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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당연했던 웰빙 식품이 아니었나? 식이섬유의 선악 양면

 

 



소비자가 흔히 웰빙 성분으로만 알고 있는 식이섬유도 선악(善惡) 양면이 있다. 적정량 섭취하면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춰주고 변비ㆍ비만을 예방하는 착한 성분이다. 하지만 과다 섭취하면 변비ㆍ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악동’이다. 특히 아이가 너무 많이 먹으면 키 등 성장도 지연되다. 피와 살이 되는 단백질은 물론 뼈의 주성분인 칼슘의 흡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철분ㆍ아연 등 미네랄과 비타민 AㆍDㆍEㆍK 등 유용한 지용성(脂溶性) 비타민도 덜 흡수된다.





성인에선 적정량의 식이섬유 섭취가 변의 양이나 부피를 증가시켜 변비 예방을 돕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식이섬유의 변비 예방 효과를 관찰한 연구는 몇 편 안 되는데다가 결론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변비 예방을 목적으로 어린이에게 식이섬유 섭취를 권장하긴 힘들다. 장(腸)에서 물을 포획하는 능력이 없는 불용성(不溶性) 식이섬유를 적정량 섭취하면 장의 연동운동이 촉진돼 변비를 예방한다. 하지만 과다 섭취하면 변이 딱딱해져 변비ㆍ치질이 생길 수 있다. 불용성 식이섬유는 현미ㆍ통보리ㆍ통밀 등 통곡과 채소 등에 풍부하다. 불용성 식이섬유를 섭취하면서 변비에 걸리지 않으려면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식이섬유는 1g당 열량이 2㎉로 탄수화물ㆍ당류(4㎉)의 절반 수준이다. 먹으면 빠르게 포만감을 느껴 숟가락을 금방 내려놓음으로써 비만 예방에도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 섭취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 정설이 없다. 관련 연구 논문이 부족한데다 결론도 유ㆍ무용으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식이섬유 섭취가 대장암 예방을 도울 것으로 기대되지만 대장암 발생위험을 낮춰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유방암 등 다른 암 예방 효과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식이섬유 섭취가 너무 적으면 대장에 게실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게실에 식물의 껍질ㆍ씨앗 등 음식이 들어가면 게실염이 발병한다. 게실염 환자에게 껍질ㆍ씨앗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의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식이섬유를 하루에 어느 정도 먹는 것이 최선일까? 현재 국내에선 식이섬유의 충분섭취량만 설정돼 있다. 충분섭취량은 ‘이 정도 먹으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므로 더 이상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알고 있는 권장섭취량과는 개념이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설정한 ‘한국인의 영양소 섭취기준’에 따르면 식이섬유의 1일 충분섭취량은 1∼2세 10g, 3∼5세 15g, 6세 이상 20∼25g이다. 대체로 열량을 1000㎉ 섭취할 때마다 식이섬유를 12g씩 추가 섭취하는 것을 기준 삼아 충분섭취량이 설정됐다. 미국의 경우 기관마다 어린이의 식이섬유 권장 섭취량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AAP)는 ‘+5’룰을 적용하고 있다. 3세이면 3+5=8g의 식이섬유 섭취를 권장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가 낸 ‘2015년 한국인의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50대 이상 3명 중 1명은 식이섬유를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다. 식이섬유의 과다 섭취가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18세 이하 어린이는 3.7∼8.6%가 식이섬유를 충분섭취량 이상 섭취한다. 식이섬유를 충분섭취량 이상으로 섭취하는 비율은 50∼64세에서 37.8%로 최고였다. 다음은 65∼74세 노인(33.5%), 75세 이상 노인(31%), 30∼40대(21%), 20대(10.8%), 15∼18세(8.6%), 1∼2세(6.5%), 12∼14세(6.1%), 9∼11세(5.5%), 6∼8세(4.6%), 3∼5세(3.7%) 순(順)으로 대개 나이 들수록 식이섬유 과다 섭취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식이섬유를 충분섭취량 이상 먹는 것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면 설사ㆍ구토ㆍ복부 팽만ㆍ두통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충분한 수분을 같이 섭취하지 않으면 장에 가스가 발생하고 피토베조르(phytobezoar, 식물 위석증)란 섬유질 공을 만들어 장의 흐름을 막기도 한다. 어린이가 식이섬유를 과량 섭취하면 성장 장애ㆍ설사ㆍ복부 팽만 등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다. ‘뉴트리션 리뷰스’(Nutrition Reviews) 2013년 11권에 실린 관련 논문엔 “어린이의 과도한 식이섬유 섭취는 대변량 증가에 따른 영양소 공급 부족, 포만감 증대로 인한 칼로리 섭취 감소, 미네랄의 체내 이용률 저하 등 아이의 건강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에 많이 든 피틴산ㆍ수산(옥살산)은 체내 철분 이용률을 낮출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기본적인 세 끼 음식 안에 식이섬유가 충분히 들어 있으므로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한 식이섬유 부족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2세 미만의 어린이에겐 일반적인 이유식과 식사에 포함된 식이섬유의 양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식이섬유를 따로 보충할 필요가 없다.





식이섬유는 ‘인간의 소화효소로 분해되거나 흡수되지 않는 식물의 난(難)소화성 다당류’로 정의된다. 의외로 종류가 다양하다. 크게 물에 녹는 수용성(水溶性) 식이섬유와 물에 거의 녹지 않는 불용성(不溶性) 식이섬유로 분류된다. 사과 등 과일에 든 펙틴과 돼지감자에 포함된 이눌린 등이 수용성 식이섬유다. 불용성 식이섬유는 대부분 식물세포의 구성 성분이며 현미ㆍ통보리ㆍ통밀 등 통곡과 콩ㆍ과일 등에 함유된 셀룰로오스ㆍ리그닌 등이 여기 속한다. 최근엔 올리고당과 알긴산 등도 식이섬유에 포함시키고 있다. 갑각류에서 얻은 키틴ㆍ키토산 등을 동물성 식이섬유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