼자 계실 엄마를 뵈러 가기로 했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멸치를 볶고 장조림도
  만들고 몇 가지 마른반찬을 챙겨 친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막내딸을 보신 우리 엄마, 과연 어떤 표정이실까 생각하니 세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친정집은 텅 비었더군요. 친 자매처럼 지내시는 뒷집 할머니 말씀이 시장에 가셨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질 않습니다.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압력솥에 밥을 안쳐놓고 돼지고기 넉넉히 넣어 김치찌개도 맛나게 끓여 놓았지요. 집에 들어오시자 마자 화로에 숯불을 담아 읍내서 사온 꽃등심도 구워드릴 요량이었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새 무료함을 때울 겸 청소를 시작했지요. 우선 방 청소를 끝낸 다음 철 수세미에 비눗물을 풀어 켜켜이 앉은 싱크대의 먼지를 닦아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때까지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대체 뭘 하러 가셨기에 늦도록 오시지 않나, 걱정스런 마음에 막마중을나가려는참, 불이 켜진 걸 보고 깜짝 놀라신 우리 엄마 눈이 동그래져 들어서십니다. 반가운 마음에 철딱서니 없이 와락 안기는데 우리 엄마, 들고 계시던 함지를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우시더군요.


 

그걸 놓치지 않고 뭐가 들었나 하여 보니 팔다 남은 나물이 들어 있지 않겠어요?  세상에, 그 시간까지 노인네가 시장에 계셨다는 겁니다. 나물 몇 가지 팔아봤자 얼마나 한다고 청승을 떠는 엄마를 보니 속도 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은 뭐 하시고 남세스럽게 왜 그러시냐고 엄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막내딸년 핀잔에 속이 상하실 만도 하시련만 엄마는 늙은 몸 그저 놀려 뭐하냐고 하십니다. 힘든 일도 아니고 쉬엄쉬엄 재미삼아 하는 일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러나 어떤 자식인들 칠십 넘은 노인네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 장사 하시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까요.


화도 내었다가, 제발 하지 마시라고 애원하는 딸자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엄마, 고기를 구워 제 접시에 날라 주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 먹이느라 언제 입이 호사 한 번 해봤냐고 하시며…. 다른 엄마들은 집에서 편히 쉬는 겨울철에도 엄마는 냉이와 시래기, 칡뿌리나 약초 등 돈이 될만한 것들을 함지박으로 가득 담아 읍내장으로 향하곤 하셨지요.

 

 

그리고 시장이 파한 후에도 차비 몇 푼을 아끼신다고 시오리도 넘는 길을 걸어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신 엄마가 이제 편히 쉬셨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시장에 나물을 팔러 다니시니 자식으로서 여간 속상한 게 아닙니다. 그날 밤, 엄마와 굳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지요. 다시는 읍내로 나물 팔러 다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탄 버스가 멀어지자마자 당신은 호미를 챙겨 들고 양지쪽으로 냉이를 캐러 가실겁니다. 그리곤 안다니시는 척 시치미를 떼시겠지요. 그게 바로 우리 엄마의 사랑 법입니다. 엄마께서 주신 냉이를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두고 조금씩 아껴 먹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냉잇국 한 사발에 마음은 고향 봄 언덕에 앉은 듯 따뜻해지고 기운이 펄펄나니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 엄마,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자식들 곁에 언제나 봄볕처럼 머물러 주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


이효민/ 인천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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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찬바람이 매서운 퇴근길. 집으로 가는 길에 호떡 장사를 하는 부부가 있다. 밀가루 반죽을 떼어 잘게
  부순 땅콩이 든 흑설탕을 넣고 동그랗게 말아 넓은 팬에 올려놓고 뒤집으며 납작하게 누르는 아주머
  니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호떡이 어느 정도 쌓이자 잠시 일손을 멈춘다. 오늘따라 손님이 없어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에 근심이 가득하다
.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우리 부모님도 호떡 장사를 했다. 아이들은 많고 생활은 넉넉하지 않아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나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자 생각한 것이 호떡장사였다. 매일 밤 큰 찜통에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따뜻한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두었다.


잠을 자다보면 찜통이 발에 걸리기도 하고 뚜껑이 열리면 일어나 다시 덮어두고 자야했지만 두 분이 애지중지 여기는 것이라 불평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반죽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항상 뚜껑을 열어보았다. 보글보글 죽이 끓듯 한껏 부풀어 오른 반죽.

 

 

나도 모르게 ‘와아~’ 하는 작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은 우리들을 학교 보내고 점심때 쯤 장사를 나섰다.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했기 때문에 저녁만 되면 우리는 두 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항상 팔다 남은 호떡을 양철 냄비에 담아오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챙겨준 밥을 먹었지만 배불리 먹을 수도 없었고 다른 간식거리가 없어 9시가 넘으면 항상 속이 출출했다.
그때 부모님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 양철 냄비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식어 딱딱해지고 녹은 설탕이 다 흘러나와 납작하게 달라붙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맛나게 먹었다.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리가 없던 우리는 더 많이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에 “엄마가 좀 더 남겨오면 좋겠다.” 라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호떡이 든 냄비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들에게 더 먹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하나라도 더 만들어 팔아야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은 우리들이 호떡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며 잠깐 몸을 녹인 후 다음날 장사를 준비했다. 불판을 기름으로 닦아내고 반죽 통을 우물가에서 깨끗이 씻고 밀가루 반죽과 흑설탕까지 준비해 놓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어딜 가든 먹을 것이 넘쳐나고 간식거리가 풍부하지만 어렵던 그 시절, 늦은 겨울 밤 호떡 냄비를 가운데 놓고 형제들과 빙둘러앉아 먹던 딱딱하고 차가운 호떡은 부모님의 자식사랑이 묻어있는 훌륭한 저녁 간식이었다.

 

 

장주현/ 서울시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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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둘째 딸애가 회사 근처로 나오라는 것이다. 생일선물로 휴대전화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얼른 옷을 입고 딸애의 회사 근처로 갔더니 마침 기다리고 있다가 휴대전화를 새로이 바꿔주
  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서 그런지
목이 말라서 딸애가 사주는 무
  슨 차인지 음료수를 마시고 집에 와서 일이 터졌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구토가 나며 어찌나 아픈지 몸져눕고 말았다. 며칠 전에도 체한 것인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고 했었는데 다 낫지를 낳은 것인지 물만 마셔도 토하고 배가 너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찬 것을 마셔서 장이 놀랐나보다며 아내가 바늘로 손을 따주고 소화제를 먹어도 마찬가지였는데 정말이지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병원 문은 닫혔고 설사 열렸다 해도 조금만 움직여도 속이 메스꺼워 병원에 갈 입장이 아니었다. 토요일 아침에 병원에 가려니 움직일 수가 없었고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차도 탈 수가 없어 그저 누워서 진정을 하기로 했다.

 

특별히 먹은 것이라고는 찬물뿐이었는데 이렇게 심하게 앓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  내일이 아빠 생신인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 하면서 네 딸들은 한마디씩 중얼거렸고 좋은 가을 날씨에 놀러가자고 했던 말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두 손자들까지 데리고 와 있던 큰 딸도 하필이면 생신 때 이렇게 아프시냐고 응급실에 가자며 성화를 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등 뒤로 와서는 “  참, 등 뒤를 이렇게 꾹꾹 누르면 낫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 하면서 내 등 뼈 옆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지고 살 것 같았다. 그러다가 손을 떼면 또 속이 아팠다.


“야 너희들 다 나와서 돌아가면서 한 번씩 아빠 등 눌러드려!”

 

큰 딸애의 말대로 네 딸들이 번갈아가면서 손으로 등뼈를 양옆으로 꾹꾹 누르고 훑어 내려줬는데 그 때문인지 조금씩 배 속이 편해지고 시원해 살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가 “  네 딸들을 낳을 때는 힘들더니만 이렇게 키워놓으니까 호사를 받네.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 하며 웃는다.


“  할아버지. 이제 괜찮아?  ” 하고 네 살 된 손자 녀석이 다가와 이모들처럼 등을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하며 묻는데,  “  할아버지가 아파서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  ” 하자 “  응, 그래 맞아.  ” 하고 맞장구를 친다.

 

생신잔치 한번 거하게 했다면서 내년에도 이렇게 아프실 거면 미리 병원 예약해 두겠다고 해서 또 웃었는데 네 딸들의 극진한 약손 때문에 나았다 생각하니 이 만큼 호사스런 생일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아, 고맙다. 하지만 혹시 생일 선물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은근 슬쩍 넘어가면 안 된다.


박윤식 서울시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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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신발장 위에 하얗고 작은 플라스틱 병이 보였다. 이게 뭐야? 하
  며 집어 들어보니,  무슨 일본말이 잔뜩 써져 있고 그 밑에 한글로 써 붙여 놓은 뻘건 글씨가 눈에 들어
  왔다.

 

 

‘ 초강력 순간접착제’

이걸 왜 사왔지? 하는 궁금증에 마침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설거지를 해주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더니  “ 그냥, 애들 공작숙제 때 뭐 좀 만들어 줄려고 ”  라며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다.

 


그날 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갈증이 생겨 물을 먹기 위해 일어났는데... 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물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이 현관 쪽에 붙어 있는 화장실 불을 켜 놓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며 낑낑 대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여보? 잠 안자고?”
“어? 어... 으...응.. 이것 좀 고치느라고”  남편은 마치 어렸을 때 찬장에 놓여 있던 설탕 훔쳐 먹다가 들킨 어린애처럼 화들짝 놀랬다. 그러나 놀래야 하는 이유를 감추기에는 이미 늦은 터.  바짝 다가가 보니 글쎄....

 

이미 10년은 신어 낡을 대로 낡아빠진 그이의 구두. 벌써 굽을 3번이나 갈았지만 발의 양 볼이 있는 부분이 터졌던 모양이다. 거기에 그 야밤중에 일어나 강력 본드를 떡칠하며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저녁에 본 초강력 순간접착제는 남편이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사온 것이었다.

 

“여보... 이제 하나 사지... 너무 낡았잖아요. 요번에 아르바이트한 거 받으면 내가 하나 사줄게... 그만 신어요, 여보”
“아냐. 이거 아직도 3년은 너끈해. 자동차도 20년씩 타는 거 봤잖아”  잠시 후 다됐다며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난 그이는 10년 된 고물 구두를 정성스레 신발장에 넣어두며  “ 내일은 새 구두 신고 가겠네! ”라며 웃었다.

 

 

너무나 알뜰한 남편, 세상에 둘도 없는 짠돌이 절약파다. 그리고 다시 열흘쯤 지났을까. 마트에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항상 다리가 아프고 어떤 때는 퉁퉁 붓기까지 한다. 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아프고 저리다. 원래 마트 캐셔가 힘든 일이라 중간에 그만두는 아줌마들도 많다.


그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왔는데 아이들이  “ 엄마, 택배 왔는데. 이게 모야? ”  라며 커다란 박스를 가리켰다. 나도 처음보는 물건. 보낸 사람을 보니 ‘김철호’... 엥? 남편이었다. 뭔가 하고 택배를 뜯어본 나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고. 참 내, 나를 또 다시 감동하게 만들었다.


그건 다리와 발을 마사지 해주어 편하게 해주는 자동 안마기였다. 꽤나 비싸 보여서 마트로 전화를 해보니 무려 38만원이나 했다. 자기 구두는 10년 넘게 신으며, 본드를 사다 발라가며 더 신겠다고 ‘수리’까지 하는 사람이 아내가 힘들 거라며 큰돈을 들여 안마기를 선뜻 사오다니.

 

 

저녁때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다. 나는 다짜고짜
“여보, 저거 반품해요. 저런 거 없어도 돼요, 뭐 하러 사왔어요? 돈 아깝게” 라며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그리고 하는 말.
“응 그거. 내가 우리 마누라 직장생활 오래오래 시켜먹으려고 그런 거야.” 라며 하하하 웃으며 농담을 안겼다.

 

솔직히 매일 팔과 다리가 저린 나는 그 선물이 너무나 필요했고 좋긴 했다. 항상 마음과 보살핌으로 가족을 아껴주는 남편.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우리 가정 제대로 살림 꾸려 나가고픈 마음이 넘친다.

 

“여보,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심희수(대전시 서구 갈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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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서른이 된 내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친구였던 피터 팬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예쁜 꿈을 간직한 아이들을 늙지 않는 나라로 데리고 가는 동화 속 친구의 그 순수함을
  지니고 싶다.


얼마 전, 나는 그토록 그리던 피터 팬을 만나게 되었다. 내 아이가 바로 피터팬이었다. 아이를 보며 참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아이에게 무한정 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장 아이로 인해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

 

며칠 전의 일이었다. 출근하기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이의 내복이 덜 말라서 드라이기로 아이의 내복을 말리고 있었다. 드라이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으로 인해 내복 바지가 꼭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며 아이는 즐거워하며 웃어댔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즐겁게 한다.


"  찬아! 옛날에 할머니들은 아이들 옷을 아랫목 따뜻한 곳에 두었다가 밖에 나갈 때 따뜻하게 입혀 주셨대, 할머니들 진짜 착하시지?  " 했더니 갑작스레 아이가 나의 목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우리 엄마도 정말 착해!  "  뜻밖의 말과 함께 한동안 꼭 껴안아 주는 아이 때문에 너무 감동하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고맙다. 우리 찬이도 너무 너무 착하고 엄마가 아주 많이 사랑해! 자, 옷입자!  "

 

 아이는 내복을 입는 내내 따뜻해서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한다. 이런 작은 일로도 감동 받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아이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본다.


모든 아이들의 친구인 피터 팬처럼 나도 내 아이의 피터 팬이 되고 싶다. 아이와 함께 나이가 들지 않는 피터 팬의 나라에서 영원히 순수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김선란/ 서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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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간호사 7년차, 환자분들 앞에서는 늘 허리 숙여 모시는 걸 생명처럼 여기지만‘난이도’ 가 참으로 높은
  어르신들의 성함 앞에서는 우리 간호사들도 곤혹스럽기만 하다.



하루는, 과거 결핵을 앓으셨던 할아버님이 한분 찾아오셨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씀하신다.

 


" 나 저기서 기다릴테니까, 이따가 내 차례가 되면 알려줘요. 내 이름 부르지 말구.”

" 예. 알았습니다." 하고 혹시나 싶어 접수증을 봤더니 존함이 글쎄 '황천길' 님 이셨다.

이미 많이 겪어보신 듯 할아버지께서 미리 챙기신 것이다.

 

 

천길(天吉) 이라는 너무나 좋은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게 성(姓)과 어울리지 않은 탓에 오랜 세월 불편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흉부 X레이 사진과 가래 검사 결과 결핵이 재발하지 않으셨고 상당히 건강하셨다. 돌아가시는 할아버지께 “ 건강하세요. ” 라며 만수무강 을 기원 드렸고 할아버지도 웃으시면서“ 수고들 해요, 또 봅시다.”  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 후 보름쯤 지났을까. 황 할아버지보다 더 ‘심각한’ 할머니 한분이 찾아오셨다. 할머니 존함은 ‘나죽자’님이셨다.우리는 이미 눈빛으로 '조심'을 약속했다. 할머니 차례가 돼서 슬쩍 봤더니 어디로 가셨는지 안 보인다. 그렇다고 소리 내어“나죽자니임~!” 하고 외쳐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저만치 앉아 계신 환자분들 사이사이를 한참 훑어 보던 막내 송간호사가 고개를 숙인 채 오수를 즐기시는 할머니를 포착했다. 송간호사의 손짓을 본 김간호사가 곤히 주무시는 할머니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 저기 할머니…” 하며 흔들어 깨우는 순간 수간호사 선생님이 막 뛰어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 김 선생, 203호 ‘나죽자’ 환자분 퇴원수속 안됐다며 막 화를 내고 찾으시는데 어떻게 된 거야? ”

수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김간호사가 엉겁결에  “ 네? ” 라고 놀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들짝 잠에서 깨신 할머니가 몸을 일으켜 세우신다.

 

응. 나여. 내가 나죽자여. 나죽자 맞아 ” 소리가 의외로 무척 컸다.

그 성함 ‘나OO’ 때문에 주변 상황은 수습하기 어렵게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죽여 푸크크크, 하하하! 히히덕….

“ 앗차차차… 이를 어쩐다…. 에궁…. ”

“ 할머니 이쪽에요. ” 눈치 빠른 송간호사가 얼른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갔지만 이미 뜨악한 지경에 맞닥뜨린 우린 모두 웃지도 웃을 않을 수도 없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나오신 할머니 “ 이제 늙었응께 빨리 죽어야 하는디 무신 명줄이 이렇게 길어? ”  하신다.

“ 무슨 말씀이세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죠. ” 우리 모두는 지은 죄(?)가 있어서 약속이나 한 듯 합창처럼 말했다.

죄송한 마음에 막내 송간호사가 직접 모시고 가서 처방전 찾아 드리고, 약국 따라가서 약 받아 드리고 택시까지 잡아드렸다.


두 분 이름 석 자, 그 반대로 황장수(長壽)님, 나장수(長壽) 님의 마음으로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 드린다.

 

신영하(경기도 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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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햇수로 딱 1년 전,

 “얘, 얘. 너 남편 신경 좀 써야겠다. 저 인격 좀 봐라 얘” 라고 하는 친구들의 비웃음에 내심 속이 상했다.


친구들이 말한 남편의 인격이란 ‘똥배’ 였다. 남편의 키는 180cm. 장난 아니게 큰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그러나 직장생활 하면서 몸매 관리에 소홀한 나머지 지금은 완전히 망가졌다.

 

 

“여보. 이젠 우리도 나잇살 관리해야 하잖우. 운동 좀 합시다.” 그러자 남편의 대답이 의외로 쉽게 나왔다.
“어? 응. 그러지 뭐. 체력은 국력이지. 하하”

 

“엥?” 쓸데없이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며 귀찮게 굴지 말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흔쾌히 “예스” 하는 대답을 하는걸 보니 자기도 이젠 안 되겠다 싶었나보다. 다음날부터 남편은 정말 군소리 없이 아침에 조깅하고, 저녁에 식사 후 나와 함께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그런데 이 욕심 많은 아줌마가 일을 저질렀다. 남편더러 내친김에 운동장 3바퀴 더 추가하자는 욕심을 낸 게 화근. 남편이 정말 순진하게도 3바퀴를 추가한지 3일 만에 “발목이 좀 땡기네.”란다. 부랴부랴 병원에 갔더니 이게 왠일? 발목 인대가 늘어나 더 무리를하면 인대가 끊어질 수 있단다.

 

아차. 뱃살 좀 뺀다고 나섰다가 생사람 잡겠다 싶었다. 남편은 별수 없이 운동 대신 동네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에서 운동 대신 재활(?)에 전념했다. 얼마 후,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이 사실을 고했더니 그중 하나가 박장대소를 한다.

 

“호호호. 얘. 그건 약과다 약과. 우리는 남편도 글쎄 운동하신다 길래 내가 120만 원짜리 러닝머신 한 대를 턱하니 사줬잖니?”
“응. 근데?”
“뭘 근데야? 그거 지금 120만 원짜리 빨래걸이야. 깔깔깔”
“사용을 안 해 먼지만 쌓이고 있다구? 하하하하”

 

얘기를 듣고 보니 그래도 열심히 운동하다 탈이 난 우리 남편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착하기만 한 우리 여~보옹. ㅋㅋㅋ

 

그리고 다시 두 달쯤 지났을까. 회사에 다녀온 남편이 어느 날 운동화 끈을 질끈 묶었다.“재활도 끝났으니 운동 다시 해야지!”오잉? 남편의 각오가 예사롭지 않네?  친구네 집의 120만 원짜리 빨래걸이에 비하면야 우리 남편은 최소 비용으로 운동하는 정말로 모범스런 가장이었다.

 

하여튼 귀여운 우리 남편 큭큭! 우리 여보 팟팅!! 똥배 들어가라. 아자 아자 아자 ~~~ !!!

 

황미경(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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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흑백 사진처럼 누런 옛일 속에 아련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일이 자주 있다.지
  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하나는 이발소집 형에 대한 기억이다. 국민학교를 갓 입학한 어느 날 학교
  를 다녀와 보니 우리 집 앞에 이상하게 생긴 판잣집 하나가 들어서 있다
.

 
그저 나무판 몇 개를 대서 허름하게 만든 그곳은 판잣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어정쩡할 정도였다. 뭘하는 집일까 궁금했는데 그 다음날 간판이 붙었다. 국민학교 1학년인 나만큼의 글씨로“이발”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누가 사는가 궁금했는데 하루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형이  “ 너 요앞집에 사는 애지? 너의 부모님이 집 앞에 이런거 지었다고 뭐라고 안하시니? ”  형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는 게 아닌가.

 


더욱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얼기설기 나무판을 매단 선반위에 가득한 국수다발 이었다. 어렵게 번 돈으로 쌀을 살 형편이 못되는 형은 그저 난로에다 물을 끊여서는 국수 몇 가닥을 뽑아서 냄비에 넣고 반찬이라고는 김치 한 조각 없이 국수가락만을 삼키는 형을 보면서 어린 나의 마음에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날부터 나는 밥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 밥을 더 먹는 것처럼 했다. 그리고는 숨겨둔 밥과 반찬을 들고 형을 찾아갔다. 형은 너무나 고마워했다. 부모님도 오갈 데 없는 고아라고 형을 불쌍해 하셨다. 그리고는 그 형을 집으로 초대하셨다. 이발소 형은 미안해하면서 모처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형의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어머니는 형의 저녁상도 꼭 차려 주셨다. 학교에서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들고 이발소를 찾는 게 나의 행복 이였다. 밥상을 받아든 형은 목이 메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수저를 들곤 하였다. 언젠가는 꼭 갚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때 이발비가 50원 이었는데, 형은 10원짜리 하나 들고 온 아이들의 머리도 그냥 깎아 주었다. 적은 돈을 벌면서도 사람 사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형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이발소가 사라져 버렸다. 그 곳에는 다부서진 판자 몇 조각과 국수 몇 가락이 길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무허가 단속에 걸려 이발소가 무너진 자리를 쳐다보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이었다.


다음날 아침 대문 앞에 도화지를 내 붙였다.

 「 이발소형, 이거보면 우리 집에 꼭 오세요. 보고 싶어요」엉성하지만 정성을 다한 글씨였다.


 
 

비에 젖어 떨어지면 새도화지를 몇 번씩 갈 때까지도 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믿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베풀 줄 알았던 그형은 지금 어디에선가 휼륭한 이발사가 되어 잘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박명선(인천시 서구)

 

 

 지난 한 해 '건강천사'와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신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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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강천사

 가을비 한 번에 속옷 한 벌이라고 했지만 그 시절은 왜 그리도 일찍 추웠을까. 마당가 오동나무가 그 많던
 잎들을 된서리 한 번에다 털어버릴 때쯤, 사람들은 겨울옷을 찾아 입어야한다. 그리곤 봄까지 벗어버리질
 못했다. 벗고 나면 온몸이 썰렁하고 허전해서 견디기 힘든 것이다.



 

워낙 높고 깊은 골짝마을이라 바깥 날씨야 그렇다 해도 우풍 심한 방안도 바깥이나 진배없이 지독한 칼바람이 스며들었다. 방 윗목의 수수깡 동가리에 쌓아둔 고구마가 봄까지  가지 않고 얼어 썩어나간다. 걸레도 개숫물도 얼어버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방 한가운데 놓인 질화롯가에 빙 둘러앉아 불을 파헤쳐서 우리 여섯 남매의 열두 개, 고사리 손은 서로 밀쳐내고 끌어다 대주며 곱은 손을 녹이곤 한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한테 아쉽게 자리를 내주거나 다시 뺏기도 하며….


4남 2녀. 그 서열 중간에 두 살 터울로 어정쩡하게 낀 언니와 나는 머슴애들 틈에 치어서 있는 듯, 없는 듯이 자랐다. 그러다보니 딸들이라 해서 여자 속옷을 얻어 입겠다는 욕심도 언감생심이었다. 가을 추수 마치고 여윳돈 생기면 장마당에 나가 치수 상관없이 여섯 벌을 사다 방바닥에 펴놓은 걸 각자 골라 입으면 되었다.

 

장마에 채마밭 무올라오듯이 쑥쑥 크는 애들 키를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거니와 정강이까지 올라가든, 끝이 길어 몇 번 접어 올리든 불평이 통하지 않았다. 긴 겨울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걸로도 모두 행복해했다.

 

마당 끝의 오동나무와 문간기둥을 가로질러 맨 빨래줄이 끊어질까봐 불안할 정도로 가득 널어놓은 빨래는 한낮에도 땡땡 언 채로 고드름 길게 늘이며 여러 날을 두고 말랐다. 단 한 벌뿐인 옷을 빨고 나면 허전한 속살을 홑옷으로 감추며 어서 마르길 기다린다.

 

 

숱하게 삶아 대서 고무줄이 힘없이 늘어지는 후줄그레한 내복. 내일 당장 입어야 할 사람들 것만이라도 우선 걷어 들여 밤늦도록 등잔불 곁에 바짝 당겨놓고 화로에 말리시던 엄마모습. 그래도 안되면 이불 밑에라도 깔아 말리지만 아침까지도 눅눅한 채라 그냥 입고 학교를 가는 때도 여러 번이었다.

 

워낙 신장이 크지 않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애들 입던 옷이 최종적으론 엄마 차지였다. 여러 벌에서 이리 잘라 잇대고 저리 뜯어내 깁고 또 기운 층층 각색 내복은 그야말로 옷이라기보다 들판의 허수아비조차 남사스럽다고 벗어던질 누더기나 다름없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모두 겨울에 낳게 됐는데 어머니는 산후조리를 돌봐주러 오시면서 두꺼운 속옷을 사오셨다. 사실 처녀적 이후로는 습관이 안돼서 내복을 잘 입지 않았고 정이나 추우면 얇은 거를 입던 터라 몸에 부기만 빠지면 갑갑하다고 벗어버려 두꺼운 내복 입을 일이 없어지곤 했다.

 

이사를 하려고 장롱 속을 정리하는데 그동안 안입고 둔 두꺼운 내복 몇 벌이 눈에 띄었다. 짐을 줄일 겸 버릴까하다가 친정어머니 생신에 내려가는 김에 갖다 드리면 요긴히 입으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

 

  “ 나이는 못 속이는구만. 이젠 그런 내복을 입어야 견디겠지? ”  곁에서 남편이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한다.
  “ 시골 엄마 갖다 드리려구 그래. 촌에서 한 번씩이라도 입고 버리게. ”  그러자 남편 목소리가 대뜸 한 옥타브 올라갔다.
  “ 이사람, 정신이 있나. 장모님은 평생 남 입던 헌옷이나 입으셔야 돼? 그거 당신이 나중에라도 입고 젤 좋은 걸로 두어 벌 

    사다드려.”

  그 말이 내 가슴을 무섭게 쳤다.

 

 

그렇다. 왜 엄마는 아무거나 입어도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졌을까. 아마 평생 그렇게 살아오시는 모습만 보아 와서 내 잠재의식 속에 뿌리박혀 버렸을 거였다. 우리남매가 한 벌씩만 보내드려도 여섯 벌을 넉넉히 껴입을 테니 이번 겨울은 추위를 타지 않게 해드려 한다.

 

속옷이 얇아서가 아니라 무심하기만한 자식들 때문에 느낄, 뼈에 싸늘한 추위를 막아드려야지. 이 글 시작하기 전에 모처럼 드린 전화 한통이 그나마 군불 한 아궁이 더 때신 만큼은 되시려나. 평생 의지하던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시고 오늘밤도 홀로 춥게 주무실 어머니. 오물조물 여섯 새끼들 한 이불속에다 가로 세로 모아 놓고 긴 밤 지켜주시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박정순(인천시 동구 송현동)



 있늘 이 형님 만의 비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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